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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각 님의 서재입니다.

FULL OF TEARS AND F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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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빙
작품등록일 :
2020.07.08 17:29
최근연재일 :
2020.10.02 09:00
연재수 :
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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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06,224

작성
20.08.0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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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잘 가. 애인 대신이야

DUMMY

다음날 저희들은 다시 광주로 내려가기 위해 강남고속버스터미널로 갔어요. 많은 사람들이 제각기의 행선지를 찾아 매표소 앞을 향했어요.

"여기서 기다려. 내가 가서 표 사올게."

임재구 선생은 호남선 매표소로 가서 줄을 섰어요. 그때, 짙은 색 잠바 차림의 사내들이 임재구 선생 곁으로 몰려들었어요.


"너 임재구지?"

"너 어제 관수동 인쇄소에 있었지?"

"이리 나와!"

그들은 임재구 선생의 손목을 비틀어 꺽은 후 차가운 수갑을 꺼내 강제로 채웠어요. 그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발길질하며 임재구 선생을 납치 연행해 갔어요. 저는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다른 행인들과 함께 임재구 선생이 끌려가는 모습만 물끄러미 쳐다봤어요. 저는 달려들지도 못했고, 임재구 선생을 도와주거나 그와 함께 하지도 못했어요.


저는 우물쭈물 거렸어요. 임재구 선생은 제 쪽은 돌아보지도 않고 의연히 끌려갔지요. 저는 어떡하지 하는 걱정만 하고 있었어요. 저는 고속터미널에서 나와 영등포역으로 갔어요. 거기서 광주로 가는 기차를 탈 생각이었어요.


다음 글은 몇 년 후 임재구 선생을 다시 만나, 그에게서 제가 직접 들은 얘기들을 전하는 거예요.



나는 무섭지 않았어. 그 일은 언젠가 내게 닥칠 일이었다는 것을 항상 마음에 새기고 살았기 때문이야. 나는 이제 올 게 왔구나하는 마음뿐이었지. 그들이 나를 안전기획부 남영동분실로 끌고 갔어. 처음엔 몰랐지만 그들이 그러더군.


"너, 여기가 어딘 줄 알어? 그 유명한 남영동분실이야! 너, 빨리 자백하는 게 좋아."

얼굴이 둥그스름한, 무척 착한 사람처럼 보이는 고문기술자 A가 말했어. 그들의 본명은 몰라 그냥 구별하기 위해 내가 지은 이름이지.


처음 며칠은 잠을 안 재우더군. 내가 졸려 쓰러지면 그들은 다시 깨워 일으켰어. 피로가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올라왔어. 별별 생각이 다 나는 거야. 어지럽고 머리가 고통스러웠어. 그들은 나의 육체적인 힘을 모두 다 빼앗은 다음 나에게 본격적인 고문을 시작했어.


"너, 북한으로부터 지시를 받았지?"

"누구한테 지령을 받는 거야?"

"공작금은 누구한테 받았어?"

"누가 총책이지?"


그들의 질문은 다 생각나지도 않아. 지독히 무서운 고문이었다고만 생각난다. 그들은 몽둥이로 내 팔과 다리 그리고 몸통을 몹시 때렸다. 그들은 가슴팍을 몽둥이 끝으로 찌르고 내 머리를 강타했어. 온몸에 피멍이 들고 피가 스며 나와 속옷이 몸에 들러붙었지. 그들은 내 무릎을 꿇게 하고 그들의 구둣발로 내 허벅지를 짓이겨. 근육이 파열될 것처럼 아팠어.


그것도 모자라면 정강이 사이로 적당한 몽둥이를 끼우고 짓이겨. 그들은 내 손톱도 뽑아. 상상해봐. 손톱에 조그마한 가시만 박혀도 쩔쩔 매는데 그들은 날카로운 칼로 내 손톱 밑을 후벼 파는 거야. 기절 안하고 배길 수가 없어. 그들은 수조에 물을 채운 뒤 내 머리를 처박기도 해. 숨이 넘어가기 직전에야 내 머리를 들어준다. 나는 물 밖으로 나오는 순간 숨을 폭풍처럼 몰아쉬게 되지. 숨을 못 쉰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알게 되었지.


한번은 전기고문도 했었어. 그들은 전기 단자를 내 손가락에 꽉 물린 후 전기를 통하게 해. 처음엔 찌릿한 정도지만 전기의 강도가 점점 더 강해지면서 나는 전율에 몸부림치고 온몸이 비틀려져 구운 오징어처럼 몸부림치게 된다. 내가 기절해야 전기고문은 끝나.


매일 이런 고문을 당하는데 아무도 이길 수가 없었어. 그들이 써 주는 대로 나는 베껴 쓰며 반성문과 자술서를 쓸 수밖에 없었어. 그렇게 해서 나는 민중혁명사회주의연구회에 가입 활동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제3조 반국가단체구성의 죄를 범한 자로서 5년형을 선고 받았다. 나는 원주교도소에서 징역형을 살고 출소했다.



저는 임재구 선생의 말씀을 듣고 울음이 쏟아졌어요. 사회주의를 연구하고 책을 내서 민중에게 그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불법이라니. 그는 모진 고문을 당하고 징역을 살다가 나왔는데 이게 자유 민주국가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지 알 수가 없었어요.


광주로 돌아온 저는 한동안 안절부절 못했어요. 혹시 나도 안전기획부에 끌려가는 것은 아닌지, 언제 형사들이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하루 종일 부들부들 떨어야만 했어요. 저는 그때 결심했어요. 군대 갈 나이는 조금 이르지만 이런 공포 분위기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서 군에 자원입대하기로 했어요. 저는 병무지청에 지원서를 내고 신체검사도 마쳤어요. 그리고 군입대통지서만 숨죽여 기다렸어요.


드디어 군입대통지서가 도착했어요. 저는 떨리는 마음으로 통지서를 읽었어요. 앞으로 20일 후 논산훈련소 연무대로 입영하라는 통지서였어요. 다행이 제 얼굴의 흉터가 군입대에 걸림돌은 되지 않았나봐요.

저는 통지서를 들고 인사과에 가서 휴직원을 내고 노조사무실에 들려 최태수 지부장에게 나의 군입대 사실을 알렸어요.


"3주 후에 입영한다고?"

최태수가 말했어요.

"응, 인사과에 휴직서 냈어."

제가 대답했어요.

"그래, 제대하면 다시 보자. 그땐 노조 임원으로 도와줘야해."

"그건 나중에... 이만 갈 게."

저는 간단히 말하고 일어나 사무실을 나왔어요.


저는 회사에 휴직서를 냈지만 금방 서울로 올라갈 수가 없었어요. 서울엔 고3인 가희가 공부하느라 여념이 없을 터라서 그냥 광주에서 시간을 보내다 논산으로 가려고 했어요.


"어머니, 저 다음 달 초에 군대 들어가요. 논산 훈련소예요."

제가 새어머니께 전화를 드렸어요.

"그래? 벌써 군에 들어가? 그럼, 이번 주말에 집으로 와. 얼굴이라도 보고 맛있는 거라도 먹어야지. 꼭 와야 해."

그녀가 말했어요.

"예, 알았어요. 시간 낼 게요."

"그래, 꼭 와야 해. 내가 음식 장만해 놓을 게."

"알았어요. 기차 타고 갈게요."

제가 말하고 전화를 끊었어요.


토요일 아침에 저는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탔어요. 집으로 가는 서울행 기차는 내게 포근하고 아늑한 느낌을 주지 못했어요. 불안하고 불편하고 기분이 썩 좋지 않았어요. 돈암동에 도착하여 집으로 들어갔어요. 가희가 쓰던 내 방은 조금 정리를 한 듯 가희가 쓰던 이불은 치워졌고 내가 쓸 이불이 방 윗목에 놓여있었어요. 그녀의 책상엔 종합영어, 수학의 정석 등 대입참고서가 책꽂이에 꽂혀있었어요.


저녁 시간이 되자 새어머니는 둥근 나무 상에 음식을 차려왔어요. 불고기, 잡채, 부침개, 소고기 국, 콩나물, 시금치 등 내 생일잔치를 하는 기분이었어요.

"많이 먹어."

새어머니가 불고기를 내 밥그릇에 올려놓으며 말했어요.

"예, 잘 먹겠습니다. 가희도 먹어라."

제가 밥을 한 숟가락 뜨며 말했어요.

"응. 오빠도 많이 먹어."

가희가 약간 울먹이는 듯한 음성으로 말했어요.

"그래, 같이 많이 먹자. 저 전쟁터 나가는 거 아니에요.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저는 분위기를 높이려고 조금 높은 음성으로 명랑하게 말했어요.

"그래, 많이 먹자."

새어머니가 눈을 쓰다듬으며 말했어요.


다음 날 저는 서울역으로 갔어요. 광주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서였죠. 그런데 가희가 환송해 준다며 역까지 따라 나왔어요.

"오빠, 서울역까지 같이 가 줄게. 애인 대신... 호호호."

그녀가 옆에서 제 손을 잡으며 말했어요. 저희는 나란히 서서 서울역을 향했어요. 저는 기차표를 샀고 개찰구를 통과하려 했어요. 그때까지 그녀는 제 손을 놓지 않았어요.

"그만 집으로 들어가."

제가 말했어요. 그 순간 갑자기 그녀가 손에 힘을 더 주더니 저를 자기 쪽으로 힘껏 당겼어요. 저는 얼떨결에 그녀 앞으로 쏠려 쓰러지듯 다가갔어요. 그리고 그녀는 제 뺨에 입술을 갖다 댔어요. 짧은 순간이었어요. 바로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이 제 뺨에 점을 찍듯, 별똥별이 스치듯 흔적을 남기고 지나갔어요.

"오빠, 잘 가. 애인 대신이야... 호호호."

그녀는 간단한 말을 남기고 돌아서서 뛰어갔어요. 저는 정신이 나갔어요. 정신을 잃었어요. 가슴이 콩닥거리고 얼굴이 화끈거리고 다리에 힘이 쭉 빠졌어요. 겨우 몸을 가누고 걸음을 조심스럽게 옮겨야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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