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신 아니라니까
소문만 무성했던 수호신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세계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의미로 들썩였다.
자신들이 생각하고 모셔온 신과는 달라서 당황스러웠지만, 오히려 그 점이 더더욱 크게 와닿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저 신이 있다고 믿어왔던 것과 달리 수호신은 현실에서 직접 그 힘을 행하고 있지 않은가.
안전하게 보호받기만 하는 대한민국을 빼더라도 수호신이 개입해서 인간을 구해준 일은 몇 번이나 있었다.
유럽과 아시아의 대지진처럼 재앙에서도 살아남은 사람들은 기적을 경험했기에 수호신의 존재를 더 환영하며 반겼다.
죽을 위기에서 목숨을 구원받았으니 찬양하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 하물며 가뭄이 든 나라는 물을 채워주고 각 나라는 농경지까지 만들어주지 않았나.
비록 인구 전체가 풍족하게 먹을 양은 안 되더라도 많은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수호신의 존재를 믿고 반긴 건 아니었다.
“수호신인지 악마인지 어떻게 알아?”
“신이면 뭔가 성스럽고 위압감이 넘쳐야 하는 거 아니야?”
“수호신이면 지켜줘야지!”
“인간일 거야. 초능력 같은 특별한 힘을 가진 인간이 분명해!”
“무턱대고 믿으면 안 돼. 언제 또 마음에 안 든다고 죽일지 모른다고.”
기현상으로 기반이 무너진 사람, 가족을 잃은 사람, 기존의 종교인들, 종말을 바란 사람,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 등등.
그들은 내심 반감을 품고 있었기에 수호신이라는 존재를 극구 부인했다. 하지만 그런 그들도 당당하게 주장하지는 못했다.
혹시라도 수호신이라는 존재가 그걸 듣고 자신들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렇게 일부가 불만을 속으로만 품고 있을 때 각 나라는 정치인부터 시민까지 자발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경고문을 정치와 연관된 자들만이 봤다면 이번에는 중국 영상과 함께 지구에 사는 모든 인간이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큰 변화를 보인 건 의외로 중국이었다. 이번 영상이 제법 충격이었는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각 지자체로 모여든 것이다.
그리고 장첸을 중심으로 여전히 넘치는 인력이 투입되며 대대적인 복구 작업과 사회기반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자잘한 쓰레기와 폐기물은 도시마다 한곳에 지정해 모으고 한편에서는 정화조, 하수도, 화장실 공사가 대대적으로 시작됐다.
게다가 더 놀라운 건 중국답지 않게 공사 하나하나가 날림이 아니라 견고하고 튼튼하게 지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 덕분에 중국은 하루가 다르게 달라졌다. 거리는 쓰레기 없이 깨끗해졌고 반대로 식당이나 식품 공장은 위생점검으로 곡소리가 흘러나왔다.
무엇보다 이주민들이 주거지를 임시로 배정받고 과거보다 높은 임금을 받고 일을 할 수 있게 되자 사람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먼저 나서서 일거리를 찾았다.
임시라 하나 정부에서 중심을 잡고 이끄니 국민도 군말 없이 따르게 된 것이다. 그렇게 중국 곳곳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활기를 찾아갔다.
*
“아이고, 지친다.”
[수고하셨습니다.]
당연히 수고했지. 설마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 대형 균열이 생길 건 뭐람.
그 바람에 모래가 지하로 빨려 들어가는 바람에 자칫했으면 모래 속에 파묻힐 뻔했다.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내가 언젠가는 이놈의 사막 다 없앤다.”
[사막 좋아하지 않았습니까?]
“좋아하지. 그래도 지구에는 사막이 너무 많다고.”
[그렇긴 하죠.]
“그나저나 나일강도 많이 말랐던데.”
[심각하다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아마 이 상태가 1년만 지속해도 한반도를 제외하고 강이란 강은 다 바닥을 드러낼 겁니다.]
“끔찍한 소리네.”
강줄기 하나가 마르면 제일 먼저 타격받은 건 역시나 생명체다.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 곤충, 수목, 어류 등.
땅이 죽어갈 테니 농사를 짓는 건 고사하고 모든 생명체가 힘을 잃어갈 것이다.
그렇다고 마법으로 기후 조작해서 마구 뿌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에르다가 비를 뿌리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하, 진짜 답이 없군. 의지만 있으면 마력 팍팍 사용할 텐데.”
[그래도 메콩강은 살렸지 않습니까.]
“그래 봐야 임시방편이잖아.”
[그건 그렇죠.]
진짜 수작업이라도 해야 하나. 안 그래도 홍수 피해도 급격하게 늘어난 것 같은데 그쪽 물을 일일이 옮겨야 할지 고민이었다.
“이브, 사하라 주변으로는 홍수 없어?”
[그쪽은 없습니다. 이집트를 비롯해 홍수 지역도 지금은 비가 멈췄고요. 대신 스페인과 프랑스 쪽이 폭우 피해가 빈번해졌습니다.]
“그래? 그럼 일단은 그쪽으로 가보자.”
[나일강 채우시게요?]
“응. 저대로 놔두면 몇 달도 안 걸려서 바닥을 보일 것 같아.”
[중간에 비가 올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럼 좋은데 안 올 수도 있잖아. 언제 올지 모를 비를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럼 에르다를 시키시죠.]
“나도 그러고 싶지. 그런데 지금 그 녀석 부르면 진짜 난리 칠 거 같은데.”
[굳이 당장 부를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아직 강이 바닥을 드러낸 것도 아니니까요.]
하긴, 그 정도 여유는 충분했다. 설마하니 그사이에 강이 전부 마르지는 않을 테니까.
“그래도 홍수는 해결해야 할 것 같은데.”
[피해가 커지면 가시죠. 그리고 지금 남은 물이라면 강바닥에 균열만 안 생기면 충분히 버틸 겁니다.]
“야! 너 진짜 입방정 떨지 말라니까?”
[괜찮을 겁니다. 아마도.]
그게 뭐야, 이 자식아! 우진이 울컥해서 따지려다가 곧 바뀐 주제에 멈칫했다.
[그보다 안 궁금하십니까? 수호신에 대한 반응 말입니다.]
“수호신 아니라니까.”
[당연히 아니죠. 악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인간 대부분이 수호신으로 믿고 있습니다.]
지랄도 참. 무슨 수호신이 허구한 날 쓰레기 치우고 농사짓고 뒷수습하고 다니느냐고.
“그래서 중국은 어떤데?”
[놀랍도록 변하고 있습니다.]
“응? 변해? 중국이?”
[예. 장첸하고 그 자리에 참석했던 인원이 마음 단단히 먹고 밀어붙이고 있죠. 그리고 시민들도 자발적으로 청소하고 지시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정당한 임금을 받고 일을 할 수 있는 데다 임시 주거지 또한 준다는 말에 나선 것도 있습니다만, 대부분이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무섭기도 하고 돈도 벌 기회라 알아서 척척 하고 있다는 말이구나. 이유야 어찌 됐든 나쁘지 않다. 진작 그랬으면 좀 좋아?
“할 수 있으면서 그동안은 왜 안 한 거야.”
[그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니까요. 문화적인 차이도 큽니다.]
“알지. 아는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잘못된 거라는 것쯤은 알잖아?”
모르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 상식적으로 치부를 드러내고 아무 데서나 볼일을 본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
하물며 위생 면에서는 최악이기도 하고. 한국도 과거에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다지만, 위생 개념을 알고부터는 변하기 시작했으니까.
[한국처럼 화장실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기저귓값이나 위생용품의 가격도 서민에겐 벅찼을 겁니다.]
“쯧, 그 부분은 이해하더라도 그놈들은 그냥 천성이 그래.”
위생 관념 자체도 없고 질서도 없고 부끄러움도 없었다. 애초에 어릴 때부터 그리 교육받아왔으니 당연하겠지만, 근본적으로 뜯어고치지 않는 이상은 완전히 변하지도 않을 것이다.
“얼마 안 가서 또 습관이 나오겠지.”
[그럼 그때는 또 처리하면 그만입니다.]
하긴, 굳이 이러쿵저러쿵할 필요가 있나. 살아남고 싶으면 알아서 변할 테니까 지켜보면 그만이었다.
“다른 나라는?”
[공산주의 국가는 우선 민주주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자국민의 협조도 좋고요. 경고문이 제대로 먹혔습니다.]
“나름 잘하고 있나 보네.”
[목숨보다 귀한 건 없으니까요. 그리고 다른 나라도 피해복구에 힘을 쓰고는 있습니다만, 피해가 워낙 심각해서 다소 진도가 느립니다.]
“일본은 어때? 그놈들 경고문 제대로 지키고 있어?”
[이렇게까지 빠른 일 처리는 처음 봤습니다.]
“엥? 그놈들이 빠르다고?”
[예. 급하니까 그리 고집하던 아날로그도 버리던데요?]
그 정도야? 와, 중국이 변한 것만큼이나 놀랍네. 농경지로 후쿠시마 땅 전체를 내놨을 때는 괘씸했는데 말이지.
“내가 그 구멍 메꾸느라고 고생한 거 생각하면 아직도 화가 나.”
[그래서 농경지로 선택한 겁니다. 음흉하죠.]
그러니까 말이야. 하여간, 마음에 안 드는 족속이라니까.
[그래도 제법 정신 차렸습니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서점이고 일반 가정집이고 할 거 없이 혐한 서적과 왜곡 서적은 다 불태우고 있으니까요.]
“그냥 죽기 싫은 거잖아.”
[그렇죠. 그리고 정부는 역사 왜곡에 관련된 건 교과서, 지도, 자료, 고서적 할 거 없이 수정하거나 폐기하고 있습니다. 또 원폭 피해자 흉내도 수정하고 교토에 있는 코 무덤도 없애면서 신격화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자료를 수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많은 걸 한꺼번에 하고 있다고?”
[그러니까요. 정말 놀랍도록 빠른 일 처리죠.]
일본인 유전자에 빠른 일 처리라니 도저히 안 믿긴다고. 막상 경고한 일이라 해도 차일피일 미루다가 내심 얼렁뚱땅 넘어갈 줄 알았는데!
그때 가서 또 한바탕 솎아내려고 했었는데 뭐냐고.
“도대체 왜 변한 거야?”
강자 앞에서 납작 엎드리는 습성이 나온 건가.
[안 그래도 눈물을 머금고 수정 중입니다.]
“눈물씩이나?”
어지간히 억울한가 보다. 정작 어떤 부분을 수정하란 말도 안 했는데 그걸 하고 있다는 건 본인들도 잘못이라는 걸 알고 있다는 말이 아닌가. 그런데 그게 억울할 일이야?
“미친 것들이 웃기지도 않아.”
[잘못 수정하는 부분은 어떻게 할까요?]
“뭘 어째? 어디 그놈들이 어디까지 수정하는지 보자고. 자료 싹 보내. 지켜본다는 경고도 하고.”
[기겁할 것 같은데요.]
그러든지 말든지.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해야지. 만약 자료를 보고도 제대로 수정 안 하면 다시 라이를 보낼 참이다.
“그것들은 여유를 주면 안 돼.”
워낙 음흉한 놈들이라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이제 나머지 아시아 처리하러 가시죠.]
안 그래도 갈 거라고. 우진이 짜증스레 혀를 차다가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멈칫하며 핸드폰을 확인했다.
“좀만 기다리라니까.”
그새를 못 참고 또 전화다.
[나름 기다려준 겁니다.]
“알아.”
그 성격에 경고문 보자마자 연락할 줄 알았는데 지금에서야 하는 거 보면 확실히 기다려준 건 맞았다.
그렇다고 마냥 피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한숨을 내쉬며 정말 귀찮다는 표정으로 전화를 받았다.
“왜?”
-전화 받는 싸가지 봐라.
“됐고. 뭔데?”
-너지?
밑도 끝도 없이 말하지 말라니까. 뭐 무슨 말을 할지야 뻔하지만.
“제발 좀 알아듣게 말할래?”
-너잖아. 그 영상 속 수호신.
아예 확신하는구나. 목소리에 마력을 담아서 어지간하면 구분하지 못할 텐데?
‘이브, 내 목소리가 표가 났어?’
[처음부터 의심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아무리 마력을 담아도 목소리가 달라지는 건 아니죠. 그리고 말투에서 알아차린 겁니다.]
‘아, 이런.’
그걸 생각 못 했네. 하도 성질이 나는 바람에 경고 차원에서 보여준 건데 그걸 또 알아차리냐. 그렇다고 수긍할 수도 없고.
“너 어디 아프냐? 왜 전화할 때마다 헛소리야?”
-너 맞잖아. 내가 네 목소리를 모를까? 사람 깔보는 말투. 비꼬면서 성질 박박 긁는 것도 모자라 짜증 나면 팩폭 날리면서 들이받고 보는 말투! 딱 강우진이던데?
“미쳤지? 그럼 내가 사람들이 말하는 수호신이라도 된다는 거냐?”
-될 수도 있지.
“허,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나 평범한 인간이야. 네놈 친구 강우진이라고 미친놈아.”
[평범이 다 얼어 죽었군요.]
넌 조용히 해!
-알아. 아는데 수호신이 그리 재수 없는 말투를 사용한다는 게 더 웃기지 않아?
“···딱히 재수 없는 말투는 아니던데.”
-자기 위안하면 편하세요?
“아니라고.”
-그래. 아니라고 치자. 아무튼, 이래저래 많이 바쁜 것 같으니까 마음 넓은 내가 이해하고 넘어가 주마.
뭘 넘어가? 뭘?!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마라, 진아.
이 자식은 왜 갑자기 무게 잡고 지랄이야. 아니 그보다 이 정도까지 확신한다는 건 더 핑계 대봐야 믿지도 않을 터라 우진은 어느새 끊어진 전화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내 말투가 그리 표가 나?”
[평소대로 짜증을 많이 부리긴 했죠.]
“웃기시네. 너도 짜증 나서 수긍했잖아?”
[글쎄요. 기억에 없는데요?]
무슨 소리! 목소리에서 짜증이 그득그득 묻어나던데?
[저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차분한 성격이라 짜증이라는 건 모릅니다.]
무슨 헛소리를 그리 진지하게 하냐? 그래서 그 오랜 세월 동안 주야장천 시비만 걸었고? 물론, 그것 때문에 인간성을 유지하기는 했지만, 방법이 잘못됐다고!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 고 했지.”
[내가 주장하는 게 곧 진실이다, 도 있죠.]
“뭔 개소리야? 그건 누가 한 말인데?”
[위대한 차원 시스템 이브님 말씀입니다.]
그만해, 미친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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