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돈까스 한입 하실래예

삼류배우가 마법천재 황자님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이기준
그림/삽화
연근조림
작품등록일 :
2023.05.19 06:32
최근연재일 :
2023.08.10 08:57
연재수 :
64 회
조회수 :
164,008
추천수 :
8,549
글자수 :
329,698

작성
23.06.06 20:00
조회
3,192
추천
149
글자
11쪽

이기적인 거짓말 (5)

DUMMY

"라나를 불러다오."


나는 즉각 라나를 불러들였다. 그녀는 평소와 달리 가죽으로 만든 갑옷을 입은 채로 나타났다. 한창 검술을 연마하던 도중에 온 것인지, 드러난 살갗에 땀이 흥건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전략이 나왔다."

"필승의 전략입니까? 기회는 한 번 뿐입니다."

"필승이야."


라나의 눈이 바늘처럼 가늘어졌다.


"그거 아십니까? 저는 가끔 황자님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하,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나는 코웃음으로 얼버무렸다.


"기억을 잃은 사람이 더 똑똑해졌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요."

"믿기지가 않는군. 이게 똑똑해진거라면 이전의 나는 얼마나 멍청했다는 거냐?"

"인생을 낭비하는 일 외에는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분이셨죠. 음······그 재주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쓰이기 시작했다면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군요."


라나는 어떻게든 납득한 것 같다. 적당히 속아주면 좋을 텐데, 쉽지 않은 아이란 말이지.


"쓸데없는 이야기는 그만하고. 지난번에 유셉 형님이 자히라의 말이 거짓말인지 아닌지 구별할 방법이 있다던데, 그거에 대해서나 말해 봐."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는 방법입니까······다양하긴 합니다만, 황태자 전하가 말씀하신 건 진실의 도마뱀일 것 같군요."

"무슨 도마뱀?"

"진실의 도마뱀입니다. 설마 이런 것도 기억 못하십니까?"

"낳아준 어머니 이름도 기억이 안 나는데 도마뱀 따위 알 바 아니지."


그녀가 한심스럽기 그지없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이름 그대로 거짓말에 반응하는 도마뱀입니다. 누군가가 거짓말을 하면 얼굴을 향해 독을 뿜어내죠."

"도마뱀이 대체 왜?"


라나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푹 내쉬더니, 국어책을 읽듯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설명을 시작했다.


"'모든 마법사는 훌륭한 연기자다'라는 말을 들어보셨겠지요. 항간에는 이런 말도 있습니다. '모든 마법사는 훌륭한 거짓말쟁이다.' 제국은 오래 전부터 거짓말을 분별해내는 도구에 대한 열망이 컸습니다. 그걸 해결한 게 백년 전의 대마법사인 수피안 알레크 사이드입니다. 수피안은 사막에서 가장 흔해빠진 생물인 도마뱀에게 한 가지 새로운 법칙을 부여했죠. '도마뱀은 거짓말을 싫어한다'라는."


오, 마법을 그런 식으로 써먹을 수도 있구나.


"물론 이게 생물인지라 백퍼센트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단순히 눈앞의 인간이 위협적으로 보였다던가, 배가 고프다는 이유로 독을 뿜어내기도 하죠. 숙련된 마법사는 법칙을 뒤틀어서 마법의 효력을 무효화시켜버리기도 합니다. 어쨌든 마법사가 아닌 자들 사이에서는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수단입니다."

"그럼 그 도마뱀을 한 마리 준비해. 게임에 활용해볼 수 있을 것 같으니."

"알겠습니다."


라나가 도마뱀을 가지러 떠난 동안 나도 나름대로 채비를 갖췄다. 느베타를 위시한 시녀 군단이 들어와 황족의 품격에 어울리는 차림으로 나를 단장했다. 느베타는 단호한 지시와 손짓을 섞어가며, 어마어마한 카리스마로 현장을 지휘했다. 조금 전까지 내 앞에서 바들바들 떨던 여자와 동일인물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라나는 방을 나간지 십 분도 안 되어 돌아왔다. 그녀의 손에는 작고 앙증맞은 도마뱀이 든 우리가 들려있었다.


"인사하시죠. '낫루'라고 합니다."

"설마 그게 그놈 이름이냐."

"예. 경비대장이 키우는 놈입니다. 용무가 끝나면 꼭 돌려줘야 한다고 사정하더군요."


이 나라 사람들은 개나 고양이 대신 파충류를 기르나보군. 저 꼬리 끝에 묶어둔 리본은 경비대장의 취향인가보다.


"당연히 돌려줘야지. 내가 도적놈도 아니고."

"면회 허가도 떨어졌습니다. 가시죠."


라나가 도마뱀 우리를 달랑거리며 앞장을 섰다. 나는 라나와 함께 현관을 빠져나왔다가 뜻밖의 존재와 마주쳤다.


"······라나."


그녀는 내 반응을 짐작했다는 듯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거대한 전갈이 별궁 앞마당에 웅크리고 있었다. 전갈이 사람을 태우고 돌아다니는 건 본 적이 있지만, 그때는 거리가 멀어서 실감이 나지 않았다. 가까이서 접한 전갈은 그야말로 엄청난 위용을 자랑했다. 몸집은 웬만한 주택을 방불케할만큼 거대했고, 외피는 너무 두꺼워서 대포로 쏴도 기스조차 못 낼 것만 같았다.


아무래도 이 나라는 면허 발급기준이 대단히 빡빡해야 할 것 같다. 이놈을 화나게 하면 감당이 안 되겠는데?


"211년식 엠페러 스팅어입니다. 황비 전하께서 두고 가신 선물이죠. 제 봉급으로는 평생 모아봤자 어림없을 놈입니다."


나는 전갈을 새삼스레 올려다보았다.


그러니까 이게 지난 세계로 치면 슈퍼카라는 거지? 나는 성년이 되자마자 슈퍼카를 선물받은 운 좋은 놈이고.


"고삐는 네가 잡아라."

"분부대로."


라나는 조금 들뜬 것 같았다. 평소에 워낙 표정이 없는 녀석이라 티가 났다. 그녀는 날렵한 동작으로 뛰어올라 마부석을 차지했다. 나는 등딱지의 우둘투둘한 돌기를 잡고 암벽을 오르듯 조심스레 자리를 찾아갔다.


"하아!"


그녀가 고삐를 당기며 날카롭게 외쳤다. 전갈은 거대한 체절을 꿈틀거리며, 도랑 같은 자국을 남기면서, 모래로 이루어진 바다를 항해하듯 유유히 나아갔다.


이래서 길바닥에 깔린 게 모래뿐이었구나. 다들 전갈을 타고 다니니 이 나라는 모래가 포장도로나 마찬가지였던 거다.


궁궐의 담을 빠져나오는 데에는 약 십여 분이 걸렸다. 우리는 이제 민가의 사이를 질주하고 있었다. 라나가 신이 난 이유는 알만했다. 간혹 마주치는 다른 전갈들은 내 엠퍼러 스팅어에 비하면 가재처럼 보일 정도로 볼품없었다.


"저길 봐!"

"엠페러다!"


행인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소리쳤다. 그들의 반응은 '저 멋진 전갈을 봐!'가 아니라 '위험하니까 숨어!'에 더 가까웠다.

당연하겠지. 이런 놈에 치이면 견적도 안 나올 텐데.


삼십분여를 달린 끝에 우린 마침내 목표했던 장소에 도착했다. 감옥은 성벽과 이어진 기다란 건물이었는데, 날 맞이하기 위해 간수들이 마당에 잔뜩 나와있었다.


라나가 전갈을 적당한 곳에 세우자, 나는 등자를 딛지 않고, 부주의해 보일 정도로 날렵하게 바닥으로 점프했다. 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갈을 처음 타보는 놈이라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거든.


"샤말 이븐 샤리프 황자 전하를 뵙습니다!"


팔자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중년의 남성이 앞으로 나서며 허리를 깊이 숙였다.


"감옥장 햄단 빈 마크툼이라고 합니다. 전하를 모시게 되어 지극한 광영이옵니다."

"햄단 경이었군. 만나서 반갑다."

"경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햄단이라고 불러주십시오."


그는 두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정말로 면구스럽다는 듯한 제스처였다.


"햄단, 내가 여기 온 이유는 알고 있겠지?"

"죄수 63호에게 긴한 용무가 있으시다고만 들었습니다."

"그래, 그것만 알면 된다. 지체할 시간이 없으니 앞장 서도록."


햄단은 우리를 커다란 문 앞으로 데려간 후, 문고리에 손을 대며 무어라 웅얼거렸다. 잠시 뒤 문짝이 서서히 벌어지며 안쪽에서부터 퀴퀴한 공기가 새어나왔다.


곳곳에서 법칙의 뒤틀림이 느껴진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하게 뻗어있는 복도지만, 만약 탈옥을 시도한다면 온갖 마법들이 죄수를 덮쳐오겠지.

우리는 계단을 몇 차례 오르내린 끝에 카심의 감방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사형수 팔자가 이렇게 좋아도 되냐는 것이었다.

그의 감방은 오면서 봤던 다른 죄수들의 감방보다 확연히 좋았다. 쾌적한 넓이에, 깔끔한 인테리어에, 무엇보다도 죄수가 침대에 앉아서 독서를 하는 중이었다. 호젓하게 술잔을 기울이며.


"전하, 이것을 설명 드리자면···."


햄단이 당황해하며 입을 열었다. 카심이 그의 말을 자르고 끼어들었다.


"게임에서 졌지."


카심은 유약해 보일 정도로 깡마른, 지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중년의 사내였다. 그는 심지어 안경까지 꼈다. 아무리 초인적인 능력이 존재하는 세계라지만, 이런 선비같은 사내가 어떻게 제국 최강의 전사라는 건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카심이 읽던 책을 내려놓으며 느긋하게 깍지를 꼈다.


"감옥장 나리께서 팔자를 고쳐보려고 내 고유마법을 탐냈거든. 결과는 보는 대로일 테고."

"63호, 일어나서 예를 갖춰라! 황자 전하의 안전이다!"


햄단이 이를 바득바득 갈며 말했다. 카심은 눈도 까딱하지 않고 대꾸했다.


"알아. 기저귀를 찰 때부터 봤던 놈이야."

"가, 감히 그 무슨 망발을!"

"햄단, 너는 입구로 돌아가서 날 기다려라."

"하오나···."

"앞으로 이곳에서 벌어질 모든 일에 내가 책임을 진다. 돌아가."

"······알겠습니다."


햄단이 마지못해 걸음을 떼었다. 그가 떠나가자, 카심이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거 원, 샤리프의 꼬마 도련님이 이 누추한 곳까지 납실 줄이야."


그가 싱긋 웃었다.


"원하는 건 고유마법이겠지, 안 그래? 후후······여기까지 올 정도면 너도 꽤 절박했겠지만, 안타깝게도 타이밍이 좋지 않아. 내 신세가 신세인지라 세상에 미련이 많지가 않거든. 멍청한 감옥장을 벗겨먹은 덕에 지내는데 불편함이 없기도 하고."


그래 보인다. 죄수가 아니라 피서라도 나온 학자 같은 모습이다.


"그래서, 게임을 안 하겠다는 거냐?"

"하지. 이틀 후면 세상에서 사라질 사람의 흥미를 끌만한 게 있다면야."

"있다."


나는 극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 잠시 뜸을 들였다.


"시간."


카심의 얼굴이 뻣뻣하게 굳었다.


"······말단 황자 주제에 어떻게 내게 시간을 벌어준다는 말이냐? 만약 탈옥같은 소리를 할 거라면 그냥 가라. 얼마 남지 않은 시간마저 뺏지 말고."

"내가 지면 타자립을 걸어주마. 너도 규칙은 알겠지. 걸어온 도전에는 반드시 응해야 한다는 걸."


카심은 신중한 표정이 되더니,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반역자와 황자의 타자립이라니, 흥행은 확실하겠군. 하지만 삼상회에서 승인을 해주지 않을 거다. 거기엔 인생에 낙이라고는 회의를 하는 것밖에 모르는 고리타분한 늙은이들밖에 없으니까."

"분명 그렇겠지."


나는 그에게 씨익 웃어주었다.


"그래도 회의를 하는 동안에는 살아있을 수 있잖아?"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삼류배우가 마법천재 황자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6 이기적인 거짓말 (7) +12 23.06.08 3,238 169 9쪽
15 이기적인 거짓말 (6) +9 23.06.07 3,140 173 9쪽
» 이기적인 거짓말 (5) +3 23.06.06 3,193 149 11쪽
13 이기적인 거짓말 (4) +5 23.06.05 3,294 151 11쪽
12 이기적인 거짓말 (3) +12 23.06.03 3,533 165 11쪽
11 이기적인 거짓말 (2) +6 23.06.02 3,828 167 13쪽
10 이기적인 거짓말 (1) +3 23.06.01 4,329 175 12쪽
9 첫 주연 (8) +15 23.05.31 4,471 209 12쪽
8 첫 주연 (7) +13 23.05.30 4,476 200 10쪽
7 첫 주연 (6) +7 23.05.29 4,642 194 10쪽
6 첫 주연 (5) +6 23.05.27 4,838 202 13쪽
5 첫 주연 (4) +5 23.05.26 5,084 196 13쪽
4 첫 주연 (3) +10 23.05.25 5,568 210 10쪽
3 첫 주연 (2) +10 23.05.24 6,287 209 9쪽
2 첫 주연 (1) +8 23.05.23 7,841 219 11쪽
1 못생겨서 미안합니다 (0) +11 23.05.22 9,368 198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