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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블랑 님의 서재입니다.

역대급 무역천재가 사업을 잘함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르블랑
작품등록일 :
2023.10.16 10:21
최근연재일 :
2023.12.18 19:02
연재수 :
6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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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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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17,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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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18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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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4화 반전의 기회

DUMMY

낡은 가방 속에 손을 넣어 열쇠를 꺼냈다.

엄지와 검지로 열쇠 머리를 잡고 현관문의 손잡이에 나 있는 구멍을 찾아 집어넣었다.


퇴근 전 가방을 뒤져보다가 지갑 안에서 찾아낸 구닥다리 열쇠.

동그란 열쇠 머리의 표면에 B01이라는 글자가 씌어있는 종이가 붙어있는 것을 보고 녀석이 사는 집의 열쇠라는 것을 직감했다.


아무리 그래도 지금 세상에 디지털 도어락이 아닌 열쇠로 여는 집이라니...


열린 문으로 발을 들이고 어둠 속에서 안쪽 벽에 손을 대고 이곳저곳 더듬다 보니 스위치가 만져졌다.


- 톡!


불을 켜자 방바닥에 있던 몇 개의 검은 점이 ‘사사삭’ 싱크대 아래로 숨어들었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다 못해 등골까지 오싹해져 왔다.


내가 잘못 본 것이길 바랄 뿐.


방안으로 발을 들이고 싶은 생각이 한순간 싹 사라졌다.


환해진 방 안은 휑하다.

현관 맞은편 벽에 있는 작은 창문은 밖의 도로와 맞닿아 있다.

그것도 유리창 윗부분의 10여 센티 정도이고 그 아래는 어두운 벽이다.

반지하인 줄 알았건만 이건 그냥 지하 방이다. 낮에도 저 좁은 곳을 통해 빛이 들어올까?

아니, 비가 오면 빗물이 스며들지는 않을까?

장마 때 방이 침수되는 것은 아니겠지?


“...휴우!”


한숨을 내쉬고 구두를 벗은 후 내키지 않는 발을 방안으로 들였다.

여튼, 나는 밤을 지낼 곳이 필요하고, 이 몸의 주인은 눈에 보이는 그대로 궁색하다.


창문 아래 벽에 가방을 툭 던져 놓고 방을 다시 한번 둘러보았다.


현관 옆에 놓여있는 손바닥만 한 낡은 냉장고.

슬며시 열어본 안에는 얼마나 오래된지 가늠할 수도 없는 배추김치 한 움큼이 검은 비닐에 담겨 있다. 한순간 퍼져 나와 방안을 가득 채운 시고 텁텁한 김치 냄새가 코를 불쾌하게 자극한다.


그 옆, 한주먹의 공간을 비우고 수평을 맞추느라 장판을 잘라 접어 발밑에 끼운 일그러진 싱크대가 자리를 잡고 있다.

그 위에 올려져 있는 쟁반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안에 눕혀있는 이 빠진 대접 두 개와 수저 한 개, 그리고 젓가락 두 짝이 을씨년스럽다.


한쪽 벽에는 머리 높이에 한 줄로 못이 연이어 박혀있고, 올이 다 뽑혀 헐벗은 수건 두 개와 낡은 츄리닝 한 벌이 걸려있다.


한쪽 구석에 퀴퀴한 담요 하나가 개켜 놓여있고 그 옆에 플라스틱 바구니 하나가 놓여있다.

그것이 녀석의 방에 있는 전부다.

선풍기도 안 보이는데 녀석은 여름을 어떻게 난 것일까?


화장실도 없는 걸 보니 다른 사람들과 공동화장실을 사용해야 하는 게 틀림없다.


발을 옮겨 플라스틱 바구니를 들고 방 한가운데 앉았다.


“..휴우우우우!”


제멋대로 나오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바구니 속에 손을 집어넣고 그 안에 있는 것들을 하나씩 들춰보기 시작했다.

회사 업무를 정리한 자료가 맨 위에 올려져 있다.

퇴근 후에도 하라고 시켜서 만든 것인지 녀석이 스스로 숙지하려 만들어 놓은 것인지 알 수 없다.


그 아래에 놓여있던 여권과 통장이 눈에 들어왔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통장을 얼른 손에 집어 들고 들추어 보았다.

통장을 개설하더라도 대부분 어딘가에 넣어두고 카드만 가지고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 아니던가?

그런데 녀석은 바로 지난주까지 통장정리를 깔끔하게 해 놓았다.


“뭐야 이게!!”


급여로 들어온 금액을 보는 순간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겨....겨우 백 오십칠만 원?”


아무리 6년 전으로 거슬러 왔다 해도, 그리고 세후로 입금된 금액이라고 해도, 이거 너무 터무니없이 적은 돈 아냐? 이거 최소한 최저임금에 맞게 받긴 하는 거야?

야근에 토요수당도 있을 거 아닌가.


게다가 첫 삼 개월간 입금된 급여는 간신히 백 삼십을 넘기고 있었다.


월세로 나가는 돈이 25만 원에 녀석이 한 달에 잡비로 쓰는 돈은 대략 20만원.

그리고, 눈에 뜨이는 출금 내역.

삼 개월째 급여일 다음 날인 26일에 80만 원씩 누군가에게 녀석은 매달 돈을 부치고 있다.


-차진석


차진석이라...

녀석의 가족 중 첫째 형의 이름이 틀림없다.

그런데 제 코가 석 자인 놈이 왜 형에게 매달 80만 원이나 보내는 거지?


여튼, 당장 중요한 것은 통장에 남아있는 잔고다.


[1,254,000 원]


이게 녀석의 전 재산일 터.

한숨만 나오지만 어쩌겠는가.

그래도 다행히 급여일은 이틀 후. 급여가 들어오면 최소한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오 부장과 공장장의 얼굴이 내 눈앞을 스쳐 갔다.

연이어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날 내려다보던 마 대리의 비웃음 가득한 얼굴도.

“너, 어디 산 구석에 처박혀있는 남들 생판 모르는 전문대 나왔대도 회사생활 편하라고 내가 해준 게 한두 가지야?”


「용암전문대 영어학과 졸업」


그래, 그 이력서 가지고 네가 어딜 딴 데 갈 데가 있었겠냐?

몸이 크고 튼튼하길 해서 막노동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 그런 모욕 다 참아내면서 바싹 엎드리고 알아서 기었구나. 거기서 쫓겨나면 입에 풀칠할 방법이 없으니.


“새끼. 학교 다닐 때 공부 좀 열심히 할 것이지!”


통장을 바구니 안에 도로 집어넣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손을 뻗어 벽에 걸려있던 녀석의 냄새 나는 츄리닝을 손에 집어 들었다.

코에 갖다 대지 않아도 쉰내가 풍겨왔다.


“제대로 빨아서라도 입을 것이지. 개애새끼.”


몰려오는 짜증을 참아내며 후줄근한 양복을 벗었다.

대충 빈 못에 윗도리와 바지를 걸어 놓은 후 숨을 참고 녀석의 츄리닝을 몸에 걸쳤다.


전등을 끄고 바닥에 가만히 드러누웠다.


이렇게 잠들면 숨어있던 바퀴벌레 놈들이 다시 스멀스멀 기어 나오지 않을까?

한순간 가슴과 배, 허벅지의 피부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느낌이 몰려와 몸을 벌떡 일으켰다.


갑자기 참을 수 없는 서러움이 몰려왔다.


손등으로 나도 몰래 눈꼬리에 맺히는 눈물을 문질러냈다.


미국 유학 중에야 기숙사에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사이에 부모님은 송도에 몇 개 없다는 테라스 아파트 중에서 제일 전망 좋은 곳을 사놓으셨다.

쓰리 룸에 널찍한 거실.

바다 건너온 제품으로 가득 채워진 근사한 주방과 조명.


주말이면 친구들을 불러 근사하게 장식한 테라스에서 파티도 즐기곤 했다.


그랬던 나였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버티고 살아남아서 원래 나의 모습을 되찾을 것이다.

그리고 천년만년 풍족한 부를 누리며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거다.


“난 홍두식이야! 구질구질한 차진구가 아니라구!”


까짓 삼 년이다.

예전엔 군대도 3년이었다더라.

이까짓 거, 그걸 못 참아내겠어? 내가?

천하에 홍두식이가?


다시 방바닥에 누웠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몸을 일으켜 전등을 켰다.

그리고 밀어 놓았던 플라스틱 바구니 속에 녀석이 넣어 놓았던 회사 자료를 꺼내 들었다.

거래처별 제품 규격, 무역 실무 자료, 그리고 수출품 출고 후, 은행에 제출해야 할 네고 서류 등 설명이 가득하다. 한쪽에는 누군가의 명함도 한 장 박혀있다.‘

’배광식.‘


포워딩 회사에서 선하 증권 영업을 하는 친구 놈.

이 녀석도 이렇게 찌질한 차진구 같은 놈에게까지 와서 영업 명함을 뿌리고 갔군.


그래 먹고사는 게 이렇게 힘들구나.


새롭게 느껴지는 깨달음이 내 영혼을 일깨웠다.

벽에 등을 대고 놈이 만든 자료철을 손에 집어 들었다.


종잇장을 넘기면서 밤새 읽었다.

수능이 가까워진 고3이 밤을 새우듯.

장학금을 반드시 받아야 하는 가난한 고학생이 중간고사 전날 밤에 밤을 밝히듯.



그런 나의 귀에 언뜻 창밖으로 지나가는 새벽형 인간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 * *





“그래. 배송하고 들어오는 거지?”

나만큼, 아니 차진구만큼이나 작은 체구의 사장이 사무실로 들어오는 나를 보며 희멀건 웃음을 흘렸다.


“예. 방금 동서철강하고 한서특수강 물건 이 기사 차에 실어 내보냈습니다.”


손에 두 겹으로 낀 목장갑을 벗어 책상 한쪽에 올려놓으며 언뜻 사장을 돌아보았다.

놀랍게도 그는 여전히 나를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수리까지 벗겨진 머리에 마치 토마토처럼 옆으로 넓적한 얼굴 가득 웃음으로 자글자글하게 주름져 있다.


“이제 6개월 지났으니 얼마만큼 일도 익숙해졌을 거야. 그렇지?”


키는 작지만, 차돌같이 단단한 체구에 목소리는 화통을 삶아 먹은 듯 큼지막한데, 그게 또 양철을 쇠붙이로 긁듯이 날카롭고 자극적이다.

그리고 방금 사장은 나에게 물은 것이 아니다.

아직 외근 전인 마 대리와 공 주임, 그리고 부장과 공장장을 돌아보며 한 질문이다.


“...예..에.”


자리에 서 있던 오 부장이 엉거주춤한 투로 마치 말을 삼키듯이 대답했다.


“그래. 그럼, 특별한 일 없으면 나랑 잠깐 얘기 좀 하지?”


여전히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사장이 나를 바라보았다.


“오 부장. 미스터 차 급하게 시킬 일 없지?”

“예. 없습니다.”

“그래. 그럼 지금 물품 나간 것만 정리하고 빨리 올라와.”

“알겠습니다.”


사무실 직원들을 한번 둘러본 사장이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걸음을 옮겼다.

문밖으로 그의 모습이 사라지고 난 후에야 직원들이 자리에 엉덩이를 붙였다. 그리고 조용하던 사무실이 대화와 전화 통화로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사장님 부르셨잖아. 일하는 척하지 말고 어서 올라가.”

“....예.”


시큰둥한 오 부장의 목소리에 건성으로 대답하고 손에 들고 있던 명세표를 서랍 안에 넣었다.

몸을 돌려 계단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내 등 뒤에서 공장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출세했네. 차진구. 사장님하고 독대도 하고.”

“출세는 무슨. 사장님 외국 가고 싶으니까 건수 만들라는 건데, 쟤가 무슨 재주로...”


등 뒤에서 들려오는 킬킬거리는 비웃음을 털어버리고 계단을 올랐다.

그래, 그렇게 실컷 비웃어 봐라. 나중에 눈물 콧물 쏙 빼놓게 해 줄 테니까.

물론, 내 능력에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도 직급이 다르고 짬밥으로 쳐도 비교도 안 되는 내가 저 인간들을 무릎을 꿇릴 수야 없겠지. 하지만 절대로 저렇게 멋대로 말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이다.


분노를 삭이느라 이를 악물며 3층으로 올랐다.


60 중반이라는 사장은 걷기가 취미라더니 출근하면 3층 계단을 몇 번이나 오르락내리락한다고 했다. 건강에 걷기만 한 보약이 없다는 도보 신봉자이고 지금도 한두 정거장 정도는 차를 타지 않는다고 했다.


- 똑똑


“들어와.”


노크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안에서 쇳소리가 섞인 사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응. 거기 앉아라.”

“...예.”


사장이 가리키는 긴 소파에 앉자, 사장도 한 손에 결재판을 들고 슬그머니 다가와 내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결재 올린 내용 다 확인해 봤다.”


그가 결재판을 열어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으로는 안경을 이마 위로 치켜올렸다.

눈을 가늘게 뜨고 다시 한번 읽어보는 듯 보이던 그의 입가에 기대 반, 회의 반의 미소가 번졌다.


들고 있던 결재판을 사장이 내 앞으로 내밀었다.


“거기 해외 업체들은 다 어디서 구했냐?”


펼쳐진 서류에 총 8개의 해외 업체명이 나열되어 있다.

지난밤, 녀석의 방에 정리해 놓은 자료에서 이미 본 업체 리스트다. 그 와중에 녀석이 거래를 터 보고자 여기저기에서 찾아낸 것이 틀림없다.

아니, 그러고 보니 진구의 컴퓨터 회사 이메일 계정에 해외에서 온 메일이 두 갠 가 있던 것 같던데, 혹시 그게 이곳에서 온 답신인가?


동시에 사장실로 올라오기 전, 등 뒤에서 들려오던 오 부장의 말도 떠올랐다.

사장은 외국에 나가고 싶어 하는 것이다. 비즈니스라는 이유를 내세워서.


“상공회의소에 의뢰해서 자료를 받았습니다. 물론, 그 후에 인터넷으로 업체들을 알아보기도 했고요.”

“그래? 제법이네.”


입가에 웃음을 흘린 사장.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주억거리던 그가 슬며시 표정을 바꾸며 손을 들어 손가락으로 내 앞의 결재판을 가리켰다.


“그 뒤에 업체는 아는 사람이 하는 거냐?”


그의 말에 손을 내밀어 결재판 위 서류의 다음 페이지를 넘겨보았다.

B/L 거래 변경 제안서가 눈에 들어왔다.

선하 증권이라는, 해외로 나가는 화물선에 싣는 수출품의 명세서로 이것을 선박회사에서 발급받아 해외 수입업체에 보내면 그 업체가 이 증서로 후에 수출품을 선박회사로부터 찾아갈 수 있는 보증서다.

그걸 직접 선박회사와 거래하지 않고 포워더(운송 에이전트)를 통해서 거래하겠다는 제안서를 녀석이 올린 것이다.


“항상 H 상선하고 다이렉트로 거래하다가 이번엔 다른 데를 쓰겠다고 했네?”


사장의 눈빛에 이채가 흘렀다.

책망하거나 비난하려는 건 아닌 듯했다. 그저 정말 왜 중간에 한 다리 거치겠다는 건지 궁금한 표정이다. 하필 녀석이 내내 있다가 지금 이 타이밍에 배광식이네 회사를 통하겠다고 품의서를 올릴 것은 또 뭐람?

이 녀석의 몸으로 들어온 순간 결재서류를 보며 이사가 기분 나빠하던 표정이 이거였군?


“해외 마케팅을 통해서 신규 거래처를 좀 발굴해 보려고 합니다. 사장님.”


어쩔 수 없이 대충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어딘 가에서 들어본 적이 있는 대로 주절거릴 수밖에.


“사장님의 재가를 받게 되면 8곳의 외국 업체에 보낼 Sample 제작도 들어가려고 합니다. 회사 소개하는 서신도 계속 작성해서 보낼 계획이고요. 그러다 보니, 마음이 조금 조급해져서 시간을 쎄이브할 방법을 찾다가...”


말끝을 흐리며 사장의 얼굴을 살폈다.

여전히 표정의 변화 없이 그는 나의 말을 경청하는 듯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가격도 선사와 직접 거래하는 것과 차이가 없습니다. 또 B/L도 회사로 송달 해준다고 해서 우리가 직접 찾으러 갈 필요도 없고요. 물론 퀵 비용도 그쪽에서 낼 겁니다.”


가격 차이가 나면 소심한 이 녀석이 결재를 올렸을 리가 없다.

그리고, 그깟 퀵 서비스 비용이야 부탁하면 그쪽에서 선불로 하겠지. 얼마나 한다고.

아니면 배광식이에게 내라고 하거나 안되면 내가 내도 된다.

여튼, 지금 이 상황은 모면해야 한다.


나를 바라보던 사장의 입 끝에 여전히 반신반의한 미소가 흘렀다.


“그래, 그 8곳 중에 우리와 거래하겠다는 업체가 있을까?”

“진실하게 성의를 보이고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이 업체들과 거래가 체결되지 않는다고 해도 전 세계 구석구석 모두 뒤져서 우리 물품을 구매할 수 있는 업체를 찾아내 보겠습니다.“


나의 그 말에 사장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오케이! 알았다.“


그렇게 말한 그가 손가락으로 결재판을 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조용히 일어나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여전히 뻗치고 있던 그의 손에 결재판을 건넸다.


이제야 보니 부장과 이사의 결재란에 도장이나 사인이 되어있지 않다.

그러면 반려를 시킬 것이지 왜 이 결재서류는 사장의 책상까지 올라온 것일까?


사인펜을 든 사장이 부장과 이사의 결재란에 사선을 휙 그었다.

그리고 사장의 결재란에 한 획으로 날렵하게 사인을 했다.


”그래, 멋지게 한번 해 봐!“


결재판을 건네받는 나를 보며 사장이 호탕하게 웃었다.


”미스터 차. 기억나냐? 처음 나하고 면접 볼 때 영어 좀 해 보라니까, 내 앞에서 5분 동안 떠들었잖아. 그때 될 나무인 줄 알고 있었다. 다른 놈들은 몰라도 난 너한테 기대하는 게 많아. 열심히 해봐.“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여권은 새로 발급받았나?“

”...예에. 집에 있습니다.“

”그래. 곧 같이 한번 밖에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오자.“

”알겠습니다.“


결재서류를 들고 사장실을 나왔다.

그리고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녀석이 사장 앞에서 5분 동안이나 영어로 떠들다니?

영어를 더럽게 못 한다고 부장과 공장장이 씹지 않았던가?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녀석, 면접 보기 전에 어디서 주워들은 영어 달달 외운 것이 틀림없었다.

예상 외로 사장은 녀석을 믿어주고 밀어주고 있다.

이런 호(好)기회를 잃어버리면 절대 안 되지.


”그래. 까짓, 이 작은 회사 한번 내 손안에 넣어 보자!“


가슴을 펴고 얼굴에 웃음을 담은 채, 호기롭게 사무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발을 옮겼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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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32 베르겐
    작성일
    23.10.18 13:10
    No. 1

    6년전으로.. 스피드감이 있어서 재밌습니다.
    이제 다음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이네요. 작가님 건필하세요.
    (추천사까지 써주셔서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감사의 말씀은 공지에 따로 올리겠습니다. ㅠㅠ.)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32 르블랑
    작성일
    23.10.18 21:17
    No. 2

    열심히 쓰려고 노력중입니다. 감사합니다. 추천글을 진작에 올렸어야 하는데 늦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0 레드풋
    작성일
    23.10.18 14:14
    No. 3
  • 답글
    작성자
    Lv.32 르블랑
    작성일
    23.10.18 21:18
    No. 4

    감사합니다. 레드풋님. 알려주시는 조언 항상 잊지 않고 마음에 새기면서 열심히 써 보도록 하겠습니다.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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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0화 얼떨결에 이륙당함 +2 23.10.24 1,513 47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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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8화 2회차, 쪼옴 할만한데~~? +2 23.10.22 1,569 4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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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5화 최종 보스 사장님 +4 23.10.19 1,724 38 19쪽
» 4화 반전의 기회 +4 23.10.18 1,803 42 16쪽
3 3화 최강 빌런 마 대리. +2 23.10.17 1,894 42 19쪽
2 2화 녀석은 개호구였다. +3 23.10.16 2,183 47 17쪽
1 1화 뜻밖의 계약 +10 23.10.16 3,006 54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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