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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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다름 없이 한산한 이 곳 주말
퀘퀘한 냄새가 나고 미세먼지 농도를 잰다면 긴급재난문자가 날라 올 수치가 나올 것이다.
지금 이 곳 저 멀리서 한 여성이 걸어온다.
긴 생머리, 짙은 갈색의 눈동자, 이슬만 먹을 것 같은 여린 피부,
꾸민 듯 하지만 자연스레 헝클어진 옷 매무새
보는 것 만으로도 나를 취하게 만들 것 같은 여자.
맞다 학생이다. 불금을 즐기고 이슬이 덜 깬 상태로 나온 학생
이 곳 경력 1년 차,
이제 나도 학생과 디자이너, 아줌마 정도는 구분할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다.
“저 삼촌, 이번에 신상 디자인 한 개 잡을라고 하는데 샘플 좀 살께요.
이 원단 레드1야드 하고 저 원단 핑크 1야드, 그리고 저 쪽 원단은 새로 나온 건가요?
아이보리 1야드만 주세요”
입을 열자 새벽까지 이슬을 잔뜩 품고 있던 향기가 한평반 남짓한 이 곳을 점령한다.
“......”
이슬향기에 차마 입을 열고 싶지 않아 못들은 척으로 일관한다.
“저 삼촌 안 들리세요? 이 원단 저 원단 저 쪽 원단 1야드씩 달라고요”
이슬의 세례를 받은 입이라 그런지 점차 공격적인 말투로 변해간다.
“소매 안 해요”
더 이상 응대하기 귀찮아 대놓고 거부를 표시했다.
“저 디자이너 라니까요. 신상 잡을라고 나왔다고요”
취해서 일까? 저렇게 눈빛 하나 안 변하고 말하는 학생은 오랜만이다.
“어디에서 근무하세요?”
“XX패션 디자인 팀에서 나왔어요”
당돌하다. 요즘 학생들은 거짓말 하는데 거리낌이 없는 듯 하다.
이슬의 영향인지 자신감까지 충만하다.
‘진짠가?’
순간 어리둥절한 나의 표정을 보며 학생은 이미 승리의 기쁨을 만끽한 표정이다.
“네···”
하지만 난 알고 있다. 학생이다.
‘너 뭐냐?’ 하는 눈빛으로 날 쳐다본다. 이럴 땐 무언가 말을 해야 이 분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
“소매 안 해요”
그래 이제 저런 건 씨알도 안 먹힌다.
얼마 전 왔던 학생은 누구 것인지도 모를 명함까지 주고 갔다.
보통 토요일엔 매장 문은 열지만 사장님들은 나오지 않는다.
거래처들이 쉬기 때문에 나와야 만날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날 나오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패션계열에 다니는 학생 아니면,
집에서 취미 생활을 하는 아줌마들이다.
사장님들이 나오지 않아 저런 소매를 하게 되면 대부분 매장 직원들이 용돈으로 갖는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 곳 시장에 내려오는 아름다운 전통? 관습? 뭐 그렇다.
하지만 이 곳 시장 대부분은 소매를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귀찮다.
3천원 4천원 벌라고 그 무거운 원단 더미를 내려서 1야드 자르고 다시 그걸 제 자리에 올리는 일이 훨씬 귀찮기 때문이다.
퀘퀘한 냄새가 나고 미세먼지 농도를 잰다면 긴급재난문자가 날라 올 이 곳.
지독하리만치 사람냄새 풀풀 풀리는 이 곳은 바로 원단시장. 나의 직장이다.
“이번에 똥팔이형 결혼할 때 거기 사장님이 집이랑 차랑 다 사주셨대”
“거기 쭌이형은 저녁에 시장 다니기 힘들다고 오토바이 한대만 사달라고 했다가
거기 사장님이 위험하다고 차 사줬단다”
“우리 부장 형은 이번에 샘플 만든다고 일본에서 자켓이랑 천만 원 어치 사왔는데,
사장님이 원단 샘플 만들 때 주머니만 조금 있음 된다고 그냥 다 입으라 하시더라”
흙수저들만 모여 있는 이 곳에도 흙수저를 도금해서 새롭게 성공한 사람들이 있다.
물론 지독하리만치 사람냄새가 나는 이 곳에서
도금을 하는 방법은 소위 말하는 고시패스, 또또당첨, 창업이 아니다.
성실히 일하면서 좋은 사장님을 만나고 사람냄새를 넘어 가족냄새를 풍기면 인정을 받게 되고
그 인정은 결국 흙에 금칠을 하게 만들어준다.
이 곳의 사장님들 대부분이 등짐부터 지고 올라와서 사람이 걸릴 수 있는 모든 근육의 근육통을 다 경험해보고 자수성가 하신 분들이라 성실함을 진짜 중요하게 생각하시기 때문이다.
이런 원단시장에 나는 1년이라는 사람냄새를 풍기기엔 조금은 빠른 시간에 나름 흙에 금칠 할 만한 차례에 도달했다.
하지만, 그 일 때문에 기회가 사라지고 말았다.
며칠 전 그 사건으로 인해서.
- 본문 중 -
지금부터 흙에 금칠 할 뻔한··· 나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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