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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각 님의 서재입니다.

FULL OF TEARS AND FIRE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로맨스

커빙
작품등록일 :
2020.07.08 17:29
최근연재일 :
2020.10.02 09:00
연재수 :
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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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1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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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06,224

작성
20.09.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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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낯선 곳으로 날아가고 싶었다

DUMMY

또 다시 외톨이가 되어 북조선 국가보위부의 어느 건물 대기실에서 며칠을 기다렸어요.


'나 여기서 죽는 것은 아니겠지. 그들이 나를 죽일 이유는 없잖아. 나는 광주민주화운동에도 적극 가담했었고, 6월 민주항쟁 때에도 적극 참여하여 안기부에서 조사를 받고 교도소에서 옥고도 치렀는데... 임재구 선생을 도와 마르크스의 자본론이라는 책의 번역을 도우며 마르크스 사상을 알게 되었고 그의 사상에 동조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노동자 중심의 사회주의의 정신에 동의한다. 그러나 내가 북조선인민공화국에 온 것은... 단지, 그런 사회주의 혁명을 달성하려고 온 것만은 아니긴 하다.'


'내 개인적인 문제로 광주에서 떠나고 싶어서...

현실적인 삶의 고통에서 도피하기 위해서...

그래, 나는 어디로든 떠나가고 싶었다.

한 마리의 기러기가 되어

먼 이국땅,

어느 낯선 곳으로라도 날아가고 싶었다.'


햇볕이 잘 드는 어느 날 아침이었어요. 무뚝뚝한 사내가 제 대기실로 기침소리를 내며 들어왔어요.

"김오식 동무, 동무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았소. 여러 가지 민주화를 위해 많은 일을 한 것은 인정하것소."

사내가 말했어요.

"그럼, 저도 좋은 곳으로 배치해주십니까?"

제가 기대를 하며 말했어요.


"아니오. 당신은 출신성분이 불순해서리 다른 곳으로 갈 거우다."

"무슨 출신성분인지요?"

제가 물었어요.

"동무의 아버지가 남조선 중앙정보부 핵심간부라는 것이 밝혀졌소. 당신의 아버지는 반혁명분자요. 동무도 마찬가지요. 북조선에서는 출신성분이 가장 중요하오. 한 번 더럽혀진 피는 다시 쉽게 더럽혀지는 법이오. 반혁명분자의 가족도 반혁명분자가 되는 거오."

사내가 인상을 쓰며 말했어요.


"아니, 사회주의 국가에서 무슨 혈통 타령입니까? 만인 평등의 사회주의국가 아닙니까?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제가 화를 내며 되물었어요.

"우리 북조선의 체제 유지를 위해 힘주어 말하는 거오. 우리 북조선에는 3대 계층이 있소. 핵심계층이 약 28%, 동요계층이 약 45%, 적대계층 약 27%이오. 그리고 더 자세하고 구체적으로는 51개 부류로 나뉘어지오. 누구든 반당·반혁명 종파 분자로 쇠도장 찍히면 적대계층이 되어 정치범수용소로 가는 거우다."

"그런 법이 어딨습니까? 북조선은 사회주의라고요, 사회주의! 노동자가 중심이 되는 평등사회라고요! 북조선은 계급사회가 아니라고요!"

제가 다시 언성을 높여 말했어요.


"그런 꿈같은 소리는, 헛소리는 집어치우시라우. 나도 백두혈통으로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았같습네까. 그러면 세계 어느 재벌보다 더 잘 살수 있시오. 해외유학도 가고 승마도 하고 비행기도 타고 스키도 타고 외제차도 타고 골프도 치고 매일 양주도 먹고 얼매나 좋을까? 아니 빨찌산혈통만 되었어도... 그들에게는 북조선이 지상낙원이디."

사내가 꿈꾸듯 몽롱한 기분으로 말했어요.

"그럼, 핵심계층을 뺀, 나머지 72%의 인민들은 어떻습니까?"

제가 물었어요.


"뭐, 굶어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기지."

사내가 계속 말했어요.

"여기서는 대학도 공부 잘 한다고 갈 수 없소. 당의 소개가 없으면 자기 맘대로 가지 못하는 곳이오. 나도 대학 가고 싶었소. 그 정도의 출신이 못되어서리..."

사내가 쓸쓸한 어조로 말했어요.

"동무, 아무쪼록 어디 가든 잘 버티시오. 살아남아야 다음도 있는 기요."

사내가 걱정어린 눈빛으로 저를 바라봤어요. 저는 넋 나간 사람처럼 멍청한 모습으로 그의 말을 듣고만 있었어요.



"김오식 동무, 어서 일어나기오. 동무는 함경남도 요덕군에 위치한 15호 관리소로 배치되었소."

사내가 어둠을 헤치고 나타나 자고 있던 저를 흔들어 깨우며 말했어요.

"예? 15호 관리소는 뭐하는 뎁니까?"

제가 잠결에 일어나 눈을 부비며 사내에게 물었어요.

"15호 관리소는 정치범수용소요. 그래도 완전통제구역보다는 나은 혁명화구역에 배치되니 다행인줄 아시오. 남조선에서 민주투사로 왔으니 당에서 배려한 거오."

사내가 말했어요.


"제가 꼭 그런 곳으로 가야합니까?"

제가 인상을 쓰며 물었어요.

"당에서 그렇게 낙착한 거오. 거절하지 마시오. 앞으로 여기가 북조선이라는 것을 잘 료해하시라우. 모든 걸 당에서 명령하여 시키는 대로 해야 하오. 잊지 않게 잘 새기시오!"

사내가 강하게 말했어요.

"그런 곳으로 가기 싫은데... 나는 아무 죄도 없소."

제가 짜증을 내며 중얼거렸어요.


저는 어스름한 달빛이 비추는 건물 밖으로 나갔어요. 거기에는 저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 십여 명이 군용트럭에 타고 있었어요. 제가 맨 나중에 트럭에 오르자 트럭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가서리 잘 버티시오. 꼭 살아남아야하오."

사내가 큰 소리로 따뜻한 이별의 말소리를 전했어요.


트럭 안에 탄 사람들은 어린아이에서부터 늙은 아저씨까지 다양한 사람들이었어요. 덜커덩거리며 내달리는 트럭이 너무 무표정했어요. 아무도 무슨 말을 하려하지 않았고 아무런 몸짓도 없었어요. 아이들이 칭얼거리면 부모가 겨우 달래려 애쓰기만 했지요. 이따금 길가에 트럭이 멈추면 숲속으로 들어가 볼일을 보고 나오는 정도였어요.


몇 시간을 달려도 휴게소에 들러 음식을 주거나 휴식을 취하는 일은 없었어요. 아침부터 굶었으니 배가 고프기 시작했지요. 그러나 아무도 항의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북조선의 맛을 보기 시작한 거였어요. 이 트럭에 타는 순간부터 여기 사람들은 인민이 아니었어요.


지나갈 때 천막 사이로 언뜻 보이는 마을들의 모습에서도 별다른 느낌이 없었어요. 과거 남조선의 60년대에서 시간이 멈춰버린 모습이었어요. 전형적인 농촌, 가난하고 낙후된 농촌, 농사 외에는 할 일 없이 빈둥거려야했던 옛날 농촌들이었어요. 밭의 작황들도 싱싱해 보이지 않았어요. 거름이 부족한 것인지 비료가 부족한 것인지, 자라다 만 듯, 아니면 겨우겨우 살아나려고 몸부림치는 듯한 모습들이었어요.


"이거 너무 부당한 처사가 아닙니까?"

제가 트럭 바닥에 앉아 트럭이 덜컹거릴 때마다 몸을 비틀며 말했어요.

"..."

아무도 대꾸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엉덩이도 아프고 밥도 안주고 이게 뭡니까?"

제가 다시 말했어요.


"..."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어요.

"우리 어디 이의신청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들이 정식재판도 없이 사람들을 이렇게 무슨 수용소로 데려가다니."

제가 말했어요.

"동무, 어데서 왔시오?"

한 노인이 한심하다는 듯 저를 쳐다보며 물었어요.

"예, 저는 남조선에서 왔습니다."

제가 대답했어요.

"그냥, 아무 소리나 하지 마시오."

노인이 말했어요.


"예? 왜 항의도 하지 못하는 겁니까?"

제가 물었어요.

"어디다 반대하시게."

노인이 혀를 끌며 물었어요.

"경찰서나 검찰이나 뭐 그런 데 없습니까? 우리가 그런 데에 항의를 하든지 고발을 하든지 해야지요. 부당한 인권 침해라고."

제가 힘주어 말했어요.

"거기가 모두 당이오. 당에 당을 반대한다고 해봐야, 무슨 쓸모가 있겠소? 두부장수 종치듯 뺨이나 맞지 별수 있겠수. 인권은 무슨 얼어죽을."

저도 기운이 다 빠져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어요. 쓰린 배를 움켜쥐고 속이나 달래는 수밖에.



날이 조금씩 어두워지는 저녁 무렵 저를 태운 트럭이 비포장길을 달리고 달려 끝내 어느 수용소에 도착했어요. 소위 15호 관리소 혁명화구역이라는 곳이었지요. 깊은 산속에 위치한, 철조망이 이중으로 높이 쳐진 수용소였어요. 군데군데 초병들의 감시탑이 무섭게 노려보고 있는, 마치 나치 독일의 강제수용소를 연상시키는 듯한 장소였어요.


"날래날래 내리라우!"

무장한 경비병들이 저희들에게 총을 겨누며 소리쳤어요. 차에서 정신없이 내린 사람들은 한쪽에 옹기종기 모여 다음 명령을 긴장 속에 기다렸어요.


"한철은 3호실, 김유나는 5호실, 장수현은 6호실..."

경비병이 사람들의 이름을 호명하며 여기서 지낼 호실을 지정해주었어요.

"김오식은 23호실..."

그는 저의 이름을 호명하며 제가 지낼 곳이 23호실이라는 것을 알려주었어요.


"각 사람은 정해진 호실로 바로 나들기하기요. 알았음?"

경비병이 전체를 향해 소리쳤어요.

"예!"

사람들이 힘차게 대답하고 각자 정해진 호실을 향해 걸어갔어요.

"날래 걸으시오!"

경비병이 사람들 뒤에서 버럭 소리를 질렀어요. 그러자 사람들은 혼이 나간 사람들처럼 정신없이 뛰었어요.


저도 덩달아 같이 뛰기 시작했어요. 23호실쯤 되는 막사를 향해 뛰었어요. 그러다 너무 황급히 뛰었는지 그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어요.

"어이쿠."

제가 비명소리를 질렀어요. 무릎이 까여 피가 조금 흘렀어요.

"이 간나새끼!"

경비병이 총 개머리판으로 쓰러진 저의 어깨를 찍어 누르며 말했어요.

"예?"

저는 당황해하며 급히 다시 일어나 뛰었어요. 아픔도 금방 사라졌어요.


23호실에 겨우 도착한 저는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호실 책임자를 만날 수 있었어요.

"김오식 동무, 잘 왔시오. 저기가 동무가 살 빈 곳이오. 저기에 여기서 사는데 필요한 것이 다 있으니 앞으로 잘 살기요. 뭐 더 할 말 있소?"

호실 책임자가 뒷짐을 지고 거드름을 피며 말했어요.


"예, 무릎을 다쳐서 그런데 양호실은 어디에 있습니까?"

제가 아픈 다리를 쓰다듬으며 물었어요.

"양호실이 뭐하는 데요?"

호실 책임자가 되물었어요.

"다친 사람들이나 아픔 사람들을 치료하는 곳입니다. 그런 곳이 어디 있는지 알려주세요."

제가 공손하게 말했어요.

"여기엔 기딴 건 없시오. 우리 민족의 빛나는 령도자, 위대한 수령이신 김일성 주석께서 사람들을 다 스스로 낫도록 해주셨소. 기다리믄 다 저절로 나을 거오."

호실 책임자가 장엄하게 말했어요.


"그리고, 그 겉옷 좀 벗으시라우. 그 옷이 남조선에서 입고 온 옷이오?"

호실 책임자가 말했어요.

"예, 제가 입고 온 옷입니다."

"음, 날래 벗으라우. 그리고 저 옷으로 갈아입으라우. 이건 빼앗는 게 아이오. 서로 바꾸는 기지."

호실 책임자가 살짝 웃으며 말했어요.


"예?"

제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어요.

"날래 갈아입으라우! 내 말을 안 듣겠다는 거오?"

호실 책임자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어요.

"아닙니다."

저는 얼른 옷을 갈아입었어요. 옷은 낡은 작업복으로 겨울에 입기엔 너무 얇은 옷이었어요. 하는 수 없었어요. 그렇게 저의 15호 관리소 혁명화구역의 생활이 시작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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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살아남는 자만이 살아있는 겁니다 20.09.25 23 0 14쪽
» 낯선 곳으로 날아가고 싶었다 20.09.23 25 0 11쪽
39 내 목숨 따윈 아무 소용이 없어 20.09.21 23 0 9쪽
38 왜 내게 이런 형벌을 20.09.18 23 0 8쪽
37 그녀의 영혼! 그것이다 20.09.16 36 0 8쪽
36 돌아오지 않는 마지막 여행 20.09.14 2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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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나도 진실을 말하고 싶어 20.09.09 33 0 13쪽
33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박쥐 20.09.07 38 0 9쪽
32 하나의 작고 순결한 꽃송이를 20.09.04 31 0 7쪽
31 내가 너의 일부가 될 수 있다면 20.09.02 28 0 7쪽
30 나의 카나리아, 그대는 아는가 20.08.31 24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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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 20.08.21 31 0 11쪽
25 벼랑 끝에 서있는 기분 20.08.19 32 0 11쪽
24 사람은 사랑을 먹으며 산다 20.08.17 49 0 9쪽
23 더 이상 무엇을 바라는가 20.08.14 25 0 9쪽
22 병사들은 술 취해 비틀거리고 20.08.12 27 0 9쪽
21 그녀의 모습을 한 내 어머니일까 20.08.10 30 0 8쪽
20 잘 가. 애인 대신이야 20.08.07 30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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