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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차는 아무래도 영화평론가가 되어야겠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현우(炫宇)
작품등록일 :
2024.04.01 07:36
최근연재일 :
2024.04.26 01:00
연재수 :
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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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1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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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시네마 천국

DUMMY

코로나는 영화판의 숨통을 끊어 놨다.


.

.

.


사실 잘 모르겠다.

어쩌면 이미 죽어 가고 있었는지도.



*



“모두 고생 많았어요. 그리고 너무 미안해.”


직원들 앞에서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오늘은 영화사 간판을 떼는 날이다.

조금만 참고 견디면 분명 좋은 날 올 거라 다독였는데, 줄줄이 취소되는 제작 스케줄에 결국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한철 기승을 부리다 마는 독감이겠거니 했다. 한국엔 싸스, 메르스, 조류 독감 같은 전염병이 늘 유행했으니까.

하지만 마스크로 시작한 방역지침이 집합 금지 명령으로 이어졌고, 급기야 상영관도 팝콘 배달로 연명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이런 시국에 중소 제작사가 살아남을 리 만무하다.

심혈을 기울여 따낸 영화 두 편이 취소 됐다. 마지막 밥줄이었던 블록버스터 한 편도 결국 제작 취소 결정이 나고 말았다.

이젠 인정해야 한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걸.


“아닙니다. 그나마 대표님이니까 이 정도 버텨 주신 거죠.”

“대표님. 그간 저희 몰래 배달 알바 뛰셨죠? 저희가 더 죄송합니다.”


직원들의 위로에 눈물이 핑 돌았다.

하지만 얼싸안고 우는 바보짓은 하지 않았다. 앞으로 더 눈물 흘릴 날이 많아질 테니까.

우리는 기약 없는 뒤풀이를 약속하며 서로의 앞날을 축복해줬다.

직원들이 모두 나가자 텅 빈 사무실이 더 허전하게 느껴졌다.

쓸쓸히 창고를 정리하고 있을 때, 직원들을 배웅 나갔던 춘석이가 돌아왔다.


“섭섭하지?”


직원들 중 가장 미안한 녀석이다. 독립영화판에서 구르던 때부터 지금까지 장장 10년을 함께해줬는데.


“미안하다. 네 얼굴 볼 낯이 없다.”

“약한 소리 마. 21세기에 이런 역병이 돌 줄 누가 알았겠어?”

“그래도 나만 믿고 따라와 줬는데...”

“내가 지금까지 형을 따랐던 건 작품 보는 눈이 죽여 줘서지, 큰돈 벌려고가 아니야. 우린 다시 일어서면 돼.”


글쎄, 우리가 다시 일어 설 수 있을까?

나는 이미 용기를 잃었다. 독립영화판에서 신예감독으로 주목 받던 나는 상업영화로 데뷔하자마자 귀신같이 망했고, 부랴부랴 영화 제작사를 세웠다.

창작을 포기했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그땐 이미 내가 감독으로서 재능이 없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내가 알아 본 감독들이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며 위안을 삼았다. 만드는 재주는 없어도 알아보는 눈은 있었던 거라고 나를 위로했다.

하지만 이젠 희망이 없다.

나이 사십 줄에 내게 남은 것이라곤 한때 잘나갔단 타이틀, 망한 제작사, 홀몸, 그리고 기약할 수 없는 미래뿐이다.


“뉴스 보니까 서서히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있데. 이제 집합금지 명령만 풀리면...”

“그런다고 옛날로 돌아갈 수 있을까.”

“뭐?”

“춘석아, 영화판이 망한 게 정말 코로나 때문이었을까?”

“그게 무슨 소리야?”

“사람들이 더 이상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이유는 나도 설명할 수 없지만.”


녀석은 망부석처럼 굳어버렸다.

역시나 나만 느끼는 불안감이 아니었구나.


“나 구청 가서 폐업 신고 할 거야. 기한 안에 신청하면 직원들 실업 급여 100%로 수령할 수 있다더라.”

“...”

“나 먼저 갈게. 짐 정리만 좀 해줘.”



*



한 가지 인정해야겠다.

지금은 코로나 시대가 아니다.

역병의 긴 터널을 지나 많은 일상이 제자리로 돌아갔고, 집합 금지 명령도 많이 해제됐다. 하지만 한 번 떨어진 극장 관람객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쯤 되니 코로나가 영화를 망친 건지, 망해가던 영화판이 코로나 핑계를 대는 건지 헷갈린다.


-툭


맥주 두 병을 비우곤 정처 없이 걸었다. 이젠 진지하게 그 답을 찾아 봐야 한다.

왜 사람들은 더 이상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걸까?

자극적인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라서? 티켓 값이 비싸져서? 아니면 영화판 생태계를 망가트린 OTT 때문에?

폐업 신고보다 더 가슴 아픈 건 사람들이 더 이상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단 사실이다. 망하더라도 내가 망했지, 업계가 망할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다.

그렇게 얼마간 걸었을까.

웬 허름한 극장 하나가 내 발걸음을 사로잡았다.


‘뭐지? 새로 생긴덴가? 처음 보는데.’


낯설었지만 새로 생긴 극장은 확실히 아니었다.

다 무너져 가는 간판에, 90년대에나 볼 수 있었던 그림 포스터가 떡하니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에나 아직도 그림 포스터를 쓰는 곳이 있다고?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나는 결국 상영관 안으로 들어갔다.


“학생, 얼른 입장해. <시네마 천국> 관람객이지?”

“네? 아, 전 관람객이 아니라 구경 온.”

“맞구먼 뭘. 방금 화장실 간다고 나간 학생이잖아.”

“...예?”

“상영 도중에 들어가는 건 작품에게 대단한 실례야. 잔말 말고 얼른 들어가. 자리 다 꽉 찼어.”


초로의 노인은 묘한 위압감을 풍기며 나를 재촉했다.

참 놀라웠다. 촌스러운 간판은 그렇다 쳐도 티케팅을 영감님이 하고 계신다고?

조그마한 체구에 대체 힘은 어디서 나오는지 나는 거의 떠밀리다시피 상영관으로 들어갔다.

내심 기분은 좋았다. 40대 아저씨를 아직 학생으로 봐주는 사람도 있구나!


“뭐야. 만석이라더니 왜 나 혼자 밖에 없어?”


젠장. 학생이라 할 때부터 알아 봤어야 했다. 아무래도 다른 관객과 헷갈렸거나 상영관을 착각한 모양이다.

그렇게 다시 나가려 할 때, 갑자기 영화가 재생되었다.

그리고 난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거 내 인생 영환데.’


<시네마 천국>

관용적인 표현이 아니라, 이건 진짜 내 인생을 바꿔 버렸던 영화다.



*



누군가 내게 <시네마 천국>이 재밌는 영화냐 물어보면 난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아니, 정말 지루한 영화라고.

60대 노인과 10대 소년의 우정을 그린, 세 시간짜리 영화가 현대인들에게 재밌을 리 만무하다.

심지어 그 우정이라는 것도 <대부>처럼 드라마틱한 게 아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갈등은 마을 신부가 상영작들을 미리 다 검열해 키스신을 모조리 잘라 버린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각 캐릭터들의 개성이 잘 담겨 있나?

이것도 잘 모르겠다.

무식하고 이기적이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여자, 스칼렛 오하라(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상대조직원의 암살을 지시하곤 성당에서 미사를 드렸던 철면피, 마이클 콜레오네(대부)

캐릭터 영화의 대표 주자들과 비교 했을 때, 알프레도와 토토는 마치 물 조절 실패한 라면처럼 싱겁기만 하다.

심지어 요즘 트렌드인 사이다적 요소도 없다.

알프레도는 마을신부의 키스신 검열에 찍소리도 못하는 소심한 영사기사, 영화 내 최고 일탈이 뒤늦게 입학한 초등학교 졸업시험 커닝이다.

나쁜 놈은 김치로 때리든, 된장으로 때리든 반드시 복수를 해야 성이 풀리는 요즘 사람들에겐 답답하기 그지없는 세 시간일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이 지루한 세 시간을 모두 용서한다.

알프레도는 검열당한 키스 씬 필름을 모두 모아 한편의 영화로 만들었고, 토토는 고향으로 돌아와 그의 유작을 감상한다.


그 장면이 칸을, 아카데미를, 골든글로브를 열광 시켰다.


죽는 날까지 참고 살았던 알프레도의 마지막 반항이, 영화에 대한 애틋함이 마지막 장면에서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이는 대학교 졸업반이었던 내 가슴에도 불을 지폈다.

평생을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 교과서만 달달 외웠다. 그래서 서울대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졸업할 때까지 내 삶의 이유를 찾지 못했다.

뒤늦게 영화라는 것에 빠져 캠퍼스보단 상영관으로 출석하는 일이 더 많아졌지만 막상 아무런 도전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실패가 두려운 겁쟁이였으니까.


<시네마 천국>의 마지막 장면은 벼랑 끝에 있던 내 등을 떠밀었다.

너는 날 수 있어.

실패하면 뭐 어때? 알프레도의 키스씬은 누가 봐도 명작이야. 세 시간 동안 지루했던 너도 감동을 받고 있잖아.


‘옛날 생각나는군.’


헤밍웨이가 말했다. 노인은 엄청나게 큰 다랑어와 사투를 벌였지만, 육지로 고기를 끌고 왔을 땐 뼈 밖에 남지 않았다고(노인과 바다).

실패도 담담히 받아들일 각오가 끝났다.

나는 영화에 몸을 던졌다!


.

.

.


사실 많이 과장된 얘기다.

대학교 졸업반 때 각종 시나리오 공모전을 휩쓴 나는, 내 재능을 충분히 확인했고 영화산업이 전망있다 판단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내 예측이 맞아 떨어졌다.

근데 영화라는 장르 자체가 망할 줄이야!


“다시 봐도 명작이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자 절로 기립박수가 나왔다. 하지만 박수 끝엔 자괴감이 밀려왔다.

아이언맨이 죽었을 때 이런 감동이 밀려왔어야 하는데.

왜 나는 드디어 마블 시대가 끝났다고 환호 했을까.

이러니 망하지 않았을까!

더 이상 잔잔한 이야기가 주목 받지 못하는 시대다. 트렌드에 한참 뒤떨어진(?) 작품에 또 감동을 받고 있는 내 자신이 한심스럽다.


“나도 이젠 먹고 살아야지.”


극장을 나오며 나는 모질게 다짐 했다.

두 번 다시 내 인생에 영화는 없다! 영화는 내게 이뤄질 수 없는 첫 사랑이었다!

그렇게 극장 밖을 나왔을 때 나는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한국 영화를 사랑합시다, 여러분!

-외국영화가 황소개구리 마냥 우리 영화 생태계를 해치고 있어요!


극장 밖에선 웬 빨간띠를 두른 시위꾼들이 피켓 시위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한데 분위기가 이상하다. 사람들 복장과 헤어스타일이 흡사 90년대 아닌가?


‘복고 열풍이 이렇게 심하게 불었나?’


우두머리 사내가 더 크게 외쳤다.


-금 모으기로 번 돈, 타이타닉으로 빠져나간다. 외국영화는 물러가라, 물러가라!

-물러가라! 물러가라!


금 모으기로 번 돈? 타이타닉?

저 구호를 들어 본 적이 있다.

97년 IMF 때, 외국 제품은 무조건 나쁘고 영화도 한국영화만 봐야 한다고 선전했던 때가 있지 않았나.

당시 뉴스는 상영관까지 가서 타이타닉 관람객들을 매국노로 박제시켜 버렸다.


“이게 무슨...”


그렇게 당황하기도 잠시.

나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삶에 찌든 제작사 대표가 아닌 힙합바지에 뿔테 안경을 쓴 19살짜리 소년이 내 눈에 비쳤다.

언제인지도 기억난다.

수능 끝나고 성적표 나왔던 당일, 나는 극장에서 타이타닉을 봤다.


-타이타닉은 아주 나쁜 영화입니다!


영문을 모르겠지만 나는 1997년으로 돌아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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