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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각 님의 서재입니다.

FULL OF TEARS AND F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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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빙
작품등록일 :
2020.07.08 17:29
최근연재일 :
2020.10.0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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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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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224

작성
20.09.0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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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박쥐

DUMMY

12월의 어느 날 아침, 차가운 공기를 흔들며 교도소의 커다란 철문이 열렸어요. 교도소 철문 앞에는 그날 출소하는 사람들로 조금 붐볐고 마중 나온 친지들도 많았어요. 저는 홀로 거리로 걸어 나왔어요. 버스를 기다리며 그동안의 기억들을 지우려고 고개를 저어봤어요. 털커덩거리며 낡은 버스가 도착했고 저는 차례를 기다려 버스에 올랐어요. 버스는 시커먼 매연을 뿜으며 출발했어요. 저는 다시 광주로 향했어요.


"다시 왔다."

제가 노조 사무실을 찾아가 말했어요.

"그래, 너 고생 많았어. 너 다시 복직해야지?"

최태수가 말했어요.

"응, 그렇게 해주면 좋겠어."

"그거야 내가 당연히 해줘야지. 넌 옥고를 치른 민주투사인데, 우리가 도와야지. 집에 가서 기다려. 내가 회사 측과 상의하여 알려줄게."

"그래, 고마워."


전에 살던 방도 다시 계약을 했고 회사도 다시 복직이 되어 근무하게 되었어요. 몇 년이 흘렀지만 영산강은 아무 소리도 없이 조용히 흘러갔고 무등산은 시치미 떼고 저를 무심히 바라보고만 있었어요.


그러던 중에 최태수가 작업장으로 저를 찾아왔어요.

"서울에서 임재구 선생님이 주도하여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을 결성하셨어. 선생님께서 너를 광주지역대표로 지명하셨다."

최태수가 단숨에 말했어요.

"뭐? 사노맹? 무슨 단체인데?"

제가 물었어요.


"노태우 군사독재정권을 타도하고 노동자 중심의 사회주의 민주정권을 수립하기 위한 주사파의 노동자혁명단체이다."

"내가 할 수 있을까?"

"그럼, 너는 충분해. 지역 조직문제는 내가 도와줄게. 그들이 서울에서 모임을 가질 거야. 임재구 선생님을 찾아가."

"알았어."

저는 가볍게 대답하고 다시 작업장으로 들어갔어요.


'사회주의 혁명이 가능할까? 노동자가 인간으로 존엄을 가지고 우대받는 세상이 올 수 있을까? 그걸 사회주의가 이루어줄 수 있을까? 개인의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세상. 참 좋은 이야기인데. 과연 기대할 수 있을까?'

저는 꿈꾸듯 이런저런 생각 속에 잠겼어요.



이른 새벽, 저는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탔어요. 기차는 그때도 변함없이 앞으로 달리기만 했지요. 북으로, 북으로 기차는 앞으로만 달려갔어요. 제가 찾아간 곳은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에 있는 한국기독교회관이었어요. 학생들의 문학, 독서, 종교 등 서클활동을 위하여 다양한 모임, 회합이 있었던 곳이었어요. 그리고 2층엔 작은 무대도 있어서 여러 종류의 발표회, 강연회도 있었어요. 그 건물은 특히 재야민주화단체의 중심활동무대였어요.


오후 2시 한국기독교회관 501호, 저는 노크를 하고 잠시 기다린 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어요. 회의실 안에는 이미 여러 명의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있었어요. 그 중에 임재구 선생도 있었지요.


"안녕하셨어요?"

제가 들어가면서 임재구 선생께 인사를 드렸어요.

"오, 김오식. 잘 왔어. 이쪽에 앉아."

임재구 선생이 말했어요.

"예, 감사합니다."

"자네, 그동안 교도소에서 고생했어. 수고했다. 이제 진정한 민주투사가 된 거야."

"아닙니다. 제가 한 일이 있어야죠."

제가 겸연쩍게 말했어요.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에 출입문이 열리면서 한동준이 들어왔어요.

저는 처음엔 모르는 체했어요.


"김오식 씨, 아닙니까?"

한동준이 먼저 아는 체를 했어요.

"..."

저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어요.

"김오식 씨, 우리 인사나 나눕시다."

한동준이 제 어깨를 툭 치며 다시 아는 체를 했어요.


"뭐야? 이놈이?"

제가 갑자기 일어나 놈의 멱살을 잡고 소리쳤어요.

"어? 왜 이러세요. 이 손 놓으세요."

한동준이 당황한 듯 말했어요.

"퍽."

제가 놈의 면상에 주먹을 날렸어요. 그리고 또 소리쳤어요.

"이 새끼, 죽여 버리겠어! 짐승 같은 놈!"

저는 쓰러진 놈을 향해 다시 주먹을 날렸고,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갑작스런 난동에 깜짝 놀랐어요. 그리고 그들은 저를 붙잡고 진정시켰어요.


"당신이 저 때문에 교도소에 간 것, 저도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한동준이 일어나며 또 말했어요.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하실 일은 아니잖아요."

"이 새끼, 죽여 버리겠어!"

저는 이를 갈며 소리쳤어요.


"우리가 여기 모인 것은 사노맹의 발전 방향에 대해 토의하러 온 거야. 사적인 감정으로 큰일을 그르치지 말게."

임재구 선생이 조용히 타이르듯 말했어요.

'만인 평등의 세상, 모두가 인간으로 참다운 대접을 받고 사는 세상을. 저따위 더러운 인간들이 만들어내겠다고 하는 것인가?'

저는 착잡한 생각뿐이었어요.



"여러분, 잘 보십시오. 여기, 이 한동준 동지가 다음번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할 예정입니다."

임재구 선생이 말했어요.

"예, 제가 도전해 보겠습니다."

한동준이 말했어요.

"그래, 자네라면 잘 해낼 것으로 보이네. 자네는 여당이든 야당이든 간에, 제도권 정당에 침투해서 어떻게든 국회에 입성하는 거야. 그 다음에 우리의 사상, 이념을 국회에서 펼치는 것이지."

임재구 선생이 계속 말했어요.

"그래서 자네를 사노맹 조직에서 제외했어. 잘 싸우기 바라네. 이것이 김일성 주석의 남조선혁명노선, 그 구체적인 전술의 일환으로 우리가 추구하는 합법적 투쟁의 한 가지일세. 우리들 중에서 앞으로 국회의원도 나오고 장관도 나오고 해야지. 또 혹시 모르지 대통령이 나올 지도..."


"예,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남조선혁명이 달성되는 날까지..."

한동준이 주먹을 쥐고 파이팅을 외치듯 크게 말했어요.


"그런데 선생님..."

제가 말했어요.

"응, 뭔가?"

"소련의 서기장 고르바초프가 신베오그라드선언을 해서 헝가리, 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이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개방과 개혁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응, 그렇지."

임재구 선생이 말했어요.

"그렇다면 사회주의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제가 물었어요.

"한마디로 충격적인 사건인 건 틀림없어. 동유럽이 무너지고 소련도 사회주의를 포기할 태세야. 그러나 우리는 다르다고 말해주고 싶다. 우리에겐 김일성 주석의 주체사상이 있어. 주체사상의 핵심인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 너무 아름답지 않은가?"

임재구 선생이 말했어요.

"아름답기는 한데... 그것이 우리에게 가져다 줄 것이 무엇일까요?"

제가 물었어요.

"나는 기대하네. 동유럽의 사회주의가 망하고 소련이 붕괴되어도 주체사상이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것으로 믿고 싶어."

임재구 선생이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했어요.


"제가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임재구 선생 옆에서 줄곧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 친구가 말을 꺼냈어요.

"뭔가?"

임재구 선생이 물었어요.

"김오식 사노맹 광주지역대표 예정자의 사상성에 대해 비판해야 할 것이 있어 말씀드립니다. 저희 친구들이 다양한 분야에 진출하여 국가 사회에 우리 사상과 이념을 심으려는 공작을 하고 있다는 것은 다 잘 아실 겁니다. 법조계, 교육계, 문화계, 언론계, 노동계 등에 진출하여 각자 많은 일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법조계에 진출한 친구들에게 얻은 자료입니다."

그는 들고 있던 자료를 보며 계속 말했어요.

"김오식 씨의 수사기록과 공판기록을 검토한 바, 그가 우리 사노맹과 같이 할 수 있는 인물인지 의심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계속 말했어요.

"김오식 씨의 부친이 옛 중앙정보부의 고급간부였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부친이 우리 민주화 인사에 대한 탄압이 하나둘이 아닙니다. 이를 인정하십니까?"

그가 저를 보며 물었어요.

"예, 모두 사실일 겁니다."

저는 머뭇거리며 대답했어요.


"그래? 그래도 김오식은 교도소에서 옥고를 치른 민주투사일세."

임재구 선생이 말했어요.

"그것도 함정일 수 있습니다. 저희들을 안심시키고 저희 조직에 침투하여 조직을 와해시키려는 안기부 프락치일 가능성이 큽니다. 저는 김오식 씨를 저희 조직에서 축출할 것을 제안합니다. 그의 부친의 이력이 의심스럽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제가 떠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제가 먼저 말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한동준, 국회의원으로 나가려면 경쟁에서 무조건 이겨야해. 그러려면 경쟁력 있는 배우자도 필수인데 준비는 하고 있겠지?"

임재구 선생이 말했어요.

"예,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유명한 여배우인데 제가 하나하나 그녀를 정복하고 있습니다."

한동준이 묘한 웃음을 지으며 자신 있게 말했어요.

"그래, 자네는 학생회장도 했고 민주화운동도 열심히 한 것으로 언론에 보도되어 여러 이점이 있어. 자네가 여배우와 결혼한다면 더욱 좋은 일이지."


제 등 뒤에서 그들은 담화를 나누고 있었어요. 저는 조직에서 물러났죠. 결국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박쥐신세가 되었어요.

'아버지의 행적? 사람의 출신 성분이 무슨 문제인지. 아직도 연좌제? 사람은 각 개인의 능력과 실적에 따라 평가되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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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어디로든 가야하는 사람들 20.09.11 23 0 10쪽
34 나도 진실을 말하고 싶어 20.09.09 33 0 13쪽
»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박쥐 20.09.07 38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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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나의 카나리아, 그대는 아는가 20.08.31 24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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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정말 웃기는 일이었어요 20.08.26 27 0 17쪽
27 너는 가희만을 사랑해 20.08.24 34 0 15쪽
26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 20.08.21 31 0 11쪽
25 벼랑 끝에 서있는 기분 20.08.19 32 0 11쪽
24 사람은 사랑을 먹으며 산다 20.08.17 49 0 9쪽
23 더 이상 무엇을 바라는가 20.08.14 25 0 9쪽
22 병사들은 술 취해 비틀거리고 20.08.12 27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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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잘 가. 애인 대신이야 20.08.07 30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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