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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까스 한입 하실래예

삼류배우가 마법천재 황자님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이기준
그림/삽화
연근조림
작품등록일 :
2023.05.19 06:32
최근연재일 :
2023.08.10 08:57
연재수 :
64 회
조회수 :
163,982
추천수 :
8,549
글자수 :
329,698

작성
23.07.0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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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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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글자
11쪽

배달의 민족 (12)

DUMMY

성공적인 파티를 망치기 위해 필요한 인원은 단 한 명.


칼라일은 아프난에 의해 무도회장에서 끌려나간 이후 소식이 끊겼다. 코우리 후작이 그것을 따지기 위해 날 찾아왔다면, 최악의 장소를 골랐다고 말해주고 싶다.


"샤말 황자 전하."

"먼 길을 와줬군, 코우리 경."

"전하께서 특별한 자리를 마련하셨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궁금해서 결례를 무릅쓰고 찾아뵈었습니다."


코우리 후작의 입술은 가식적인 미소조차 머금고 있지 않았다.


"그대에게 초대장을 보내지 않은 걸 서운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보다시피 준비가 많이 미흡했거든."

"괘념치 마십시오. 직접 환대해 주신 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합니다."

"음식은 좀 들었나?"

"물론입니다. 쉽게 구하기 힘든 진미들이 가득하더군요. 달로리스의 전갈 기수의 힘을 빌려서 가능했던 일이라지요?"

"그렇다."

"저도 한 몫 보태겠습니다."


어라?


"아시다시피 저희 가문은 냉기의 힘을 다룹니다. 이미 다른 가문과 거래를 하시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만, 냉기의 강도와 지속력 면에서 저희를 따라올 자들은 없다고 자부합니다."


코우리의 얼굴에 긍지라고 부를만한 게 떠올랐다. 트라이드도 했던 이야기였다. 냉매를 다루는 가문은 여러 군데가 있지만, 그중에 최고는 코우리라고.

그걸 몰라서 그와 협력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아는데도 같이 일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으니 연락을 안 했던 거지.


"놀라신 것 같군요."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다. 그대와 일을 같이 하려면 넘어야 할 관문이 많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쓸모없는 아들보다 성공적인 사업에 발을 담그는 것이 가문에 더 도움이 됩니다."


가차없네.


장작처럼 무미건조한 말투다. 그가 아들을 내다버린 게 사실이라면, 칼라일이 왜 그날 이후 코빼기도 비추지 않는 것인지가 설명이 된다. 그러나 후작쯤 되는 마법사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대는 라시드 형님과 거래를 트지 않았나?"

"파기했습니다."


뭐?


"저는 사람들이 제가 누구 편이라고 떠드는 걸 개의치 않습니다. 코우리 가는 오로지 최대의 이익을 실현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너무 가차없는데, 이 사람.


이래서 얼음의 고유마법을 잘 다루나? 얼음장 같은 기질을 타고나서?


그가 정말로 나와 뭘 해볼 생각이라면, 타이밍이 딱 좋긴 하다. 라시드는 지금 잃어버린 노예 때문에 눈에 봬는 게 없을 테니까.


"파티가 끝나면 내 아스투라를 보내겠다. 서로의 이익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논의해보도록 하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코우리 후작은 내게 인사를 올린 후 부인과 함께 파티장을 나가버렸다. 목적을 충족했으니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일절 동선의 낭비라고는 없는, 효율의 화신 같은 인물이었다.


코우리 후작 이후로도 내 사업에 한 발 걸쳐보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러나 대부분은 코우리 후작만큼의 매력적인 제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한편 배달 서비스의 가입자는 좀처럼 늘지 않는 중이었다. 사업의 주체가 미래가 불안정한 황자라는 것에 불안해하는 듯했다. 기껏 큰 돈을 썼는데, 내가 라시드와 싸우다 망해버리면 원금도 못 건질 테니까.


그들의 불안함을 날려버린 건 두 거인의 등장이었다.


"하킴 하람 달로리스 후작 드십니다!"


하인이 소리치더니,


"콰이 라 사레디 대공 전하 드십니다!"


연이어 콰이 대공의 도착을 알렸다. 사람들은 충격을 넘어선, 경악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나와 사이가 좋지 않기로 세 손가락 안에 꼽힐 사람이 나타났으니.


"사레디 대공이 어째서 여기에?"

"설마 전하께서 초대하신 건가?"


그래, 내가 초대했다. 이 파티는 장사를 하려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다. 샤말 황자의 세력이 어느 정도인지 와서 눈으로 똑똑히 보라는 것이다.

내가 단순히 유셉의 꼭두각시가 아니라는 걸, 달로리스 후작가와 사레디 대공가, 두 거인의 지지를 받는다는 걸 모두가 알아둬야 할 필요가 있으니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인파를 헤치고 두 연장자에게 다가가,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거 참 경우가 바르단 말이야. 내 손자여서가 아니라, 정말로 애가 괜찮지 않나?"


하킴이 대공의 어깨를 두드리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콰이 대공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했다.


"···샤리프 같진 않더군."

"그 말이 자네 입에서 나왔으면 칭찬이 아닌가, 으하하하!"


하킴은 내가 무안할 정도로 크게 웃어제꼈다. 두 사람은 친분이 있어보였다. 나이도 비슷하고, 활동 시기도 겹쳤을 것 같고.


"두고 봐. 이놈을 낚아채지 않은 게 자네 일생일대의 실수가 될 테니."

"잘도 나불대는군. 십 년간 집구석에서 곁불이나 쬐던 것이."


하킴이 이죽거리자, 곧장 콰이가 응수했다.


사람들은 숨을 죽인 채 대공과 후작의 대화를 지켜보았다. 십 년간 두문불출하던 과거의 영웅과, 치열한 황위다툼에도 불구하고 중립을 지켜온 사레디 가문. 그들이 나, 샤말 이븐 샤리프와 어떤 그림을 그려나갈지 궁금하겠지.


"항구를 짓겠다고 했었지."


콰이가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예."

"할 말이 많겠군."


나는 미소와 함께 몸을 돌렸다.


"내실로 드시죠.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



파티는 밤이 깊도록 계속되었다. 마침내 마지막 손님까지 자리를 떠나자, 나는 트라이드와 함께 기진맥진해서 소파에 널브러졌다.


고객 한 명 한 명이 지체 높으신 양반들이라, 대충 계약서에 도장만 찍는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환담도 나누고, 술잔도 부딪혀줘야 주인으로서 할 일을 다하는 것이다. '울파의 지나친 탐닉' 마법을 배워두지 않았더라면 쓰러지고 말았을 강행군이었다.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트라이드가 금발을 쓸어 넘기며 말했다. 이 친구를 안 기간이 이제 제법 되는데, 이렇게 흐트러진 모습은 처음 봤다. 꼴이 말이 아닌 건 나도 마찬가지겠다만.


"너도 고생했다."

"제 일은 지금부터 시작이지만 말이죠."


트라이드가 젖은 솜 같은 동작으로 장부를 뒤적였다.


"신규 계약이 964건입니다. VVIP가 14명이니, 실제로는 950건의 계약이 체결된 셈입니다."


나는 950에 3을 곱해보았다. 계약금을 3백만 디나르로 책정했으니까······.


"일매출이 28억이라는 건가?"

"정확히는 연매출이지요. 연단위로 갱신되는 계약이니까요."


트라이드가 정색하는가 싶더니, 씨익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일매출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 같군요. 파티는 앞으로도 열릴 테고, 소문은 전갈처럼 빠르게 사막을 가로지를 테니 말입니다."

"그래, 성공적이었지."

"성공적인 정도가 아닙니다. 첫날에 투자금의 30퍼센트를 회수하신 겁니다. 덕분에 제가 많이 바빠질 것 같습니다. 창고를 네 동은 더 지어야할 테고, 내일부터 밀려올 주문도 처리해야 합니다."

"직원도 추가로 뽑아야겠는걸."

"예, 직원도 뽑고, 사무실도 새로 지어야죠. 별궁에 세들어서 해볼 수 있는 수준의 사업이 아닙니다."

"필요한 게 있다면 뭐든지 말해."


오늘 나는 신규 계약만 체결한 게 아니다. 투자 제의도 숱하게 받았다. 오늘 입에 오르내린 투자금의 총액만 오백억이 넘는다.

물론 그 돈을 모두 넙죽 받아먹을 수는 없다. 유셉에게 이미 2할의 지분을 넘겼으니, 지분과 경영권을 침해당하지 않는 수준에서 조율을 잘 해봐야겠지. 그게 지금부터 내가 할 일이다.


"항구 말인데, 각 잡고 제대로 지어봐야겠어. 콰이 대공께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셨거든."


대공은 자기 돈이 라시드의 손에 흘러들어가는 걸 참을 수가 없다며, 앞으로는 내 항구만 이용할 것을 약속했다.

이것을 오늘의 가장 큰 성과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사레디의 선단이 내가 지은 항구를 모항으로 삼는다는 건 단순히 배달 서비스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었다. 부분적으로나마 내가 거대한 제국의 물류 일부를 통제한다는 걸 의미했다.


"선단은 기본이 스무 척입니다. 최소 세 개 이상의 선단을 수용할만한 항구를 지으려면, 치수에 능한 가문들과 협업해서 강물을 막고 흙을 퍼내야만 합니다."

"비용이 문제가 되겠군."


트라이드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는 내가 알지 못하는 법칙에 귀를 기울이는 중이었다. 잠시 후 그가 눈을 뜨며 말했다.


"가장 보수적으로 계산했을 때, 1년의 시간과 3백억 디나르의 추가비용이 발생합니다."


어마어마하구나. 하지만 들어온 제의들과 사업의 추이를 고려하면 감당못할 금액은 아니다.


"해 보자."


하킴 후작과 콰이 대공과 대화를 나누고 파티장으로 돌아왔을 때,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서비스를 신청해오던 모습이 떠오른다.


결국 돈과 권력이 문제였다, 이 세계에서도.


그렇다면 방향을 옳게 잡았다는 판단이다. 왜, 유통업을 가진 자가 경제를 지배한다는 말도 있잖아.


"제도의 위용에 걸맞은 멋진 항구를 만들어보자고."

"좋습니다."


트라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반발은 염두에 두셔야합니다. 기존의 항구를 운영하던 사업자들은 전하의 행보를 반가워하지 않을 겁니다."

"당연하겠지."

"저는 이만 돌아가봐야겠습니다. 아니, 그냥 이곳에서 쉬고 가야겠군요. 도저히 체력이······혹시 빈 방이 있으십니까?"

"많아. 아무 방이나 들어가서 누워. 시녀한테 물어는 보고."

"예."


트라이드가 일어나더니, 좀비처럼 비척비척 걷기 시작했다. 나는 그를 따라 일어나려다 갑자기 명치에 맹렬한 통증을 느끼고 주저앉았다.


뭐지?


명치를 풀스윙으로 얻어맞은 것만 같다.


뿐만이 아니다. 해골이 깨질 듯이 지끈거리고, 속이 메스껍다. 컨디션이 나빠지는 조짐은 파티를 하는 도중에도 느껴졌었다. 그때는 너무 피곤했겠거니 싶었는데, 긴장이 풀린 탓인지 갑자기 온 몸이 합주를 하듯 비명을 질러댄다.


"후우우······."


나는 바닥을 손으로 짚은 채 심호흡을 했다.


"너무 무리하셨습니다."


라나가 다가왔다.


"고작 파티 한 번 했을 뿐인데?"


그녀는 나를 자연스럽게 부축하며 말했다.


"술을 많이 드셨습니다. 정신계 마법은 취하는 걸 막아줄 뿐이지, 알코올을 분해해주진 않으니까요."


그렇구나. 난 또 내가 무적이 된 줄 알았네.


"침실로 가자. 좀 쉬어야겠다."

"예."


라나는 나를 부축하다가,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혹시 유말을 기억하십니까?"


나는 혼미해지는 정신 속에서, 스쳐갔던 수많은 인명을 되짚어보았다.


"모험가인가 뭔가 하던 친구 말이냐?"

"예. 그 자가 아직 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왜?"

"황자님을 만나뵙고 여쭐 말이 있다는군요."

"그럼 아무 침실이나······들어가 있으라고 해."


내일 얘기를 해볼 테니.


그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작가의말

드디어 ‘배달의 민족’ 에피소드가 끝났습니다! 길었군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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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형제애 (1) +3 23.07.20 1,337 97 11쪽
49 버전 업 (3) +20 23.07.19 1,442 117 11쪽
48 버전 업 (2) +7 23.07.18 1,409 98 12쪽
47 버전 업 (1) +7 23.07.16 1,530 100 12쪽
46 두 번째 주연 (8) +12 23.07.15 1,498 113 11쪽
45 두 번째 주연 (7) +18 23.07.14 1,517 114 11쪽
44 두 번째 주연 (6) +13 23.07.12 1,552 121 12쪽
43 두 번째 주연 (5) +11 23.07.11 1,554 101 11쪽
42 두 번째 주연 (4) +11 23.07.10 1,617 109 12쪽
41 두 번째 주연 (3) +12 23.07.09 1,728 108 12쪽
40 두 번째 주연 (2) +9 23.07.08 1,848 107 13쪽
39 두 번째 주연 (1) +5 23.07.07 1,907 114 11쪽
» 배달의 민족 (12) +3 23.07.05 1,894 105 11쪽
37 배달의 민족 (11) +10 23.07.04 1,913 111 11쪽
36 배달의 민족 (10) +10 23.07.03 1,918 124 13쪽
35 배달의 민족 (9) +10 23.07.02 1,955 116 11쪽
34 배달의 민족 (8) +4 23.07.01 2,027 113 11쪽
33 배달의 민족 (7) +10 23.06.30 2,086 125 12쪽
32 배달의 민족 (6) +10 23.06.28 2,290 136 12쪽
31 배달의 민족 (5) +14 23.06.27 2,224 155 12쪽
30 배달의 민족 (4) +11 23.06.26 2,214 124 12쪽
29 배달의 민족 (3) +4 23.06.25 2,267 119 13쪽
28 배달의 민족 (2) +8 23.06.24 2,280 146 11쪽
27 배달의 민족 (1) +6 23.06.22 2,362 117 11쪽
26 새벽의 날개 (9) +7 23.06.21 2,363 122 11쪽
25 새벽의 날개 (8) +13 23.06.20 2,408 142 12쪽
24 새벽의 날개 (7) +9 23.06.19 2,373 14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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