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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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은 담당 매니저가 되기 전, 꽤 많은 연예인을 거쳤다.
걸그룹도 맡아보고, 남돌 매니저도 해보고, 내로라하는 배우들 매니저도 해보고···.그런 내 경험에 따르면 데뷔 조 '투에니' 애들은 엠-지했다.
애기 티를 벗지 못했단 소리다.
'어리네.'
듣기로 데뷔가 밀려 맴버 전원 스물 초반이라 들었는데 그걸 감안하면 꽤 긍정적인 평가다.
돌판에서 '상큼함'은 필수 요소니까.
'그래서 비쥬얼은 나쁘지 않고.'
이하은을 비롯한 탑 연예인들과 함께 일한 내 눈은 상당히 높다.
그런 내 시선에도 투에니 애들의 외모는 대단히 준수했다.
그중 빨강 머리 여자애는 전형적인 아이돌 센터상이었다.
턱을 쓰다듬으며 나도 모르게 투에니 애들을 분석할 때였다.
김장훈 총괄 디렉터가 소리 없이 다가와 질문했다.
"어때 애들? 괜찮지?"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다들 비쥬얼이 너무 좋은데요?"
"누가 감독했는데 흐흐..."
"이런 친구들이 왜 데뷔가 밀렸던 겁니까?"
김장훈 디렉터가 한숨을 퍽 내쉬었다.
"권 실장도 알잖아? 우리 백학 엔터...다른 분야는 몰라도 걸그룹은 잼병인거. 그래서 밀렸지 뭐. 사실 투에니 얘내도 망하면 사장님께서 걸그룹은 손땔 거란 소문도 있고···. 사실상 얘내가 백학의 마지막 걸그룹이란 느낌이야."
흠.
확실히 김장훈 디렉터의 말대로 우리 백학이 유독 걸그룹 쪽이 좀 약하다.
내부 평가는 괜찮은데 이상하리만치 대중의 시선은 싸늘하다 해야 할까.
뭐, 간판 걸그룹 하나 없다고 해서 백학의 명성에 타격이 입는 건 아니지만 어떻게 보면 자존심이 걸린 문제기도 했다.
그리고 그 자존심이 이 업계에서는 당장의 실적이나 눈앞에 보이는 현실적인 문제보다 훨씬 더 중요할 때가 있다.
그 순간 나는 직감했다.
'씁...귀찮은 걸 떠맡았네.'
백학의 자존심이 걸린 마지막 걸그룹.
그 타이틀이 가진 무게감에 짓눌린 내 어깨 위로 귀찮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어째 실장 빨리 달아준다 싶더라.'
남몰래 한숨을 퍽 내쉬며 투에니 애들을 향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매니지먼트 5팀 권찬 실장이라고 합니다."
멀뚱멀뚱 날 쳐다보던 다섯 명의 소녀 중 한 명이 질문했다.
"실장님이 저희 매니저예요?"
"아뇨. 매니저는 제 옆쪽에 있는 이분."
얼어붙어 있는 이예지를 자연스레 끌어당겼다.
어깨를 움찔, 떤 이예지가 동공 지진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아, 안녕하세요! 이번에 새로 들어온 로, 로드 매니저 이,이예지라고 합니다!"
살짝 놀랬다.
이예지 씨, 단 두 마디 인사에 삑사리가 몇 번 난거지?
모르는 사람이 봐도 긴장한 티가 역력했다.
헌데 그 어리숙함이 투에니 애들한테는 호감으로 작용한 모양이다.
"허헐! 언니가 우리 매니저예요?"
"몇 살이에요 언니!"
"우리 이제부터 같이 사는 거예요?"
"언니 언니! 인별 아이디 뭐예요? 팔로우해도 돼요?"
물 만난 물고기처럼 투에니 애들이 이예지를 향해 달려들었다.
당황한 이예지가 어쩔 줄 몰라 했다.
울먹이는 시선으로 좀 도와달라는 제스쳐를 보냈는데 깔끔히 무시했다.
'담배 마렵네.'
이예지 씨가 비흡연자라 강제 금연 두 시간째다.
슬슬 니코틴이 땡겼다.
'원래라면 참는 게 맞는데···.'
힐끔 시선을 돌렸다.
김장훈 총괄 디렉터가 보였다.
본부가 다르다지만 총괄 디렉터면 실장인 나보다 훨씬 윗줄에 있는 사람이다.
예전의 나라면 이런 상급자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 담배를 피운다는 생각은 꿈도 못 꿨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왜일까.
어차피 퇴사할 마당에 담배 한 대 태우는 데에 이렇게 큰 고민을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 순간 둥근 내 성격이 다시 각이 졌다.
"디렉터님. 정말 죄송한데, 담배 한 대 태우고 와도 되겠습니까?"
"담배? 권 실장 흡연자였어?"
"죄송합니다. 얼른 피고 오겠습니다."
"어휴! 담배 끊어! 젊을 땐 몰라도 나이 들면 고생한다?"
잔소리를 좀 듣긴했지만 의외로 쉽게 허락이 떨어졌다.
꾸벅 고개를 숙인 후 흡연장으로 향했다.
"···. 후."
니코틴이 들어가자 막혀있던 가슴이 뻥 뚫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필터를 정확히 세 번 빨았는데 장초가 반 초가 되어버렸다.
재를 한 번 털어낸 나는 중얼거렸다.
"어우...이제야 좀 살 것 같네."
다시 필터를 빨아 반 초를 꽁초로 만들어버렸다.
담뱃불을 비벼 끄고 입고 있던 재킷을 펄럭였다.
아직 데뷔 전이기 하지만 그래도 걸그룹 애들이랑 있는데 담배 냄새가 나면 뭐하니까.
그렇게 담배 냄새를 적당히 빼고 연습실 문을 열었을 때였다.
김장훈 총괄 디렉터의 손이 누군가의 엉덩이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게 보였다.
"?"
헛것을 봤나?
아니다.
그도 그럴 게 김장훈 디렉터는 내가 들어온 지금도 남의 엉덩이를 주무르고 있었으니까.
시선을 좁힌 나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것 봐라?'
투에니 빨강머리.
센터 비쥬얼이라 생각한 여자애의 엉덩이를 김장훈 총괄 디렉터가 떡처럼 주무르고 있었다.
***
이 바닥에 있다 보면 별의별 꼴을 다 본다.
연예계 바닥이 괜히 더럽다고 소문이 난 게 아니다.
그래서 가끔은 본 것도 못 본 척해야 할 때가 있고, 들은 것도 헛소리라 치부해야 할 때가 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기로에 서 있었다.
"수고했어 권실장."
"디렉터님이야 말로 고생많으셨습니다."
"다음에 밥 한 끼 하자고."
"법카들고 찾아뵙겠습니다."
김장훈 디렉터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몸을 돌렸다.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나는 중얼거렸다.
'무섭네.'
그래.
말 그대로 좀 무서웠다.
저 사람 좋아 보이는 김장훈 디렉터가 바깥에서 남의 엉덩이를 보란 듯이 주무르다니?
그것도 데뷔조 연습생 엉덩이를 말이다.
'볼륜? 스폰?'
김장훈 디렉터는 미혼이다.
그리고 투에니 센터 비쥬얼, 빨강 머리의 나이는 고작 스물.
나이 차이가 20살이나 나는 데, 세기의 사랑일 리는 없었다.
'스폰이네.'
흔한 일은 아닌 데, 그렇다고 해서 일어나지 않는 일도 아니다.
미간을 살짝 구겼다.
가볍게 보이던 상황이 단숨에 복잡하게 꼬여버렸다.
그때 김장훈 디렉터가 불쑥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아, 그런데...내일부터 이예지 씨 바로 투입되는 거야 권 실장?"
표정 관리를 하며 대답했다.
"네. 데뷔 전이라 하지만 그래도 신입 로드라서 친분도 쌓을 겸 매일 출근시킬 것 같습니다."
"아이고, 이제야 좀 살겠네. 애들 보살펴 줄 사람이 없어서 죽어 나갔는데."
그런 사람이 데뷔조 연습생 엉덩이를 주무르나?
...문득 든 생각을 억지로 지웠다.
"진짜 가보겠습니다 디렉터님."
"그래그래. 얼른 퇴근해. 이 시간이면 차 엄청 막히니까."
몸을 돌려 연습실을 빠져나갔다.
투에니 애들에게 붙잡혀 있던 이예지가 허둥지둥 따라나섰다.
힐끔 시선을 돌리니 기가 다 빨려 흐물흐물 녹아내린 1일차 새끼 로드가 보였다.
김장훈 디렉터와 투에니 빨간 머리를 머릿속에서 지우며 이예지에게 말을 걸었다.
"예지 씨."
"···. 네? 실장님?"
"할만했어요?"
영혼이 빠져있던 이예지의 눈이 살짝 커졌다.
마치 내가 먼저 말을 걸지 몰랐단 사람처럼.
"어,어...네넵! 할만했습니다!"
"다행이네요. 적응 못하면 어쩌나 했는데."
"그...투에니 분들이 너무 잘 대해주셔서···! 적응 잘한 것 같습니다!"
말을 고르는 게 웃겨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이예지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어...실장님 방금 웃으셨죠?"
"네. 이예지 씨 말투가 웃겨서."
"···. 네? 제 말투가 웃기다뇨?"
"노린 거 아니었어요?"
"아, 아닙니다! 노린 거 아니었어요!"
"이예지 씨, 개그에 재능 있네."
"저, 저 놀리는 거죠?"
일부러 대답하지 않았다.
이예지가 눈을 흘기며 내 눈치를 봤다.
긴장이 풀리니 표정이 풍부한 여자였다.
'그래. 회사에 있는 동안 그래도 내 팀원인데.'
잘해주지 못할망정 신경은 써야겠지.
회사로 돌아가는 길, 복잡한 머릿속을 잠시 뒤로하고 이예지와 수다를 떨었다.
"아까 보니 긴장 엄청하던데."
"연예인 코앞에서 본 건 처음이라···. 으으. 솔직히 말씀드리면 너무 긴장해서 숨이 막힐 정도였어요."
"투에니 아직 연예인 아닌데."
"어,어···. 그런가요?"
"데뷔 조잖아요."
"그, 그래도···. 데뷔할 거니까 준 연예인? 그런 느낌이죠!"
이예지가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거기다 투에니 분들···. 연습생이라는 생각도 안 들 만큼 너무 이쁘던데요? 특히 막내 포지션 설채이씨는 와···. 제가 본 여자 중에 가장 예뻤어요!"
은근슬쩍 화제를 돌렸다.
"빨강머리."
"?"
"빨강 머리 친구는 어땠어요?"
이예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빨강 머리라면...박규리씨요?"
"네. 리더로 뽑혔다는 그 박규리."
"으흠...박규리 씨도 비쥬얼은 엄청났던 것 같아요."
"그리고요?"
"...사실 박규리 씨하고는 이야기를 잘 못해서 무슨 느낌인지까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까칠하단 소리네.
이예지의 설명을 내식대로 해석한 후, 차를 세웠다.
"오늘 고생많았어요 예지 씨."
"저,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실장님!"
"곧바로 퇴근해도 될 것 같아요."
"넵! 알겠습니다!"
싱글벙글 웃음꽃을 핀 이예지를 뒤로하고 나도 곧바로 퇴근했다.
물론 퇴근만 했다 할 뿐이지, 머릿속에서 김장훈 디렉터와 빨강 머리 박규리가 떠나지 않았다.
"직업병 짜증 나네."
결국 잊는 걸 포기하고 고민에 잠겼다.
이 사건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
'가장 쉽고 빠른 건 회사에 알리는 건데.'
하지만 물증 없이 알렸다가는 후폭풍을 맞을 것이다.
무려 백학의 마지막 걸그룹이 될지도 모르는 투에니의 총괄 디렉터의 스폰 사실이니까.
잘못 건드렸다가는 나뿐만이 아니라 매니지먼트 5팀이 출렁일 것이다.
"결국 덮는 게 무난하긴 한데...'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그랬다.
총괄 디렉터와 투에니 빨강 머리가 스폰이건 불륜 관계건, 퇴사할 마당에 뭐가 걱정인가.
'목표는 어차피 투에니 데뷔니까.'
오히려 스폰관계면 데뷔는 일단 확정이니까 내 쪽에서는 좋았다.
그 뒤에 문제가 생길 게 뻔해 보였지만, 내 알 바가 아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몰라도 오늘 본 투에니 애들의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아직 데뷔도 안 했는데 매니저가 붙었다고 애들처럼 좋아하던 모습이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다.
양심과 가책.
그 기로 어딘가쯤에 서서 중얼거렸다.
'확실한 물증만 있다면.'
김장훈 디렉터와 투에니 빨강 머리의 스폰 사실을 입증 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가 있다면, 조금 더 판을 키워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물증을 어떻게 찾아?'
그래.
이게 문제다.
두 사람의 스폰 사실을 입증 할 물증이 내게 없었다.
그러니 이 사건은 덮는 게 맞다.
적어도 오늘 아침까지는 이렇게 생각했다.
퉁퉁 부운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깨니 문자 한 통이 와 있었다.
-[국제발신(첨부 파일 그림)]
-[연습생 박규리/김장훈 디렉터]
실소를 터트렸다.
"이게 뭐야?"
아침부터 국제번호로 날아온 메시지에 김장훈 디렉터와 빨강머리의 스폰 사실을 입증 할 증거가 첨부되어 있었다.
두 사람이 서로 물고 빨고 하는 게 확실히 찍힌 사진 말이다.
그 순간, 잠을 설치면서까지 했던 결심이 흔들렸다.
하지만 사건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 실장님. 어제 온 새끼 로드, 그 장현수란 놈 탈주했는데요?"
우리 탑스타 여배우, 이하은 님께서 기록을 세우셨다.
담당 매니저를 무려 하루가 지나지 않아 내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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