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타각 님의 서재입니다.

FULL OF TEARS AND FIRE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로맨스

커빙
작품등록일 :
2020.07.08 17:29
최근연재일 :
2020.10.02 09:00
연재수 :
44 회
조회수 :
1,508
추천수 :
0
글자수 :
206,224

작성
20.07.25 09:00
조회
26
추천
0
글자
12쪽

젊은이들의 죽음

DUMMY

저는 창고의 희미한 불빛을 통하여 상대를 노려보았어요. 군복을 입고 철모를 썼지만 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저는 그 친구가 이강철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어요.

"너, 여기?"

저는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어요.

"그래, 나다."

강철이 말했어요.

"너, 왜 그렇게 잔인하게 시민들을 구타했냐? 이 미친놈아!"

저는 화가 나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어요.


"네가 사람을 때려죽였어!"

저는 황 씨를 생각하며 악에 받쳐 소리쳤어요.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그가 조용히 말했어요.


"우리나라 군인이 선량한 시민에게 폭력을 쓴다면 그게 우리나라 군인이냐? 폭도지."

제가 말했어요.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그는 같은 얘기만 반복했어요.


"네가 폭도가 맞네. 이 나쁜 놈아!"

제가 또 소리치며 그의 멱살을 잡았어요.

"누가 폭도인데?"

그는 눈에 힘을 주고 계속 말했어요.

"누가 폭도인지 말해줄까? 며칠 전 내가 전남대에 배치되어 시위대와 처음으로 대면하고 있을 때였다. 우리는 총알 없는 소총을 들고 가벼운 군복만 입은 채 줄서있었다. 그때 전남대 학생들이 우리를 향해 돌과 벽돌을 던졌어. 우리 부대에 십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얼굴에 돌을 맞아 피가 흐르는 군인도 있었고, 팔과 다리에 깨진 벽돌을 맞아 살갗이 찢겨지고 뼈에 이상이 생긴 군인도 있었다. 피를 흘리고 쓰러진 동료 공수부대 군인을 보는 우리 심정이 어땠을까? 시민이 총알도 없는 총만 들고 서있던 자국 군인에게 돌과 벽돌을 던져 부상을 입혔어. 누가 먼저 폭력을 행사한 것이냐?"


"우리부대는 대한민국 최강의 부대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어떤 경우에도 싸움이나 전투에 지는 일은 절대 없다. 우리는 그렇게 교육되고 길러진 부대야. 너희는 그런 우리들에게 먼저 폭력을 썼어. 돌을 던졌다. 우리가 그런 나약한 부대라고 생각해?"


"대한민국 국군이 그런 나약한 군대여야 하겠냐? 작은 폭력이 큰 폭력을 낳았고 큰 폭력은 더 큰 폭력을 낳았다. 마치 화약이 폭발하듯 폭력과 폭력의 연쇄반응이었다. 너희가 우리에게 처음부터 돌 던진 이유가 뭐야? 최강의 부대를 조롱하고 우리랑 싸워보자는 것이냐?"


"온갖 어려운 훈련을 함께한 전우가, 옆에서 쓰러져 신음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가만히 있지 않는다. 나아가 싸우고 부수고 쓰러뜨려야한다. 우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우리에게 불가능은 없다!"

그가 계속 말했어요.


"그렇다고 시위도 하지 않은 시민들을 총검으로 찌르고 진압봉으로 머리가 터져 죽도록 때리는 것이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느냐?"

제가 항의하듯 말했어요.

"아까도 얘기했지만 우리는 특수 전투 부대이다. 우리는 일당백의 인간병기로 훈련되었다. 우리 앞에 있는 시민은 모두 폭력을 쓴 시위대로 간주했다. 미친개를 시장에 풀면 그 개는 닥치는 대로 사람을 문다. 눈이 뒤집어진 공수부대는 미친개와 같은 것이야. 미친개를 풀어놓은 게 잘못이지."

그가 눈을 아래로 깔며 말했어요.


"비무장 시민들에게 총을 발포한 것은 잘한 것이냐? 그게 정말 대한민국 국군이란 말이냐? 그때 시민들은 거리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평화적인 시위하고 있었다."

제가 양손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어요.

"그 당시는 어쩔 수 없었다.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서..."

그가 고개를 살며시 들었어요.

"그래도 시민에게 총은 쏘지 말아야지!"

제가 정말 화 난 듯 큰소리로 말했어요.

"시민들이 태극기만 흔들고 비폭력 평화시위만 했느냐? 그들이 그런 비폭력 평화시위만 했는데 우리가 발포했느냐?"

"수십만 명의 시위대들은 돌, 벽돌, 화염병을 우리들에게 던졌다. 그들은 버스, 트럭, 장갑차를 몰고 우리들에게 몰려들었어. 그 과정에서 경찰이 죽고 우리 부대원이 다치고 죽었다."

"군인들이 발포하기도 전에, 먼저 버스로 돌진하여 경찰들을 죽게 한 것이 정녕 선량한 시민이란 말이냐? 폭도와 무엇이 다르더냐? 우리는 그때 발포할 수밖에 없었어.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서. 시위대를 해산하기 위해서. 그들이 발포를 유도했다."

그가 한숨을 쉬며 말했어요.


"그전에 너희들이 한 만행을 생각해봐. 총검으로 시민을 찌르고 때려죽이고 한두 명이 아니잖아! 다친 사람이 수백 명이고 수십 명이 그렇게 처참히 죽었다. 시민들이 화가 안 나게 생겼냐?"

제가 항변했어요.


"군인은 작전에 투입되면 자신의 병기로 전투한다. 보병은 소총으로, 포병은 포사격으로, 공군은 폭격으로 작전을 수행한다. 군인에게 작전명령이 떨어지면 나름의 방식으로 작전을 수행해. 공군에게 좌표를 주고 폭격하라면, 그들은 폭격하는 수밖에 없다. 공군조종사가 작전의 이유와 그 후 초래될 사태에 대해 생각하고 판단해서 임무를 수행해라하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좌표가 주어지고 폭격명령이 떨어지면 그냥 가는 것이야. 만약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그 비행기 조종사에게 책임을 물어야하느냐? 작전에 투입된 공수부대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하느냐 말이다. 우리는 부마 민주항쟁 때도 똑같은 행동을 했고, 우리는 앞으로 또 그런 작전이 주어지면 똑같이 수행할 것이다."

그가 말했어요.


"에이, 이 새끼, 말이 안 통하네."

저는 톡 쏘듯 말했어요.

"너는 여기서 나가면 시위를 더 이상 하지 말고 집으로 곧장 들어가라. 나중에 서울에서 보자. 잘 가."

그가 창고 문을 열고 나갔어요. 저도 그를 따라 나와 그가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어요. 그가 막 광주서석초등학교를 벗어나 조선대쪽으로 걸어갈 때였어요. 옆 골목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저기, 공수부대 지나간다."

"탕, 탕... 탕, 탕..."

강철이 허수아비처럼 쓰러지는 모습이 보였어요.

"쏘지 마. 쏘지 마."

저는 그에게 달려가며 소리쳤어요.

"강철! 강철! 정신 차려!"

저는 그를 끌어안고 소리쳤어요. 그는 움직이지 않았어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어요.


'사람들은 자신이 본 것이 진실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세상은 우리 자신 주위에서 모든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에요. 자신이 모르는 곳에서 자신이 모르는 일들이 더 많이 발생하고 또 잊혀지곤 하지요. 자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진실이 어둠 저 멀리에서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에요.'



저는 땅바닥에 철퍼덕 앉아 강철의 차가운 시신을 옆에서 계속 지켰어요. 제 눈앞에서는 그의 남동생과 노동을 하며 어렵게 사는 그의 부모님이 떠올랐어요. 그리고 제가 병원 영안실에서 보았던 처참한 모습의 황 씨의 얼굴도 눈앞에서 서성거렸어요.

'이게 누구를 위한 항쟁일까요? 가난한 자와 가난한 자의 항쟁인가요? 아니면 핍박받는 자와 핍박받는 자의 항쟁일까요? 도대체 누구를 위한 항쟁일까요? 총질은 미친 짓이다!'


시위대는 강철이 쓰던 총과 헬멧을 벗겨갔고 얼마 있다가 다른 시위대의 한 사람이 태극기를 가져와 그의 몸에 덮어줬어요. 자정이 가까워지는 시간에 일단의 군인들이 총을 들고 사방을 경계하며 다가와서 그의 시신을 들것에 싣고 갔어요.

"탕, 탕, 탕..."

그의 시신을 싣고 가던 군인들이 하늘에 대고 총을 쏴댔어요. 저는 멀리에서 숨어 그걸 바라보기만 했지요.


광주의 아침은 영산강에서 피어오르는 옅은 안개로부터 시작했어요. 새벽안개가 시내를 돌아 굽이치며 무등산엘 오르려하지만 산 능선에서 아침 해가 솟으면 중턱에도 못 오르고 흩어져 사라졌어요. 이제 광주시내에서 군인들 모습을 찾을 수 없었어요. 군인들은 모두 외곽으로 후퇴했어요. 군인들은 시외곽에서 광주시로 들어가거나 나오는 차량은 하나도 없도록 완전 봉쇄했지요.


저는 전남도청에서 시민들이 나눠주는 주먹밥과 물을 먹었어요. 밤새 지친 몸에 잠이 쏟아졌어요. 저는 다시 지급받은 총을 어깨에 메고 상점 앞에 쭈그려 앉아 졸았어요. 햇살이 무척 따스해 잠이 스르르 들었지요.

"공수부대도 별거 아니드라고."

"우리가 총을 들고 포위하니 별수 있겄써."

"꼼짝 못하드구만."

"대갈박이 깨진 놈도 있드랑께. 죽어서 개천에 나자빠져 있더랑께."

"나가 봤다 안그라요."

저는 주위에서 두런거리며 떠드는 소리에 잠이 깼어요.


"우리는 지금 병원에서 피가 모자라 환자들이 애먹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병원으로 가서 헌혈하여 주십시오."

누군가 적십자병원차를 타고 거리를 다니면서 헌혈을 독려하는 방송을 했어요. 저는 전남대 병원으로 가서 헌혈을 했지요. 많은 젊은이들이 줄지어 자진해서 헌혈대에 누웠어요. 그들은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어요.


헌혈하고 밖으로 나오자, 거리는 청소하는 사람들로 붐볐어요. 저도 함께 빗자루를 들고 거리를 깨끗이 청소했어요. 광주시민 모두 자진해서 거리를 청소했고 흩어진 총기류도 모아놓았고 자율순찰대도 다니면서 혹시 모를 무질서에 대비했어요. 그러나 강도, 절도 같은 불미스런 일은 단 한건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시민들은 생필품도 모자랐지만 사재기하는 사람도 없었고 필요한 만큼 조금씩 나누어 사갔어요. 오히려 김밥과 주먹밥을 마을 단위로 마련해서 시위대에 보냈어요.

평화로운 광주시였어요.


저는 한동안 전남 도청 주위에서 시위대와 함께했어요. 그러다 제가 들고 있는 총을 보며 생각했어요.

'내가 총이라도 쏠 수 있을까? 한 번도 쏴본 적이 없는데... 내가 사람을 죽이려고 총을 쏜단 말인가? 사람을 죽이려고? 누가 내총에 맞아 죽임을 당해야 한단 말인가? 나는 누구를 향하여 총을 쏴야할까? 하늘에 대고?'

저는 그런 생각에 이르자 한동안 허세처럼 가지고 있던 모든 자신감, 의욕, 용기가 사라졌어요. 저는 조용히 총을 제자리에 세워놓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집에 돌아와 방에 드러누워 잠만 청했어요.


어두운 밤, 시간도 알 수 없는 깊은 밤에 밖에서 가두방송 하는 여성의 애절한 목소리가 광주시의 마을 곳곳을 맴돌았어요. 그 목소리가 숨죽여 잠을 청했던 광주 사람들의 가슴을 후벼 팠어요.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방 안에서 움직이지 않았어요.

"공수부대들이 쳐들어옵니다. 시민 여러분,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모두 일어나 함께 해야 합니다. 시민 여러분,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가두방송)


탱크를 앞세운 계엄군이 시내로 진입하기 시작했나봐요. 탱크 지나가는 소리가 우레처럼 들렸어요. 이어서 전남도청에서 간간히, 또 집중적으로 울리는 총성이 광주 시내를 조용히 관통했어요.


'왜 이렇게 많은 젊은이들이 광주에서 죽어야했나요? 누구를 위하여 그들은 죽어야했나요? 권력을 향한 광기가 부딪혀 일어난 참혹한 불꽃이었나요?'


늦은 아침에 일어나 아침을 대충 먹고 회사로 출근했어요. 시내는 고요했고 회사도 고요했어요. 시위대는 완전 진압되었고 군인들이 시내를 모두 장악했어요.


그날 이후, 사람들은 며칠 동안에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아무도 말하지 않았어요. 거리엔 이따금 군인 트럭과 장갑차 등이 다니며 평온한 광주시에 대해 말하고 있었지만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떼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요. 회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거리에서 스쳐가는 시민들 모두의 얼굴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있었어요.


살아남은 자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요. 광주에선 그래서 더 애통한 자, 그래서 더 미안한 자들뿐이었어요. 그날 이후 전남도청 앞 금남로엔 찌든 삶에 지친 사람들, 일용직, 구두닦이 등 기층민들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어요. 그들의 희생이 제일 컸었죠.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FULL OF TEARS AND FIRE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4 만약에, 만약에 우리 다음 생이 있다면 20.10.02 21 0 12쪽
43 내가 꿈꾸던 그런 사회주의가 아니야 20.09.30 23 0 19쪽
42 그것은 생명의 경이로움이었지요 20.09.28 21 0 11쪽
41 살아남는 자만이 살아있는 겁니다 20.09.25 23 0 14쪽
40 낯선 곳으로 날아가고 싶었다 20.09.23 24 0 11쪽
39 내 목숨 따윈 아무 소용이 없어 20.09.21 23 0 9쪽
38 왜 내게 이런 형벌을 20.09.18 23 0 8쪽
37 그녀의 영혼! 그것이다 20.09.16 36 0 8쪽
36 돌아오지 않는 마지막 여행 20.09.14 20 0 11쪽
35 어디로든 가야하는 사람들 20.09.11 23 0 10쪽
34 나도 진실을 말하고 싶어 20.09.09 33 0 13쪽
33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박쥐 20.09.07 37 0 9쪽
32 하나의 작고 순결한 꽃송이를 20.09.04 31 0 7쪽
31 내가 너의 일부가 될 수 있다면 20.09.02 28 0 7쪽
30 나의 카나리아, 그대는 아는가 20.08.31 24 0 10쪽
29 창문으로 어둠이 기어들어오고 20.08.28 29 0 10쪽
28 정말 웃기는 일이었어요 20.08.26 27 0 17쪽
27 너는 가희만을 사랑해 20.08.24 34 0 15쪽
26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 20.08.21 31 0 11쪽
25 벼랑 끝에 서있는 기분 20.08.19 32 0 11쪽
24 사람은 사랑을 먹으며 산다 20.08.17 49 0 9쪽
23 더 이상 무엇을 바라는가 20.08.14 25 0 9쪽
22 병사들은 술 취해 비틀거리고 20.08.12 27 0 9쪽
21 그녀의 모습을 한 내 어머니일까 20.08.10 30 0 8쪽
20 잘 가. 애인 대신이야 20.08.07 29 0 9쪽
19 누이의 꿈 20.08.05 27 0 11쪽
18 젊은 노동자들의 승리 20.08.03 44 0 9쪽
17 힘차게 휘날리는 깃발 20.07.31 42 0 8쪽
16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조 20.07.29 58 0 10쪽
15 노동자를 위한 세상은 없다 20.07.27 38 0 11쪽
14 고귀한 그리움 20.07.26 25 0 8쪽
» 젊은이들의 죽음 20.07.25 27 0 12쪽
12 찔레꽃 20.07.24 27 0 12쪽
11 누군가 그리워 20.07.23 26 0 9쪽
10 천국의 문앞에서 20.07.22 33 0 8쪽
9 총소리 20.07.21 51 0 11쪽
8 우리들은 정의파 20.07.20 33 0 11쪽
7 사랑은 20.07.19 38 0 9쪽
6 도시의 요정 20.07.18 31 0 9쪽
5 크리스마스카드 20.07.17 47 0 12쪽
4 가희의슬픔 20.07.16 42 0 7쪽
3 무언가가 새로이자리 잡는 듯 20.07.15 40 0 12쪽
2 여동생 가희 20.07.14 54 0 12쪽
1 찢겨진 신문조각에 박힌 활자들 20.07.13 123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