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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산책

사랑의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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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글산책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6
최근연재일 :
2023.09.14 09:10
연재수 :
15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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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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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49
글자수 :
804,667

작성
23.08.05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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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글자
12쪽

110화 의사는 환자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DUMMY

15분 후.


그는 발침했다.


그리고 자석침을 다시 놓았다.


이번에는 심정격(心正格)이다.


소충(少衝)과 대돈(大敦)을 보하고

소해(少海)와 음곡(陰谷)을 사했다.


은우는 자석침을 맞은 채 녹음실 내를 왔다 갔다 하면서 목을 풀었다.


그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어느 때보다도 은우의 목 상태가 좋았기 때문이다.


잘 하면 녹음을 성공적으로 끝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은우는 녹음 부스 안에서 눈을 감고 숨을 가다듬었다.


“은우야. 시작할까?”


작곡가가 묻자, 은우는 눈을 떴다.


“예.”


은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잠시 후 노래의 전주가 흘렀다.


은우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소리가 끊기지는 않았지만, 음이 약간 불안했다.


그리고 한 군데서 노래가 정박자보다 약간 빨리 나왔다.


긴장하고 있다는 증거이고, 아직은 노련미가 부족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노래를 갖고 놀만큼 노련한 가수는 필요한 부분에서는 정박자보다 약간 늦게 나오기도 한다.


그렇게 부르면 감정이 깊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요즘은 이런 창법이 올드하다고 피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준영이 듣기에도 은우의 노래는 다시 녹음해야 할 만큼 불안했다.


작곡가는 노련했다.


칼 같이 자르지 않고 좀 더 끌고 갔다.


윽박지르면 은우가 더 긴장해서 노래를 못 부를 거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작곡가는 1절까지 다 듣고 나서 말했다.


“자. 여기까지. 잘했다. 은우야. 음! 좋은데!”


작곡가는 그의 말과는 달리 얼굴을 찡그렸다.


작곡가의 칭찬에도 은우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만족할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걸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잘 했는데, 처음부터 한 번만 더 가자.”


그렇게 해서 다시 부른 노래는 계속 문제가 발생했다.


어떨 때는 소리가 끊어져서, 어떨 때는 호흡이 불안해서 길게 가져가야할 음이 중간에 끊어지기도 했다.


때로는 음이 플랫 되기도 했고, 삑사리가 나기도 했다.


사래가 걸려 기침도 했다.


짜집기도 힘든 상황이 되자, 작곡가도 인내심의 한계를 드러냈다.


그는 화를 참지 못하고 은우에게 말했다.


“야. 서은우. 너 이 노래가 싫지?”

“아닙니다.”

“대표님이 부르라고 하니까 억지로 부르는 거지?”

“아닙니다. 선생님. 저 이 노래 정말 마음에 듭니다.”

“그런데 왜 이래? 너 이번 앨범에 담을 다른 노래 녹음한 거 몇 곡 들어봤거든! 그 노래들은 잘 부르면서 내 노래는 왜 이렇게 불러?”

“죄송합니다.”

“이건 차이가 나도 너무 나잖아. 아무리 들어도 같은 사람이 부른 노래라는 생각이 안 들어. 성대가 제대로 놀지를 않잖아? 가수 성대가 제멋대로면 어떡해?”

“죄송합니다.”


녹음 시작한 지 세 시간이 넘어가자, 짜증이 폭발한 작곡가는 몸을 뒤로 젖히고 허공만 바라보았다.


“저기 선생님. 은우가 어제 잠도 제대로 못자고 너무 긴장을 해서 그렇습니다.”

“대표님. 저도 그걸 알기 때문에 세 시간 동안 참고 그냥 간 겁니다. 그런데 이건 해도 너무······.”


작곡가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알겠습니다. 대표님. 제가 너무 흥분했네요. 죄송합니다.”

“아이유, 아닙니다. 이해합니다.”

“은우야. 한 번 더 가자.”


그러나 달라지지 않았다.


한 시간 후, 녹음은 중단되었다.


“그러면 오늘은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 금요일에 다시 하죠?”


마 대표는 죄인이 된 심정으로 말했다.


“금요일은 제가 다른 스케줄이 있어서 곤란하고, 토요일은 어떨까요?”


마 대표는 준영의 눈치를 보더니,


“원장님도 토요일이 좋으시죠?”

“예. 저도 토요일이 좋습니다.”


그렇게 해서 토요일에 재녹음하기로 결정됐다.


마 대표도 화가 났지만 드러내지 않으려 나름대로 애썼다.


그러나 그 곳에 있는 사람들 중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녹음일자에 맞춰서 만족할만한 목 상태로 회복한다는 것은 애당초 무리였다.


그러니 녹음이 비참하게 끝난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은우는 심하게 상처 받았다.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내일 치료 받으러 오라는 말 뿐이었다.


남은 나흘 동안 은우의 목 상태를 최대한 끌어 올려놓아야했다.


나흘 동안 은우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치료를 받으러왔다.


노력 덕분인지, 은우의 목 상태는 하루하루 좋아졌다.


잘하면 두 번째 녹음은 성공적으로 끝낼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을 가질 정도였다.


그러나 결과는 또 실패였다.


지나친 긴장감이 목구멍을 조인 것이다.


첫 번째 녹음보다는 훨씬 좋기는 했지만 오케이 사인을 내도 될 정도는 아니었다.


“짜집기하면 안 될까요?”


마 대표가 작곡가의 의향을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차피 짜집기는 할 거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는 돼야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상태로는 짜집기해봐야 욕만 얻어먹을 것 같습니다. 귀가 예민한 전문가들은 금방 알거든요.”

“아 예. 그렇겠죠.”

“대표님. 제가 작곡했으면서 이런 말씀 드리기 좀 민망합니다만, 저 이 노래 만들고 느낌이 팍 왔거든요. 이거 대박이다. 허 원장님께서 가사를 너무 잘 써 주셔서 보자마자 30분도 안 걸려 작곡한 곡이거든요.”


대중음악의 경우에는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


수십 년이 지나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명곡 중에는 10분 20분 만에 만들어진 곡들이 제법 된다.


“아무리 잘 만든 곡이면 뭐합니까? 가수가 이런 식이면? 하아! 이것 참.”


작곡가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


세 번째 녹음일자는 잡지도 못하고 끝났다.


준영과 마 대표는 조용한 술집에서 마주 앉았다.


마 대표는 이미 술을 많이 마신 상태였다.


마 대표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원장님. 아무래도 안 되겠습니다. 은우 데뷔 이 정도에서 접어야겠습니다.”


그가 우려했던 일이 현실화되고 말았다.


“이미 은우에게 들어간 돈이 아깝지만 가능성이 안 보이네요.”

“대표님 말씀 이해합니다. 제가 대표님 입장이라도 그런 결정 내릴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럴 경우 은우가 무슨 일을 벌일지 모릅니다. 제가 보기엔 굉장히 위험해 보입니다.”

“그건 원장님 예감이잖아요. 저는 예감이 아니고요.”

“맞습니다.”

“원장님도 보셨잖아요. 성대에 심각한 장애가 왔는데, 어떻게 가수를 해요? 사실 원장님만 아니었으면 은우 여기까지 끌고 오지도 않았어요. <키즈 인 타운>에서 제외되었을 때 끝냈을 거예요. 저는 장사꾼일 뿐이에요. 딴따라 장사꾼이요. 원장님처럼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의사가 아니라고요.”

“압니다. 대표님 말씀 다 옳습니다.”

“하아!”


마 대표는 소주병을 들었다.


그는 소주병을 뺐었다.


“대표님. 이렇게 하시면 어떻겠습니까?”

“???”

“지금부터 은우에게 투자될 돈은 제가 지원하겠습니다. 그래도 은우 포기하셔야 겠습니까?”

“원장님이 왜요?”

“왜겠어요. 은우를 포기할 수 없으니까요.”

“왜 포기할 수 없냐고요? 사실 대중음악계에서는 이런 일 비일비재합니다. 이것보다 더한 일도 수두룩하고요.”

“저도 압니다.”

“??? 제가 알기로는 예전에 은우 누나하고 사겼다던데, 아직 못 잊고 계시는 건가요? 그래서 은우를 포기 못 하시는 건가요?”

“전혀 아닙니다. 우리 죽고 못 살 정도로 깊은 사이도 아니었어요. 미련 같은 거 조금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더구나 이해할 수 없네요.”

“은우한테 투자하는 겁니다. 가능성이 있는 아티스트한테 투자하는 거요,”

“왜 이러십니까, 원장님. 원장님 바보 아니시잖아요. 은우 회복 불능이라는 거 누구보다 잘 아시잖아요!”

“처음 저한테 은우 치료 부탁하신 분은 누굽니까? 대표님이잖아요.”

“그거야, 뭐.”

“제가 아직 은우를 포기하지 않았는데 대표님이 왜 먼저 포기하시는 겁니까? 이건 아니잖아요?”

“원장님. 은우 고칠 자신이 있으신가요?”


마 대표는 정색을 하고 물었다.


“아뇨. 없습니다.”

“그런데요? 아, 그런데 왜요?”

“못 고칠 거라는 확신도 없으니까요.”

“예?”

“환자는 의사를 포기할 수 있지만, 의사는 환자를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회생불가능하다는 확신이 들기 전까지는요. 그게 의사의 숙명입니다.”

“······.”

“더러운 숙명이죠.”


술집에서 헤어질 때까지, 마 대표는 확답을 하지 않았다.


“원장님 말씀, 생각은 해보겠습니다.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시고요.”


그 말을 끝으로 마 대표는 테이블위에 머리를 박았다.


#


그리고 토요일.


성원그룹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진료를 하는 첫날이었다.


며칠 전 그는 두 선생에게 미리 일러두었다.


“모르고 오신 환자분들이 계실 거예요. 그냥 돌려 보내지 말고 접수하세요. 가급적 평일을 이용해달라고 안내만 하시고요.”

“그래도 토요일에 오시겠다고 하면 어떡해요, 원장님?”

“당연히 봐 드려야죠. 제 말은 칼 같이 구분하라는 뜻이 아니라 펀의상. 편의상. 무슨 말인지 알겠죠?”

“예.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첫날은 일반 환자가 더 많았다.


그리고 간혹 성원 그룹 환자들이 찾아왔다.


그 중 지신을 성원 가족이라고 소개한 한 남자직원은 치료 받으러 온 게 아니라 다른 속셈이 있는 것 같았다.


어깨 결림으로 치료 받으러 온 환자였는데, 침구실로 이동하기 전 지나가는 말처럼 슬쩍 물었다.


“저, 오늘 원장님께 침 맞고 가는 길에 X또 복권을 살까 싶은데, 사도 되겠습니까?”


정 기사 얘기를 듣고 온 게 틀림없다.


“그럼요. 사고 싶으면 사셔야죠.”


그의 얼굴이 해바라기 꽃처럼 활짝 폈다.


“그렇습니까? 이왕이면 번호도 찍어주시면 안될까요? 하하하.”

“뭐어, 안 될 거야 없죠. 그냥 아무 번호나 찍어드리면 되겠습니까?”

“이왕이면 1등 당첨될 번호로요.”

“저도 그게 궁금합니다. 혹시 알고 계시면 저한테도 귀띔 좀 해주시겠습니까?”


선민경도 왔다.


그런데 혼자 온 게 아니었다.


회사 동료와 같이 왔다.


그는 우선 민경부터 치료한 후 그녀와 마주 앉았다.


이혜진. 30세.


“어디가 불편하신가요?”


그녀는 묻는 말에는 대답 안하고 입가에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아! 이 여자도 나한테 첫 눈에 반한 건가!’


뒤늦게 여자 복이 터져, 그는 요즘 상쾌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던 터였다


‘아! 이놈의 여자복은 식을 줄을 모르네. 아! 피곤해. 코피 터지겠네. 오늘은 시간 내서 내 사주 한 번 봐야겠군. 이놈의 여자 복은 언제 나가는지!’


그도 부드럽게 웃으며 한 번 더 물었다.


“저, 모르시겠어요?”


그녀는 웃음을 가득 머금은 채 그렇게 물었다.


“예? 그,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저는 알 것 같은데요. 처음 뵙지만요.”


그는 기억을 더듬었지만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저, 허 원장님께 바람 맞았잖아요. 아시는 분이 갑자기 아프시다고 하시면서요.”


그는 그녀의 얼굴과 차트에 기록된 이름을 번갈아 보더니,


“아아. 그 때 그 소개팅!”


다이어트 한약을 먹고 탈이 났던 은교.


은교 때문에 본의 아니게 바람 맞혔던 소개팅녀.


맞다.


그녀 이름이 이혜진이었다.


“아아! 이혜진 씨! 그렇군요. 그 때 그 소개팅.”

“이젠 아시겠어요? 저는 처음 뵙지만 알 것 같았거든요. 느낌으로요.”

“느낌으로요? 제가 감이 없네요. 그 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그녀는 웃기만 했다.


그 때 인터폰이 울렸다.


-원장님. 마 대표님 전화예요.-

-지금 진료중이잖아요.-

-아주 급한 일인가 봐요. 원장님 휴대폰으로 여러 번 전화를 해도 안 받으셔서 한의원으로 전화를 하셨나 봐요. 아무래도 받으셔야 겠는데요.-


그는 이혜진에게 양해를 구하고 마 대표의 전화를 받았다.


-원장님. 큰일 났습니다. 은우가 양화대교 위에서 자살소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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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122화 대화 그룹의 회장 딸 +2 23.08.17 1,081 23 12쪽
121 121화 미니 콘서트 +1 23.08.16 1,082 24 12쪽
120 120화 안달 난 선 회장 +1 23.08.15 1,105 24 12쪽
119 119화 살아야겠다 +1 23.08.14 1,121 24 12쪽
118 118화 우리 쭈우욱 같이 가는 거야! +2 23.08.13 1,116 26 12쪽
117 117화 헛돈 +1 23.08.12 1,116 24 12쪽
116 116화 경영 컨설턴트 허준영 +1 23.08.11 1,120 25 12쪽
115 115화 화장품 대박조짐 +1 23.08.10 1,142 23 12쪽
114 114화 여장하는 준영 +1 23.08.09 1,133 27 12쪽
113 113화 선민경의 관상과 사주 +1 23.08.08 1,152 25 12쪽
112 112화 후계자 +1 23.08.07 1,182 23 12쪽
111 111화 침 꽂고 노래하는 은우 +1 23.08.06 1,168 23 12쪽
» 110화 의사는 환자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2 23.08.05 1,203 25 12쪽
109 109화 돈보다 주식으로 +2 23.08.04 1,200 27 12쪽
108 108화 연축성 발성장애 +2 23.08.03 1,242 26 12쪽
107 107화 내 집 마련에 성공하다 +1 23.08.02 1,288 28 12쪽
106 106화 X또 1등 당첨 +1 23.08.01 1,290 23 12쪽
105 105화 투자 실패 +1 23.07.31 1,290 24 12쪽
104 104화 선 회장의 사윗감 허준영 +1 23.07.30 1,315 20 12쪽
103 103화 질투의 화신 허준영 +1 23.07.29 1,306 24 12쪽
102 102화 자전거 같은 여자 +1 23.07.28 1,338 25 12쪽
101 101화 선 회장과 담판을 짓다 +1 23.07.27 1,317 21 12쪽
100 100화 자기 몸에 침을 놓다 +1 23.07.26 1,275 25 12쪽
99 99화 선 회장 +1 23.07.25 1,354 24 12쪽
98 98화 피습 +1 23.07.24 1,314 23 12쪽
97 97화 가스라이팅 +1 23.07.23 1,334 22 12쪽
96 96화 마동자 비만 치료 종료 +1 23.07.22 1,314 23 12쪽
95 95화 스토커 +1 23.07.21 1,349 22 12쪽
94 94화 바람둥이 +1 23.07.20 1,339 22 12쪽
93 93화 방구냄새 +1 23.07.19 1,339 2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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