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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GIGA 님의 서재입니다.

수명 깎는 흑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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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GIGA
작품등록일 :
2024.04.15 04:12
최근연재일 :
2024.05.25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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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4.05.11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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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지에

DUMMY

8화 리지에





술식을 고치는 데에는 이틀하고 15시간이 걸렸다. 솔직히 이것도 꽤 빨리 고쳤다 생각한다.


텔레포트 자체가 워낙 예민하고 세밀한 술식이다 보니 뭐 하나 잘못되면 머리만 이동한다던가, 신체의 일부가 사라진다던가 하는 일이 벌어진다.


“후우, 이제 운에 맡기는 수 밖에 없겠군.”

“··· 예? 운이요?”

“음, 운이다. 잘못하면 팔다리가 사라질지도.”


물론 그냥 하는 소리다.

내가 그런 실수를 할 리가 없지.


나는 말을 풀어준 후 말했다.


“자, 꽉 잡고 있어라. 어디 모르는 곳으로 튕길지도 모르니까.”

“···.”


표정이 굳은 테오가 손을 꽉 잡자마자 나는 술식을 가동했다.

푸른 빛이 우리를 감싸고 이내 시야가 하얗게 물들었다.

몸이 부웅 뜨는 듯한 감각이 든 후, 굉음을 일으키며 ‘추락했다.’


콰아아아앙!!!


“꺄아아악!”


뭐가 잘못 된 건 아니다.

원래 텔레포트가 이럴 뿐이지.


“흐음, 일단 제대로 도착한 것 같긴 한데.”


우르스가 최북단에 있다면 엘라스는 중부에 위치하고 있다.

여기에서 조금만 더 동남쪽으로 가면 아스테시아 가문이 있던 곳이라 어느 정도는 익숙한 지형이다.

그렇게 멀리에 보이는 마을을 향해 걸어갔다.


“··· 썩 멀쩡하진 않군. 텅 비었어.”


이미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듯, 텅 빈 마을은 고요한 침묵만이 맴돌았다.


“··· 어쩐지 익숙한 광경이네요.”

“그러고 보니 너의 고향도 멸망했다 했었지. 이유가 뭐냐.”

“··· 몰라요.”

“몰라?”

“정말요. 그냥··· 어느 순간 전부 끝나버렸어요.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서···.”

“흐음, 그래?”


석연찮군.

설령 기억 소거라 해도 도시가 멸망한 수준의 강렬한 기억이라면 어렴풋이라도 기억이 나는 편이다.


“일단 계속 내려가보지. 어딘가에는 사람이 보이겠지.”


과거를 읽는 게 불가한 지금 시점에서 제대로 된 길을 찾는 건 어렵다.


“그래도 뭔가 익숙한 지형이 보이긴 하는군. 이쯤 되면 반가울 지경이야.”


나도 한때는 세상을 떠돌았었다.

딱히 의미가 있었던 건 아니고, 온 세상에 수배가 걸렸으니 한 자리에 오래 머물 수 없었던 까닭이다.


“음, 저쪽으로 가보지. 내가 아는 지형이다.”


길을 찾을 때 중요한 것은 아주 조금이라도 내가 아는 지형지물을 찾는 것이다.

그것을 기점으로 방향을 잡아서 천천히 더듬다보면 분명히 목적지에 도달한다.


“말을 두고 온 게 아쉽네요.”

“어쩔 수 없지. 그 녀석들까지 함께 올 여유는 없으니까.”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마법사도 텔레포트에 싣는 인원과 물건은 최소로 한다.

그 사소한 오차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마 그리 먼 거리는 아닐 거다.”


일반인에게도 버거운 거리였다면 애초부터 어떤 수를 써서라도 말도 함께 보냈을 것이다.

텔레포트 지점과 도시가 그리 멀지 않을 것이라 확신을 했기에 이런 몸으로 고행을 하는 것이지.


하지만 내가 예상하지 못한 것이라 한다면 이 몸의 체력일 것이다.

안 그래도 수수깡처럼 마른 몸과, 저질 체력을 가진 몸으로 하루 종일 걷는 행위가 얼마나 고된지를 몰랐다.

사실 카르멘 시절에는 걷기보단 날아다녔기에 더더욱 오차가 컸다고 본다.


전신에 마나를 돌려 피로를 회복하려고도 했었지만, 전신이 찢어질 것만 같은 고통이 느껴져서 이내 포기했다.


“으음··· 주제 넘는다 생각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니, 뭔지는 모르겠는데 해도 좋다.”


내가 그 말을 하자마자 테오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등을 내줬다.

나는 한치의 고민도 없이 그 작은 등에 올랐다.


그깟 자존심이 뭐라고.


“가자. 저쪽으로 쭉 가면 된다.”

“예.”


등에 업혀있는 동안 나는 테오의 체내 마력 흐름을 관찰했다.

내 생각이 맞다면, 테오 역시도 나와 비슷한 체질이 아닐까 생각한다.


걸어다니는 마나 덩어리라 봐도 이상하지 않은 엘린의 몸.

체내의 마나가 0에 수렴하는 테오의 몸···.

선천적인 기어스,

기울어진 저울의 균형추.

분명 테오 역시도 마력을 포기한 대가로 무언가 특별한 부분이 있을 터이다.

내가 테오에게 검을 추천한 이유도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다.

내가 마법에 강한 재능을 타고났듯, 테오는 그 반대가 아닐까? 생각했다.


‘흐음···. 근육량은 특별한 게 없는데···.’

“어음···.”

‘육체 그 자체에 마나가 융합됐다던가?’

“저기,”

‘뭘까··· 나와는 다르게 기어스가 작용하지 않은 이유가 대체 뭘까···.’

“크흠, 엘린님? 죄송합니다만, 간지럽습니다.”

“엉? 아, 미안.”


분명 트리거가 존재할 것이다.

아직은 그 조건을 알 수가 없으니 여러모로 실험이 필요하겠군.


한 번은 나의 마력으로 강제로 트리거를 작동시키는 방법도 생각했지만, 이는 너무 위험하다.


만약 죽일 생각이었다면 신경쓰지 않고 진행했겠지만 아직은 그럴 수 없다.


“테오, 취미나, 주특기 같은 게 있나?”

“으음··· 글쎄요? 마땅히 잘한다 싶은 건··· 없었습니다만···. 가사일은 배우긴 했습니다. 마나를 다룰 수 없다면 시집이라도 잘 가야 한다면서···.”

“그렇군.”


이런 평범한 사람이 영웅의 운명을 타고날 수도 있는 건가.


“뭐, 차차 개발하면 되겠지.”


슬슬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오늘 안에 도착하는 건 어려워 보인다.


“오늘은 이만 쉬도록 하지. 내려봐라.”


내가 땅에 내려와 마력을 끌어올리자 지면에서 가공된 목재가 솟아나 순식간에 건물을 만들었다.


가구도, 뭣도 없는 껍데기 뿐인 건물이지만 바람을 막기에는 충분하다.


“오늘도 수고했다. 쉬도록.”



***



다음 날, 우리는 외딴 저택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라던 사람이 사는 마을이나 도시는 아니나, 본능적으로 어딘가 익숙함을 느끼고 있었다.


“··· 여기에서 납치를 당했었군.”


거리도 딱 적절한 게 이곳이 분명하다.

모종의 이유로 본가에서 떨어져 살고 있었다면 귀족이었음에도 무방비하게 납치를 당한 이유도 설명이 된다.


“들어가지. 누가 남아있으련지는 모르겠다만.”


엉망진창인 저택 내부.

청소하지 않아 소복히 쌓인 먼지.

뭐, 그런 걸 생각했었다.


“안은 생각보다 깨끗한데?”


말 그대로 저택은 상당히 깨끗했다.

마치 누군가가 계속 사용했던 것처럼, 먼지 한 톨 쌓이지 않았다.


“흐음··· 누가 왔다갔··· 테오?”


옆에 있었을 터인 테오가 보이지 않았다. 마력 탐지를 돌려봐도 마찬가지였다.

이 공간 자체가 이상했다.


마치 이 공간과 외부와 괴리된 듯, 외부를 감지할 수가 없었다.


저벅 저벅


와중에 내부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혹시나 테오인가 하는 생각에 나 역시 그 소리를 따라 들어갔다.


짙은 잿빛 로브, 길게 늘어진 흑발,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런 실루엣이 복도 끝을 지나갔다.


“누구냐.”


모르는 놈이니 아군은 아니다.

그렇다면 적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합리적이겠지.

나는 녀석의 정체를 물음과 동시에 공격을 가했다.

적이면 좋고, 아니면 유감인 것이다.

어차피 내가 아는 놈도 아니니.


파스스


하지만 내 마법이 허공에서 산화함과 동시에 앞으로 나아가던 내 몸이 제자리에서 헛걸음을 친다.

다리는 계속 움직이는데 몸은 전혀 나아가지 않는 것이다.


[이건 너무 이르군,]


“대체 뭐 하는 녀석이냐.”


[알았다고. 재촉하지 마라.]


따악!


녀석이 손가락을 튕기자 녀석의 모습이 사라졌다.


-#!@$?


“무슨 일 있었습니까? 갑자기 사라지셔서 당황했습니다.”

“음? 뭐가?.”


저택 내부는 역시나 더러웠다.

청소하지 않아 소복히 쌓인 먼지, 박살난 문짝. 잘 보면 두 개의 흔적이 겹쳐 있는데, 아마 내가 납치된 이후 나를 찾으러 온 이들의 흔적으로 추측된다.


“일단 최대한 빨리 정리하지. 쿨럭. 호흡기 건강에 썩 좋은 환경은 아니군.”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든다.

··· 뭐, 중요한 거면 나중에 생각나겠지.


“일단 본가로 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

“흐음··· 그래도 일단 정리부터 하자고. 내 방부터, 중요해 보이는 곳 위주로. 너무 꼼꼼히 할 필요는 없고, 어질러진 물건만 정리하지.”

“알겠습니다.”


사실 지금 내가 가문으로 돌아가봤자 뭘 하겠나?

괜히 불편하기만 하지.


나는 엘린이지만, 엘린이 아니다.

어렴풋이 기억이 있다지만 그렇다 해서 그들과 같은 시간을 공유한 것도 아니다.

차라리 서로 떨어져 있는 편이 내게 편할 것이다.


“흐음, 좀 많이 넓긴 하군. 원래 4명 정도가 관리하던 저택인가?”


눈에 띄는 것은 저택 곳곳에 책장이 늘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엘린 본인도 책을 좋아하는 성격이었을까.


“후우, 청소도 꽤 고역이군. 하인들이 왜 그 돈을 받고 일하는지 알 것 같아.”

“올라가서 쉬시죠. 제가 하겠습니다.”

“아니, 아니야. 그냥 내 방만 정리하고 끝내자. 나머진 사람 불러야지. 애초에 내가 이런 거 시키려고 널 데려온 것도 아니고 말이야.”

“··· 괜찮은데.”

“됐고, 좀 쉬자. 아무 방이나 가져다 써. 필요한 거 있으면 나한테 말하고.”


먼지 청소는 나중에 마법으로 싹 날려버릴 생각이다.

뭐, 가구 한 두 개 정도가 박살날 수도 있겠지만 아무렴 어떤가.


“청소 마법이 그렇게 어렵습니까?”

“··· 어렵다 수준이면 내가 이 고생은 안 했겠지.”


사소하다 여길 수 있겠지만 이물질만 날려버리는 마법이란 상당히 어려운 편이다.


수 많은 구성 물질 중 ‘더러운 것’만 날리는 행위는 난이도로 따지면 일전에 사용한 1개의 홍영과 맞먹는다.

즉, 청소 마법 따위가 대마법에 맞먹는다는 소리다.

같은 계열로 세탁 마법과 청결 마법이 있다.


자랑 아닌 자랑이지만, 두 마법은 이미 알고 있다.

카르멘 시절, 온 세상에 수배가 되어 도시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떠돌 때가 있었을 때 두 마법이 꼭 필요했었으니까.


“뭐, 기회가 되면 찾아보도록 하지. 일단 지금은 쉬자고.”


종일 야영을 하며 떠돌다보니 피로가 몰려온다.

마법으로 피로를 지울 수도 있겠지만, 지금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다.



***





나는 사실 잠이 많은 편은 아니다.

애초에 잠을 오래 잘 수 없는 입장이었다 보는 게 더 옳겠다.

더 나아가면, ‘수면’이라는 불필요하고, 비효율적인 행위를 하는 시간 동안 다른 유익한 무언가를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쪽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생각을 바꿀 때가 온 것 같다.


“대체 얼마나 잔 거야?”


개운하다 못해 아주 시원한 수준이다.

먼지가 잔뜩 쌓여 있었던 머릿속을 깨끗하게 청소한 것만 같은 기분이다.

이렇게 머리가 가벼운 건 처음이다.


나는 침대 옆에 있던 물을 들이키고는 방에서 나왔다.


“···? 청소가 되어있군.”


나중에 한 번에 처리하려고 미뤄둔 것들이 이미 정리되어 있었다.

그것도 제법 깔끔하다.


“테오?”


저택 구석구석까지 청소를 끝마친 테오는 사용인 숙실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이럴 필요는 없었는데.”


이래저래 내 생각에서 많이 벗어난 행보이나, 마냥 나쁘지만도 않다.

뭐든 나야 좋은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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