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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크군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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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크군
작품등록일 :
2016.05.01 15:50
최근연재일 :
2016.05.27 11:28
연재수 :
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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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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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수 :
24,292

작성
16.05.05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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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플라토닉 러브와 육체적 사랑>

DUMMY

현재시각은 9시 50분. 나는 집까지 겨우 몸을 끌고 왔다. 역시 나이가 들다보니 밤을 세는 것은 육체적으로 무리다.

그녀와 만나기로 한 시각은 오후 1시. 아직은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어 간단히 끼니를 챙기려 한다. 배는 고프지 않지만 그녀가 점심식사를 했다면 나 또한 저녁까지 밥을 먹지 못하는 셈이니 억지로라도 먹어야한다. 식사는 피곤하니깐 닭 가슴살에 오리엔탈 드레싱이 뿌려진 샐러드로 간단히 먹기로 한다.

식사를 마치고 휴대전화로 사랑에 대한 칼럼을 읽고 있다. 여러 칼럼을 읽다가 우연히 그녀가 쓴 칼럼을 읽게 되었다. 제목은 ‘플라토닉 러브’ 다.

플라토닉 러브의 개념을 설명하고 그 밑에 예외의 상황들을 나열해놓은 아주 인상 깊은 내용이었다.

플라토닉 러브란 철학에서 이상주의적이고, 관념적인 사랑, 즉 남녀 간의 육체적 사랑을 능가하는 순수한 정신적 사랑이라는 뜻이다. 이탈리아의 의사이자 인문주의자면서 철학자인 마르실리오 피치노가 플라톤의 <향연>에 대한 주석으로 처음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차하윤이라는 여자는 이 플라토닉 러브를 부정한다. 그녀는 현재의 사랑은 모두 이 플라토닉 러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데 예를 들면 오늘날의 남성과 여성은 모두 상대방을 직접적으로 매혹할 수 있는 옷을 입는다. 남성은 자기 몸에 딱 붙는 바지, 여성은 목 부분과 쇄골라인, 그리고 가슴라인이 드러난 짧은 셔츠를 입는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성적흥분을 일으키는 방법이 다섯 가지가 있다고 언급했다. 시각, 촉각(피부접촉), 청각, 미각(맛), 후각(냄새)이 대표적인 예로서 남성은 시각적인 측면에서 여성보다 성적 자극을 더 많이 받는다고 한다. 또한 여성들은 자기 몸에서 나는 냄새를 좋아하고, 남성들은 그 냄새를 맡는 것을 더 좋아한다고 한다. 그리고 여성들은 성적만족감이 경제력과 비례한다고 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차하윤이라는 여자는 실제로 플라토닉 러브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고, 신체적 쾌락에 의해서 혹은 경제력에 의해서 사랑이 좌우된다고 했다.


딱히 반론할만한 말이 떠오르지 않지만 저 글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아직까지 잘 모르겠다.

샤워하기 전 차울씨에게 문자가 왔다.


“차하윤씨의 정보를 메일로 보냈습니다. 그녀와 관련해서 꼭 읽어야 할 게 있어요.”


다른 사람의 정보를 캐내는 것을 꺼려하는 차울씨가 이 정도까지 해주다니 약간 의아했다. 그만큼 차하윤이라는 여자가 매력이 있다는 뜻이겠지. 시간은 어느덧 12시. 메일은 나중에 확인하기로 하고 먼저 샤워를 하기로 했다.

샤워를 끝내고 시간은 12시 20분. 옷은 깔끔한 캐주얼 정장을 입기로 했다. 구두는 클래식 구두로 대강 멋을 낸 뒤, 집을 나섰다.

카페에 도착한 시간은 12시 40분. 솔직히 넥타이를 고르는 시간만 줄였어도 30분까지도 도착할 수 있었다. 약속시간까지 20분 정도 남은 시간. 나는 차울씨가 보내준 메일을 보려고 휴대전화를 꺼냈다. 하지만 이내 곧 휴대전화를 다시 주머니 속으로 넣었다. 차하윤, 그녀가 멀리서 보였기 때문이다.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달리 옅은 파란색 원피스를 입고, 얇고 빛나는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오는 그녀는 세삼 아름답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약속시간보다 빨리 왔다고 생각했는데, 오래 기다리게 했군요. 죄송합니다.”

아마 휴대전화를 꺼낸 내 모습을 보고 오래 기다렸다고 생각한 듯하다.

“아닙니다. 저도 40분에 도착했습니다.”

“그렇군요. 일단 뭐라도 마시면서 얘기하죠. 늦게 왔으니 제가 사겠습니다.”

사양할 틈도 없이 계산까지 하고 온 그녀는 내 앞에 앉으며 차분히 물었다.

“이제 뭘 하실 계획이죠? 정말 데이트를 해서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면 저야 좋지만, 저 또한 연애경험을 많이 해왔고, 그 과정에서도 느끼지 못한 감정을 어떻게 이도윤씨가 느끼게 해줄 건가요?”

“아마 저와 오늘 하루 동안 같이 있으면서 대화를 진행하면 저절로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될 겁니다.”

“자신감이 넘치시네요.”

곧이어 주문한 커피와 자몽에이드가 나왔다. 커피를 좋아할 것 같은 이미지완 다르게 자몽에이드를 주문한 그녀에게 난 의아했다.

“커피를 좋아할 것 같았는데, 의외로 자몽에이드를 좋아하시나봐요?”

나는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시시한 주제로 대화 화두를 정했다.

“아니요. 원래 커피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왜 ······.”

“혹시라도 키스할 때, 커피 보단 자몽이 괜찮을 것 같아서요.”

예상치 못한 대답을 들은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고,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그녀는 여전히 차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시간이 흐르다가, 그 침묵을 깬 건 바로 그녀였다.

“이도윤씨는 가장 마지막에 한 연애는 언제였죠?”

조금 민감한 질문이었지만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서 차분히 대답했다.

“로펌 변호사로 일할 때였으니 대략 1년 조금 넘었죠.”

“어쩌다가 헤어지셨나요?”

대답을 망설이는 나에게 그녀는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런 제가 민감한 질문을 했죠? 죄송합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제가 헤어진 이유는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가요? 처음에 느꼈던 그 사랑이라는 감정은 어땠는지 궁금하군요.”

“저도 그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 있다면 아마 하윤 씨의 문제도 해결될 텐데 말이죠. 말로 설명하기 힘들어 서요.”

“그런가요? 아쉽네요.”

다시 어색한 정적이 흐를 때쯤 이번엔 내가 그녀에게 대화를 시도했다.

“오늘 아침에 하윤 씨가 쓴 글을 봤어요. 제목이 ‘플라토닉 러브’였죠?”

“네. 맞아요. 도윤 씨는 그 글을 읽고 무슨 생각이 들었나요?”

“글쎄요. 정신적 사랑에 대한 개념을 너무 부정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의 표정은 순간 진지해지면서 나에게 말했다.

“정신적 사랑을 부정할 수밖에 없죠. 사실은 정신적 사랑이라는 개념은 없기 때문이죠.”

“네?”

“사실 오늘날의 모든 사람들이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사랑을 하고 있어요. 어쩌면 저는 그런 생각을 해요. 사실 정신적인 사랑이라는 개념은 원래부터 없는 게 아닐까?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정신적인 생각 또한 물질적인 사랑이 아닐까? 저는 그런 생각을 해오면서 비물질적인 사랑은 없다는 확신이 들었죠.”

“그럼 하윤 씨의 주장에 따르면 강간범이 저지른 행위를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답을 했다.

“그 상황에 대해서 저는 다른 예를 들고 싶군요. 강간범에게 성추행을 당한 사람은 사랑을 느끼지 못했어요. 왜 그럴까요? 제가 주장한 내용에 따르면 만족한 성행위가 나왔다면 육체적 사랑을 느껴야 해요. 하지만 육체적 사랑보다 조금 더 상위의 개념이 존재해요. 바로 물질적 사랑이죠. 예전에 한 연구에 따르면 남자의 경제적 지위가 높을수록 여성의 성적 쾌락감이 높아진다고 해요. 강간범은 경제적 지위가 낮고, 사회적으로 꺼려하는 범죄행위를 한다는 것에서 사랑이라는 감정보단 혐오감을 느끼는 거죠.”

“그러면 저 또한 다른 예를 들고 싶어요. 예전에 한 유명 연예인이 어린 연예인 지망생에게 성행위를 강요해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죠. 그 사람은 그 사건이 터지기 전에 어느 정도 평판도 괜찮았고, 또한 경제적인 능력도 있었어요. 그런데도 그 여성은 수치감을 느꼈죠. 그 경우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건가요?”

그녀는 이번엔 좀 길게 생각을 하더니 금세 다시 질문에 답을 했다.

“범법행위에 대한 혐오감이라고 해두죠. 사회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사랑은 모든 여성들에게 꺼려할만 하죠. 그것이 혐오감으로 작용해서 사랑을 느낄 수 없다고 생각되네요.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런 범법행위에 대해서 사랑을 논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생각되네요.”

그 이후 그녀와 조금 더 심층적이고, 근원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다. 철학을 공부했던 나와 달리 그녀는 다른 영역에서 오래 일했을 텐데, 전혀 지적괴리감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내가 그녀의 생각에 압도당할 뻔 했다.

“차하윤씨. 이제 자리를 조금 옮기죠.”

“어디로 가나요? 설마 영화관 같은 곳에 가는 건 아니겠죠?”

“설마요. 저는 연인들 사이에 영화를 보는 행위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랑을 하는 사이인데 영화를 보거나 맛집을 찾으러 간다거나 혹은 여행을 간다거나 해야 할까요? 사랑한다면 옆에 있는 것 자체로 그 시간이 행복해야하고 지루하지 않아야 합니다.”

나는 슬며시 영화표 두 장을 다시 주머니 속에 넣었다. 마침 집에 있던 영화표가 있어서 갖고 왔는데 오히려 독이 된 듯하다.

“아쉽네요. 저도 일하느라 바빠서 오랜만에 영화를 보고 싶었는데, 도윤 씨가 그렇게 말한다면 어쩔 수 없네요.”

역시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보기 전까진 모르는 것 같다.

“그럼 저도 바빠서 영화 못 본 지 오래됐는데 한번 보러갈까요?”

“아니요. 저 때문에 그러실 필욘 없습니다.”

“아닙니다. 마침 영화관이 요 앞인데, 가시죠. 영화관.”


작가의말

잘 부탁드립니다. 화요일마다 연재인데, 연휴 때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서 미리 올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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