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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달에 울려퍼지는 소나타

그로스(grow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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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월소나타
작품등록일 :
2024.01.05 16:04
최근연재일 :
2024.04.08 19:00
연재수 :
40 회
조회수 :
488
추천수 :
0
글자수 :
181,998

작성
24.01.1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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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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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1. 추억 (4)

DUMMY

"어서오십시오, 손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가게에 들어서자 마찬가지로 수염이 덥수룩한 드워프 아저씨의 공손한 인사말이 기다리고 있었다. 뭔가 노예인데 과분한 대접을 받는 것 같아 기분이 미묘했다.

"저기... 여기 종이에 적힌 약재들을 사려고 하는데요."

"음...."

내가 내민 종이를 받아든 점원은 슥 그것을 쳐다보더니 다시 건네주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여기 있는 약재들 다 가게에서 팔지 않는 거야."

"에...?"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내가 당황한 반응을 보이자 점원은 머리를 긁적이며 덧붙였다.

"만약에 이것들을 구하려면 아마 바깥 유적으로 가야 할 거야."

"유적이요...?"

"응... 근데 거기 되게 위험해서 최소 200레벨은 되야 수월하게 사냥하며 돌아다닐 수 있다던데. 너 근데 레벨이 얼마나 되니?"

"아마도 1...이요."

"......."

점원이 할 말을 잃자 나는 말하고 나서 부끄러워졌다. 하긴 이런 지하의 신비로운 마을에 레벨 1짜리가 돌아다닌다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점원은 내 어깨에 손을 얹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동정하듯이 말했다.

"자네... 포기하는 게 좋을걸세. 자살하러 가는 거라면 말리지는 않겠다만."

"...."

이번엔 내가 말문이 막혔다. 점원 말대로 이제 겨우 시작한 렙 1짜리 새내기 유저가 레벨 200이 넘는 괴물들이 우글거리는 던전에서 들키지 않고 무사히 모든 재료를 찾아 모은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그렇다고 퀘스트를 거절하자니 지금 노예인 상황이 매우 신경쓰였다. 퀘스트를 포기하고 돌아온다면 드워프 중년이 어떤 짓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분명 그 드워프 주인이 언뜻보면 사려 깊은 면도 있어보이긴 했지만 결코 물러터진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으니까.

일단은 가보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래도 한번 가보겠습니다."

"정말로 갈텐가?"

"넵."

점원 아저씨가 무서운 눈초리로 노려보았지만 흔들리지 않고 대답했다. 단호한 나의 태도를 보자 갑자기 점원 아저씨는 껄껄 웃고 말았다.

"정 그렇게 그 노인장의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싶다면 하는 수 없지. 이보게나, 글라시아 양."

"......!"

점원 아저씨가 이름을 부르자 테이블의 구석에서 매우 익숙한 청발의 여자아이가 일어났다. 하얀 갑옷으로 전신무장을 한 그 아이에게서 이전처럼 무언가 살벌한 기운이 느껴졌다.

설마설마 했는데 이 마을에 진짜로 글라시아가 있을 줄이야. 이전의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오른 나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아이랑 같이 가주게나. 자네라면 유적의 괴물들을 충분히 해치울테니 곁에서 지켜주게."

여자아이는 대답대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아무런 망설임도 없었다. 혹시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여자아이는 나를 무감각하게 바라보았다.

"다시 마... 만나서 반갑습니다."

조심스럽게 용기를 내어 인사를 건넸지만 여자아이는 무시하듯 점원에게로 고개를 휙 돌렸다.

싸늘해진 분위기에 점원 드워프는 살짝 웃으며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괜찮네. 원래부터 좀 차가운 아이니까 자네가 이해해주게."

"네, 알겠습니다...."

"그럼 출발하게나."

점원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여자아이는 곧바로 가게 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너무 갑작스럽긴 했지만 나는 허둥지둥 여자아이를 뒤따라 가게를 나섰다.

***

마을을 벗어나 온갖 금속 장식이 가득한 거대한 통로를 나는 잔뜩 긴장한 채로 걸어가고 있었다.

금속 장식 중에는 마을에서 보던 것과 유사한 기계 장치 비슷하게 생긴 것들도 많았고 전신 무장한 병사들을 조각한 조각상 같은 것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대장장이의 종족을 대표하는 드워프 답게 여러 금속 물품들로 이루어진 꽤나 근사한 광경이었지만 전혀 감탄할 여유가 없었다.

여긴 던전이었고 그것도 레벨 1인 나에 비하면 까마득한 수백대 레벨의 무시무시한 몬스터들이 사는 소굴이었다.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었다.

여자아이는 나의 앞을 묵묵히 그저 걸어가고 있었다. 심지어는 잘 뒤따라오나 단 한 번도 고개를 돌려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여자아이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한가득 있었지만 입 밖에 꺼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자칫하다간 여자아이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어 한순간에 목이 떨어질지도 모른다. 아직도 칼이 목에 닿는 감촉이 생생하게 기억나 바짝 긴장되게 만들었다.

한참 통로를 따라 걸으니 저 앞에 넓은 공간이 보이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대로 듣다 보도 못한 커다란 괴물이 군데군데 돌아다니고 있었다. 고릴라처럼 생긴 괴물, 커다란 눈깔만 있고 몸체가 없는 괴물, 전갈같이 생긴 괴물 등등 한눈에 봐도 평범한 괴물처럼 보이지 않았다.

[던전 세리파스 유적에 입장하셨습니다.

던전 효과로 물리 공격력이 50% 상승합니다.

던전 효과로 자신보다 높은 레벨의 적에 대한 경험치 습득량이 100% 상승합니다.

던전 효과로 마법 공격력이 100% 감소합니다.

던전 효과로 각종 치료 마법과 포션, 스크롤의 효과가 100% 감소합니다.]

넓은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알림음과 함께 메세지가 나타나자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처음 겪어보는 던전 효과가 꽤나 신기하긴 했지만 그딴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저 무사히 필요한 약재들을 모아 이 던전을 빠져나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차피 던전효과로 물리공격력이 얼마나 증가하든 나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괴물에게 한방이라도 맞는 순간 저 세상이 분명하기에 저 여자아이가 괴물을 상대하는 동안 나는 최대한 멀리 도망가거나 꼼짝말고 숨어있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기다려."

여자아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한마디를 툭 내뱉고는 빠른 걸음으로 맨 앞에 있던 고릴라 괴물에게로 달려갔다.

'뭐 랭킹 1위인 글라시아에게는 저정도 몬스터들이야 껌이겠지... 잠깐만, 그러고보니 랭킹에서 글래시아의 레벨이 98이라고 하지 않았나?'

만약에 드워프 점원의 말이 사실이라면 여기 던전의 몬스터들이 최소 200대라는 건데 98레벨이 200레벨을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나는 글라시아가 지금 몬스터의 레벨을 착각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다급하게 외쳤다.

"잠깐만 글라시아...! 여기 괴물들은 200레벨이 넘어서 절대로 우리가 상대할 수 없...어?"

말이 끝나기 직전에 전혀 보이지 않는 속도로 어느새 두 동강이 난 몬스터가 보이자 나도 모르게 말 끝을 흐려버리고 말았다.

'끄어어어.'

괴상한 소리를 내며 고릴라 모양의 몬스터가 쓰러지고 글라시아는 검에 묻은 피를 슥 닦으며 여유롭게 다음 몬스터가 있는 곳으로 가뿐하게 움직였다.

놀라는 것도 잠시, 채 몇 초도 되지 않아 그 아이는 오른쪽에 있던 거대한 눈깔몬스터를 가볍게 두동강 내버렸다.

분명히 레벨이 200이 넘게 보이는 흉악한 몬스터처럼 생겼는데 무슨 두부를 자르듯 슥삭슥삭 자르는 걸 보니 사실은 저 몬스터들이 50도 안 되는 쪼렙 몬스터가 아닐까 생각이 될 정도였다.

전광석화와 같은 학살이 계속되고 나서 수 분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거대한 공간에 돌아다니는 몬스터는 온데간데없고 수십구의 시체가 사방에 널브러져 있었다.

"......."

"따라와."

"네... 넷!"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멍하게 서있던 나는 차갑게 들려오는 외침에 그제서야 대답하며 허둥지둥 그녀를 뒤따라갔다.

생각해보니 이때부터 순식간에 나도 모르게 그녀를 부르는 높임이 반말에서 존댓말로 바뀌어버린 것 같았다.

한동안 긴장되는... 아니 어찌보면 지루한 던전 공략이 시작되었다. 글라시아가 먼저 몬스터들을 정리하면 나는 전리품을 줍는... 소위 말하는 짐꾼 역할을 하는 방식이었다.

가끔은 가다가 점원 아저씨가 말한 대로 바닥에 피어 있는 약재들을 발견하면 단검을 꺼내 캐서 가방에 넣기도 했다. 단검은 드워프 주인이 있는 방에서 가져왔는데 제법 쓸만한 날카로움을 지녔다.

'어?'

두세 차례 넓은 방과 통로를 반복해서 지나자 이상한 공간이 나와 그녀 앞에 펼쳐졌다.

사방이 빛으로 반짝여 눈이 부신 공간. 바닥과 천장뿐만 아니라 옆면까지도 전부 수정인지 유리인지 모를 투명한 재질로 되어있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마치 미러볼 안에 들어있는 느낌이랄까.

바로 앞에서 안을 살펴보니 다행히도 적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다만 푸른 수정으로 된 기중 하나가 중심에 덩그라니 놓여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 분위기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한발을 내딛은 순간.

'으윽!'

주변이 새하얘지면서 온통 빛으로 휩싸이기 시작했다. 주변 풍경은 물론이고 점점 바로 옆에 서 있던 글라시아 조차도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하얀 빛이 시야를 잠식해갔다.

강렬한 빛에 도저히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눈이 부시자, 눈을 감아버렸을 때 감긴 눈으로 어떤 영상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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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2. 노스피아 원정대 (5) 24.01.31 7 0 12쪽
12 2. 노스피아 원정대 (4) 24.01.29 8 0 14쪽
11 2. 노스피아 원정대 (3) 24.01.26 8 0 9쪽
10 2. 노스피아 원정대 (2) 24.01.24 11 0 8쪽
9 2. 노스피아 원정대 (1) 24.01.22 15 0 8쪽
8 1. 추억 (7) 24.01.19 14 0 9쪽
7 1. 추억 (6) 24.01.17 13 0 12쪽
6 1. 추억 (5) 24.01.15 12 0 13쪽
» 1. 추억 (4) 24.01.12 13 0 9쪽
4 1. 추억 (3) 24.01.10 18 0 14쪽
3 1. 추억(2) 24.01.08 17 0 11쪽
2 1. 추억 (1) 24.01.07 84 0 14쪽
1 0. 이상한 꿈 24.01.05 87 0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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