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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GIGA 님의 서재입니다.

수명 깎는 흑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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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GIGA
작품등록일 :
2024.04.15 04:12
최근연재일 :
2024.05.21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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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474

작성
24.04.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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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살고자 하면 살 것이다

DUMMY

5화 살고자 하면 살 것이다 (3)





눈을 떠보니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었다. 탐지 마법을 유지하며 최소한의 경계는 하고 있었지만, 시간의 흐름을 잊을 정도로 푹 자버린 건 또 처음이다.


“··· 음.”


모포를 덮은 기억은 없는데 온몸을 둘둘 감싼 모포가 움직임을 방해한다.

마침 으슬으슬 오한이 돋기 시작했는데 마침 잘 됐다.


바깥을 보니, 마차를 멈춰 세우고, 불을 피우기 위해 끙끙거리는 테오가 보였다.

아무래도 그나마 멀쩡한 몸이다 보니 고된 일을 모두 도맡은 모양이다.


나는 그 모습을 한참이나 지켜보다 10분이 흐른 후에야 마차에서 나왔다.


“큭큭, 그래가지고 불이 붙겠나?”

“아···.”

“내가 해주마. 언제 되나 기다리다가 얼어 죽겠군.”


테오가 어쩔 줄 몰라 안절부절 못하고 있으니 나는 피식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어수룩해 보이나, 이 나이대면 아마 대부분이 그러하다.

애한테 무슨 능력이 있다고 많은 걸 기대겠나? 나의 가문이 했던 일을 번복할 생각은 없다.


내가 불 앞에 자리를 잡자, 생명력을 빼앗긴 이들 중 한 명이 내게 말했다.


“저기, 엘린··· 님이라고 하셨나요?”

“무슨 일이지?”

“저희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 테오에게나 해라.”


테오를 제외한 모두는 이미 생명력을 빼앗겨 간신히 타오르는 잿더미 속의 잔불과도 같은 상황이다.

내가 어떻게 해준다고 해결할 수 있는 상태도 아니니··· 그저 침묵할 뿐이다.


“테오, 이리 와라. 오늘부터 천천히 예속의 저주를 끊어낼 것이다.”


예속의 저주는 영혼의 본질에 각인되는 만큼 풀어내기가 쉽지 않다.

한 번 노예는 영원토록 노예로서 살아가게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내가 택한 방법이 더 강한 저주를 덮어씌우는 방법이었다.

두 개의 저주가 중첩되며 효력이 강해지긴 했으나, 내가 직접 부여한 술식임으로 해주 자체는 오히려 쉬워졌다.

남은 건 엉킨 실타래를 천천히 잘라내는 것 뿐이다.


“너도 알겠지만 너의 저주는 완전히 풀린 것이 아니다. 단시간 안에 풀리는 것도 아니지. 한동안은 내 곁에서 생활해야 해야 한다.”

“알고 있습니다.”

“대가라 하기도 뭐하지만, 나는 무능한 이를 데리고 다니는 취향은 없다. 너 스스로를 갈고 닦으며 매 순간 가치를 증명할 수 있도록 해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그 뒤로 일주일의 시간이 더 흘렀다.


“···.”


나를 따라왔던 이들은 테오를 제외하고 모두 죽었다.

사인은 수명으로 인한 쇄약사.

시기의 차이는 있었지만 모두는 자고 있는 중, 고통 없이 생을 마감했다.


그들이 오래 살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으나, 그들에게 직접 말해주지는 않았다.

그것이 오히려 절망을 안겨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 말했을 터다. 오래 살지 못한다고.”

“그랬지요···.”

“결과적으로, 무의미하다고, 헛수고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테오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헛수고··· 였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유가 뭐지?”

“사실··· 엘린님이 쉬고 계실 때, 제가 먼저 그들의 수명에 대해 말했습니다.”

“차라리 모르는 편이 나았을 텐데.”


음, 영 관심이 없어서 몰랐다.

하루의 대부분을 잠으로 떼워서 더더욱 관심 가질 시간이 없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괜찮다고, 마지막으로 바깥을 보고 죽을 수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좋았다고. 말했습니다.”


고작 그런 것으로도 위안이 된다는 것인가? 나는 잘 모르겠다.


“무의미한 일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서, 그게 너무나 무력하고, 화가 났습니다.”


대충 알 것 같은 느낌이다.. 결과를 알고 있음에도 막을 수 없는 무력감.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자신에 대한 실망감.


“저도··· 엘린님처럼 강해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 같은 사람에게도 불가능한 일이 있다고 하면 그때는 어떻게 할 거지?”

“그래도 시도는 해볼 것 같습니다. 그 감옥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실패할 것이 뻔해도, 또 모르는 일이니까요. 그렇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본 후에 실패한다면··· 그때는 후회도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테오는 내가 한 말로 결심했다고 말하지만, 이는 나의 생각이 아니다.

내가 의도한대로지만, 썩 좋은 기분은 아니다.


“그런가··· 후회라.”


그런다고 후회가 안 남을지는 모르겠다. 상황에 따라, 결과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마음이니까.

하지만 객관적인 결과보단, 자기만족의 의미가 크다는 것 정도는 알 것 같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테오의 머리를 흩트리고는 시신을 태웠다.

이들의 고향이 어디인지는 몰라도, 사람이 사는 곳에 묻어주고 싶다는 테오의 생각 때문이었다.


“가자. 오늘 안에 마을이 보일 거다.”


자연스럽게 테오가 먼저 마차에 올라탄 후, 내민 손을 붙잡고 마차에 올랐다.

가끔 까먹는 사실인데, 이 몸의 나이는 해봐야 14살이라는 것이다.

이게 사람을 태우는 마차면 몰라도, 짐을 나르기 위한 짐마차라는 것 때문에 14살의 병약한 몸으로 오르내리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고맙군. 슬슬 컨디션도 돌아오고 있으니, 마차 모는 걸 봐주겠다. 말에 건 최면 심도를 낮출 테니 최대한 제어해 봐.”

“알겠습니다!”



***



대략 7시간이 흐른 후, 우리는 마침내 사람이 사는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한 일은 4마리의 말 중 2마리를 팔고, 창고에서 털어온 귀금속을 팔아 자금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 근방의 지도도 팔고있나···요?”

“지도? 지도는 없는데···.”

“그럼 가장 가까운 도시가 어딘가요.”

“가장 가까운 도시면 벨라루스가 제일 가깝겠지? 서쪽으로 쭉 가면 나올 거다.”

“감사합니다.”


지금 나에게 가장 곤란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나이에 맞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카르멘’의 신분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나는 엘린이다.

카르멘 시절의 말투는 최대한 줄여야만 할 것이다.

그런 나를 보며 테오가 답지 않다는 건지, 뭔지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봤다.


“··· 뭐. 이상해?”

“아무 말도 안 했어요.”

“···.”


괜히 자존심이 상해, 빠른 걸음으로 테오를 앞질러 근처 여관으로 향했다.


‘하아, 내가 생각해도 안 어울렸지. 내가 무슨 존댓말이냐.’


왠지 얼굴이 뜨거운 느낌이다.

짜증나.



***



다음날, 우리는 곧바로 마을을 떠났다.

향하는 곳은 남서쪽, 이곳 우르스와 맞닿은 인근 국가들을 둘러볼 생각이다.


우르스라는 나라 자체는 처음 들어봤지만, 지명 자체는 나도 알고 있는 이름들이었기에 현 위치를 찾기는 쉬웠다.

내가 추측한 대로 북부에 위치한 국가였고, 이곳은 최남부에 속한다.


안타깝게도 리지에 가문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엘린이라는 이름이 북부식은 아니기에 다른 국가로 향하는 것이다.


물론 내가 우르스 출신이 아님에도 내가 기절한 시간 동안 납치를 성공할 정도면 사실상 텔레포트 말고는 방법이 없긴 하다. 만, 텔레포트도 제한은 있다.


거리 제한부터 시작해서, 인원, 중량, 부피, 횟수 제한 등등. 여러모로 성가신 마법이다.

절대로 먼 거리를 한 번에 이동하지는 않았을 것이니, 가장 가까운 국가부터 조사해 보는 것이다.


“흐음··· 그런데 너는 괜찮나?”

“무엇을 말입니까?”

“아무리 돌아갈 곳이 없다 해도, 나는 지금부터 국경을 넘을 거다. 네게는 고향을 떠나는 것일 텐데?”

“··· 아무렇지 않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괜찮습니다.”


나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갈 곳 없는 사람을 억지로 보낼 이유는 없다.


“그런 이유로 하는 말인데, 내 아래에서 종자로 살 생각이 있나? 갈 곳도 없어 보이고, 나와 맺은 맹세도 있고.”

“맹세요?”

“네 목숨을 책임지겠다고 했었다. 그리고 단언컨대 세상에서 내 곁보다 안전한 장소는 손에 꼽을 것이다.”

“대단한 자신감이네요.”

“그게 사실이니까. 원하지 않는다면 후에 떠나도 좋다, 떨어져 있어도 지원해 줄 방법은 있으니.”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 음. 어, 그래.”


한치의 고민도 없이 질러버린 대답에 약간 당황했지만 나야 좋다.

이 몸은 누구의 도움이 없다면 곤란한 상황이 꽤나 많으니까.


“그런데 현 시국에 국경을 넘는 것이 쉬울까요?”

“뭔가 알고 있나?”

“···? 모르시나요? 우르스는 현재 엘라스와 전쟁 중입니다.”

“아, 그랬··· 지. 음. 알고 있었다.”


이럴 줄 알고 일부러 테오에게는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았던 것인데.

이들에게 당연한 것이 내겐 당연하지 않다. 나는 진짜 엘린이 아니니까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리지에 가문으로 가는 건, 곧 적국으로 떠나는 것과도 같습니다만···.”

“내가 목적지를 말했던가?”

“성이 리지에니까요. 리지에라는 성은 하나 뿐입니다.”


할 말이 없다.

생각해보면 친구와 가족을 모두 잃을 만한 사건은 대체로 전쟁이긴 하다.


“전쟁··· 전쟁이라.”


결국은 또 이렇게 되는 것이다.

공공의 적이 없으니 서로에게 칼을 돌려버리는 것···.


“당연히 계획은 있다. 최선과 차선책이 있는데 뭘 먼저 듣겠나?”

“으음··· 차선책을 먼저 들어볼게요.”

“간단하다. 엘라스 옆에 있는 브리트니아로 우회하면 된다.”

“그건··· 확실하지만 오래 걸리겠네요. 최선책은 뭐죠?”

“우릴 납치한 놈들은 십중팔구 텔레포트 술식을 이용했다. 그걸 찾아서 이동하는 것이 차선책이다.”

“그건 빨리 찾는다면 시간을 단축할 수 있겠지만, 위치를 모르기에 더 오래 걸릴 수도 있고, 아예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군요.”

“맞다. 느리지만 확실한 길과, 짧지만 불확실한 길. 무엇을 택할 거냐?”


전생의 나라면 고민도 않고 이 자리에서 즉시 텔레포트를 준비해 국경을 넘을 것이다.

사실 말도, 마차도 필요 없다.

여관도 필요 없다.

하루면 도착할 수 있을테니.

하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안 된다.


“으음···”


테오는 침음을 흘리며 고민에 빠졌다. 그러고는 이내 답을 내렸다.


“최선책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호오? 왜지?”

“일단 어째서 확실한 방법을 두고 도박수가 최선인지 생각해 봤습니다.”

“그래.”

“도박수가 최선인 이유···. 그건 그 방법이 사실은 도박수가 아니기 때문··· 아닌가요?”

“정답이다. 내겐 그걸 찾을 방법이 있어.”


컨디션이 회복된 지금이라면 그냥 예지를 통해 내가 텔레포트 시설을 찾은 미래를 관측하면 된다.

과정만을 관측하기에 크게 문제도 없을 것이다.


다른 방법도 있지만, 다른 방법을 고를 거면 그냥 우회를 하는 편이 낫기에 고려도 하지 않았다.


“추론 능력이 나쁘지 않군. 마음에 들어.”

“엘린님이 불확실한 방법을 택할 성격은 아니라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 또한 능력이지. 조금만 기다려 봐라.”


하늘을 올려다보자 어떠한 흐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수 많은 선택 사이의 유일한 정답.

미래의 내가 무작정 우르스를 돌아다니며 찾아낸 정보들을 현재로 끌어온다.


“찾았다. 방향을 알려주겠다.”


그곳에서 사소한 전투가 있을 예정이지만, 별 문제는 없다.

1년이나 걸릴 이 여정을 1개월로 단축시켰으니까.


“일단 벨라루스를 경유한다. 거기서 찾아야 할 것도 있고, 하루 이틀 안에 도착할 거리도 아니군.”

“알겠습니다. 서쪽으로 쭉 가면 됐었죠?”


나는 그 동안 해야 할 일이 있다.

나의 ‘과거’를 예지한다.

과거란 이미 지나온 일인데 굳이 예지를 해야 할 의미가 있나? 싶겠으나, 이 또한 나름의 의미가 있기에 존재한다.

무엇보다 그 과거가 나의 과거가 아니기에 더욱 의미가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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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막- 악당은 악당답게 24.04.15 43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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