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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까스 한입 하실래예

삼류배우가 마법천재 황자님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이기준
그림/삽화
연근조림
작품등록일 :
2023.05.19 06:32
최근연재일 :
2023.08.10 08:57
연재수 :
6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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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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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49
글자수 :
329,698

작성
23.06.02 20:00
조회
3,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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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글자
13쪽

이기적인 거짓말 (2)

DUMMY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침을 꿀꺽 삼켰다. 마침 마법의 힘을 피부로 느껴본 직후라, 더 강한 마법에 대한 욕구가 절실하던 참이다. 그런데 범용마법도 아니고 고유마법을 공짜로 주겠다니, 이건 로또에 당첨된 거 아닌가?


잠깐, 무슨 마법을 달라고 해야하는 거람. 생각해보니 나는 알고 있는 마법이 없다. 아는 게 없으니 소원을 빌지도 못한다.


생각해라, 우진아. 아는 게 없는데도 아는 것처럼 보일 방법을.


"부끄럽습니다만, 제 짧은 견문으로는 도저히 적당한 마법을 떠올릴 수가 없습니다. 더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제가 떠올릴 수 있는 마법들로는 형님들께 견줄 수 없다는 생각만 듭니다."


그냥 솔직해지자. 상대는 자타공인 최강의 마법사다. 어설프게 아는 척 했다가는 정체를 들켜서 제령당할지도 모른다고.


"흐음······."


황제는 말이 없었다. 관자놀이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표정을 볼 수가 없으니 내가 말을 잘 한 것인지 못한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그래,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군. 내게 마법을 배워서는 네 형들의 뒤만 쫒는 격이겠지."


황제는 적당한 마법을 떠올릴 수 없다는 내 말을 똑같은 마법으로는 형님들께 이기기 어렵다는 말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그의 반응이 나쁜 것 같지 않아서, 나는 오해에 적극적으로 편승하기로 했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샤리프의 것이 아닌 고유마법은 너절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쓸만한 것들은 대가문들이 쥐고 놓아 주질 않으니. 어디 보자, 대가문도 아니고, 삼상회도 아니라면······."


황제가 생각에 잠겼다. 나는 먹다 만 디저트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렇군, 카심을 네게 주면 되겠군."


카심? 사람 이름 같긴 한데.


"낯익은 이름이지 않느냐?"

"그 카심 말씀이시군요."

"그래, 너도 그 뻔뻔한 낯짝을 기억할 게다. 그놈이 만들어낸 고유마법의 위력은 최소 3급으로 추정되고 있다. 네가 경연때 쓴 잡기술과는 비교를 불허하지. 유셉이 주로 쓰는 마법과 상성도 좋다. 다만 그놈에게서 마법을 얻어내는 건 쉽지 않을 게다. 놈의 마법을 빼내기 위해 안 써본 방법이 없지만, 모두 실패하고 말았지."


황제는 마법을 빼낸다는 표현을 썼다. 고유마법은 역시 남에게서 훔쳐와야 하나보다.


"아랫것들에게 네가 간다고 말해두마. 조언을 하자면 수단을 가리지 말거라. 실패하는 것도, 성공하는 것도 온전히 네 몫이니."

"명심하겠습니다."

"아, 그렇지."


황제가 손가락을 튕겼다.


"나흘 후 놈의 사형이 집행되니 서두르는 게 좋을 게다."


사형수였어?


마법을 가르쳐달라고 했더니 사형수를 떠넘길 줄이야. 과연 유셉을 키워낸 인간이 할법한 발상이다.


"······성은에 감사드립니다."


나는 그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림자를 쳐다보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며.



**



별궁으로 돌아왔을 때는 날이 완전히 저물어있었다. 나는 내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풀썩 엎어졌다. 고작 하루 머물렀을 뿐인데 마치 고향에 돌아온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녀들이 엎어진 내게 몰려와 옷을 벗기고 수발을 들었다. 또래 여자들의 손에 모든 걸 맡길 만큼 낯짝이 두껍진 않았지만, 황태자에게 얻어맞은 여파가 남아있는 탓에 마음처럼 몸뚱이가 따라주지 않았다.


매니저 소녀는 돌아오는 내내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녀는 하녀들이 방을 빠져나가는 걸 확인한 후에야 입을 열었다.


"폐하께서 뭘 약속하셨습니까?"


역시 눈치가 빠르다니까.


"고유마법을 가르쳐달라고 했더니 카심을 소개해주시던데."

"카심이 설마 그 카심은 아니겠지요."

"어떤 카심?"

"카심 아지즈 자와드. 폐하의 아사라 바탈 말입니다."


응?


아, 착각했구나.


"아니, 이쪽은 나흘 후에 처형되는 사형수라고 하더군."

"그렇다면 제가 아는 카심이 틀림없군요. 그는 현재 폐하를 암살하려 든 죄로 감옥에 수감되어 있습니다."

"뭐?"


나는 놀라서 상체를 일으켰다가, 허리가 끊어지는 듯한 통증에 곡소리를 냈다.


"황자님께서는 처음 들어보시나 봅니다."


소녀의 눈에 의심이 가득 서려있다. 나는 궁색한 변명을 주워 섬겼다.


"그 카심이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 생각해보면 이상하기만 할 뿐이라······하하."

"'그 카심'이 라나 아미르 님의 아들이라는 건 알고 계시겠죠."

"당연하지."

"황자님."


소녀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덫에 걸려든 토끼를 보는 듯한 표정이다.


"왜?"

"라나 아미르는 접니다."

"······."


덫에 걸린 게 맞네.


생각해보면 그녀가 여태 눈치를 못 챘다는 게 더 말이 안 되긴 해. 하루 종일 붙어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는데.


자, 그러면 어떤 변명을 가져와야 할까? 이런 상황을 상정하고 떠올린 대응법이 몇 가지 있긴 한데, 첫째는 벌컥 화를 내면서 뭉개버리는 것이다. 두 번째는 드라마 주인공처럼 기억상실을 밀어붙이는 것이고.

첫 번째 방법은 그 순간만을 모면하는 미봉책이라, 두 번째에 걸어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낙후된 시대의 인간들이 기억상실이라는 개념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지?


"라나, 아미르. 그런 이름이었군."


자연스러운 표정 연기가 중요하다. 원래 내 것이었던 것을 되찾았기 때문에 전혀 거리낄 게 없다는 듯한 표정.


"기억이 불완전하신 겁니까?"

"그렇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

"역시, 줄곧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라나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그때 황자님의 방에서 발견된 케말라 병 말입니다. 치사량을 한참 넘어선 것이었거든요. 그만한 독을 마시고도 멀쩡하다는 건 말이 안 되죠."

"그날 이전의 기억이 날아간 걸 보면 그 케말라가 문제가 된 게 맞을 거다. 알려져서 좋을 게 없는 이야기라 가급적 숨기고 싶었는데, 역시 널 속이는 건 무리였던 모양이군."

"예, 티가 많이 났습니다. 폐하를 만나볼 때 주의해야 할 점들을 물어보셨을 때부터요."


그녀가 시니컬한 투로 덧붙였다.


"참고로 황자님은 기억을 잃은 지금이 훨씬 나으십니다."

"······그러냐."


그녀는 오리지날 샤말을 무척 싫어했던 것 같다. 그때 뭐라고 했더라? 내가 완전히 망가져서 짓밟을 가치도 없다고 하지 않았나?

어물쩍 넘어가긴 했지만, 앞으로도 라나를 대할 때는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내게 다시 '짓밟을 가치'라는 게 생긴다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니.


"본론으로 돌아가죠. 카심이 왜 폐하를 암살하려 들었는지 말입니다. 카심은 아사라 바탈로서 폐하의 존안을 바라보는 게 허용된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는 자연스레 폐하의 고유마법 몇 가지를 훔쳐 배우게 되었고, 어느 시점에서부터 자신이 폐하보다 더 강하다고 여기게 되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래서 반역을 꾀했습니다만, 자신이 관찰해온 폐하의 모습은 단지 그를 속이기 위한 연기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깨닫게 되었죠."


자기 측근을 못 믿어서 수십 년 동안이나 연기를 해오다니, 제정신이 아니구만.


"다른 설도 있습니다. 카심이 고통받는 백성들을 위해 구국의 결단을 내렸다는 이야기입니다. 당사자가 감옥에 갇혀 있으니 이런저런 얘기만 분분하죠. 다만···."

"다만?"

"카심은 제국 최강이라고 일컬어지는 전사입니다. 그의 의지를 꺾고 마법을 얻어내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제국 최강의 전사라니. 하긴, 아무나 황제의 아사라 바탈을 하겠어?

이쯤이면 황제가 날 엿먹이기 위해 꾸민 일이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든다. 본인조차 마법을 캐내는 걸 실패했다며. 갓 성년이 된 풋내기에게 대체 뭘 기대하는 거냐.


"하지만 성공한다면 어떻게 되지? 만약 내가 카심의 마법을 얻어낸다면?"

"풍뎅이에서 도마뱀 정도로 격이 오르시겠죠. 제국 최강의 전사의 기술을 얻어내셨으니까요."


라나가 어깨를 으쓱였다.


풍뎅이에서 도마뱀이라. 종이 아예 바뀐다는 건가. 그렇다면 물러서면 안 되겠네.

다만 '백성들을 위한 구국의 결단' 어쩌구가 신경이 조금 쓰인다. 아무리 생각해도 황제가 성군은 아니었던 것 같단 말이지.

만약 황제가 내 짐작대로 폭군이고, 카심은 독립투사쯤 되는 포지션이라면, 그런 인물을 협박해서 마법을 뜯어내려는 나는 뭐냐.


······잉글랜드의 총독? 조선총독부 통감?


뭐, 진실은 조사를 해보면 알겠지.



**



다음날 아침, 나는 별궁의 빈 방에 카심 포섭을 위한 작전본부를 차렸다. 작전본부라고 하니까 거창하게 들리는데, 그냥 텅 빈 방에 책상이며 의자며 갖다둔 다음 큼지막한 상황판을 세워둔 게 전부다.


그리고 많은 먹을 것들. 인정하고 싶지는 않은데, 제국이 식문화만큼은 대한민국보다 훨씬 나았다.

형형색색의 생과일 주스에, 종류를 세기도 힘든 다양한 전채에. 허구헌날 닭이나 돼지, 소만 먹었던 과거에 비해 육류의 종류도 다양하다.

물론 대한민국에서 내 사회적 지위는 수드라 정도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황족이 된 지금과 식단을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건 무리일지도 모르겠다.


"······정말로 잘 드시는군요."


라나가 날 보며 몇 번째인지 모를 감상을 남겼다. 나는 고기 경단을 입 안에 털어 넣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너도 먹어. 먹어야 힘을 내지."

"저도 먹고는 있습니다."

"그게 먹는 거냐?"


라나는 산해진미가 가득한 수라상 사이에서 후식으로 나온 빨갛고 동그란 과일만 쏙쏙 집어먹는 중이었다. 그녀는 디저트용 과일을 모조리 결딴내버린 후에야 내게 본인이 준비한 자료를 가져왔다.


"저것들이 다 뭐냐?"

"카심의 신상 정보와 재판 기록입니다."


자료의 양이 심상치 않았다. 사과박스 기준으로 네 개는 가득 채울만한 분량이다.


"그거 오늘 내로 다 읽을 수 있기는 한가? 늦어도 내일 저녁까진 계획을 세워야 할 텐데."

"황자님도 아시겠지만, 마법사는 모두 거짓말쟁이입니다. 기본적으로 연기를 할 줄 알죠. 그러니 준비를 철저히 해서 나쁠 게 없습니다."

"핵심만 최대한 추려내 봐. 재판 기록은 카심이 변론한 부분만 뽑아내고."


나는 경단을 먹는 동시에 그녀에게서 건네받은 서류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어디 보자······."


본명은 카심 아지즈 자와드.


나이는 마흔 여섯.


나이가 꽤 있네. 하긴, 제국 최강이라는 명성을 단기간에 얻어내진 못했겠지.


주특기는 완력으로 찍어 누르는 강 일변도의 검술과 본인이 창안한 고유마법인 '카심의 이기적인 도발'.


이 '카심의 이기적인 도발'이라는 게 황제가 훔치려고 한 고유마법인가보다. 문서에서는 마법의 효과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었다.


- 카심의 이기적인 도발은 이름 그대로 상대에게 편파적인 법칙을 강요하는 강력한 고유마법이다. 추정 등급은 3급이나, 실측된 사례가 거의 없어 실제 등급은 더 높을 수도 있다. 이 마법은 상대가 나를 미워하는만큼 나의 신체능력을 강화한다. 이론적으로는 감정의 크기에 따라 무한히 강해질 수도 있겠지만, 마법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는 창안자가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확실하지 않으며···


상대가 나를 미워하는 만큼 강해진다니. '암마르의 해묵은 원한'은 내가 상대를 미워하는 만큼 강해지는데, 둘 사이에 무슨 상관관계가 있나?


쓰기 편한 건 '암마르의 해묵은 원한'이겠다. 나만 감정을 잡으면 되잖아. 카심의 고유마법은 상대가 나를 미워해야만 하기 때문에, 미움을 사기 위한 사전작업이 필요할 것 같다.


아닌가?


남의 미움을 사는 거, 의외로 어렵지 않을지도.


나는 경단을 빠른 속도로 비워내며 문서를 계속 해치워 나갔다. 그러던 와중에 바깥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나는 맞은편에서 음료를 홀짝이는 중인 라나에게 물었다.


"누가 오나?"

"그럴 리가 없습니다. 황자님이 지시하신대로 모든 스케줄을 취소해뒀으니까요. 설령 누가 방문하더라도 이곳으로는 안내하지 말 것을 지시해뒀습니다."


그러나 소음은 빠르게 커져만 갔다. 여인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드레스 자락이 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죄송합니다. 생각해보니 스케줄 없이 방문 가능하신 분이 딱 한 분 계십니다."

"누군데?"

"황비 전하이십 - "

"연기 팁!"


나는 다급하게 외쳤다.


"내가 해선 안 되는 것이라든가, 평소 행동거지라든가···!"

"황자님은 음, 아주 되먹지 못한 아들이십니다. 제가 황비 전하였다면 아들이고 뭐고 죽이고 싶을 정도로 -"


문고리가 돌아가고 있다. 그녀가 발언을 졸속하게 마무리했다.


"늦었습니다. 애드립으로 가시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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