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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 novel

악마는 길을 걷지 않는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백아™
작품등록일 :
2017.08.25 00:43
최근연재일 :
2018.02.28 19:32
연재수 :
8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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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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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6
글자수 :
499,958

작성
18.02.26 17:00
조회
526
추천
10
글자
12쪽

21. 친구 (5) ~ 오랜 벗을 떠올리며

DUMMY

**

약 20년 전. 주로프의 집.

갈색빛이 도는 머리카락. 커다란 키와 다부져 보이는 체격, 남자답게 생긴 외모의 군인. 그리엄의 아버지인 주로프였다.

주로프는 자신의 부하인 모이하와 대화중이었다. 그때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주로프가 방문을 열고 나와 1층으로 내려갔다. 내려오니 주로프의 아내가 어쩔 줄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1층 현관에는 군인들이 서있었다. 네 명 정도의 군인들. 그 중 가장 앞에 서있는 것은, 라데키였다.


“무슨 일인가.”


주로프가 라데키 쪽으로 빙긋 웃으며 물었다.

라데키는 그런 주로프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여기서 대기하도록.”


라데키가 말한 뒤, 조로프 쪽으로 다가갔다.


“들어가서 이야기하지.”


라데키가 주로프 옆을 지나, 계단을 올라갔다.

2층, 주로프의 서재로 라데키가 들어갔다. 안에 먼저 들어와 있던 모이하가 라데키를 보고 얼른 거수했다.

이어 주로프가 안으로 들어왔다.


“모이하 대위. 라데키랑 할 말이 있어서.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지.”

“···예.”


주로프의 말에 모이하가 경례 후 밖으로 나갔다.

방에 남은 것은 이제 주로프와 라데키. 둘 뿐. 주로프가 작은 테이블로 다가가 의자에 앉았다. 라데키도 주로프의 맞은편에 앉았다.


“차라도 마실래?”


주로프의 물음에 라데키가 고개를 저었다.


“차나 마실 여유는 없을 것 같군.”

“무슨 일인데 그래.”

“네 체포 명령이 떨어졌어.”

“···.”


라데키의 말에, 서재 안으로 침묵이 감돌았다.

라데키는 현재 대장군부 소속. 감찰청도 아닌 대장군부의 체포 명령이라면, 보통 일은 아닐 것이 분명했다.

말이 없는 주로프에게 라데키가 입을 열었다.


“군수품 횡령 혐의라는데···.”

“내 가족들과, 부하들은··· 그냥 두면 안 되겠나.”

“···.”


주로프의 말에 라데키가 말을 멈췄다.

횡령에 대한 혐의···. 가족들은 물론, 주로프의 측근들에 대한 조사도 들어가야 했다.

라데키가 주로프를 바라봤다. 주로프의 표정에 간절함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저 정도 간절함이라면 분명, 가족들과 부하들을 위해서라도··· 죄를 자백할 것이다. 굳이 가족과 부하들까지 조사할 필요가···.


“부탁하겠네.”


주로프가 다시 한 번 라데키를 향해 말했다.

잠시 생각하던 라데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미안하네. 국가의 명령이네.”

“제발 부탁이야! 내 친구로서··· 마지막 부탁이네···.”


주로프가 의자에서 일어나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라데키는 아무 말도 없었다.

주로프가 고개를 푹 숙였다.


“제발···. 자네 가족이라 생각하고 한 번만···.”

“내게는··· 이 국가가 곧 부모고, 친구고··· 가족이야. 군인으로서, 어떤 경우에도 명령을 거역할 수는 없네. 만약 내 가족들이었어도, 나는 명령을 수행했을 거야.”


라데키가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밖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라데키가 깜짝 놀라서 문을 바라보는데, 주로프가 한숨을 내쉬었다.


“모이하인가 보군. 안 가고 듣고 있었나봐. 우리 둘 다 기척도 못 느끼다니, 모이하 녀석, 저격을 많이 하러 다니더니 제법 늘었어.”


주로프가 일어나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라데키는 그런 주로프와 눈을 맞출 수 없었다.

힘겹게 라데키가 시선을 외면하는데, 주로프가 다시 의자에 앉았다.


“저 녀석 와서 뭐라고 하는 줄 알아? 자기가 수브탄을 저격하고 올 테니, 보내달라더라. 하하.”


주로프가 소리 내 웃었다. 라데키가 잠시 서있다가 의자에 앉았다.


“보내지 그랬나. 만약 성공한다면 쾌거 아닌가.”

“가면 저 녀석, 멀쩡히 돌아올 수 있겠어?”

“그래도 모이하 정도 저격 실력이라면 성공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하하. 수브탄 그 노인네가 총알 하나에 죽는 거. 상상이 돼? 나는 전혀 안 되는데, 그렇게 죽을 노인네가 아니지.”


주로프가 웃으며 말했다. 다시 한 번 서재에는 정적이 흘렀다.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못하는 정적. 그때 주로프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슬슬 가야···.”

“내일 다시 오지.”

“어···?”


라데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주로프의 말을 가로 막았다.

의자에서 일어나려던 주로프가 놀란 눈으로 라데키를 바라봤다. 라데키는 문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었다.


“자네도 가족들과 인사할 시간은 필요할 것 아닌가. 내일 오후 2시에 다시 체포하러 오겠네. 준비하고 있어.”


라데키가 말하며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주로프는 그런 라데키의 뒷모습을 보며,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라데키가 복도를 지나 계단으로 향하는데, 옆에서 누군가 문을 열고 나왔다.


“안녕하세요. 삼촌.”


라데키를 향해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아이.

주로프를 닳은 희미한 갈색빛 머리카락. 똘망똘망한 눈. 주로프의 아들로, 이제 10살이 된 그리엄이었다.

자신에게 삼촌이라 부르는 그리엄을, 라데키는 잠시 바라보고 서있었다.


“그래···.”


라데키가 짧게 대답한 뒤,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내일 다시 온다.”

“예? 하지만···.”

“도주할 경우 내가 책임지겠다.”

“예···.”


라데키의 말에 함께 온 부하들은 어쩔 수 없이 돌아섰다. 라데키가 주로프의 부인 쪽으로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문 밖으로 나갔다.

*

다음날 오후 2시. 라데키가 부하들을 대동. 주로프의 집으로 왔을 때. 대문과 현관문. 모두 열려 있었다.

라데키는 마당을 지나,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넓은 거실 한 가운데 소파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보고는, 얼굴빛이 바뀌었다.


“시간은 딱 맞춰서 오는군.”


라데키를 보고 활짝 웃는 남자. 주로프였다.

라데키가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는데, 주로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가지.”


주로프가 앞장 서서 현관문을 나섰다. 그 뒷모습. 주로프는 계속 그 뒷모습을 보며 걸어왔다. 어딘지 모르게 씁쓸한 뒷모습을.

*

다음날 대장군부 지하 조사실.

주로프는 대부분의 죄를 부인 했고, 하루 내내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계속 부인해봤자 중인, 증거 모두 나왔어. 자백 해.”


조사를 맡은 군인이 추궁을 하는데, 갑자기 조사실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온 것은 라데키였다.

라데키를 발견한 군인이 얼른 일어나 경례했다. 라데키가 고개를 끄덕이고 앉아 있는 주로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얼굴에 멍이 들고, 몸은 제대로 가누기 힘든 듯 비틀거리고 있었다. 라데키가 천천히 조사 담당 군인 쪽으로 걸어갔다.


“내가 직접 취조하지.”

“예? 굳이···.”

“괜찮으니까 나가 봐.”

“예···.”


취조를 담당했던 군인이 경례 후 조사실 밖으로 나갔다. 조사실 문이 닫히고, 안에 남은 두 사람. 주로프와 라데키.

둘은 서로를 가만히 바라봤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주로프였다.


“자네 덕분에··· 가족들을 도망가게 할 수 있었어. 고맙네.”

“자네는··· 왜 가지 않았나.”


라데키가 주로프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 눈빛과 목소리에는 애처로움과 원망이 묘하게 섞여 있었다.


“자네는 더 높이 올라가야 할 거 아니야.”

“뭐?”


주로프의 말에 라데키가 살짝 인상을 쓰며 되물었다.

주로프가 손을 라데키 쪽으로 뻗었다.


“혹시 담배 하나 피울 수 있을까?”

“···.”


라데키가 주머니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 주로프의 손에 쥐어줬다. 주로프가 담배를 입에 물자, 라데키가 직접 성냥으로 불을 붙여줬다.

주로프가 천천히 담배 연기를 뱉었다.


“군인은 높이 올라가면, 적군과 싸우는 것보다는···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 자네도 알잖아. 자네와 내 사이는 세상이 다 아는데, 내가 그대로 도망갔다면, 그건 자네의 평생 오점으로 남았을 거야. 누군가 분명 그것을 공격하는 자가···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생기겠지. 친구로서···. 친구의 오점이 될 수는 없지 않겠나.”


주로프가 빙긋 웃어보였다.

라데키는 자기도 모르게 주먹이 꽉 쥐어졌다. 부들부들 떨리는 팔을 라데키는 겨우 진정시켰다. 그리고 힘겹게, 입을 떼려다가, 말았다.

방금 전 주로프의 아내가 붙잡혔단 보고를 받았었다. 그러나 이를, 주로프에게 차마 말할 수 없었다.

그때 조사실 문이 열리고 군인 하나가 안으로 들어왔다.


“충성. 죄송합니다. 급한 일이라···.”

“무슨 일인가.”

“그게···.”


군인은 라데키의 물음에 대답하지 못하고, 힐끗 주로프 눈치를 봤다. 이에 라데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가서 이야기하지.”


라데키가 군인과 함께 조사실 밖으로 나갔다. 조사실 문을 닫자, 군인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주로프 장군의 아내 분이··· 조사 중 사망하셨습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린가.”

“조사 중··· 그게···.”

“설마 고문으로 죽은 건가?”

“···.”


군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라데키의 이마로 핏줄이 일어섰다.


“내가 고문은 하지 말라고 했잖나!”

“죄, 죄송합니다! 포 젝타스 백작께서 조사 과정을 직접 보시겠다고 들어오셔서는··· 제대로 조사하라고 조사관을 질타하셔서···.”

“빌어먹을··· 대장군부의 조사에 감히 그 자가 뭐라고 참견을 한단 말이야!”

“죄송합니다! 대장군께서도 참관을 허락하셔서···.”

“···됐으니까, 가 봐.”

“예···. 충성!”


군인이 물러나고, 라데키는 다시 조사실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 다시 자리에 앉는데, 주로프가 미소를 지어보였다.


“무슨 일이 있나 보지?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던데.”

“···자네··· 아내가 잡혀왔었어.”

“···.”


라데키의 말에 주로프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그런가···.”

“미안하네···. 정말··· 미안해···. 자네 아내가 조사를··· 견디지 못하고···.”

“···.”


라데키의 어깨가 들썩였다.

주로프는 그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주로프가 손에 들려 있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서 껐다.


“그리엄도··· 잡혀 왔나?”

“아니···. 그리엄은 아직 찾지 못했네.”

“그래···.”


주로프가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둘 사이로 아무런 말도 오가지 않았다. 라데키가 담배를 입에 물었고, 주로프에게도 하나 더 건넸다.

둘은 말없이 조사실 안에서 담배를 피웠다. 그리고 담배가 모두 타들어갈 때 쯤.


“나는 아마 살기 힘들 거야. 그렇지?”

“무슨 소리야. 횡령으로 사형까지···.”

“단순 횡령이 아니지 않나.”

“···.”

“반군과 내통한 혐의까지 있잖나. 그렇다면 사형 외에는 없지. 나도 그 정도는 알아.”


주로프의 말에 라데키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주로프가 그런 라데키를 보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 친구. 나 가면 친구도 없는데 외로워서 어쩌나.”

“지금 농담이 나오나.”

“하하. 이거 별 단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자네는 이번에 소장 진급했었지? 빠르군.”

“자네야 말로. 일반 병사에서 여기까지··· 고생 많았네.”

“하하. 자네도 그런 말을 할 줄 아나.”


주로프가 웃으며 담배를 재떨이에 비볐다. 그리고는 라데키를 똑바로 바라봤다.


“부탁이 하나 있어.”

“말해 보게.”

“내 집을··· 자네가 맡아줘.”

“무슨 소리야.”

“만약 내 아들이··· 그리엄이···. 나중에라도 집으로 돌아오면, 자네가···. 부디 자네가 나대신··· 친 아들처럼 키워줘. 내··· 마지막 부탁이야. 내 이야기는 하지 말고··· 자네가 나대신 아버지가 돼서···.”


주로프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주로프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라데키는 차마 그를 보지 못한 채, 고개만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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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22. 악마의 길, 그 끝에서 (5) - 完 +8 18.02.28 709 17 13쪽
87 22. 악마의 길, 그 끝에서 (4) +1 18.02.28 531 13 11쪽
86 22. 악마의 길, 그 끝에서 (3) +11 18.02.27 818 10 12쪽
85 22. 악마의 길, 그 끝에서 (2) +4 18.02.27 741 9 12쪽
84 22. 악마의 길, 그 끝에서 (1) +3 18.02.27 529 9 11쪽
83 21. 친구 (6) ~ 오랜 벗을 떠올리며 +4 18.02.27 537 8 12쪽
» 21. 친구 (5) ~ 오랜 벗을 떠올리며 +8 18.02.26 527 10 12쪽
81 21. 친구 (4) +4 18.02.25 801 9 12쪽
80 21. 친구 (3) +4 18.02.23 562 12 13쪽
79 21. 친구 (2) +4 18.02.23 537 11 12쪽
78 21. 친구 (1) +7 18.02.22 910 10 12쪽
77 20. 붕어(崩御) (3) +5 18.02.21 555 9 11쪽
76 20. 붕어(崩御) (2) +8 18.02.20 550 12 12쪽
75 20. 붕어(崩御) (1) +7 18.02.19 555 10 12쪽
74 19. 총알 (3) +6 18.02.17 582 10 12쪽
73 19. 총알 (2) +4 18.02.14 924 10 12쪽
72 19. 총알 (1) +4 18.02.13 607 10 12쪽
71 18. 연회 (3) +4 18.02.13 677 9 12쪽
70 18. 연회 (2) +3 18.02.12 575 8 12쪽
69 18. 연회 (1) +2 18.02.11 616 11 12쪽
68 17. 신호탄 (5) +3 18.02.09 623 8 11쪽
67 17. 신호탄 (4) +4 18.02.08 597 11 13쪽
66 17. 신호탄 (3) +4 18.02.07 1,047 9 12쪽
65 17. 신호탄 (2) +4 18.02.05 1,081 12 11쪽
64 17. 신호탄 (1) +6 18.02.04 1,065 9 11쪽
63 16. 국가 (4) +4 18.01.06 953 1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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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16. 국가 (2) +6 17.12.23 871 16 12쪽
60 16. 국가 (1) +2 17.12.19 1,113 1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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