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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배우가 마법을 숨김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이케요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1.07.30 20:36
최근연재일 :
2021.09.25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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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88,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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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12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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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거침없이(1)

DUMMY

해인과 대화를 나누며 느낀 것은 ‘아쉽다’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마봉수 감독이 뭔가를 인지했을 땐 이미 해인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져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외모였다.


‘피부가 저렇게 투명했던가?’


생기 넘치던 피부는 혈색이 사라져 실핏줄이 보일정도였고.

까만 눈동자는 더욱 깊고 진해진 것 같았다.

무엇보다.


‘눈동자가 텅 비어있어.’


자신을 잃은 듯 해인의 눈동자 안에는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았다.

속이 텅 빈 백자 같은 느낌.

안개에 가려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잔잔한 호수를 마주보고 있는 기분에 소름이 돋았다.

마봉수 감독은 지금 귀신에 홀린 것 같은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감독님께선 어떤 영감을 받아 이 시나리오는 쓰게 되신 건가요?”


질문을 하는 목소리에서도, 자신을 쳐다보는 눈동자 속에서도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는 마치 중력처럼 계속해서 마봉수 감독의 시선을 끌어당겼다.


“음... 삼 년 전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문득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어머니께선 좋은 곳으로 가셨을까? 혹여 가는 길을 몰라 헤매고 계시지는 않을까하고요.”

“그래서 저승차사라는 안내자를 떠올리신 거군요.”


마봉수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내 어머닌 타고난 길치셨거든요. 소름끼치고 무서운 존재로 알려져 있지만 만약 내 어머니께서 길을 잃어버리셨다면 친절한 길동무를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마봉수 감독은 매일 같이 걷는 길도 자주 잃었던 어머니를 떠올렸다.


“살아계셨을 땐 사람들한테 길을 물을 수 있지만 그 후는 우리가 모르니까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글까지 쓰시고 감독님은 따뜻한 아들이시네요. 어머니께서도 좋아하실 것 같아요.”


사실 지금껏 수많은 배우들과 미팅을 했지만 <저승차사의 비밀>의 얽힌 일화까지 꺼낸 배우는 없었다.

해인이 처음이었다.

그만큼 마봉수 감독은 자신이 윤해인이란 배우에게 빠져들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도 귀동냥으로 들어서 해인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배역을 맡으면 극도로 몰입한다고는 들었지만.’


단순히 소속사에 의해 부풀려진 뜬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메소드를 표방하는 배우들은 많지만 어쩔 수없이 본인 스타일이 연기에 묻어나온다.

결국 알짜배기는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마봉수는 해인이 연기하는 백운이 어떨지 궁금해졌다.


‘분위기며 보여지는 것들은 합격. 남은 건 연긴데.’


백운은 망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서서히 채워가는 인물이다.

지금까지 만나왔던 수많은 배우들은 크던 작던 그들이 맡았던 배역들로 꽉 차있었다.

때문에 백운을 연기하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그런데 만약 해인이.


‘연기까지 괜찮게 하면...’


힘들었던 방황도 오늘로서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

마침내 결정을 내린 마봉수 감독이 해인에게 말했다.


“해인 씨. 대화는 이 정도면 된 것 같고. 그럼 이제 백운 연기를 좀 볼까요?”


*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루드비히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마봉수 감독이 언제 대본을 꺼내나 기다리고 있었다.

감독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루드비히는 동시에 두 개의 마법을 운용하는 중이었다.


눈을 통해 사람을 홀리는 매혹의 마안을, 바닥에 깔린 안개는 상대방의 판단력을 흔들었다.

마봉수 감독의 눈치를 살펴보니 거의 다 넘어왔다.

이제 마지막 단계만이 남았다.


루드비히는 마봉수 감독에게 건네받은 대본을 살폈다.

저승차사 백운이 처음으로 인도해야할 망자를 만나는 장면이다.


“준비되면 바로 시작해요.”


루드비히는 대답대신 바로 연기를 시작했다.

대사는 이미 머릿속에 있는 상태.

마봉수 감독을 그 망자라 생각하며 첫 대사를 내뱉었다.

거부할 수 없는 언령이 그를 불렀다.


“박우진 씨.”


낮게 깔렸지만 결코 무겁지 않은 목소리가 회의실을 울렸다.

주변이 보이지 않고 오직 백운으로 분한 해인만이 보인다.


“네.”


마봉수 감독이 대사를 받아줬다.


“당신은 2020년 9월 19일 교통사고로 사망하였습니다.”


아침 인사 같은 담담한 어조에 그 말이 꼭 장난처럼 느껴진다.


“제...제가요?”


해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당신은 이곳에 남은 미련을 버리지 못한 이승을 헤매고 다니고 있습니다. 이제는 떠날 때입니다.”

“더 이상 이곳에 있어선 안 되는 겁니까? 제겐 먹여 살려야 할 가족들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 저만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마봉수 감독을 바라보는 해인의 눈동자에 잠시 연민이 깃든다.


“시간이 지날수록 당신은 박우진이었던 때의 기억을 잃어버리고 오직 미련에 사로잡혀 좋지 못한 결말을 맞이하게 되겠죠. 그러니 함께 가시죠. 당신이 떠난 후의 시간은 남은 사람들의 몫입니다.”


대사를 주고받으며 회의실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었다.


“저... 그런데 당신은 누구죠?”


그리고 마침내 해인이 결정적 대사를 내뱉었다.


“저승차사 현백운입니다.”


자신의 정체를 담담하게 밝히는 해인의 위로 지금껏 마 감독이 상상했던 백운의 이미지가 겹쳐져 보였다.


꿀꺽.


함께 가고 싶지 않지만 내미는 그의 손을 잡아야만 할 것 같은 강압이 저절로 그의 몸을 움직였다.

순식간에 해인의 연기에 함께 몰입하게 된 마봉수 감독은 그의 손을 맞잡으며 대답했다.


“네.”


팽팽했던 긴장이 풀리며 해인의 몰입도 풀렸다.

해인이 원했던 대답이 아니었다.


“음... 감독님 대사 틀리셨는데요.”

“네?”


그 순간 해인에게서 자유로워진 마봉수 감독이 현실로 돌아왔다.

마봉수 감독의 대사는 ‘네’가 아닌 짧은 고민 후 함께 가기를 거부하는 내용으로 이어져야 했다. 하지만 해인의 제안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혼란스러워하는 마 감독에게 해인이 말했다.


“다시 해보겠습니다.”


이내 마봉수 감독이 고개를 저었다.

더 보고 말 것도 없었다.

이미 마 감독의 마음속 백운은 오직 눈앞에 한 사람 뿐이었다.

이번엔 마 감독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저와 함께 가시죠.”

“영광입니다.”


<저승차사의 비밀>의 백운 역으로 해인이 확정된 순간이었다.


*


[(속보) 배우 윤해인, 마봉수 감독의 차기작 <저승차사의 비밀>의 주인공으로 캐스팅 확정!]

[배우 윤해인, 마봉수 감독의 오랜 칩거를 깨우다.]

[윤해인, 마봉수 감독의 페르소나 되나?]

[<저승차사의 비밀>의 주인공, 차세대 스타 윤해인으로 낙점!]

[수많은 별들을 제치고 저승차사가 된 신예 윤해인, 그의 매력에 푹 빠진 감독 마봉수.]


인터넷 기사가 쏟아졌다.

오랜 칩거를 끝낸 마봉수 감독이 드디어 기지개를 핀다는 내용.

그가 움직인다는 희소식이 전해지자 영화계의 이목은 온통 배우 윤해인에게 쏠렸다.


“윤해인이 누군데?”

“뭐하는 놈이기에 마봉수가 움직여?”

“그 벼락 맞은 놈?”

“얼마 전엔 여자아이도 구해줬다며?”

“뉴스라이브 나온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놈 말하는 건가?”


윤해인이 누군지도 모르는 영화계의 거목들이 수두룩했지만.


“그래도 마 감독이 골랐으면 연기력은 문제없겠네.”

“탑배우들 다 마다할 정도로 깐깐한 마 감독인데 얼마나 잘할지 기대되는데?”

“사진 보니까 생긴 건 멀끔하더만. 마 감독이 외모 보고 골랐을 리는 없고. 역시 연기 천재인 건가?”


마 감독의 선택을 받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인정받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

동시에 윤해인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작품에 대한 기대감도 높았다.


“<저승차사의 비밀>을 스크린에서 보게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네요.”

“얼마나 잘 빠질지 기대가 되는데?”

“그 때 안 들어가길 잘했지. 그 때 만들어졌으면 CG 때문에 망했을 지도.”

“지금 기술력으로 만들면 얼마나 실감날까? 차라리 이제야 제 주인을 만난게 다행인 듯.”


투자사들을 줄 세웠다는 그 작품이 주인공을 만나지 못해 제작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안타까운 사연은 업계 관계자들 중 모르는 사람 빼고는 다 아는 내용이었다.

바로 그 작품이 드디어 주인을 만나 제작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단다.

이제 윤해인이란 새로운 판이 만들어졌으니, 나머지 배역들에 대한 캐스팅이 시작될 것이다.

꼭 주인공이 아닌 망자들 중 하나로 캐스팅되어도 관객들에게 보여줄 임팩트는 결코 작지 않다.


“어떻게 해서든 마 감독님이랑 미팅 잡아!”

“사장님 나 이 작품 꼭 하고 싶어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꼭 미팅 잡아주세요!”

“형! 나 망자3 하고 싶다. 고등학생 역할이니까 나랑 나이대도 비슷하고 가능성 좀 있을 거 같지 않아?”

“배역은 어떻게 뽑는데? 블라인드야 아님 공개 오디션이래?”


대형기획사부터 소규모 소속사들까지 역할을 따내기 위한 보이지 않는 전쟁이 예고됐다.

어떤 작품이 탄생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


“오빠 축하해요.”

“우리 이원이 능력 좋네? 어떻게 마 감독을 꼬드긴 거래?”

“그 깐깐한 양반을 어떻게 구워삶은 거야?”“나도 마 감독님 작품 해보는 게 꿈인데 비법 좀 알려주라.”


초인대전 촬영장에 도착하자 동료 배우들 모두 루드비히에게 몰려들었다.


“음... 그냥 평소처럼 했어요.”


마법으로 세포 하나까지 쥐고 흔들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음... 뭐 하나 물어봐도 되요?”

“무엇이 궁금한 것이냐?”

“마 감독님이랑 미팅 때 어땠어요?”

“너도 그 작품에 눈독들이고 있었느냐?”


평소에 틱틱 거리던 혜성까지 관심을 보이자 루드비히는 마 감독의 위명이 대단한 걸 그제야 실감했다.


“배우라면 당연한 거 아니에요? 무려 이동훅 선배님이나 공우 선배님도 마다하신 감독님인데.”

“글쎄... 편하게 대화 좀 나누다가 대본을 건네주셨지. 그리고 연기한 게 다니라. 여느 미팅이랑 다를 게 없었다.”

“결국은 개성이 답인 건가.”

“아마도?”


예술쪽 직업군들은 각각 가지는 종특이란 것들을 가지고 있는데, 감독이란 종족은 대개 배우들마다 가진 특유의 매력, 개성에 꽂히는 경우가 많았다. 연기를 잘 하건 못 하건 관계없이 캐스팅을 밀어붙이는 일도 비일비재했으니, 듣도 보도 못한 신인들이 혜성처럼 등장하는 건 비단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었다.


혜성이 생각하기에 해인의 연기력은 무난한 수준.

그렇다면 마 감독의 눈에 들 만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것밖에 설명이 안됐다.


그가 이렇게 관심을 보이는 건 그도 소속사를 통해 마 감독과의 미팅을 요청해둔 상태였기 때문이다.


“네 녀석이라면 잘 할 수 있을 게다.”

“엥? 갑자기 웬 칭찬이에요?”

“네 녀석은 칭찬을 해줘도 뭐라고 하는구나.”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다 깊은 뜻이 있으니 마 감독님 만나거든 준비한 거에 이백 퍼센트만 보여 주거라.”


그러면 그렇지.

잘 나가다가 꼭 이렇게 초를 친다니까.

혜성이 도끼눈을 뜨고 해인을 노려봤다.


“보통은 준비한 것만큼 보여주라고 하지 않나?”

“다음 작품에서도 이 몸과 만나고 싶으냐?”

“당연히 만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마 감독님 작품이라면 무조건 해야죠.”

“그래? 그럼 잠시만 보자꾸나.”


루드비히가 한걸음 물러나 혜성을 위아래로 훑었다.


“어디보자. 누가 어울리려나.”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혜성과 어울리는 배역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몸이 정해주는 수밖에 없겠군.

망자들 중 그나마 어울리는 건....


“그래. 여덟 번째 망자, 너로 정했다!”


루드비히가 갑자기 혜성의 양 어깨에 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이게 지금 뭐하는 거예요?”

“이 몸이 특별히 네 녀석을 위해 축복을 내리겠다.”

“이 형이 진짜.”

“네 녀석이 이 몸의 1호 연예인 추종자라 해주는 것이니 영광인 줄 알거라.”


그렇게 루드비히는 혜성을 향해 웃어보이고는 주문을 걸었고, 주문이 끝난 후 혜성에게 말했다.


“마 감독님 작품이 하고 싶거든 주문을 외워라.”

“뭘요.”

“루드비히 가라사대. 윤해인은 얼굴천재 연기천재다.”

“이 양반이 진짜.”

“이 몸은 주문을 알려주었다. 이젠 네 녀석의 선택이니라.”


그 때, 스태프의 외침이 들렸다.


“혜성 배우님! 해인 배우님! 리허설 들어갈게요!”

“네! 갑니다!”


루드비히는 자신을 이상하게 쳐다보는 혜성을 남겨두고 쿨하게 뒤돌아섰다.


작가의말

공지를 못 보신 독자분들이 계실 것 같아 다시 알려드립니다.

보다 안정적인 연재를 위해 연재시간을 밤 10시 5분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제 글을 봐주신 독자님들께 감사드리며, 전 내일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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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드라마 촬영(1) +5 21.08.05 5,485 123 14쪽
6 인터뷰, 첫 촬영 그리고 고사 +11 21.08.04 5,637 134 14쪽
5 첫 리딩, 그리고 인터뷰 +7 21.08.03 6,187 120 13쪽
4 도깨비, 그리고 첫 리딩 +7 21.08.02 7,202 130 14쪽
3 대현자, 배우로 눈을 뜨다(3) +8 21.08.01 8,125 146 13쪽
2 대현자, 배우로 눈을 뜨다(2) +11 21.07.31 9,384 169 15쪽
1 대현자, 배우로 눈을 뜨다(1) +8 21.07.30 13,889 21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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