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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차는 아무래도 영화평론가가 되어야겠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현우(炫宇)
작품등록일 :
2024.04.01 07:36
최근연재일 :
2024.04.26 01:00
연재수 :
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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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6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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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비평 공모전

DUMMY

필름매거진, 한국영화의 부흥이란 시대적 사명을 가지고 탄생한 영화 전문 잡지다.

창간 4년차에 접어든 이곳은 주목받지 못한 국산작들을 소개하며, 영화육성에 힘을 써왔다.

하지만 <쉬리>이전의 한국영화계는 사하라 사막과 다름없었다.

독창적인 소재는커녕 해외 유명작들을 베껴오기 급급했고, 국내 최고의 영화제들은 매년 수상 논란을 이어가고 있었다.

<필름매거진>은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국내작품을 발굴하며 영화 부흥에 힘을 써왔다.

하지만 선인장을 장미꽃이라 우기는데엔 한계가 있었다.

끼워 맞추기식 해석과 과도한 국산영화 편들기는 대중들의 반감만 키웠다.

창간 초기 6만부를 찍었던 발행부수는 4년 만에 반 토막 났으며 잡지는 존폐의 기로에 놓였다. 그나마 유지하고 있는 3만부도 대부분 영진위가 사주는 물량이었다.


‘이렇게 보니 쉬리가 참 대단하긴 해.’


사막에서 핀 장미꽃이랄까.

<쉬리> 이후 한국 영화는 질적으로 크게 성장했고 고사 직전의 필름매거진도 기사회생했다. 하지만 지금은 쉬리가 개봉하기 직전인 98년도, 여전히 한국영화계에 잔인한 해였다. <타이타닉>이 막을 내리자 전쟁영화의 끝판왕인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등장해 버렸기 때문이다.

불행 중 다행이도 라이언일병의 국내 성적이 저조하긴 했지만 비평계를 경악시키기엔 충분했다.

뭐 그 영화는 국경을 막론하고 세계 모든 비평가들이 놀라긴 했다.


“강성진, 너는 진짜 공부하는 기계냐? 어떻게 도서관에 올 때마다 보여.”


도서관에서 비평문을 다듬고 있을 때 오병규가 다가왔다.


“시험이 코앞이잖아.”

“우리 중간고사는 다 리포트로 대체야. 무슨 시험공부?”


오병규는 내 책상을 슬쩍 보더니 눈이 커졌다.


“어랏? 필름매거진에서 주관하는 비평 공모전이네?”

“필름매거진 알아?”

“영화과에서 필름매거진 모르면 간첩이지. 나도 고등학생 때 여기에 독자 투고 엄청 열심히 했어. 그거 당첨되면 3만원인가 원고료도 주잖아. 흐흐.”


창간 초기에는 독자투고도 활발하게 받았고 소정의 원고료도 줬다.

물론 오병규에겐 해당 안 되는 얘기였지만.


“뭐야? 여기서 공모전을 열어?”

“이번이 4회째래. 너도 한 번 낼래?”

“됐어. 발표 수업 한 번 준비하는데에도 피 말리더라. 난 비평하고 안 맞아. 근데 넌 이 공모전 전단지 어디서 받았어?”

“그냥 뭐. 오다가다.”

“대체 어딜 오고가야 이런 정보를 알 수 있는 거냐. 딱 봐도 되게 고급정보 같은데.”


회귀한 이후 인터넷의 위엄을 매일같이 실감하고 있다.

21세기엔 검색만 해도 알 수 있는 정보가 이땐 다 발품작업이었다.


“이거 응모해보게?”

“응. 상금이 무려 이백만원이래. 밑져야 본전인데 너도 한 번 해봐.”

“...나 사실 방금 살짝 해볼까 싶었는데 바로 마음 접어야겠다.”

“왜?”

“내가 당선되려면 너보다 잘 써야 한다는 거잖아. 어휴 시간 낭비할 뻔했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하여간 넉살은 죽여주는 녀석이다.


“그럼 내 원고 한 번 읽고 피드백 해줄래? 당선되면 피자 한턱 쏠게.”

“오- 피자! 당장 줘 봐. 도울 수 있는 거 다 도울게.”


싱글벙글 웃던 녀석은 원고를 읽자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 생각보다 꼼꼼하게 읽어주는 건지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녀석은 감상이 다 끝나자 날 바깥으로 불러냈다.


“야 강성진 너 진짜 미쳤다! 나 솔직히 <라이언 일병 구하기> 안 봤거든? 근데 이 비평문 보니까 눈에 다 그려져. 오마하 전투 씬이 진짜 그렇게 대단해? 내일 당장 수업 땡땡이치고 영화관 가야지.”

“그 정도야? 정말 괜찮았어?”

“이건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니까! 너 내가 왜 필름매거진에 독자 투고 보낸 줄 아니?”

“왜?”

“거기 비평문 보면 다 만만했거든. 영화 해석이 다 끼워 맞추기 같았고, 뭔가 한국영화만 우쭈쭈 해주는 것 같았어. 근데 네 비평은 달라. 이런 글이 잡지에 실렸다면 나는 투고할 생각도 못했을 거야.”


녀석은 격앙된 목소리로 말하더니 내 손을 붙잡았다.


“당장 넣자! 나도 피자 한 번 얻어먹어 보자.”

“근데 문제가 하나 있어.”


내가 공모전 요강을 가리키자 녀석이 메두사 대가리를 본 마냥 굳어 버렸다.


“뭐야... 국산영화 비평문에 가산점?”

“말만 가산점이지 사실 국산영화만 쓰란 뜻이야.”

“역시 내 느낌이 맞았어. 이것들이 외국영화는 냉철하게 분석하면서, 한국영화만 우쭈쭈 하더라니까. 하도 눈꼴 시려워서 잘 보다 구독 끊어 버렸잖아.”

“그 정도야? 역시 안 되려나.”


내가 풀죽은 목소리를 내자 녀석이 내 손을 다시 꼭 부여잡았다.


“성진아, 그냥 눈 한 번 딱 감고 국산영화 비평 한 번 해줘. 너한텐 일도 아니잖아? 솔직히 돈이 중요하지, 그깟 비평문이 중요하겠냐? 넌 할 수 있어. 내가 절대 피자 때문에 이러는 거 아니다.”


녀석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간절했다. 이런 정성으로 책을 한 번 더 봤으면 진작 천재가 됐을 텐데...



*



당선작 발표 기한을 벌써 일주일이나 넘겼지만 필름매거진 사무실은 불 꺼질 날 없었다.


“아, 예. 위원장님, 죄송합니다. 이번에 너무 우수한 작품들이 많이 접수 돼서요. 예년보다 무려 30편이나 더 접수됐습니다. 워낙 작품수가 많다보니 수상작을 놓고 심사위원들의 의견이 갈리는 모양입니다. 모쪼록 내일 안으론 정리해서 전화 드리겠습니다.”


필름매거진의 사장이자 편집국장인 박희도는 복잡한 얼굴로 전화를 끊었다.

반 토막 난 발행부수와 달리 비평 공모전은 매년 기록을 경신하고 있었다. 1차 때는 겨우 100여편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젠 200여 편이 넘는 응모작들이 접수 됐다. 영화에 대한 관심이 이토록 늘었다는 건, 한국영화에 대박조짐이 보인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는 매년 주최하는 이 공모전에 나름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공모전 마지막 날 접수된 비평문 하나가 이 자부심을 산산조각 내고 말았다.


“김 과장. 내 뜻 알아듣게 전달했어?”

“예. 하지만 심사위원들 모두 요지부동입니다. 그 작품을 선정해야 한다고...”

“이것들이 보자보자 하니까! 영진위 후원으로 진행하는 공모전이야. 외화 비평문을 선정하자는 게 말이 돼?”


한국영화에 가산점을 준다는 건, 한국영화만 하란 뜻이다. 하지만 문제작은 마치 이 공모전의 취지를 비웃듯 외국영화를 비평해 버렸다.

더 큰 문제는 이미 심사위원들이 마음을 뺏겨 버렸다는 것.

국내작을 선정하라고 몇 차례 눈치를 줬지만 심사위원들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국장님 그럼 일전에 나눴던 얘기대로 하시죠. 당선작 두 개 뽑는 거요.”

“그건 우리 스스로 수상 권위를 떨어뜨리는 거야. 이게 뭐 개근상도 아닌데 상을 두 개 씩이나 줘.”

“그럼 우리가 포기해야 됩니다. 심사위원들은 절대 고집을 꺾을 위인들이 아닙니다.”

“하아... 후보작이 총 몇 개야?”

“다섯 작입니다.”

“김 과장. 그 다섯 작품 다 읽어 봤지? 자넨 어땠어?”


김 과장은 눈치를 살폈다.


“솔직하게 말씀 드려도 됩니까.”

“말 해. 어차피 볼 장 다 본 거.”

“그 문제작이 압도적으로 좋았습니다. 심사위원들의 마음이 어느 정도 이해는 되더군요.”

“젠장.”

“국장님은요? 국장님도 읽어 보셨잖아요.”


박 국장도 이들의 마음과 다르지 않았다. 문제작은 다른 네 작품과 비교하는 게 미안 할 정도로 뛰어났다.

기본적으로 영화에 대한 사전지식이 풍부했으며, 이를 글로 설명하는 전달력 또한 발군이었다.

하지만 입 밖에는 낼 수 없는 말이었다.

그는 영진위의 후원을 받는, 아니 그에겐 국산영화 발굴이라는 시대적 사명이 있었으니.


“어떻게 할까요? 못 해도 오늘 안으론 당선작을 가려야 하는데...”


박 국장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심사위원들 위층에 있지?”



*



한 자리에 모인 심사위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박 국장의 눈길을 피했다.

이들 모두 업계에서 한 가닥 하는 최고의 비평가들이다. 심사료 몇 푼에 소신을 꺾고 싶지 않았다.


“국장님. 참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저흰 이 결정을 번복하지 않을 겁니다. 물론 편집국의 사정은 이해합니다. 영진위의 후원을 받는 잡지산데 당연히 국내영화에 대한 책임감이 크겠죠. 하지만 저희에게도 좋은 비평문을 선발하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심사위원장이 작심한 듯 말을 꺼내자 박 국장이 한 발 물러섰다.


“오해는 마세요. 나도 심사에 간섭할 생각 없습니다. 그러려면 내가 직접 선정했지.”

“그리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번에 올라온 후보작 다섯 개 모두 출중했다고 들었습니다만?”

“비교할 게 못 되요. 다른 비평문이 훌륭한 수준이었다면, 이건 압도적이었습니다.”

“압도적?”


심사위원장은 살짝 흥분한 목소리로 변했다.


“제가 본 라이언일병은 전쟁영화였습니다. 한데 이 비평문을 읽고 다시 감상하니 철학영화였습니다.”

“장르가 달리 보일 정도라는 겁니까?”

“네. 이 작품은 ‘업햄’의 시각으로 영화를 완전히 뒤집어 봤어요. 업햄이 살려 준 독일병사는 마지막 전투에서 연합군 동료들을 죽이죠. 전쟁 앞에서 ‘인간다움’이라는 게 얼마나 무의미 합니까. 스필버그는 오마하 전투 씬으로 전쟁의 참상을 보여줬고, 업햄을 통해 연출의도를 전달했어요. 난 그것도 모르고 전투 씬만 신나게 감상했던 겁니다.”


압도란 말도 부족하다.

문제작은 스필버그가 숨겨 놓은 모든 연출 장치들을 발굴했고, 그 의미를 해석해 주었다.


“솔직히 이 비평문은 우리가 평가를 하는 게 아니라, 교수님께 수업을 듣는 기분이었습니다.”


심사위원들의 극찬이 쉴 새 없이 이어지자 박 국장은 조금씩 마음을 비웠다. 수상작 번복은 없을 것 같다.


“영진위 때문에 곤란 하시죠?”

“뭐... 꼭 때문만은 아닙니다. 우리 잡지의 창간 목표가 한국 영화의 부흥과 발전이잖아요. 그걸 못 지킨 게 아쉽네요.”

“국장님. 그럼 이번 기회에 그 빗장을 푸시죠. 그 계기로 충분한 작품입니다.”

“빗장을요?”

“네. 그간 국내영화 보호하겠다고 얼마나 많은 억지 평론을 썼습니까.”


박 국장은 얼굴이 붉어졌다. 급격하게 떨어진 발행부수가 모든 걸 말해준다. 필름매거진이 엉터리 비평을 하고 있었다는 걸.


“독자도 바보가 아닙니다. 오히려 작품성 있는 외화를 잘 전달하고 우리가 무얼 발전 시켜야 하는지 배워야 합니다.”

“이게 결국 한국 비평계를 살리고, 한국 영화계를 살리는 일일 겁니다.”


박 국장은 긴 한숨을 쉬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은 의견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 입장 빤히 아시는데 이런 말 밖에 못해서.”

“아닙니다. 내가 해야 할 고민이죠. 모두 고생 많았습니다.”


박 국장은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오더니 김 과장에게 말했다.


“박 과장. 라이언일병 그놈한테 연락 해.”

“예?”

“당선 전화 하라고.”

“아, 예. 근데 영진위엔 뭐라 설명을...”

“어떻게든 되겠지. 외부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공모전 마무리만 신경 써.”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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