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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미달 님의 서재입니다.

라이칸슬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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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다미달
작품등록일 :
2022.08.01 22:22
최근연재일 :
2023.03.28 22:20
연재수 :
13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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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10
추천수 :
514
글자수 :
1,060,207

작성
22.10.19 23:30
조회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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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30쪽

보름달이 떠오르고 (1)

DUMMY

캉!

목을 가르고 지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힘과 궤적이, 앞에 불쑥 나타난 장애물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곁에 있던 도네잇이 얼른 한손 도끼를 빼들어 막아 세운 것이다.

엔라는 실핏줄을 세운 눈으로 흘깃 옆을 쳐다보더니 짓씹듯 말했다.


"그래. 너도 있었구나."


도네잇은 입술을 꽉 문 채 식은땀을 흘렸다.

콧방귀를 뀌며 그럴싸한 말로 되돌려주고 싶었다만.

생각보다 힘이 세서 입을 열기가 쉽지 않았다.


"흡!"


이대로 가다간 밀리겠다 싶은 도네잇은 순간 힘을 주었다.

그러자 일순 팔뚝이 두꺼워지는가 싶더니 엔라를 밀어냈다.

하지만 엔라는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유연한 몸놀림을 선보이며 재주넘기를 한 그녀는 발끝으로 도네잇의 턱을 보기 좋게 걷어찼다.


"컥!"


거대한 체격이 무색하게 뒤로 넘어져 버린 도네잇.

창피함과 분노에 얼굴이 빨개진 그는 이번에야말로 엔라를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그만들 해!"


그때 오카가 도네잇과 엔라 사이를 가로막아 싸움을 중재했다.

그리고 남의 일처럼 시시덕거리며 웃고 있는 게닝에게 따졌다.


"이 상황은 뭐지? 옛 친한 동료라 하더니. 이 정도면 사실 원수 아닌가?"

"난 동료라고 생각했는데 이 아가씨는 아닌 모양이야. 엔라, 대체 왜 그래?"

"닥쳐!"


엔라는 금방이라도 죽일 것처럼 굴었다.

만약 오카가 매섭게 검을 휘두르지 않았으면 당장이라도 달려들었을 것이다.


"난 쓸데없는 분쟁은 피하고 싶다. 우리끼리 싸워봐야 좋을 게 하나도 없으니까."


눈살을 찌푸리며 말하는 오카에게, 게닝은 능청스레 맞장구를 쳤다.


"나도 동의하는 바야."

"조용히 해라, 사냥꾼! 이 여자와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이럴 줄 알고서도 불러들인 거라면 너에게도 당연히 책임이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게닝은 곰방대를 뻑뻑 피워댔다.

뭉게뭉게 퍼지는 연기가 안 그래도 안 좋은 분위기를 더욱 악화시켰다.

한바탕 욕을 퍼부은 오카는 곧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됐어. 그냥 당신들 다 마을로 돌아가. 우리끼리 알아서 할 테니까."

"전문가의 도움도 없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전문가라고?"


반문한 사람은 엔라였다.

기가 막혀 하는 얼굴을 보니 못 들을 말이라도 들은 것 같았다.

게닝은 그런 엔라에게 다가가더니 자못 죄스럽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래. 그때의 일은 사과하지. 나도 막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라 모든 게 어리숙했어. 하지만 이젠 아니야. 우리도 여럿 라이칸스로프를 사냥해왔어."

"뭔 개 같은.."

"이걸 봐라."


게닝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그건 야수의 발톱으로 보였다.

무려 사람 손바닥만 한 길이를 가진 그 발톱은 지금도 날카로워 보였다.


"다들 이보다 크고 거대한 발톱을 본 적이 있나? 없겠지. 곰도 이것보다는 볼품없을 거다. 사냥꾼의 명예를 걸고 약속하지, 이건 확실히 라이칸스로프의 발톱이야."


그걸 본 자경단원들은 저들끼리 뭐라 속삭였다.

수긍하는 얼굴과 고갯짓을 보면 이전에 마을을 습격했던 괴물의 것과 비슷한 듯했다.


"물론 날 믿지 못하는 건 이해해. 겪었던 일이 있을 테니까. 하지만 과거는 과거라고. 난 예전과 달라졌어. 이젠 경험이 풍부한 사냥꾼이란 소리야."


그러나 엔라는 차가운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안 봐도 뻔해. 그것도 분명 가짜겠지. 넌 사기를 치지 않으면 혀에 가시가 돋는 비열한 인간이니까."

"사기라니. 널 믿고 부른 사람을 그렇게 부를 거야, 엔라? 그렇게 계속 반감을 드러내면 내 입장만 난처해져. 설마 그새 잊은 건 아니겠지? 애틋했던 우리의 관계-."


쉭, 하고 재빠르게 움직이는 칼끝.

한치의 떨림도 없이 칼끝이 가리키는 건 게닝의 목울대였다.

파랄과 도네잇이 무기를 뻬들려고 했지만.

게닝이 손등을 보이며 제지했다.


"거기서 입 더 벙긋하는 순간 바로 혓바닥 잘라버릴 줄 알아."


엔라가 살의를 마음껏 드러내었다.

게닝은 애써 어깨를 으쓱여 보이는 것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실은 등골에는 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바뀌어도 너무 많이 바뀌었군.

그때는 그래도 여자다운 면이 있었는데, 이젠 그런 것도 아예 사라져 버렸으니.


"그럼 여기 자경단장님의 입장이라도 생각해 주라고. 어쨌든 우린 오늘만큼은 한 편이야. 괴물을 잡기 위해 모인 거라는 걸 잊지 마."


오카는 얼굴을 찌푸렸다.

상황을 무마하려는 건 좋은데 왜 자신을 끌어들이는 걸까.

이런 일만 아니었다면 그는 엔라가 게닝의 목을 썰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엔라의 날카로운 눈초리를 실실 웃으며 받아내는 게닝.

이윽고 마음을 정한 그녀는 일단 무기를 집어넣었다.

물론 그런다고 묵은 원한이 풀리는 건 결코 아니었다.


"이번 일이 끝나면 당장 도망치는 게 좋을 거다. 안 그러면 바로 죽여버릴 테니까."

"살해 협박을 면전에서 해주다니. 친절도 하셔라."


엔라는 대꾸도 하지 않고 오카에게 돌아섰다.

오카는 옅게 한숨을 내쉬더니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다들 이제 일어나서 움직여. 저녁 굶고 싶지 않으면 얼른 함정들 파라고. 당신은 나랑 같이 움직이지. 괴물이 올 것 같은 길목이 있다면 알려줘."


게닝은 오카와 떠나는 엔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좋아. 계획대로 되고 있군.'


누구도 모르게 씩 미소를 지은 그는 옆에 있는 파랄을 붙잡아 속삭였다.


"저 년이 어디로 가는지 눈여겨 본 다음 나에게 알려라."

"어떻게 하게요?"

"어떻게 하긴."


쇠뇌를 만지작거리는 그의 손길에는 언뜻 비열한 속내가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이 세상에 괴물이 있다는 걸 믿게 해줘야지."



*



해 질 녘, 주홍빛 노을이 푸른 하늘을 몰아내는 이 시각.

원래라면 고단한 일과를 마무리하는 평온한 시각이 되어야 할 때였지만 오늘만큼은 예외인 듯하다.

고즈넉한 배경을 뒤로 한 마을은 당연히 평화로운 분위기가 감돌아야 하건만.

지금은 혈투를 준비하는 투사처럼 긴장된 흐름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길거리를, 두 사람이 나란히 걷고 있었다.

다소 게으르게 느껴지는 그 발걸음은 마치 순시하는 순찰병을 보는 것 같았다.


"없는 듯한데."


왼쪽에 있는 사람이 볼멘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좀 더 둘러보는 게 좋을 듯합니다. 남쪽 목책에 가보죠."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 담담하게 대꾸했다.


"야, 그럴 거면 차라리 마을 사람들을 일렬로 늘어놓고 검사해. 그게 더 낫잖아."

"괴물에게도 눈과 귀가 있습니다. 속셈을 알고서 도망칠 수도 있어요."

"방에 있던 사람 말고는 우리 계획을 모를 텐데 어떻게 눈치챈다는 거야."

"괴물은 알아챌 수도 있습니다. 괜히 괴물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잖습니까?"


이 융통성도 없고 뻔뻔한 자식 같으니. 자기도 다리 아프면서 끝까지 모른 체하는 거 봐라.

그렇다고 앉아서 쉬자고 말할 수도 없었다.

명색이 기사란 자가 먼저 힘들다고 징징거리면 그것도 꼴이 말이 아니었으니.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모빈은 애꿎은 다리만 콩콩 두드렸다.

오늘 두 사람은 하루 종일 마을을 돌아다녔다.

당연히 로이벤이 제의한 방법 때문이었는데 바로 다미달을 허리춤에 꽂은 채 길거리를 걸어 다니는 것이었다.

특히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이라면 더욱 좋았다.

월장석에 취약한 괴물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반응을 보일지 모르니까.

실제로 지파이는 유독 게티아르가 다가올 때마다 얼굴을 찌푸리거나 고개를 휙 돌렸다.

그건 다름 아닌 게티아르가 다미달을 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그와 같은 방식이 이번에도 적용되지 않을까.

하지만 예상과 달리 마을에 이상한 반응을 보인 사람은 없었다.

실로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모빈은 왠지 맥이 빠졌다.

멋진 솜씨로 목을 갈라버릴 작정이었는데.

눈부신 실력을 선보이면 이 버르장머리 없는 조사대원 녀석도 굽신거렸을 텐데.

언짢은 표정으로 제 검 손잡이를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던 모빈.

그러다 문득 로이벤의 허리춤을 힐끗 쳐다봤다.

한낱 조사대원에 지나지 않는 이놈이 감히 주군의 검을 차고 돌아다니고 있다니.

그것도 보통 검이 아닌 고금 어디에서도 쉬이 볼 수 없는 저 명검을 말이다.


'누구는 건드리지도 못했는데 누구는 저걸 갖고 다닌다니. 좀 더 강하게 의견을 표출했었어야 했어. 그랬으면 내가 저걸 차고 돌아다녔을 것을..'

"기사님."


강렬한 눈으로 다미달을 보고 있던 모빈은 순간 정신을 차렸다.

시선을 돌리니 로이벤이 자신을 뚫어지게 보고 있는 걸 발견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했던가.

얼결에 시선을 피해버린 모빈은, 하지만 자존심이 상했는지 다시 고개를 들었다.


"뭘 그리 쳐다봐?"

"별거 아닙니다. 슬슬 날이 진다고 말씀드리려 했습니다."


모빈은 얼굴을 구겼다. 생뚱맞은 말이다.

그에게도 눈이 있으니 만큼 해가 지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로이벤은 친절히 덧붙였다.


"남작님께서 정신이 돌아오셨는지 궁금하군요. 괜찮으시다면 가서 확인해 주시겠습니까?"

"내가 왜? 네가 가서 확인해라. 그래, 차라리 그게 낫겠다. 나에게 검을 줘. 내가 직접 검사할 테니."


모빈은 어쩔 거냐 하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어떤 변명을 하건 다 되받아쳐줄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로이벤이 순순히 가죽끈을 풀고 자신에게 건네주자 모빈은 조금 당황했다.


"알겠습니다. 대신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뭐, 뭔데?"

"되도록이면 검은 뽑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마을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사람들 곁을 지나가실 때도 너무 가까이 가시면 안 됩니다. 어쩌면 괴물이 미쳐 날뛰어 무고한 희생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예 검을 뽑지 않는 것도 별로 좋은 방법은 아닙니다. 의심 가는 사람이 있는 것 같으면 조금이라도 뽑아보는 판단도 필요합니다. 월장석의 빛을 직접적으로 쬐면 더 확실한 반응을 보일 테니까요. 하긴 생각해 보니-."

"그래. 네가 해라. 다 해 먹어라."

"-기사님이라면 이런 것쯤은 알아서 하실 거라고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만, 예, 원하신다면 제가 계속하겠습니다."


로이벤은 말을 끝마치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마냥 사람 좋은 미소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모빈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마치 '이 검이 그리도 탐나더냐? 알겠으니 원하는 대로 실컷 만져라.' 라는 느낌을 받았다.

모빈은 벌건 얼굴을 하고서 부르르 떨었다.

실컷 욕을 퍼부을 것 같던 그는 몸을 휙 돌렸다.


"어차피 난 괴물이 나타나면 죽도록 싸워야 하니까. 부리나케 도망가야 하는 너와는 달리 말이지, 안 그래?"

"그 또한 맞는 말씀이군요. 그럼 기사님 편하실 대로 하십시오. 대신 속히 와주시길 바랍니다. 괴물이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그런 건 나도 알고 있다고!"


여전히 깍듯이 대하는 로이벤이었지만 모빈은 감정을 다스리느라 무진 애를 써야 했다.

결국 모빈은 씩씩거리며 저택으로 걸음을 옮겼다.

누가 맞은편에서 걸어오면 확 밀쳐버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

다행히도-모빈 입장에서는 불행히도-길거리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 많던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갔을까. 로이벤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집집마다 있는 덧문에 하얗고 검은 눈동자가 또르륵 또르륵 굴러가고 있었다.

그들은 도망칠 힘도, 맞서 싸울 힘도 없는 자들이었다.

반면에 조금이라도 힘이 있는 자들은 성별 구분 없이 목책이나 돌담 뒤에 서서 괴물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 옆에는 쇠꼬챙이, 갈퀴, 삽, 벌목 도끼 등 농기구가 놓여 있었다.

용맹한 것인가 객기인 것인가.

변변찮은 무기를 들고서 차례대로 서 있는 사람들.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서 그나마 전술에 대해 알고 있는 자는 게티아르의 호위 기사들이었다.

하지만 한평생 밭 갈고 가축 길들이는 일에만 매진한 사람들이 짧은 시간에 전술을 배운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그들은 별다른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어쨌든 기사 본인들은 괴물의 그림자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이 마을 사람들은 비록 한 번이지만 괴물과 직접 조우한 자들이다.

누가 더 경험이 많은지는 따질 필요도 없을 것이다.

로이벤은 누구에게도 관심을 받지 않기 위해 조용히 사람들 사이를 거닐었다.

다시 한번 더 확인한다는 마음으로 면면을 살펴보았다.

찡그린다거나, 화를 낸다거나, 운다거나, 아니면 갑자기 달려든다거나.

특정한 행동을 보이는 자가 있다면 바로 끌어내릴 준비를 했지만.

결국 방책과 마을을 모두 도는 동안 사건이 벌어지는 일은 없었다.

몸을 긴장시키고 있던 로이벤은 힘이 풀려 잠시 자리에 앉았다.


"여기 있었군."


익숙한 목소리가 그를 불러 세웠다. 애드슈네가 피곤과 긴장을 품은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없습니다. 적어도 제가 느끼기에는."


로이벤이 대뜸 말했다.

뜬금없다고 볼 수 있었지만 애드슈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확실하진 않아요. 남작님의 검을 들고 다닌다 하여 무조건 괴물이 반응할 거라 생각하는 건 무리가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도 격한 반응을 보인 자는 없었다는 말 아니오. 그것만으로도 나에겐 큰 위안이 되는군. 세오르 님께 얼른 알려드려야겠소."

"모빈 경께서 갔으니 따로 가실 필요는 없습니다. 피곤해 보이시는데 일단 쉬시지요."

"아니. 한숨 자고 나니 많이 나아졌소. 그리고 사람들이 마을을 지키기 위해 뜬눈으로 보내고 있는데 기사인 내가 쉬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겠소."


말을 마친 애드슈네는 사람들에게 가볍게 인사를 했다.

아직 괴물을 무찌른 것도 아니었지만 마을 사람들은 애드슈네를 본 것만으로도 벌써 위안을 느끼는 듯했다.


"리건트 기사님은 많이 나아지셨나요?"


마을의 어느 청년이 물었다. 애드슈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스스로 움직이시기는 하니까. 정신이 없을 때와 비교하면 많이 나은 셈이지."

"그분도 같이 있었다면 더욱 힘이 되었을 텐데요."


애드슈네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목책 너머에 있는 숲을 바라보았다.

실력으로만 보자면 리건트는 애드슈네보다 떨어졌다.

하지만 그건 나이 때문으로 경험으로만 보자면 리건트가 한 수 위였다.

그렇기에 애드슈네도 그에게 많은 걸 배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이제 기사 수행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걷는 건 둘째 치고라도 한쪽 팔을 아예 쓸 수가 없었기에.

든든한 두 팔로 마을을 지켜내던 기사, 리건트.

그의 용맹한 마음은 여전하지만 외팔로 마을을 지켜내기엔 아무래도 힘들겠지.

그럼에도 맨듀던은 리건트를 위로하고 크게 치하해 주었다.

그가 앞에 나서서 막아주지 않았다면 맨듀던은 분명 목숨이 위험했었을 테니까.


"게티아르 님은 어떠십니까?"


사람들과 기나긴 인사를 마친 애드슈네에게, 로이벤이 다가가 물었다.


"그분 말이오? 하, 말도 마시오. 빨리 자리를 털고 일어나겠다고 난리도 아니오. 이까짓 부상은 별거 아니라고 말씀하시면서. 나였으면 최소 일주일은 꼼짝없이 누워 있었을 거요."

"혹시 검을 찾거나 하진 않으십니까?"

"음? 아아."


로이벤이 허리춤에 걸린 검을 슬쩍 보여주었다. 애드슈네는 짧게 웃고는 고개를 저었다.


"찾긴 하셨소. 하지만 사정을 말씀드리니 다 이해하시더군. 도리어 당신을 칭찬을 하셨지. 자신이었어도 그렇게 행동했을 거라면서. 섣부른 짐작일 수도 있지만 로이벤, 당신이 도시로 돌아가면 큰 보상을 받게 될 거요."

"살아서 돌아간다면 말이죠."


웃음도 머금지 않고 담담히 말하는 로이벤.

애드슈네는 조금 당황스러운 듯 보였지만 이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살아서 돌아갈 거요. 어쨌든 그 괴물..은 상처를 입었으니까."


애드슈네는 여전히 지파이가 라이칸스로프라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이는 에리티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최대한 덤덤한 모습을 보였지만 실은 아니었다.

과거의 추억을 공유하던 대상이 실은 마을을 박살 낸 원흉이라니.

결코 받아들이기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남작님께서 깨어나셨으니 검을 돌려드려야겠군요."

"저택에 있는 게 좋지 않겠소? 에리티 도련님과 같이 숨어 있으시오."

"그럴 거면 오지도 않았습니다. 어쨌거나 갔다 오도록 하죠."


로이벤은 애드슈네에게 가볍게 목례를 보이고는 서둘러 저택으로 돌아갔다.



*



오늘따라 숲이 낯선 공간처럼 느껴지는 건 착각일까.

오카는 침을 꼴깍 삼키며 어둠에 잠식된 숲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고개를 홱 돌리더니 위를 쳐다보았다.

나뭇잎으로 빽빽이 들어찬 하늘에 언뜻 보이는 별들. 그리고 자그맣게 내려오는 달빛.

불안함을 느낄 만한 구석은 하나도 없었지만 마음은 계속해서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괴물이 나타날 거야! 나타날 거라고!


"이제 돌아가지?"


먼저 목소리를 낸다는 건 그만큼 불안하다는 뜻이었지만, 그럼에도 오카는 말을 건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는 계속 이곳에 죽치고 앉아 있을 것 같았기에.


"이봐, 영주님께 말씀드렸단 말이야. 저녁이 찾아올 즈음에 돌아갈 거라고. 근데 지금은 밤이야. 벌써 달이 떴다고."

"알고 있어."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답한 엔라.

무기를 쥐고 있진 않았지만 손가락을 까딱이는 걸 보면 언제든 꺼내들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오카는 초조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젠장. 함정을 어디다 설치했었지?'


분명 저 길목에 해놓은 것 같았는데.

그러나 워낙 어두워서 어디가 어디인지 분간이 잘 가지 않았다.

다소다 숲이라면 제 집처럼 훤히 꿰뚫고 있는 오카였지만, 지금은 긴장 때문인지 기억에 혼란이 왔다.

간신히 함정이 설치된 곳과 마을로 돌아가는 길을 발견한 그는 이제 기다릴 수 없다고 판단했다.


"혼자서 괴물을 맞이하고 싶은 거라면 말리지 않겠다. 난 돌아가야겠어."


그리고 오카는 엔라가 따라오건 말건 걸음을 옮겼다.

자경단원들에겐 알아서 시간이 되면 복귀하라고 지시를 한 게 다행이었다.

안 그랬으면 계속 기다리고 있을 게 아닌가.

문득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조금 떨어져 있었지만 엔라는 착실하게 오카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쉰 오카.

불길하게만 들려오던 풀벌레 소리가 갑자기 포근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게닝이란 작자는 영 미덥지 않았지만 당신은 뭔가 다른 것 같아. 확실히 괴물을 잡아본 경험이 있는 모양이지?"


대답은 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슬쩍 뒤를 보니 엔라가 커다란 바위에 올라가 사방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러다 날렵하게 밑으로 내려온 그녀는 뒤늦게 대꾸했다.


"아니. 없어."

"없다고?"

"하지만 본 적은 있지."

"어디서?"

"마을에서."


설마 이 마을에서 본 건 아니냐고 쳐다보는 오카.

엔라는 웃음도 보이지 않은 채 말했다.


"내가 살던 마을을 말하는 거야. 여기처럼 그곳에서도 괴물에게 습격을 당했었지. 차이가 있다면 여기와 달리 거긴 불행하게도 무너져 내렸다는 것이겠지만."


오카는 믿기 어렵다는 얼굴을 보였다.


"대체 언제.. 잠깐만. 혹시 붉은 괴물에게 당했나?"

"붉은 괴물?"

"우리 마을로 쳐들어온 괴물은 붉은 털을 갖고 있었어. 혹시 그 괴물이 당신네 마을도 쳐들어 갔나 해서."

"아니. 검은색이야. 똑똑히 기억하고 있지. 보름달이 떠오른 밤은 밝으니까."


그 말은 괴물이 한 마리가 아니라는 소리였다.

그것참 끔찍한 이야기로군.

하지만 더욱 끔찍한 건 그런 괴물이 아직 활보할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당신이 살던 마을은 어디였지?"

"흐노지리. 못 들어봤을 거야. 깊은 산 중에 있을뿐더러 여기서 남동쪽으로 한참 올라가야 나오는 마을이니까. 하슬라 동쪽에 있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편할 거야."


오카의 지리적 지식은 아라가 마을 주변에만 국한되었다.

그 이외에 곳은 행상인에게 주워듣거나 소문으로만 접할 뿐이었다.

다만, 그렇다고 흘려들을 수는 없었으니.


"당신, 이곳 지방 사람이었어?"


절로 경악스러운 외침이 울린다.

푸실 지방 내에서, 이런 일이 과거에 또 있었다니.

게다가 한마을이 궤멸될 정도로 큰 사건이다.

그런데도 아무도 알지 못한다고?

오카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엔라는 덤덤히 말했다.


"차라리 당신네 마을처럼 무너지지 않았더라면,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겠지. 아니, 적어도 생존자가 나 말고도 더 있었다면 그냥 넘어가진 않았을 거야."

"그렇다 해도 말이 안 돼. 그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왜.."

"뭔가 큰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말했잖아.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고. 그러니 마을도 작았고 사람도 많지가 않았지."

"어쨌든 간에 사람이 살던 곳이잖아!"

"턱 없이 순진한 사람이네."


냉소적으로 내뱉는 엔라의 말에, 오카는 괜히 발끈했다.

하지만 상대가 알고 지낸 모든 사람들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사람이라는 걸 떠올린 순간.

그 말은 왠지 오카가 아닌, 엔라 본인에게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 내에서만 살아서 그런지 몰라도, 원래 여긴 그런 세상이야. 자기 일이 아니면 아무런 관심도 없지. 아무리 푸실 백이니 뭐니 해도, 결국 자기가 사는 땅이 아니니까 신경 안 쓴단 말이야."


발끝에 채인 돌멩이가 힘없는 소리를 내며 굴러갔다.

고개를 드니 마을 불빛이 어렴풋하게 들어왔다.


"그러니 스스로 몸을 지킬 수밖에. 아무도 믿지 않고, 또 믿을 수도 없으니 나라도 나 자신을 믿어야 하지 않겠어."


그렇게 말을 끝맺은 엔라를, 오카는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맞는 말이다.

그러니 이렇게 고군분투하고 있는 거겠지.

그럼에도 오카는 이 말만은 해주지 않을 수 없었다.

저기 마을에 있는 사람들을 보라고.

비록 돈을 위해서 혹은 명예를 위해서 왔다지만 어쨌든 믿고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지 않느냐고.

그러니 마을의 진상을 꼭 알렸으면 좋겠노라고 말이다.

하지만 오카는 말을 하지 못했다.

어쭙잖은 위로는 하지 않은 것만도 못하다는 생각 때문이 아니었다.

엔라가 갑자기 등을 밀었던 탓이었다.

급격히 균형을 잃어 앞으로 쓰러지는 오카의 머리 위로 빠르게 지나가는 무언가.

나무에 박힌 그건, 놀랍게도 화살이다.


"무슨..?"


뜬금없는 공격에 멍해진 오카와 달리.

엔라는 빠르게 냉정을 찾고서는 신속하게 무기를 빼들었다.

그리고 저 화살을 누가 쏘았는지 알아차렸다.

저건, 분명히..


'아!'


엔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무리 사고의 흐름과 반사 신경이 빠른 그녀라도 예상에서 한참 벗어나는 일에는 경악할 수밖에 없다.

엔라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려는 오카의 뒤로 나타나는 덩치 큰 남자.

그는 두 팔을 위로 들더니 아래로 강하게 내려찍는다.

마치 장작을 패는 듯한 모습. 그러나 그 밑에 있는 건 결코 장작이 아니다.

명백히 숨을 멀쩡히 쉬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장작이 갈라지는 소리가 아닌 살이 파이는 소리가 들리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끔찍한 소리가 퍼지는 것과 동시에 튀어나가는 살점과 눈알.

소리도, 비명도 내지르지 못한 채 허무하게 쓰러지는 오카와,

그런 오카에겐 눈길도 돌리지 않고 오로지 엔라를 보는 덩치 큰 남자.

그리고 그 자의 이름을 도네잇이라는 걸 떠올린 엔라.

그러나 엔라는 도네잇에게 달려들 수 없었다.

재차 날아오는 화살이 허벅지에 박혔으므로.


"윽!"


원래라면 곧바로 쳐냈을 지도 모를 공격이다.

하지만 급작스러운 전개에 잠시 넋을 잃은 엔라는 판단력이 흐려진 상태였다.

그녀는 저리고 욱신거리는 다리를 이끌며 물러났다.

마음 같아서는 마을로 가고 싶었지만, 그 길목에는 도네잇이 막아서고 있었다.

도네잇은 도끼 날에 뚝뚝 흐르는 피는 아랑곳 않고 실실 웃었다.


'계획된 거야. 이것들 모두.'


언제부터 이 일을 꾸민지는 모른다. 남의 생각을 읽는 능력은 없었기에.

그러나 사람을 죽였으면서도 태평한 모습을 보이는 걸 보면 급작스럽게 이루어진 일은 절대 아니었다.


"이거 어떻게 할까요, 형님?"


엔라가 공격을 하지 못할 거라는 걸 짐작이라도 한 것처럼.

여유작작한 얼굴을 한 도네잇이 어두운 공간을 향해 묻는다.

그러자.


"죽여야지. 사람이 했다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갈기갈기 찢어놔야지."


웃음 섞인 목소리가 나무와 나무 사이에서 노래하듯 들려온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고개를 돌린 엔라.

고통 때문에 시야가 조금 흐렸지만 어렵잖게 게닝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게닝.."

"내 사랑. 엔라. 많이 아픈 것 같은데, 괜찮아? 그렇게 절뚝거려서야 잘 걸을 수나 있을까?"


가소롭다는 듯이 말한 게닝은 껄껄 웃으며 옆에 서 있는 파랄의 어깨에 팔을 올렸다.

즐거워하는 도네잇, 게닝과 달리 파랄은 잔뜩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람을, 죽인다고는 하지 않았잖아요."

"그랬지. 근데 엔라 옆에 꼭 붙어서 떨어지질 않는데 어떻게 해. 억지로라도 떼어내야지."

"하지만.. 이건.."

"걱정 마. 저놈이 그랬잖아. 괴물에게 죽는 한이 있어도 마을을 지킬 거라고. 이미 저놈도 죽음을 각오하고 여기에 들어온 거야. 그러니 죽여도 상관없어."


술에 잔뜩 취한 주정뱅이도 이런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펼치진 않을 듯했다.

그러나 파랄은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경직되어버린 사고가 이성과 감성을 마구 먹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는 마치 인형처럼 뻣뻣하게 굳어 있을 뿐이었다.

그런 파랄이 마냥 귀여운지 게닝은 머리를 마구 쓰다듬어주었다.


"병신 같은 놈."


그때 엔라가 혐오에 찬 얼굴로 말했다.

그녀는 꿋꿋이 뒤로 물러나고 있었지만 갈수록 걸음이 느려졌다.

허벅지를 타고 내려오는 피가 갈수록 양이 많아졌다.

지금이라도 지혈을 하면 모르겠다만, 그러지 않고 계속 걸음을 옮긴다면 상처는 더욱 벌어질 터였다.


"애꿎은 사람을 죽이다니. 병신이라는 건 진작부터 알았다만 이렇게까지 병신일 줄은 몰랐어."


게닝은 마땅한 칭찬을 들은 것처럼 우쭐해 보였다.


"엔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항복하고 다시 내 품으로 돌아온다면 받아주지."

"하!"


바닥에 침을 뱉어 보인 엔라는 흘러내리는 머리칼을 옆으로 넘겼다.


"그 반대야, 게닝. 네가 항복한다면 내가 받아주지."

"이 와중에 허세라니. 맹수도 피를 흘리고 있으면 볼품없는 법이지. 엔라, 한심하게 그러지 마."

"'형님 말씀대로 해라. 안 그러면 내 물건이 널 예뻐해 줄 거야."


도네잇은 그리 말하며 도끼를 들었지만 '물건' 이라는 게 이것만 지칭하는 건 아니라는 듯 아랫도리도 흔들어 보였다.

상스럽기 짝이 없는 외설스러운 농담.

하지만 엔라는 낯빛 하나 안 변하고 받아쳤다.


"무식한 남자들은 큰 게 무조건 좋다고 생각하지. 얼빠진 것들. 그러니까 네가 아직도 총각인 거야. 무뇌 자식아."

"도네잇."


게닝은 참으라는 의미로 이름을 불렀지만 도네잇은 콧김을 세게 내뿜었다.


"최대한 처참하게 죽이라고 했었죠, 형님?"

"그건 맞지만 아직 아니야. 내가 신호를 줄 테니 그떼-."

"일단 팔 한 짝만 자를게요."


언뜻 냉정하게 들리는 말이었지만.

일부러 발을 강하게 굴리는 걸 보면 어지간히도 화가 난 모양이었다.

웬만하면 게닝의 말에 껌뻑 죽는 도네잇이었지만 한 번 화가 나면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도네잇!"


게닝의 외침에도 도네잇은 엔라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오카의 살점이 아직 묻어 있는 거대한 도끼가 새로운 먹잇감을 발견한 것처럼 빛을 발하고 있었다.

한없이 차가운 얼굴로 마주 보던 엔라.

그러다 갑자기, 뒤로 훌쩍 물러나더니 단검을 던졌다.


"악!"


그건, 어찌 보면 필사의 일격이었을지도 모른다.

땅에 안착한 엔라는 짧은 비명과 함께 바닥에 주저앉았으니까.

그것만 봐도 상처를 무릅쓰고 무리했다고 보는 게 좋으리라.

그러나 급소를 노리며 날아갔을 그 단검은, 허무하게도 도네잇의 어깨에 박히고 말았다.

얕은 상처는 아니다만 중상이라고도 볼 수 없는 부상.

적절한 치료를 한다면 자그마한 흉터만 남기고 끝날 상처였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부상을 입은 도네잇에게 이 같은 상처는 치욕이나 다름없었다.


"이 건방진 년이!"


바닥을 쿵쿵 울리며 걸어가는 도네잇.

그는 도낏자루를 꽉 움켜쥐고는 소리쳤다.


"일단 손목부터 다져주마. 그리고 발목을 잘라주겠어! 확실히 도망 못 가게 말이야!"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해내고야 말겠다는 어조.

만약 듣는 이가 심약한 자라면 진작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만큼 서늘하고도 무서운 말이다.

그러나 엔라는 미묘한 얼굴로 바라보기만 했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그래, 바닥에 파놓은 함정에 걸리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그런 엔라를 발견한 게닝은 뒤늦게 속셈을 알아차렸다.


"잠깐, 도네잇..!"


소리는 의미를 갖지 못하고 사라진다.

도네잇이 함정에 빠져버렸으므로.


"으아악!"


덮어놓은 나뭇가지와 나뭇잎이 위로 솟구치는 것과 동시에.

푸욱, 하고 무언가를 꿰뚫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보지 않았기에 더욱 끔찍하게 다가오는 장면.


"이, 이! 이 개잡년이!"


분노로 가득 찬 게닝이 쇠뇌를 들어 올렸다. 목표는 당연히 미간이었다.

뻔히 보이는 궤적이기에 엔라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막을 만했지만.

게닝은 막을 수 있으면 얼마나 막을 것인지 시험해 볼 요량이었다.

열다섯 발 연속으로 쏘아대는 화살을, 과연 다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아무리 엔라가 괴물이라 해도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목표물을 조준한 게닝은, 하지만 힘없이 팔을 툭 떨어뜨리고 말았다.


"어?"


멍청한 얼굴로 바닥을 내려다보는 파랄.

어느새 게닝은 목이 잘린 채 풀썩 엎어져 있었다.

투둑, 툭. 위에서 뚝뚝 떨어지는 붉은 액체.

파랄은 볼을 타고 내려오는 핏방울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검은 괴물이 거미처럼 팔다리를 쫙 펼치고서 나무에 매달려 있는 걸 발견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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