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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미달 님의 서재입니다.

라이칸슬로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다미달
작품등록일 :
2022.08.01 22:22
최근연재일 :
2023.03.28 22:20
연재수 :
13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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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17
추천수 :
514
글자수 :
1,060,207

작성
22.10.22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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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추천
4
글자
23쪽

보름달이 떠오르고 (4)

DUMMY

쿠쾅!

땅이 무너져도 이런 소리가 날법 할까 싶을 정도의 굉음.

그와 동시에 두 괴물을 중심으로 흙먼지가 화악, 하고 주변을 휩쓸었다.

사람들은 잔뜩 먼지를 뒤집어쓴 채로 제각기 넘어졌다.

여기가 돌풍이 부는 사막 한가운데가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기침을 하며 일어난 사람들은 곧 제 눈을 믿기 어려운 광경을 목격했다.

붉은 괴물, 지파이가 땅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아간의 모습.

상식이 파괴되는, 이해가 몰이해로 바뀌는 장면이다.

괴물이 두 마리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서로 같은 편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 두 괴물은 협력하기는커녕 싸우고 있다.

정확히는 아간이 지파이를 대뜸 때린 것이었지만.

이를 정확히 목격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만큼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다들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아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숨 쉴 때마다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때문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더욱 사색이 되어 물러난다.

그러나 무시무시한 겉모습과 달리 아간은 사실 여유로웠다.

낯선 땅을 구경하는 이방인처럼 천천히 둘러보고 있을 뿐이었다.

피, 마을, 먹잇감, 많다, 괴물, 나랑, 같아, 집, 부서진, 기사, 낯익은 냄새.

수많은 정보가 단편적인 단어로 치환되었다.

사람을 먹잇감으로 바라보는 관점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간은 마냥 살육하는 대신 담담히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목초지에 펼쳐진 양 떼를 바라보는 배부른 늑대처럼.

일단 주시하고는 있으나 허거짐이 없으니 굳이 사냥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그런 상태.

고로 아간은 가을 내음이 서린 냄새를 한 번 들이마시고는 곧 흥미를 잃고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양들이 어떻게 바라보건 늑대는 관심이 없다.

먹잇감들의 목숨줄을 쥐고 있는 건 단연 포식자였으므로.


"크아, 아!"


지파이가 분노에 찬 눈으로 아간을 노려보았다.

얼굴에 정통으로 맞은 탓인지 정신이 혼미해 보였다.

그러나 주체 못하는 살기는 여전히 넘실거리며 흐르고 있었다.


'재료. 약의 재료.'


자신이 왜 이곳에 왔는가.

그 의미를 다시금 확인한 아간은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번개같이 내리밟은 발. 목표물은 볼 것도 없이 지파이의 머리였다.

예상하고 있던 것처럼 머리를 옆으로 젖혀 피한 지파이는, 다리를 길게 내뻗는다.

뻑!

그대로 공중으로 치솟아 오른 아간.

턱이 얼얼한 걸 보니 발뒤꿈치에 가격 당한 듯하다.

사람 머리였다면 진작 터져 나갔을 공격.

아간은 아무렇지 않게 공중에서 몸을 바꾸더니 헛간 지붕에 올라탔다.

위태롭게 흔들리는 헛간 안에서 사람 비명 소리가 새어 나왔다.

누가 숨어 있기라도 한 걸까.

물론 관심을 갖는 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아간도 싱겁다는 얼굴로 쓱 내려다보고는 다시 지파이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원래부터 붉은 털이었기에 사람의 피로 흠뻑 젖어 있다 한들 외형적으로 달라진 점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상한, 냄새.'


공기 중에 퍼진 향기에서 뭔가 이질적인 것이 섞여 있었다.

미약한 냄새였기에 별거 아닌 거라 치부해도 될 테지만.

절로 구토가 나올 만큼 역겨웠기에 도저히 무시할 수가 없었다.

슬쩍 시선을 돌린 아간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경멸해 마지않는 광석이 새파랗게 빛나는 것을 발견했기에.

일찍이 라자살라에게 소개받았던 바로 그 광석, 월장석.

그 가증스러운 광석이 지금, 검의 모양으로 변해 있었다.

본능이 여기서 얼른 벗어나라 외쳐댔다.

네가 아무리 강하다 한들 저 광석을 이기진 못할 것이다.

그러니 떠나야 한다. 누구도 찾지 못하는 곳으로..


'닥쳐.'


아간은 처절하게 울부짖는 본능을 내리눌렀다.

지금은 그런 것에 집중할 시간이 아니었다.

지파이가 털을 휘날리며 자신에게 격렬히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와자작!

헛간이 전망대와 같은 꼴로 변해버렸다.

형체도 알 수 없게 박살이 난 것이다.

안에 있던 자도 같은 꼴이 되어 있으리라는 건,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겠지.

높이 뛰어오른 아간은 그 상태 그대로 밑으로 떨어졌다.

어느 생명체보다도 무거운 중량을 지니고 있었기에 떨어지는 속도는 눈으로 좇기 힘들 만큼 빨랐다.

그래서 헛간을 들이받은 여파로 머리를 부여잡고 있던 지파이는.

위에서 떨어지는 아간을 고스란히 몸으로 받을 수밖에 없었다.


"카아아아-!"


두 괴물은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보는 사람들도 무의식적으로 인정할 만큼 그 차이는 어마어마했다.


"대체,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드러스드가 혼이 빠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무뚝뚝하기로 소문난 드러스드가 저런 얼빠진 얼굴을 하는 건 쉬이 볼 수 없었다.

평소였다면 잔뜩 골려주었을 줄리델.

그러나 상황이 상황인지라 전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도 같은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목숨을 걸고 임해도 결코 이길 수 없을 것 같던 붉은 괴물.

그런 괴물을 저 검은 라이칸스로프가 갖고 놀고 있었다.


'갖고 논다?'


우스운 표현이다.

마치 괴물에게 감정이라도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아니. 감정이 있다는 건 그리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니겠지.

로이벤이 그러지 않았던가.

어쨌든 저 괴물도 보름달이 무너지면 같이 쓰러져 인간으로 되돌아온다고.

저 거체를 직접 보고 있는 사람으로서 여전히 믿기 힘든 일이지만.

정말 저게 본모습이 인간이라면.. 오 신이시여.

어째서 인간이 저런 흉측하고 무서운 괴물로 변할 수 있단 말입니까?

기력이 빠진 줄리델은 벽에 대고 스르르 내려앉았다.

천지가 무너질 것 같은 소음이 어느새 멎었다.

홀연히 떠오른 달빛 아래.

아간이 전망대 잔해 위에 서서 지파이의 머리를 한 손으로 붙잡아 들어 올렸다.

바위쯤은 거뜬히 부수고 남을 악력이었기에 지파이의 관자놀이와 이마에 손가락으로 만든 구멍이 생겼다.

지파이는 두 손으로 아간의 손목을 붙잡았다.

어떻게든 벗어나기 위해 아둥바둥거렸다.

마지막 발악인 걸까. 혼신의 힘을 다하여 온몸을 비틀었다.


"카앗! 카아아!"


본능에 젖어 움직이는 괴물도 비통하다는 감정을 아는 건지 그 어느 때보다 격렬했다.

그러나 아간이 손에 힘을 주는 순간, 모든 소음이 잦아들었다.

전망대를 무너뜨릴 만큼 강인했던 다리가 힘없이 앞뒤로 흔들렸고.

고막을 뒤흔들었던 우렁찬 목소리가 어린아이 옹알이만도 못한 소리를 내며 사그라들었다.

어디선가 훅 불어오는 바람이 두 괴물을 사방에서 휩쓸었다.

그러자 거칠고 빳빳하게 보이던 털이 부드럽게 쓸려 올라갔다.

흔들리는 촛불에 맞춰 움직이는 그림자처럼 검고 붉은 괴물은 쉬지 않고 넘실거렸다.

그러던 찰나, 아래로 떨어지는 지파이.

어찌나 힘없이 떨어지는지 사람들은 옷가지가 땅에 가라앉는 것처럼 사뿐히 내려앉을 거라 짐작했다.

그러나 무력하게 쓰러졌다 한들 지파이 또한 라이칸스로프였다.

지파이는 강한 충격과 함께 땅을 세차게 때려댔다.

죽 늘어진 혀와 부릅 뜬 눈은 기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필시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머리로만 이해했을 뿐 몸은 전혀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다가가려는 사람도 없었고 그렇다고 물러나려는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

뿌리를 박은 것처럼 각자 제자리에 서서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아간이 소리 없이 땅에 안착했다.

이젠 자유자재로 발톱을 넣거나 뺄 수 있었다.

아간은 발끝으로 지파이 머리를 톡톡 쳤다.


'죽었다.'


싱겁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킬레브 때와 비교하면 이건 전투라고 보는 것도 무리였다.

대등한 실력을 가진 자끼리 붙어야 전투인 것이다.


'더, 필요해.'


아직도 넘쳐흐르는 이 힘을 더욱 발산하고 싶다.

야수가 피를 고파하는 게 느껴졌다.

이것 가지고는 부족하지 않은가. 더 날뛰어라, 더 죽여라.

네 존재만으로도 사람들이 벌벌 떨게 만들어라.

감췄던 발톱이 야수의 부름에 따라 다시 밖으로 나왔다.

숫돌로 간 검보다도 예리한 빛깔을 뽐내는 그 발톱은 언제든지 살육할 준비가 되었다는 듯 얘기하는 것 같았다.

아간이 고개를 돌렸다. 두려움에 떨며 바라보는 먹잇감들.

무기를 들어 투쟁의 의지를 엿보이는 자들은 극소수다.

거의 대다수는 괴물의 시선을 감당하는 것도 어려웠다.

천천히 좌우로 주변을 훑어보던 아간이 문득 한 곳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모빈. 정확히는 그의 손에 들린 검이겠다.

기이하다.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보기만 해도 달아났던 이성을 되돌리게 만드는, 그리고 들끓어 오르는 피를 차갑게 만드는 저건 정말 기이한 물건이었다.

그렇기에 증오한다.

나의 앞길을 막기 위해 태어난 저 물건을 증오한다.

이 세상에 결코 있어서는 안 될 물건이 있다면 저것일 게 분명하다.

호승심인가, 치기 어린 오기인가.

상관없겠지. 어차피 부숴버리면 그만일 테니.

아간은 가라앉은 분노를 억지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있는 힘껏 콧잔등을 말아올렸다.

침으로 번들거리는 이빨이 발톱 못지않게 날카롭게 빛이 났다.


"이, 빌어먹을.."


야수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모빈은 사시나무처럼 덜덜 덜었다.

저런 눈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고대의 괴물이나 품었을 법한 눈빛.

그건 피를 품은 생명체라면 반드시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시선이었다.

난 못해. 나는 절대 저런 괴물을 못 이길 거야.

공포에 굴복한 모빈은 힘없이 다미달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걸 본 줄리델이 눈을 부릅 뜨며 황급히 외쳤다.


"모빈! 당장 그거 들어! 모빈!"


안 돼. 저 녀석, 잔뜩 겁먹고 말았어.

저래서야 괴물에게 당장 잡혀 죽어도 이상하지 않으리라.

줄리델은 반사적으로 몸을 내던졌다.

땅에 떨어진 다미달을 들기 위해.

그리고, 이곳으로 달려오는 저 괴물에게 일격을 가하기 위해.

지축이 다시금 뒤흔들린다.

어이없게도 먼저 몸을 내던진 줄리델보다, 뒤늦게 발을 구르며 달려오는 괴물이 훨씬 빠르다.

그럼에도 줄리델은 포기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할 수 없었다.

지금 다미달을 줍지 않으면 앞으로 절대 기회가 없으리라는 걸 알았기 때문인 걸까.

그렇게 다미달을 들어 올린 줄리델. 그러나 하늘은 이미 속수무책으로 어두워져 있었다.

아니. 그건 하늘이 아니다. 괴물의 몸이었다.

어느새 모빈과 줄리델을 가로막고서 우뚝 서 있던 것이다.


"크억!"


바닥에 무수한 무늬를 그려내며 나동그라지는 모빈.

갑옷 상단부분이 안으로 움푹 들어가 있었다.

갈비뼈가 안으로 말려들어간 탓일까.

모빈은 허우적거리며 공기 빠져나가는 소리를 내었다.

이제 괴물이 마지막 일격을 가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카아아아!"


고통에 빠진 소리가 마을을 뒤흔들었다.

아간이 오른팔을 들어 올리고서 신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손목부터 팔꿈치까지 길게 죽 그어진 상처.

깊은 상처는 아닌지 피가 많이 흘러나오진 않았지만.

아간은 주먹을 쥐지도 못하고 단지 손을 떨고 있었다.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신경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읍, 푸우, 하아, 하아.."


알고 보니 줄리델이 다미달을 세우고 있던 것이다.

굳이 아간에게 휘두를 필요도 없었다.

아간 스스로 제힘으로 검을 박아 넣은 꼴이었으니까.

하지만 줄리델은 기쁨의 환호성을 올릴 수 없었다.

얼굴에 피가 한 바가지나 떨어진 바람에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귀는 사방을 향해 열려 있었다.


"지금이다! 일제히 공격한다!"


하늘 높이 퍼지는 맨듀던의 목소리.

지금이 아니면 절대 찾아오지 않을 절호의 기회라는 걸 알아차린 걸까.

맨듀던은 목에 핏줄을 세우고서 돌격을 감행한다.

물론 이길지는 모른다. 솔직히 말하자면 승산은 없다.

앞서 봐왔던 것과 같이 저 검은 괴물은 이전에 마을을 습격했던 녀석보다 훨씬 강했기에.

설령 한쪽 팔을 못 쓴다 해도 자신들은 한 줌 거리도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차피 물러나도 죽음이다. 이길 수 없다 해도 맞설 수는 있다.

그거면 충분했다.

맨듀던은 반쯤 실성한 사람처럼 보였다.

입가에는 이미 거품이 보글보글 끓고 있었고.

달려나가는 꼬락서니는 물가를 보고 좋아하는 정신병자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스스로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이라면 원래 그렇지 않겠는가.

오히려 두 눈 부릅 뜨고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자세를 보인다면, 박수받아 마땅하지 않겠는가.


"뭣들 하냐, 병신들아! 니네 영주님 뒤지게 놔둘 거냐!"


경비조장이 새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소리치더니 발에 땀이 나도록 뒤따라갔다.

그제야 이를 깨달은 몇몇 사람들이 달려나갔고.

그들이 만들어낸 계몽의 바람이 모두의 곁을 훑고 지나가는 건 수 초도 걸리지 않았다.

심지어 집안에 웅크리고 숨어 있던 자들도 문을 와락 젖히며 나왔다.

그들은 장애인이거나 노인이었다.

기껏 우물 물 길을 때 쓸 법한 물통이나 밥그릇 긁어대는 숟가락이 전부였지만 전투 의지는 살벌했다.


"으아아아!"


땅을 발로 연신 두드리며 나아가는 사람들.

자경단원, 병사, 기사, 용병, 마을 사람.

태어난 곳도 온 곳도 다르지만 괴물을 죽이겠다는 마음 하나는 동일했다.

그래서 족히 오십여 명은 되는 사람들이 하나의 괴물을 죽이기 위해 달려들었다.

목숨도 불사한, 최후의 항전이었다.

아간은 다리를 베고 들어오는 이름 모를 기사에게 팔을 휘둘렀다.

요란스럽게 우당탕 넘어진 그 기사는 편안히 누워 있는 걸 택하지 않았다.

걸리적거리는 투구를 벗어던지고는 고함을 지르며 다시 달려들었다.

떨어진 활과 화살 통을 든 병사들이 깍지도 끼지 않고서 화살을 쉬지 않고 쏘아댔다.

그 때문인지 시위를 당기고 놓을 때마다 피가 튀어 볼과 코가 발갛게 물들었다.

무의식적으로 다친 팔로 방어하던 아간은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었다.

다미달이 상처를 준 곳에 화살이 여러 개가 박혀 있었다.


'물러나야 한다.'


목적은 이미 달성했다. 재료를 구하는 게 우선이지 않았는가.

이제 돌아가서 라자살라에게 건네주면 되는 일이었다.


'물러나야 해.'


그렇기에 고민할 필요도 주저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당장 뛰어올라서 숲속으로 들어가기만 해도 저것들은 따라올 수도 없을 테니까.


'물러, 나야..'


그런데, 왜?

주제도 모르고 달려드는 저것들을 상대로, 왜 물러나야 한다는 거지?

도대체 왜!


"네놈들이, 감히 나를!"


괴물의 입에서 포효와 말이 동시에 튀어나왔다.

이상하게 생각할 법도 했지만, 누구도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 화답하듯 사람들도 성난 어조로 고성을 질렀다.

이제 아간은 포악하게 움직였다.

이 무지몽매한 녀석들을 일깨우기 위해서는 직접 보여주어야 했기에.

사람은 결코 괴물을 이길 수 없음을 이 순간에 알려주어야만 했기에.


"커억!"


휘두르는 팔에 두세 명이 동시에 뭉개졌다.

다리로 걷어찰 때마다 서너 명이 날아갔다.

온몸이 흉기나 다름없는 라이칸스로프에게 무장은 따로 필요 없다.

손바닥으로 내려치기만 해도 곤죽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기에.


"이거 놔!"


아간이 각 손에 사람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서로 박치기를 하게 만들었다.

뛰쳐나오는 눈알. 텅 비어버린 눈에서 뇌 조각이 흘러나왔다.

앙 다문 이빨이 문드러지고 척추가 항문을 뚫고 나왔다.

순식간에 고깃덩이로 변한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버린 아간은 다음 희생자를 물색했다.

그때 한 청년이 눈물을 흘리며 달려오는 걸 발견했다.

스물한 살 남짓해 보이는 그 청년은 뭐가 그리 울분에 찼는지 목젖을 보이며 함성을 질러댔다.


"죽어라! 괴물아!"


지파이의 사체를 뛰어넘고 위로 솟구쳐 오른 청년, 고들레이가 아간에게 검을 휘둘렀다.

투박하고 정직하게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어지는 궤도.

그렇기에 어렵잖게 집게손가락으로 검을 잡은 아간은 고들레이를 손으로 낚아챘다.


"놔! 당장..!"


손에 힘을 주자 그대로 터져버렸다.

붉은 과실을 쥐어짤 때 과육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것처럼.

한때 귀여운 막내로 사랑받던 고들레이가 무의미하게 피와 살점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고들레이!"


분노한 용병들이 라돌을 필두로 달려나갔다.

라돌은 본인의 검술 실력을 마음껏 펼쳤다.

그러나 준비된 초식을 채 보여주기도 전에 튕겨 나가버리고 말았다.

그 뒤로 다른 용병들이 연신 들이닥쳤지만 무소용.

어쩌다 한 번 상처를 주었지만 종이에 베인 것처럼 너무도 얕아 성공적이라고 볼 수도 없었다.


"아아.."


바닥에 누워 간신히 고개를 든 맨듀던.

아직 눈에는 의지의 불꽃이 튀어 오르고 있었지만 몸이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는 제 몸을 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실은 다리가 꺾일 대로 꺾여 있었다.

그래서 일어서려고 해도 일어날 수가 없던 것이다.


'빌어먹을.'


맨듀던이 입술을 짓씹었다.

기존의 형체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황폐화된 마을 한복판에 커다란 조각상처럼 우뚝 서 있는 늑대 괴물.

그 조각상을 향해 삼십여 명의 조각가들이 달려든다.

그러나 보다 깊은 예술의 미를 추구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조각가도, 조각상도 그런 것에 관심을 두기보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상대를 처참히 죽일 수 있을지에 온 정신을 기울였다.

살육의 미학.

그것이 전부였다.

문득 머리 위로 무언가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맨듀던은 멍한 얼굴로 뒤를 돌아봤다.

입가에 잔뜩 피를 쏟아내는 한 청년.

그는 날이 무딘 검을 손에 꼭 쥔 채 일어서려고 발버둥 쳤다.

그러나 툭 튀어나온 갈비뼈와 다리뼈 때문인지 쉽사리 일어나지 못했다.

이윽고 힘이 빠진 청년은 흐린 눈으로 맨듀던을 바라보았다.

아니. 그 너머를 보고 있었다.

맨듀던 뒤에 있는, 그러니까 바닥을 쿵쿵 짓밟고 있는 저 괴물을.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기에 청년은 결국 몸을 뉘고 말았다.


"젠장.."


맨듀던의 얼굴에 어느새 좌절이 똬리를 틀고 앉아 있었다.

사람이 죽어나갈수록 검은 괴물은 점차 붉게 변해갔다.

희생자들의 피가 덧칠되고 또 덧칠되었기에.

저 야수는 대체 언제쯤 쓰러질까.

얼마나 찌르고, 베고, 쑤셔야 죽는 것일까.


"신이시여."


어째서 이 땅에 라이칸스로프를 내려준 겁니까.

저런 무도한 괴물이 당신의 아들딸을 죽이는 꼴을 보고 싶으신 겁니까?

그게 당신의 뜻인 겁니까?

고개를 들어 전심을 다해 불러본다.

절망스럽게도 하늘에는 그 흔한 별마저 보이지 않았다.

보름달의 빛이 지나치게 밝아서인 걸까.

사람들을 즐거이 학살하는 저 괴물처럼, 보름달도 별을 포식하고 있는 모양이다.

손으로 흙을 움켜쥐었다.

한계 이상으로 피를 빨아들인 흙바닥은 장대비를 만난 것처럼 질척거렸다.


"저들을 가엽게 여겨주십시오. 더 이상 사람들이 죽는 걸 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니 제발.."


제발, 도와주십시오.

그의 흐느낌은 연이어 터져 나오는 괴물의 포효에 금박 먹혀들었다.

그러나 부질없는 속삭임은 결코 아니었으니.


"아직 끝나지 않았소. 내 뒤를 따라오시오."


굳센 목소리가 위에서 들려왔다.

망연히 고개를 든 맨듀던은 곧 생경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당신은.."


목소리의 주인은 말에 탄 채로 괴물에게 다가갔다.

말은 저 앞에서 괴물이 난동을 부리고 있는데도 전혀 두려움이 없는 듯했다.

나아가는 발걸음 하나하나에 주인의 의지를 담고 있었다.

주인이 검을 옆으로 휘둘렀다.

그건 누구도 증거하지 않아도 스스로 빛을 내는 검이었다.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은빛이 허공에 그려가며 사람들 사이를 지나갔다.

넘어지고 쓰러진 사람들은 문득 빛이 만들어낸 길을 발견했다.

한 명에서 두 명, 두 명에서 네 명. 점차 길을 발견한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는 발을 질질 끌며, 그리고 절뚝이며 길 위에 올라서기 시작했다.

괴물에게 도달하는 데는 수많은 길이 있지만 이 길만큼 확실한 건 없었다.

선도하듯 말을 타고 달려나가는 게티아르.

기어코 침상을 뿌리치고 일어나 전장으로 걸음을 옮긴 것이다.

어두운 밤하늘에 한 줄기 빛을 흩뿌리는 그의 모습은 꼬리별과 같다.

그리고 그 뒤에 다른 꼬리별들이 이를 악물고 뒤따라갔다.


"이제 그만해라, 미친 괴물아!"


안장을 밟고 일어선 게티아르는 다리를 굽히더니 앞으로 몸을 내던졌다.

공격을 막고 쳐내던 아간은 급히 고개를 들었다.

날아오를 것처럼 뛰어오른 게티아르가 한눈에 들어왔다.

아간은 뜨거운 햇빛을 정면에서 본 것처럼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푸욱!

그 결과, 다미달이 어깻죽지를 파고 들어가는 데에 성공했다.


"크아! 크아아!"

"흐읍!"


게티아르는 검을 꽂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검자루를 단단히 쥐더니 사정없이 비틀어댔다.

상처가 좌우로 찢기더니 살이 마구잡이로 타들어갔다.

그러자 뿜어져 나오는 피가 순식간에 붉은 안개로 기화되었다.


"쿠오오오!"


신경이 들끓어 오르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차라리 다미달이 파고 들어간 부위를 잡아뜯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 사이 뒤따라온 사람들이 아간의 몸에 상처를 새겨 넣기 시작한 것이다.

개별적으로 봤을 때는 그건 바늘 찌르기에 지나지 않는 공격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수십 배가 되어 한 점을 공격했다.

난자당하는 다리. 타들어가는 손. 뼈와 살을 쉴 새 없이 파먹는 매서운 공격.

여전히 그들을 죽일 힘을 갖고 있었지만 아간은 이제 하나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푸르르 주둥이를 떨던 아간은 게티아르를 붙잡고 던졌다.

그리고 어깨에 박힌 검을 힘겹게 뽑더니 힘껏 날아올랐다.

커다란 돌덩어리가 땅 떨어진 것처럼 흙 무더기가 사방으로 튀어올랐다.

가공할 각력을 바탕으로 뛰어오른 결과, 높이는 거의 십오 미터 가까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아간은 전혀 성취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럴 시간이 한 발자국이라도 더 도망쳐야 했기에.

쿠웅, 쿠웅..

다소다 숲 귀퉁이가 차례로 무너지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나무가 꺾이고 쓰러지는 소음이 얼핏 들리더니.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침묵에 젖어들었다.

잔해로 가득한 마을에 위로하듯 살포시 지나가는 실바람.

사람들은 열기에 찬 숨을 내쉬며 서로를 돌아보았다.

갑자기 목표물을 잃어서인지 다들 혼란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시작점과 끝점을 알 수 없는 시선이 허공에 배회했다.

그러다 사람들은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한 인물에게 집중되었다.

맨듀던은 살아남은 자들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피와 먼지로 얼룩진 그들의 모습은 승자와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강가에 가서 물로 씻긴 뒤 한 명씩 일일이 끌어안으며 공로를 치하하고 싶다만.

다들 몰골이 말이 아니었기에 짧게 말로 하기로 했다.

맨듀던은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고는 한숨 쉬듯이 말했다.


"우리가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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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름달이 떠오르고 (4) 22.10.22 58 4 23쪽
71 보름달이 떠오르고 (3) 22.10.21 59 4 15쪽
70 보름달이 떠오르고 (2) 22.10.20 62 4 18쪽
69 보름달이 떠오르고 (1) 22.10.19 77 4 30쪽
68 모여드는 자들 (6) 22.10.18 77 4 20쪽
67 모여드는 자들 (5) 22.10.17 81 4 21쪽
66 모여드는 자들 (4) 22.10.15 75 4 18쪽
65 모여드는 자들 (3) 22.10.14 71 4 17쪽
64 모여드는 자들 (2) 22.10.13 71 4 16쪽
63 모여드는 자들 (1) 22.10.11 60 4 15쪽
62 합류 (7) 22.10.10 72 4 21쪽
61 합류 (6) 22.10.09 60 5 19쪽
60 합류 (5) 22.10.07 72 5 19쪽
59 합류 (4) 22.10.06 62 4 17쪽
58 합류 (3) 22.10.05 61 4 18쪽
57 합류 (2) 22.10.04 59 4 14쪽
56 합류 (1) 22.10.03 74 4 14쪽
55 엔라 (6) 22.10.02 65 4 21쪽
54 엔라 (5) 22.10.01 62 4 14쪽
53 엔라 (4) 22.09.30 63 5 20쪽
52 엔라 (3) 22.09.29 73 4 17쪽
51 엔라 (2) 22.09.28 62 4 13쪽
50 엔라 (1) 22.09.27 77 4 13쪽
49 삼 개월 후 (3) 22.09.26 64 4 19쪽
48 삼 개월 후 (2) 22.09.25 66 4 24쪽
47 삼 개월 후 (1) 22.09.24 53 3 18쪽
46 변화 (3) 22.09.17 57 4 17쪽
45 변화 (2) 22.09.16 61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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