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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GIGA 님의 서재입니다.

수명 깎는 흑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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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GIGA
작품등록일 :
2024.04.15 04:12
최근연재일 :
2024.05.12 18:52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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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수 :
48,871

작성
24.04.15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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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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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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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새로운 삶

DUMMY

2화 새로운 삶





그래, 일단 확실하게 상황을 알 것 같다.

나는 납치당했다.

어이가 없긴 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이쑤시개처럼 가녀린 몸, 짧은 팔다리, 병자처럼 새하얀 피부, 티끌조차 느껴지지 않는 마력.


이건 나의 몸이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대마법사이자, 흑마법사인 카르멘 오르크니어의 몸이 아니다.


가장 유력한 것은 환생이다.

흐릿하긴 하지만, 이 몸의 기억이 머릿속에 남아있다.


다만 그 흐릿하다는 것이 문제다.

‘나’는 여전히 ‘카르멘’의 시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며, 새로운 몸으로 태어난 것이라면 기억 역시 자연스럽게 이어져야 마땅하지 않은가?


그래서 두 번째 가설로 기억 전이 마법을 통해 육신을 갈아탔다는 것이다.


일단 개발은 해놓고 사용한 적은 없었다. 몸을 갈아타는 수준으로 운명을 바꿀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유예 정도는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 이런 가정은 의미가 없지.”


어차피 일은 이미 벌어졌다.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라 환생을 하였던, 의도치 않게 몸을 빼앗았던 이 몸을 움직이는 것은 나다.


“일단은 힘부터 되찾고 싶은데.”


일단 힘이 있어야 이 감옥에서 나갈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며, 뭣보다 이 차디찬 감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기에 나는 눈을 감고 명상을 하며 이 몸의 상태를 관조했다.


가장 먼저 마력이 느껴지지 않던 이유를 찾아냈다.

마력을 끌어올리는 기능을 특정한 기운이 막아내고 있었다.


“아마 나이세리아였던가.”


나이세리아는 마력을 차단시키는 독초로, 보통 마법사를 무력화 시키기 위해 사용되고는 하는데, 그걸 굳이 나에게 쓴 이유를 모르겠다.


이 육체에 마법을 배운 흔적은 없다. 이 빈약한 몸으로 검술은 더더욱 말이 안 되고 말이다.


뭐튼, 약효는 대강 사흘이면 사라진다. 약효만 사라지면 바로 마나를 끌어모아 이곳을 탈출할 것이다.


이런 칙칙하고, 축축하고, 촉촉한 하수도 같은 곳에서 오래 있기에는 너무 찝찝하지 않은가.


사흘이 지났다.

바깥이 밤인지 낮인지는 몰라도 시간이 되면 최소한의 물과 빵을 가지고 내려오는 이들 덕분에 시간을 파악하기는 쉬웠다.


“자, 이제 슬슬 시간이 됐겠군.”


기대감에 심장이 마구 뛰어댄다.

내가 이 세상에 살아갈 유일한 가치이자 이유,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 내가 이 세상에서 무언가를 해냈다는 증거.

나의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때다.


나는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쉬며 천천히 마력을 운용했다.

선천적으로 존재하는 마나를 마중물로서 외부의 마나를 끌어오는 것이다.


솨아아아···


마치 컵에 물을 채우듯 서서히 마나가 차오른다.

이대로 핵, 혹은 마나 하트라 불리는 곳에 마나를 가득 채운 후, 깨부순다.


그렇게 부서진 핵의 파편과 그 속에 담긴 마력이 뒤섞인다.

마치 손상된 근육이 회복되며 더욱 단단하고, 커지듯. 노심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를 다시 반복한다.


한계까지 마나를 채우되, 한계 이상의 마나를 채우면 핵이 무너지며 마력이 폭주한다.

그렇게 폭주한 마력은 전신으로 멋대로 퍼져나가며 장기와 근육을 녹여버리니, 신중하고 천천히 과정을 밟아야 한다.


쿠르르릉···!


천천히···


콰아아아아아!!!!


음, 이게 이러면 안 되는데.


처음에는 시냇물 같았던 마나의 물살이 폭포처럼 불어나더니 이내 강둑이 터지듯 밀고 들어온다.


‘이대로면 죽겠군. 빨리 처리해야 한다.’


이런 상황은 처음인지라 좀 당황했지만 일단 폭주하는 마나를 강제로 틀어막으면 일이 더 커진다.


그러니 일단 전신의 신경을 마력 회로로 삼아 순환시킨다.


‘미치겠군. 살기 위해 목숨을 깎아내야 한다니.’


혈관을 타고 흐르는 마나가 과열되며 전신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마나가 한 번 순환을 할 때마다 체온이 훅훅 달아오른다.

아마 이대로 6번 정도 더 순환시키면 그대로 뇌가 익어버리겠지.


그러니 마나가 나의 통제에 들어오는 족족 모조리 회로와 마나 하트를 구축하는데 소모해야 한다.

조금만 엇나가도 신경이 뒤틀리고, 심장이 터져버리는 줄타기.

하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


***


“커흑, 우욱··· 웨엑.”


간신히 진정을 시켰으나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내장이 뒤틀린 것처럼 극심한 복통과 구토감이 올라온다.


근육통은 마나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육체가 마나를 받아들이지 못해 생긴 부족용이고, 구역질은 그릇이 감당하지 못할 수준의 마력을 배출하기 위한 반작용이다.


농밀한 마나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빈약한 것인지, 아니면 빈약한 육체를 타고난 대신, 강한 감응력을 얻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여간 몸에 걸려있던 마력의 금제는 풀렸다. 다만 회로를 통해 마력을 끌어올릴 때마다 상당한 피로감이 덮쳐온다.

이 역시 거부 반응의 일종이다.


“이런 몸으로 정면 승부는 썩 내키지않군.”


이대로면 탈출에도 지장이 생길 터. 그냥 힘으로 탈출할 생각이었지만 계획을 변경해야 할 것 같다.


나는 벽을 짚고 마력을 흘려보내어 흐름과 진동에 집중했다.

흘려보낸 마력이 벽과 천장을 타고 감옥 전역으로 퍼져나간다.


이런 감지법의 장점은 현재 위치한 장소가 얼마나 넓은지 짐작할 수 있으며, 마력이 적게 소모된다.


단점이라 하면 정확한 감지가 불가능하고, 온갖 잡다한 정보까지 감지되기 때문에 사실상 건물의 구조 나, 적의 수를 파악하는 정도가 고작이다.


여기까지가 일반적인 마법사에게 통용되는 범위.


조금 더 심화로 들어가면 마력을 통해 진동을 감지할 수 있다.

이를 이용해 적이 얼마나 있는지, 무엇이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사실상 나나 아이온 이외에는 불가하긴 하지만 이 진동을 통해 소리를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다.

결국 소리도 진동과 파동이니까.


“#@!$!%!@#”

“^@$@#&”


역시 아직은 잡음이 좀 많다.

풀벌레 소리, 새소리, 쓸데없는 잡담들을 모두 지우고 중요한 대화를 찾았다.


“···님, 의식을 위한 제물이 준비되었습니다.”

“잘했다. 너의 공을 높게 사, 사흘 후 의식에 너는 강한 힘과 장생의 권능을 얻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이제 물러가라.”

“아, 그런데 혹시 그 녀석은 어떻게 할까요?”

“··· 그 반푼이 말이냐. 알아서 해라. 외부로 유출 시키지만 말도록.”

“히히, 알겠습니다.”


제물이라, 아무래도 내가 전생에 남긴 술식들이 후세에 남은 모양이다.

나 이전에도 무언가를 바치는 의식은 존재했지만, 그걸 본격적으로 활성화한 것은 나니까.


“따지고 보면 마법적 후손인 셈인가? 어떤 녀석인지 궁금하군.”


다만 녀석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 상태로는 마법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라 영 내키지가 않는다.


‘나 이외에 다른 제물은··· 12명? 확실치 않군. 생명 반응이 너무 약한데.’


아마 이미 공양에 사용되고 남은 찌꺼기일 것이다.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점이 의아하긴 한데, 어차피 얼마 못 갈 것이다.


‘출입구는 하나···. 경비는 5명, 2시간마다 교대, 교대하는 동안 3분 정도 시간이 비는군,’


이래저래 큰 문제는 없다.

철창이야 부수면 그만이고, 경비도 느슨하다.


“흐음. 그래도 일단 눈으로 보는 게 낫겠지.”


이성은 조용히 탈출하라 말하고 있긴 하지만, 솔직히 궁금하다.

내 후예가 어떤지, 그리고 어떤 보물을 숨기고 있을지 말이다.


이런 녀석이라면 분명 아티펙트 한, 두 개 정도는 꿍쳐두고 있을 것이니까.


그날 저녁.

식사를 받은 후에야 나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철창의 열쇠 구멍에 손바닥을 갖다 대고 잠시 기다리자, 철창의 잠금이 풀렸다.

열쇠 구멍에 마력을 불어넣어 대략적인 형태를 파악한 후, 물을 채우고, 얼려 얼음 열쇠를 만든 것이다.


이것 외에도 방법은 많다.

마법사 앞에서 자물쇠란 그저 장식에 불과할 뿐이다.


물론, 당장 탈출할 것은 아니기에 다시 철창을 닫고, 안쪽에 환영체를 만들어뒀다.

외형만 복사한 허접한 환영이지만 아마 이거로도 충분할 것이다.


일단 이 감옥의 위, 지하 1층과 지상을 먼저 조사했다.

창고를 뒤지고, 꾸벅꾸벅 조는 경비를 피해 지상으로 나가보기도 했다.


지상은 드넓은 평원에 납치범들이 막사로 거점을 만들어 지내고 있었다.


그 숫자가 꽤 되기에 대놓고 나가면 일이 귀찮아 질 것이 뻔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녀석들에게 들키는 불가피한 일이었는데, 바로 이곳이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평원이라는 점이다.


이곳을 나가려면 말과 식량을 훔쳐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이목을 끄는 것은 불가피하다.


쌀쌀한 날씨에 짧은 풀과 꽃이 핀 것을 보아 이곳은 북부 대초원의 어딘가라고 생각된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도시나 산맥만 발견하면 그 뒤로 길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좋아, 일단 돌아갈까.’


아티펙트는 없었지만, 그래도 제법 돈이 될 법한 물건은 있었기에 수확이 아예 없다고는 못하겠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나는 다른 감옥을 들러 다른 제물들의 상태를 봤다.


대부분 생기를 잃고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으며, 몇몇은 정욕의 배출구로 사용되었는지 나체로 죽어있었다.


내가 흑마법의 종주라곤 하지만 썩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그리고 마지막 제물은 마력 감지에 잡히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아 죽은 줄 알았지만, 자세히 보니 살아있었다.


그것도 제법 멀쩡하게. 의식에 사용되지도 않았고, 흉터도 없이 말끔했다.


‘주술의 흔적이 있군. 주종 계약, 노예인가?’


정신적인 금제가 걸린 것인지 텅 빈 두 눈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흐음···.”


여러모로 많은 운명이 엮여있는 녀석이다. 이런 녀석은 보통 시작부터 끝까지 기구한 삶을 살다 고통스럽게 죽거나, 영웅이 되거나 하는 운명을 타고난다.


녀석이 이곳에 있는 것만 봐도 썩 좋은 삶을 살 운명은 아니다.

저런 운명은 보통 인연이 닿은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뻗어나가며 불행을 퍼트리는 불길한 운명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전생에 아버지는 내 운명을 읽고 어릴 때 제거할지 논의했다고 들었다.

그만큼 강한 운명인 것이다.


어쩌면 고통받으며 살아갈 바에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르지.


“··· 재밌을지도.”


녀석이 살아남을 운명이라면 어떻게든 살 것이다.

그런 것이 운명이니까.

정말 영웅의 운명을 타고났다면 홀로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원래라면 그렇게 생각하며 방치했겠지만, 이번에는 조금 개입을 해볼까 생각 중이다.

나는 카르멘이나 동시에 카르멘이 아니다.

카르멘처럼 살 수도 있겠지만 그건 썩 내키지 않는다.

실패한 생... 어쩌면 틀렸을지도 모르는 삶이 바로 카르멘의 삶이었다.


나는 틀린 답을 반복하는 머저리가 아니다.

틀렸다면 다른 대답을 찾아야겠지.

그 대답을 찾는 과정에서 이 아이는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상황도 썩 비슷하지 않은가?


고통과 좌절을 앞두고, 나의 말대로 차라리 고통 없이 죽는 편을 택할지, 아니면 아이온의 말대로 그럼에도 살아가는 의지를 보일지.


조금은, 기대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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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리지에 24.05.11 4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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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수명을 바치다 24.04.27 18 2 11쪽
5 살고자 하면 살 것이다 24.04.22 19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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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삶 24.04.15 33 1 11쪽
1 서막- 악당은 악당답게 24.04.15 40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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