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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까스 한입 하실래예

삼류배우가 마법천재 황자님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이기준
그림/삽화
연근조림
작품등록일 :
2023.05.19 06:32
최근연재일 :
2023.08.10 08:57
연재수 :
64 회
조회수 :
164,129
추천수 :
8,551
글자수 :
329,698

작성
23.06.03 20:00
조회
3,537
추천
165
글자
11쪽

이기적인 거짓말 (3)

DUMMY

나는 애드립을 해본 적이 없다. 최소한 촬영장에서는 그렇다. 나 같은 하바리 배우가 연기 욕심을 부렸다가는 컷 사인과 함께 욕이나 날아오지 않으면 다행이니.


하지만 방구석에서는 내가 감독이자 주연이다. 나는 일이 끝나고 나면 집으로 돌아와, 장판이 뜯겨져 너덜거리는 마룻바닥을 맴돌며, 상상 속의 연극, 상상 속의 무대를 수만 번이고 치렀다.


타자립에서 자히라를 누를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세월이 쌓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 무대는 좀 더 난이도가 높다.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덜컥.


문이 열렸다. 비단옷을 입은 시녀들이 방 안으로 들어와 부채처럼 갈라섰다. 그 사이로 누가 봐도 샤말의 어머니일 듯한, 보석으로 치장한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 등장했다. 바야흐로 내 연기력이 세 번째 시험에 접어들고 있었다.


"샤말."


여인이 무너지듯 달려와 내 뺨을 더듬었다.


"다친 곳은 없니? 몸은 좀 괜찮고?"

"예, 멀쩡합니다."

"사레디의 여식이 너를 걸고 넘어졌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없어서 하나밖에 남지 않은 아들의 장래까지 망치는구나 싶었다."


그녀가 눈물을 글썽거렸다. 가녀린 손가락은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다.

자히라와는 다르다. 자히라가 잘 짜인 한 편의 연극 같은 눈물을 보여줬다면, 여인의 눈물은 영혼을 날것으로 들이미는 것만 같다.


그런데 하나밖에 남지 않은 아들이라니, 마치 아들을 잃어봤다는 듯한 뉘앙스다.

유셉이 손위 형들을 하나하나 제거한 끝에 태자가 됐다고 했었지. 그 중에 그녀가 낳은 자식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 같다.


"괜한 걱정을 하셨군요. 그 한심한 여자가 설쳐준 덕분에 저는 얻어낸 게 많은데 말입니다."


나는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샤말은 사춘기 소년이고, 천재 연기자라고 추앙받던 라이벌을 정면승부로 꺾었다. 자기확신을 거듭한 끝에 마법적인 능력을 각성하기도 했지. 중2병이 재발하기에 너무나도 좋은 조건이다.


게다가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라잖아. 불효자 코스프레를 하기에는 양심이 도저히 허락하지 않는다. 때문에 인성질은 자히라를 까는 걸로 대체하겠다.


괜찮겠지?


나는 곁눈질로 라나를 살펴보았다. 그녀가 엄지를 슬쩍 들어주었다.


"그러니 자책하실 시간이 있다면 아들에게 맞는 마법이나 찾아주시는 게 나을 겁니다. 유셉 형님한테 한 방 먹여주고 싶어서 지금 온 몸이 근질거리거든요."

"샤말, 유셉은 정말 무서운 사람이야. 분한 네 마음은 이해하지만, 때로는 참아야만 하는 일도 있단다."

"참으면 얕보이기만 할 뿐입니다. 변하지 않는 세상의 이치죠."

"샤말, 너 정말 괜찮은 거니?"


여인의 눈이 흐려진다.


"너는 이런 아이가 아니었을 텐데······오늘따라 네 모습이 왜 이렇게 낯설게 느껴지는지 모르겠구나."


이런, 너무 나갔나.


아니야. 여기서 약해지면 안 된다. 나의 기준을 밀어부쳐야 한다. 동시에 내 샤말이 그녀의 샤말보다 더 낫다는 것을 납득시켜야만 한다.


인간은 희망 없이 살아갈 수 없잖아. 자식을 잃은 어머니에게 당신의 마지막 남은 자식마저 변변찮은 놈이라고, 하찮게 살다가 하찮게 사라질 운명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그녀에게서 희망을 앗아가버리는 셈이다. 사람을 살리겠답시고 무대에서 했던 내 모든 노력이 헛짓거리가 되는 셈이지.


"어머니."


나는 그녀의 손을 마주 잡았다. 시녀들이 놀라서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러나 가장 크게 놀란 건 여인이었다. 그녀는 얼마나 놀랐으면 딸꾹질까지 하기 시작했다.


"형님이 만만찮다는 건 겪어봐서 제가 잘 압니다. 결코 서툴게 나서서 일을 그르치진 않을 겁니다.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윙크를 찡긋 건넸다.


"무대 안 보셨습니까? 아직도 절 어머니의 어린 샤말이라고 생각하시면 곤란합니다."


그녀의 뺨을 타고 투명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시녀들은 두 손을 맞잡고 합창하듯 외쳤다.


"황비 전하, 황자님께서 어엿한 어른이 되셨습니다!"

"그래, 내가 바보였다. 내 아들이 이렇게 어른이 되었는데, 나는 그것도 몰라보았다."


여인은 연신 눈물을 훔치며, 우는지 웃는지 모를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가 얼마나 행복해하던지, 나는 겸연쩍은 기분이 들었다.


황제를 만났을 땐 이 사람이 내 아버지라는 생각이 전혀 안 들었다. 그 사람은 마법사 특유의 정신상태, 절대적인 자기확신에 도취된 나머지 스스로가 인간을 초월한 존재라고 확신하는 것 같았다.


만법의 지배자라고 했던가?


하지만 눈앞의 여인은 신분이 높다 뿐이지, 지극히 상식적인 어머니상인 듯하다.

그래서 낯설다, 내가 상식적인 어머니상을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나를 낳은 여자는 내가 두 발로 걷기도 전에 집을 떠났다. 훗날 줏어듣기로 배우가 되고 싶어서 그랬다고 하더라고.

어머니의 부재를 아쉬워하진 않았다. 겪어보지 않은 것을 그리워할 수는 없으니. 다만 궁금증은 자랄수록 커져만 갔다. 도대체 배우가 뭐기에 그 여자는 자기 자식도 버리고 집을 나가야만 했나. 정말 그게 최선이었나?


그걸 알아내려면 그녀의 뒤를 쫒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난 배우가 됐다. 밑바닥을 박박 구르며, 가끔 위도 쳐다보면서, 그러고 나서 내가 느낀 것은.


아직도 모르겠다는 점이다.


자식의 성장에 감격해서 우는 어머니의 눈물을 보니까, 정말로 모르겠네. 왜 내가 버림받아야만 했는지.


여인은 잠은 챙겨 자고 있는지, 밥은 제때 먹고 있는지, 시시콜콜한 것들을 하나하나 점검한 후, 눈물을 점점이 뿌리며 방을 떠나갔다.


나는 그녀가 떠나간 자리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내가 한 건 별 것 없었다. 묻는 질문에 꼬박 대답한 거, 그리고 건강하시라고 덕담을 건넨 게 전부였다. 그 별 것 없는 말 하나하나에 그녀는 산타에게 선물을 받은 아이마냥 좋아했다.


"황자님."


마지막 한 사람까지 방을 떠나간 후, 라나가 말을 걸어왔다.


"제 신호를 너무 무시하시던데, 혹시 의도하신 것인지요."

"설마 이거 말이냐?"


나는 그녀에게 엄지를 척 들어보였다.


"봤어. 잘 하고 있다며."


그녀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대체 그건 어느 나라의 제스쳐입니까. 엄지를 세우는 건 당장 하던 일을 그만두라는 뜻입니다."

"아, 그랬군."


하긴 나라가 이렇게 다른데 제스쳐가 같은 뜻일 리가.


"그래도 잘 됐잖아?"

"다행히 결과가 나쁘지 않았습니다만, 황비 전하께 결례가 될까봐 조마조마했습니다. 차라리 칼을 들고 싸우는 게 더 낫겠군요."

"익숙해져. 앞으로도 자주 벌어질 일이니."

"앞으로도 자주······입니까."


그녀가 피식 웃었다.


"그렇다면 가급적 기억을 되찾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게 주군한테 할 소리냐.


아무튼, 우리는 다시 하던 작업으로 되돌아갔다. 사형수를 스토킹하는 거.


카심은 나이가 마흔 여섯인데도 가정을 꾸리지 않았다. 문서에는 그가 가정을 꾸리지 않은 이유를 이렇게 써두었다.


'약점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혼사를 거절해왔다고 발언한 적이 있음.'


가정과 약점을 동일시하는 사람은 대체 어떤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일까. 황제의 아사라 바탈쯤 되면 꽤 안정적인 직함인 듯한데, 이 양반은 벼랑 끝에 매달린 것처럼 불안정한 삶을 추구했던 것 같다.


그가 어떤 삶을 추구했는지는 곧 분명해졌다. 라나가 가져온 서류의 대부분이 재판기록이었는데, 반역죄에 대한 기록은 한 줌밖에 안 되더라고.

나머지는 전부 암살 사건과 무관한 소송이었다. 대부분은 그가 고소를 당한 입장이었고, 고소 사유도 엇비슷했다.


모욕죄, 혹은 상해죄.


이 카심이라는 인간은 이십여 년에 걸쳐서, 서류가 천장까지 닿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을 모욕하거나 때려 패왔다.


"···흥미롭군요."


라나가 내게 서류 하나를 넘겼다.


"읽어보시죠. 다른 송사도 이것과 양상이 비슷할 겁니다."


나는 그녀에게 건네받은 서류를 넘겨보았다. 서류에는 재판 당사자들이 법정에서 주고받았던 말들이 속기로 쓰여 있었다.



판관 : 피고인은 야스민 경의 명예를 훼손하고, 그의 선조를 모독한 죄를 인정하는가?


카심 : 아니오. 야스민 경과 저는 우리의 대결이 서로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는다는 것에 구두로 합의했습니다.


판관 : 야스민 경은 대결이 끝나자마자 그대를 고발조치했다. 그렇다면 합의가 잘 안 된 것 같은데?


카심 : 패자는 혓바닥이 긴 법이죠.



"...다 읽었다."


이 뒷내용은 진술을 듣던 원고가 흥분해서 카심에게 달려들었다는 것과, 법정에서 소란을 일으킨 죄로 벌금형에 처해졌다는 것이었다. 안타깝기는 하지만 중요한 내용은 아니었다.


"흥미롭지 않던가요?"

"그래. 특히 이 부분."


나는 속기록 한쪽에 펜으로 밑줄을 그었다.


"서로 합의하고 대결을 했다는군. 이게 뭔지 알아야겠다."

"그건 제가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저도 읽으면서 떠올린 것입니다만, 카심은 '카심의 이기적인 도발'이라는 고유마법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마법의 효과는···."

"효과는 알아. 상대가 나를 미워하는 만큼 강해진다며."

"예. 그래서 말입니다만, 카심은 고유마법을 연마하기 위해 일종의 무사수행을 하고 돌아다녔던 모양입니다."


그럴 수 있지. 강인한 전사가 무예를 갈고 닦기 위해 수행을 하는 모습, 어렵지 않게 상상이 가능하다.


"검이 아니라 혓바닥으로 싸우는 수행 말입니다."

"······."


나는 라나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녀는 평소처럼 더없이 진지한 표정이었다.


"혓바닥으로 싸운다니?"

"상대가 다짜고짜 나를 미워하게 하려면 아무래도 화술이 받쳐줘야 할 테니까요. 그래서 그는 자신의 고유마법을 상품으로 내걸고, 번갈아 가면서 서로를 모욕하는 대결을 벌였던 것 같습니다. 먼저 흥분하는 쪽이 지는 규칙으로요. 지면 고유마법을 넘기고, 이기면 상대의 마법이나 돈을 가져가는데, 이 과정에서 분란이 일어나 수많은 소송에 시달렸던 것으로 보입니다."


뭐냐, 이 인간.


제국 최강의 전사라더니, 그냥 키보드 워리어잖아. 선조를 모독했다는 소리가 법정 속기록에 남아있을 정도면 패드립도 서슴지 않았던 모양인데.


이거 제대로 된 마법이 맞긴 하냐? 이런 마법을 배워놓으면 나도 온갖 고소에 시달리는 거 아니야?


"그리고······."


라나가 덧붙였다.


"알려진 그의 전적은 0패입니다."


뭐?


"그는 여태 아무에게도 고유마법을 넘긴 적이 없습니다. 이 산더미 같은 기록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항상 그의 상대가 먼저 흥분하고 말았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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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첫 주연 (5) +6 23.05.27 4,841 202 13쪽
5 첫 주연 (4) +5 23.05.26 5,087 196 13쪽
4 첫 주연 (3) +10 23.05.25 5,572 210 10쪽
3 첫 주연 (2) +10 23.05.24 6,290 20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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