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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owleaf 님의 서재입니다.

달빛이 비추는 등대 아래서

웹소설 > 자유연재 > 로맨스, 판타지

snowleaf
작품등록일 :
2019.07.19 16:16
최근연재일 :
2020.02.25 14:34
연재수 :
5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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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0
추천수 :
54
글자수 :
328,798

작성
19.09.12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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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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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6쪽

28. 썸

DUMMY

*


“제정신 아닌가 보네. 나한테 연락을 한다고?”


송곳으로 심장을 쑤신 그에게 수아가 좋은 감정을 갖고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연락이 와서 반가웠다. 완전히 그를 잊었고, 새로운 사람이 마음에 들었고, 기회가 오지 않는다면 자신이 받은 상처를 갚아 줄 생각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의 연락이 왔고,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받은 것들을 생각해 본다면 한방정도는 먹여도 된다고 생각했다. 잠시 고민하다가 양 엄지손가락으로 휴대폰 화면을 몇 번 눌렀다.


‘오랜만이네. 무슨 일이야.’


‘잘 지내나 싶어서. 그냥.’


‘아주 잘 지내. 낮에 직접 봤잖아?’


‘아···. 응. 간만에 보니까 반갑더라. 많이 변한 것 같기도 하고.’


‘할 말만 해. 이유 없는 거면 연락 하지마.’


답장은 칼 같이 빨리 왔지만, 수아의 단호한 태도에는 잠깐 알림이 울리지 않았다. 몇 분 뒤 다시 울렸다.


‘할 말 있어. 지금 너희 집 앞이야. 잠깐 내려와 줄 수 있어?’


“허, 참내.”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코웃음을 쳤다.


‘뭐 정겨운 사이라고 얼굴을 봐? 그냥 메시지로 해.’


‘내려 와 줘. 올 때 까지 기다릴게.’


“쌈 싸먹는 소리 하시네요. 아주.”


수아는 답장하지 않았다. 밖은 눅눅하고 아주 더웠지만, 그녀의 방은 달랐다. 에어컨의 시원한 바람이 방을 쾌적하고 시원하게 만들고 있었다. 다음날 일정을 다 짜고 적당한 휴식을 취했다. 누워서 휴대폰으로 웹서핑을 하고, 관심분야의 동영상을 보기도 했다. 그가 그녀를 그렇게 대했듯이.


그렇게 한 시간이 넘게 흘렀다. 수아는 시계를 보고 가벼운 카디건을 하나를 챙겨 입고 집 밖을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나서는 양팔을 대충 걷어 올렸다. 문이 열리자 팔짱을 끼고 통로 입구로 나갔다. 입구로 올라오는 몇 개의 계단 밑에 그가 서 있었다. 맞은편의 가로등이 아주 희미하게나마 그를 비추고 있었다. 수아가 입구에 서자 센서등이 밝게 켜졌다. 그녀는 내려가지 않고 위에서 말했다.


“왜.”


단마디에 그가 뒤돌아 살짝 올려 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색한 공기만 그들 사이에 흐르고 있었다.


“할 말 없으면 들어가고. 덥다.”


날카롭지는 않았지만 차가웠다.


“아니, 있어.”


그가 입을 열자, 수아를 비추고 있던 센서등이 꺼졌다. 그녀는 다시 그것을 다시 켜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해.”


“미안해. 용서해줘. 나 너한테 그렇게 하고나서 너 생각 많이 했어. 연락을 할까 하기도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어. 미안해. 오늘도 그렇게 만나지 않았더라면 못 했을 거야. 내가 한 짓이 있으니까.”


말을 듣자마자 그녀의 눈빛이 확 변했다. 차가웠던 것이 매섭게 변했다.


“내가 한 짓이 있으니까···. 그렇게 쳐다봐도 할 말 없어. 근데 진심이야. 정말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너 헤어졌니?”


그녀는 잠시 가만히 있다가 왼쪽 입꼬리만 살짝 올리며 물었다. 재혁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래, 헤어졌으니까 지금 나한테 와서 이러고 있겠지.”


“용서고 뭐고 그런 게 우리 사이에 무슨 소용이 있겠어? 안 그래? 그런 것도 조금이라도 마음이 있는 사람한테나 하는 거지. 지금 마음 같아서는 뺨이라도 한 대 쳐주고 싶은데 여기까지 온 정성이 갸륵해서 참는다 내가.”


“헤어 질 때 네가 한말 다 맞아. 내가 네 상황, 네 마음에 신경 하나도 안 쓰고 나만 생각했던 것도 맞아. 그리고 우리가 하나부터 열까지 잘 안 맞았던 것도 사실이고. 근데 그런 게 있었으면 우린 싸웠어야 했어. 서로 서운한 걸 말하고 잘 풀던가, 감정적으로라도 싸우던가. 표현 안한 네 잘못도 있는 거야. 나를 생각해서 그랬단 말 하지마. 그건 사랑하는 거 아니니까.”


재혁은 고개를 떨군 채 아무 말 없이 듣기만 했다.


“그리고 어떤 상황이든 다른 사람한테 눈 돌린 건 네 잘못이야. 그 후에 뻔뻔하게 나한테 한 행동은 더욱 역겨운 거고.”


“지금 무슨 마음으로 여기 왔는지는 내가 알고 싶지도 않고, 알 필요도 없어. 네가 어떤 말을 하든 믿을 수도 없고. 바람 핀 여자랑 헤어져서 내가 아쉬워서 온 건지, 아니면 진짜로 후회해서 온 건지는 내 알 바 아니지. 근데 적어도 난 상대방한테 예의 있는 사람이랑 만나고 싶거든. 쓰레기 말고. 그러니까 이제 연락도 하지 말고 찾아오는 짓은 더욱 하지마.”


수아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렸다. 그러자 센서등이 밝게 켜졌다. 그들이 대화하는 동안 아파트 입구를 지나다닌 사람은 없었다. 엘리베이터는 그대로 1층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집 층수를 누르고 문이 닫힐 때 까지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문이 닫히는 동시에 그녀가 남겨둔 빛이 꺼졌다. 재혁은 어둠 속에서 그녀가 집까지 올라가는 것을 조용히 봤다. 엘리베이터가 서는 것을 보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깊은 한숨을 내 쉰 후 자신의 갈 길을 갔다.


순간의 선택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의 뒷모습은 처량했다. 걸음마다 힘이 없었고, 머리는 몸에 간신히 붙어만 있는 듯 했다. 시선은 어디를 향하는 지 알 수 없었다. 그런다고 해서 자신이 한 행동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수아가 재혁 때문에 자신의 아픔을 감내해냈듯이 이번엔 그가 그럴 차례였다.


*


“이모, 미진이요!”


미진과 예준이 파란색 대문을 열고 들어가 1층의 벨을 눌렀다. 30년 전 정도에 유행한 주택이었다. 빨간색 벽돌로 지어져 있고, 밖에는 1층과 2층 그리고 옥상으로 이어주는 계단이 있었다. 계단은 하얀색으로 칠해져 있고, 옥상은 초록색 페인트가 발라져 있었다. 그 곳의 빨랫줄에는 얇은 이불 몇 개가 널려 있었다.


“미진이 왔니!? 들어와! 덥지!?”


‘왈왈! 멍멍! 컹컹!’


문을 열자 대여섯 마리의 강아지 소리가 한 번에 들려왔다. 다양한 종류의 강아지들이 예준의 시야에 보였다. 말티즈, 푸들, 퍼그. 물론 귀여운 믹스견들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안녕하세요. 저 미진선배 학교 후배인 이예준입니다.”


“남자친구!?”


“에이, 이모도 참. 그런거 아니야.”


“아직은 아닙니다.”


예준이 웃으며 대답했다.


“아직은!? 더운데 일단 들어와요. 애들도 들어오라고 난리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 거실 테이블 앞에 앉자, 그 주변으로 강아지들이 모여들었다. 서로 자신을 만져주라는 듯 몸을 갖다 댔다.


“잠깐만 있어. 먹을 것 좀 갖다 줄게.”


“아니아니, 이모 괜찮은데!”


“괜찮으면 손님을 데리고 오지 말았어야지! 그렇죠?”


그녀는 예준을 향해 웃고 주방으로 향했다.


“아이고 예쁜 것들.”


둘은 양손을 이용해서 강아지들을 열심히 만졌다. 어떤 녀석은 뽀뽀를 하기 위해 두발로 일어나 그들의 얼굴을 핥기도 했다.


“난리 났네. 간만에 손님 와서 좋아 죽네. 아주. 그래, 이름이 어떻게 된다고 했죠?”


그녀가 과일과 음료를 거실 테이블 위에 올려두며 물었다. 미진은 과도와 과일을 잡고 껍질을 까기 시작했다. 그녀가 만지고 있던 강아지들은 예준에게 가 더욱 애교를 피웠다.


“이예준입니다. 이모님 말씀 편하게 해주세요.”


“그럴까? 이름 예쁘네. 그래 나이가?”


“22살입니다.”


“아니, 이모 무슨 호구조사를 하고 그래. 그냥 어쩌다보니까 같이 온 거야. 그런 거 아니라니까.”


“얘는 아니긴! 여기까지 같이 온 거면 뭐가 있는 거지!”


“선배 말대로 아직은 그런거 아니에요.”


“오호? 너는 우리 미진이 좋아하나 보네!? 왜? 얘 어디가 마음에 드는데?”


“이모. 좀! 제발!”


미진은 과일을 접시에 옮겨 담으며 그녀를 말렸지만 싫은 목소리는 아니었다.


“그런 건 아직 잘 모르겠는데···. 같이 있으면 즐겁더라고요. 그래서 또 같이 있고 싶고. 사실은 오늘도 제가 선배 따라 온 거에요. 같이 있고 싶어서.”


거침없는 대답에 이모는 살짝 웃었다. 미진도 웃고 싶은 것을 꾹 참았지만,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이모. 그만하고 과일 먹어. 너도 자. 근데 이모부는 회사 가셨어?”


“응. 요즘에 좀 바쁜지 아침 일찍 나가고 밤늦게 들어오더라. 그래서 몸보신 좀 시키려고 어제 닭 삶아서 먹었잖니.”


둘은 포크에 꽂힌 사과를 받아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민준이 물었다.


“근데 이모님은 강아지 많이 좋아하시나 보네요? 엄청 많이 키우시는걸 보면.”


“그럼. 애들 눈 봐라. 얼마나 예쁘니. 애들 대하는 거 보니까 너도 좋아하는 거 같은데?”


“저도 좋아해요. 아직 키울만한 환경이 안 되서 못 키우지만. 억지로 키우면 저도 힘들고 걔도 힘들 거 같아서요. 나중에 책임질 수 있는 환경 되면 키우려고요.”


그의 대답에 이모는 흡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근데 메리는 좀 괜찮나? 저번에 왔을 때 몸 안 좋아 보이던데.”


“방에서 누워서 쉬고 있어. 나이가 들어서 몸이 많이 아픈지 예민하기도 하고. 저번에 물 먹이려고 만졌는데 물렸잖니. 밥도 잘 못 먹고. 여하튼 그래. 아까도 밥 안 먹으려고 해서 지금이라도 먹여야 하는데···. 통 먹어야 말이지···.”


“흐음···. 안 아프면 좋겠는데···.”


예준은 둘의 대화에서 무게를 느끼고, 눈치를 보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메리는 아픈 아이인가 봐요···?”


“아~, 응. 몇 년 전에 센터에서 데리고 온 애. 그리고 얘들 다 보호센터에서 데리고 온 애들이야.”


“얘네 다요? 어릴 때부터 키우던 애들이 아니고요?”


“아니지. 어릴 때부터 키워 온 애들도 있지. 근데 출신이 보호센터인거야. 샵에서 분양 받은 게 아니라. 네가 만지고 있는 푸들 초코는 1살 때 왔고, 옆에 말티즈 우유는 5살 때.”


“대단 하신 거 같아요···. 보통은 분양 받으러 가면 샵 가잖아요.”


예준이 초코와 우유를 한 번씩 번갈아 봤다. 시선을 주자 애기들도 또랑또랑한 맑은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뭐, 그렇지. 나도 제일 처음에 강아지 데려와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는 샵 가야겠다 싶었지. 근데 아는 분이 그러는 거야. 그 전에 센터 한번 가보는 게 어떻겠냐고. 그렇게 가서 흰둥이 처음 데리고 왔었지.”


“누가 흰둥이에요?”


“쟤가 흰둥이야.”


미진이 TV옆에 세워져 있는 액자사진을 가리켰다.


“그게 시간이 좀 됐어. 흰둥이는 무지개 다리 건넜어. 저~기 위에서 나 기다리고 있을 걸?”


이모님은 다른 사람에게 부담주지 않으려는 듯 웃으며 가볍게 말했다.


“엄청 예쁘게 생겼네요. 근데 흰색이 아닌데요. 애가? 갈색인데요?”


“데리고 올 땐 하얬는데, 점점 털이 갈색이 되더라? 아마 부모 중에 한 놈은 하얀색이고 한 놈은 갈색이었겠지?”


예준은 과일을 하나 더 집어 먹으며 그 말에 살짝 웃었다.


“근데 우리이모 대단한 게 데리고 올 때 꼭 아기 강아지만 데리고 오는 것도 아니야. 나이 상관 안 해. 메리도 10살 넘었는데 데리고 오고.”


“그게 뭐 대단 한 거니. 뭐, 어쨌든 너도 나중에 강아지 키울 마음 있다고 말하는 건데, 분양 받을 때 센터부터 꼭 한번 가보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예준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나저나 언니가 보낸 거 가져왔어? 얼른 해야 너희 데이트 가지.”


이모가 시선을 미진에게 돌리며 말했다.


“아참 이모도 진짜. 여기 가져왔어요. 엄마가 이모한테 뭐 가르쳐 줘야 한다면서 뭐 잔뜩 말해주더라고요.”


미진이 가방에서 파일을 하나 꺼내 그녀의 앞에 펼쳤다.


“예준아, 너 잠깐만 놀고 있어. 한 10분? 20분? 이면 다 하니까.”


“이모님 괜찮으시면 제가 메리 밥 먹여도 될까요?”


그가 물었다.


“그래주면 나는 고맙지. 근데 낯선 사람이라서 먹으려고 할지 모르겠네. 일단 밥 불려 놓은 거 있는데 먹여볼래? 안 먹으려고 하면 억지로 먹이지 않아도 돼.”


“네. 알겠습니다!”


예준과 이모는 주방으로 갔다. 이모는 접시에 담긴 메리의 밥을 주고 방문을 열어주었다. 방안에는 요크셔테리어 한 마리가 방석에 엎드려 눈을 감고 있었다. 그가 메리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것을 보고 그녀는 자리로 돌아왔다.


“말해준거 뒤에 포스트잇으로 정리해 놨으니까 기억 안 나면 보면 돼요. 이모. 그래도 잘 모르겠으면 나한테 전화하고!”


“응. 고맙다.”


“보자. 30분이 넘게 지났는데 얘는 아직도 밥 먹이고 있나?”


미진이 방을 조심스럽게 보자, 메리는 밥을 다 먹고 예준의 무릎 위에서 잠들어 있었다. 그는 아주 조심스럽게, 살살 아이를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다 했어?”


소리는 내지 않고 입모양으로만 묻는 예준에게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얘가 밥 다 먹고 올라와서 자더라고···. 그래서 못나가겠어서···.”


미진은 고개를 갸웃 거렸다. 그러자 예준이 두 번째 손가락을 펴 자신을 가리키고 그녀를 가리켰다.


“나 나갈까?”


그녀는 급하게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손바닥을 펴 보이면서 가만히 있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핸드폰을 꺼내 그의 모습을 사진 찍었다. 사진 찍는 소리가 최대한 작게 나게끔 스피커를 손으로 막은 채.


“어머! 밥만 먹이면 되는데 잠까지 재우고 있었네!”


이모는 급하게 방으로 들어가 메리를 조심스럽게 들어 방석위에 올려두었다.


“싹싹 다 먹었네. 메리가 너 마음에 들었나보다 야.”


“저도 얘가 잘 먹고 잘 자는 거 보니까 기분 좋네요.”


둘은 방 밖으로 나오며 방문을 조심스럽게 닫았다. 이모님이 곧장 다시 다른 방으로 잠깐 들어갔다.


“사진 잘 나왔어요?”


“응. 아주 인자하게 잘 나왔어. 손녀 재우는 할아버지 같아. 좀 있다 나가서 보여줄게.”


“예쁘게 잘 나왔나 보네요. 근데 누나 휴지 좀 갖다 줘요.”


그가 조용히 말했다.


“왜? 뭐 묻었어?”


“아니, 여기 물려서. 피 떨어 질까봐.”


그가 오른손 엄지를 보여주자 피가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야!”


“쉿! 조용히 해요. 이모님 알면 미안해하실라. 얼른 휴지만 좀 가져다 줘요.”


미진은 급하게 테이블로 가 휴지를 떼서 갖다 줬다. 그는 휴지로 대충 손가락을 감은 다음 화장실로 급히 들어갔다.


“얘, 어디 갔니?”


“아. 화장실 갔어.”


“그래? 너 이제 가라. 온 김에 데이트도 좀 하고. 이걸로 같이 밥도 사먹어.”


“에이, 뭘 이런 걸 줘. 준다면 또 안 받진 않지만. 감사히 잘 쓰겠습니다.”


미진은 웃으며 아주 정성스럽게 고개를 90도로 숙이며 말했다. 그때 예준이 화장실 문을 열고 나왔다. 오른손은 자신의 뒤에 감추고 있었다.


“야, 가자. 나가서 밥 먹자. 이제.”


그녀는 예준의 가방까지 들고 급하게 그를 잡아당기며 현관문으로 끌고 갔다.


“가랬다고 이렇게 급하게 가니 서운하게? 어지간히 데이트 하고 싶었나 보네?”


“아, 그럼! 이모 덕분에 맛있는 거 사먹을 수 있는데 얼른 가야지! 또 올게요!”


미진은 어느새 신발을 다 신고 인사했다.


“그럼 다음에 또 찾아뵙겠습니다.”


“미진이랑 데이트 잘 하고! 조심히 가렴!”


공손히 인사를 한 후, 둘은 현관문을 닫고 나왔다. 대문을 나와 최대한 빨리 걸어 코너를 돌았다. 돌자마자 미진은 예준의 오른손을 집어 들었다. 그녀가 휴지를 펼치자 안에 이빨자국이 있었다. 그리고 멍과 함께 피가 살짝 고여 있었다.


“야 씨, 이거 어떡하냐. 병원 가야 되는 거 아냐?”


“뭘 이런 걸로 병원을 가? 그냥 약국 가서 약 바르고 반창고만 붙이면 돼지.”


“멍이 새파란데? 그리고 물렸을 때 어떻게 소리도 안 내냐? 안 놀랐나?”


“원래 개한테 물리면 멍도 들어. 그리고 물릴 거 각오 하고 간 건데 놀라긴. 그나저나, 썸 타는 사인데 이렇게 손 막 잡기 있어?”


손을 보던 미진이 고개를 들어 예준을 쳐다봤다.


“원래 썸 탈 때 손잡는 거야.”


그리고 다시 고개를 숙여 휴지로 그의 오른손을 감고 자신의 왼손으로 살며시 감쌌다.


“약국 갔다가 광안리나 가자. 밤에 다리에 불 켜져서 예쁘니까. 이모가 밥 사먹으라고 용돈 줬으니까 그걸로 맛있는 거 먹고.”


“좋지.”


둘은 손을 잡고 골목길을 걸었다. 조금씩 붉은 노을을 품기 시작한 골목길이 그들의 뒷모습과 잘 어울렸다.


“근데 누나.”


“뭐, 왜?”


“살살 좀 잡아. 안 그래도 욱신거리는데.”


“엄살은···.”


*


작가의말

독자님들 모두 행복한 추석 되시고, 달처럼 밝은 시간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진심으로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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