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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미달 님의 서재입니다.

라이칸슬로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다미달
작품등록일 :
2022.08.01 22:22
최근연재일 :
2023.03.28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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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0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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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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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아직 새벽이 채 물러나지 않은 깊은 시각.

게티아르는 아름드리나무 밑에 앉아 홀로 생각에 잠겼다.

머릿속에는 아까 낮에 있었던 일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



에리티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분명 방금 전까지 차분함과 여유를 가지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라이칸스로프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게티아르의 인상이 날카롭게 변했다.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소?"

"아, 아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그렇군. 어쨌든 이어 말하시오. 듣겠소."


이어지는 재촉에 에리티는 간신히 정신을 붙들 수 있었다.


"아, 예. 음. 그래도 다행인 건 여기 뒤에 있는 애드슈네 경, 그리고 아버지를 수호하는 리건트 경이 힘을 쓴 덕분에 더 큰 피해는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애드슈네는 겸손 어린 미소를 짓는 대신 다소 어두운 얼굴로 바닥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표정을 번갈아보던 게티아르는 조심스레 입을 뗐다.


"막아냈다면, 결국 죽이지는 못했다는 소리인가 보구려."

"그렇습니다. 분명 온몸이 상처투성이었는데도 그 괴물은 쉽게 쓰러지지 않더군요. 오히려 피가 흐르면 흐를수록 더 미쳐 날뛰었습니다."


애드슈네가 대신 답했다.

지금도 그때의 광경이 떠오른 듯 얕게 손이 떨리고 있었다.


"예로부터 라이칸스로프는 보름달이 만들어낸 괴물이라고 하지요. 하지만 보름달이 뜰 때마다 필연적으로 나타난다면 적어도 저희 마을은 진작에 무너졌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혹 전조 증상은 없었소? 유달리 사체가 많이 발견된다든지, 숲에서 이상한 울음 소리를 들린 적은 없다든지."

"저희 마을은 이 도시와 비슷한 위치에 있습니다. 강이 앞에 흐르고 뒤에는 숲이 있죠.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어떤 식으로든 알게 되었겠지요."


게티아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모를 리 없긴 하겠군. 그런데 왜 여기까지 와서 병력을 요청하는 건지 물어도 되겠소? 지방 담당관, 그러니까 대영주께 가서 말해도 될 터인데."


에리티가 입술을 깨물었다.

하얗게 질린 입술에는 금방이라도 붉은 핏방울이 새어나올 것 같았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푸실의 대영주이신 찰든 에레자인 백작 각하를 만나뵈러 갔었지요. 그분이라면 충분히 이해하시고 도와주실 줄 알았으니까. 아니, 실제로 도움을 주시긴 했습니다. 하지만..턱없이 부족했어요."

"얼마나 지원 받았는지 얘기해줄 수 있소?"

"병사 열두 명에 조장 한 명이었습니다. 경비대장의 말에 따르면 실력은 검증된 자들이라고 했었어요."


게티아르는 침묵했다.

솔직히 말하면 턱없이 부족한 숫자는 아니다.

전쟁이 불가피하게 일어난 게 아닌 상황에서 그 정도의 병력은, 오히려 푸실 백이 어느 정도 신경을 썼다고 보는 게 맞았다.

하지만 적절하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애매했다.


'라이칸스로프가 나타났다는 걸 믿기 힘들어서 그런 거겠지.'


간혹 마을 내에서 처리하기 힘든 문제가 발생하면 소영주들은 대영주에게 찾아가 읍소하곤 한다.

산적이 지속적으로 침입하여 마을을 괴롭히고 있으니 지원 해달라, 경작지에 불이 나서 그러는데 식량 나눠달라 등등.

물론 이렇게 직접적으로 얘기하는 소영주는 없지만 본질은 그러했다.

그러나 본질에서 벗어난 말을 하는 자들도 존재했다.

그들은 위험을 일부러 부풀려서 말하는 자들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면 별 거 아닌 일인데도 확실한 지원을 받고 싶어서 그렇게 얘기하는 것이다.

어쩌면 찰든 백작도 그러한 맥락에서 판단한 듯싶었다.


"감사한 일이고 실제로도 무척 감사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부족해요. 만약 대영주께서 직접 그 장면을 보셨더라면 절대 그 정도만 보내시진 않았을 거예요."

"입은 피해는 어떻소. 많이 심각하오?"


에리티가 고개를 들어 애드슈네를 쳐다봤다. 애드슈네는 침통한 얼굴로 말했다.


"자경단원 대부분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돌담과 목책도 무너졌고요. 다행히 집은 무너지진 않았지만 이번 일로 인해 비어 있게 된 곳이 많아졌습니다."

"분위기가 많이 안 좋겠군."


게티아르가 넘겨짚듯이 얘기하자 애드슈네는 순간 눈을 빛냈다.

그건 의지와 분노가 섞인 눈이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의지를 잃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음 보름달이 얼른 뜨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다들 그 괴물로 인해 남편과 자식, 연인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의지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면, 그건 분명 기꺼워할 일일 테지."


게티아르는 잔잔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말했다.


"직접 상대해봤다 하니 잘 알 거 아닌가. 불사를 각오할 의지라면 말리진 않겠네만, 만약 괴물이 다시 나타난다면 결국 답은 하나야. 전멸이지."


그건 애드슈네도, 에리티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이곳까지 달려온 것이다.

여기에서도 거절당한다면 마을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제 보름달이 떠오르기까지 약 일주일 정도가 남았기에.

이를 악물고 바닥을 바라보던 에리티는 문득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조금 의문이 섞인 얼굴로 조심히 물었다.


"저, 남작님. 착각이 아니라면 왠지 남작님께선 괴물에 대해 잘 알고 계신 것 같은데요. 혹시 경험이 있으신 건가요?"


생각해 보니 게티아르는 단순히 맞장구만 쳐주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사태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하나하나 점검하듯이 물어보고 있었다.

게티아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눈으로 에리티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 순간 에리티는 그레로가 해준 말이 떠올랐다.

적어도 그분이라면 터무니 없는 말이라고 치부하진 않을 것이며,

혹여 지원을 받진 못하더라도 간접적으로나마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지금이야말로 진심을 전할 기회다. 이 순간을 놓치면 평생 후회하면서 살 것 같아.'


"각하. 제 말을 믿어주신다면, 부디 부탁드려요. 도움을 주신다면 단연코 이 은혜를 잊지 않을 겁니다. 마을에서 나는 특산물을 아낌없이 드리는 건 물론이고 앞으로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세오르 가문은 기꺼이 발 벗고 나서겠어요."


에리티가 탁자에 머리를 박을 것처럼 깊숙히 고개를 숙였다.

짙은 남색의 머리칼이 앞으로 흘러내렸다.


"애드슈네 경이 말했듯 마을 사람들은 물러서지 않기로 했어요. 설령 죽는 한이 있어도 끝까지 싸우기로 마음을 먹은 거죠. 하지만 각하께서 말씀하셨듯 이대로 가면 모두 죽을 겁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도와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어느새 게티아르는 침잠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에리티를 바라보았다.

그림자처럼 뒤에 서 있던 호는 난감한 얼굴로 게티아르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라이칸스로프로부터 마을을 지킬 수 있게 도움을 달라니.

그말은 결국 찰든 백작처럼 병력을 지원해달란 소리가 아닌가.

자칫하다간 큰 오해가 생길 수도 있다.

다른 건 몰라도 이웃 영주들, 그리고 대영주가 제 땅에 병사 무리가 지나가는 걸 두고 보지만은 않을 거라는 점이다.

그렇다고 이러이러한 이유가 있으니 통과시켜달라는 서신을 보내자니 시간이 부족했다.

앞으로 일주일 후면 보름달이 뜬다.

절차에 맞춰 행동한다면 일주일은 우습게 지나갈 것이다.

호는 결국 게티아르가 점잖게 거절을 할 것임을 예상했다.

사정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일이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따라서 게티아르가 승낙의 의사를 보냈다는 걸 알았을 때, 호는 상당히 놀랐다.


"지원 병력을 보내주겠소."

"..예?"


에리티가 고개를 들어 멍한 얼굴로 되물었다.

아니, 에리티 뿐만이 아니었다. 게티아르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귀를 의심했다.


"병사들을 우르르 이끌고 간다는 얘긴 아니오. 난 전란의 불씨가 되고 싶은 마음도, 황제 폐하께 반란을 일으키고픈 마음도 없으니까. 그러니 내가 믿는 소수의 기사들을 보내주겠소. 실력은 의심하지 않아도 좋소. 뛰어난 자들이니까."


호는 하마터면 본분을 잊고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러나 경악은 여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그리고 나도 직접 가겠소."

"예?"


이번에 되물은 사람은 다름 아닌 호였다.

워낙 상상을 뛰어넘는 발언이었던지라 게티아르 말고는 누구도 호에게 지적하지 않았다.

그리고 호 또한 자신의 행동이 주제 넘은 짓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영주님.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게티아르는 에리티에게 양해의 눈빛을 보냈다.

당연한 얘기지만 소년은 입을 떡 벌린 채 멍한 얼굴로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다.

호가 실례되는 행동을 해서 그런 게 아니다. 당연히 게티아르가 한 말 때문이었다.


"이따가 말하려 했지만 말이 나왔으니 지금 하지. 그래, 호. 내가 직접 갈 생각이야. 그러니 내가 갔다 오는 동안 대신 도시를 맡아주게."

"하지만 영주님, 너무 위험합니다!"

"목소리 낮춰. 호."


게티아르가 눈살을 찌푸렸다. 호는 가까스로 자신을 통제할 수 있었다.

호는 게티아르에게, 그리고 에리티에게 사죄의 인사를 올렸다.


"죄송합니다. 제가 주제 넘게 대화에 끼어들었습니다."


에리티는 괜찮다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애드슈네가 어깨에 손가락을 살포시 올리더니 고개를 살짝 가로젓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사과의 말을 올린 호는 뒤로 반 걸음 물러났다.

그러나 초조함을 감추진 않았다.

지금이라도 자신의 주인이자 영주인 게티아르가 생각을 바꾸길 원했다.

게티아르는 호의 기대를 보기 좋게 무너뜨렸다.


"오늘은 푹 쉬시오. 내일 해가 떠오르자마자 출발할 테니. 기지 경. 몸이 불편해보이니 의원을 불러주겠소."


애드슈네가 존경을 담아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직접 나서시는 건 너무 위험한 일 아닐까요?


그때 에리티가 진심 어린 어조로 물었다.

에리티도 게티아르의 위치가 가진 무거움을 모를 만큼 무지하진 않았다.

그러나 손해와 이익을 다 따져가는, 계산적인 마음에서 한 물음이 아니었다.

에리티는 진정으로 걱정이 되어 묻고 있었다.

게티아르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 때묻지 않은 순수함.

아직 세파에 휩쓸리기 전인 소년만이 가질 수 있는 보물이겠지.

그는 에리티에게서 왠지 모를 가능성을 엿보았다.

자신의 마을을 지키기 위해 다른 지방에 있는 영주에까지 달려가서 고개를 숙인다는 건 쉬이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었다.

어쩌면 에리티는 훗날 아버지를 대신하여 마을을 다스릴 때 여러모로 남다른 영향력을 끼칠 거란 직감이 들었다.

물론 지금으로서는 언제 올지 모를 먼 미래의 일이었다.

사람 일이라는 건 누구도 알 수 없기에.

어쨌든 현재 게티아르가 직접 움직이기로 마음 먹은 건 소년의 순수함이나 미래의 가능성 때문은 아니었다.

오직 라이칸스로프를 향한 원한.

그것이 가장 컸고 그것 말고 그를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건 없었다.


"걱정 안 해도 좋소. 나에겐 그 괴물을 해치울 무기가 있으니."


그리 말한 게티아르는 호에게 방을 내어드리라 지시했다.

에리티와 애드슈네는 호의 안내를 받아 방에서 나갔다.



*



그 뒤 일과를 마친 게티아르는, 짧은 잠자리를 가진 뒤 다미달을 들고 정원에 나왔다.

우연찮게도 그 자리는 과거 그의 아버지가 앉았던 자리와 동일했다.

게티아르는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려고 애썼다.

그러나 불투명한 막을 투과해서 보는 것처럼 흐릿한 풍광만이 떠오를 뿐이었다.

그런 가운데 단 한 가지.

다미달의 칼날에서 새어나오는 빛만이 유일하게 기억에 남았다.

게티아르가 검집을 천천히 뽑았다. 가려져 있던 빛이 서서히 드러났다.

하나도 퇴색하지 않은 그 빛은, 마치 태곳적의 대륙을 물들이던 달빛을 보는 것 같았다.

아무리 제련하고 가공하고 다듬어도 그 빛만은 누구도 훼손시킬 수 없었다.

하염없이 검신을 들여다보던 게티아르는 문득 발밑을 바라보았다.

바다색을 연상시키는 푸른 햇살이 정원의 바닥을 물들이고 있었다.

또다른 하루가 시작되려는 모양이었다.

게티아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도 검술 훈련을 할 참이었다.

앞으로 약 일주일간은 말을 타고 달려야 하는 걸 생각하면 좀 더 쉬어둘 필요가 있었지만.

게티아르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단 하루도 훈련을 거르고 싶지 않았다.

고르게 숨을 쉬며 심신을 안정시킨 게티아르는 검을 높이 들어올렸다.

새벽이 물러나기 전, 마지막으로 빛을 내는 달처럼 자그마한 세상을 비추었다.

그 세상을 은색 빛으로 이루어진 궤적을 보이며 갈라버리려던 게티아르.

그러나 게티아르는 검을 휘두르지 않고 천천히 아래로 늘어뜨렸다.


"자네도 날 말리기 위해 찾아온 건가."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한 사람이 아무렇게나 뻗친 나무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게티아르는 생각지 못한 인물이 나오자 미간을 좁혔다.

로이벤은 가볍게 목례했다.


"방해가 되었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여긴 올 때마다 길을 잘 모르겠더군요. 정원이라기보단 자연 한복판에 있는 것 같습니다."


로이벤의 말대로 다른 영지에 있는 정원에 비하면 확실히 이곳은 관리가 덜 된 곳처럼 보인다.

포석이 깔린 곳도 많지 않았고 길과 화단을 구분 짓는 작은 울타리도 없었으니까.

그렇지만 길을 헤맬 정도로 야생적인 곳도 아니었다. 이래 보여도 엄연히 정원사가 관리하는 곳이었다.

물론 정원사의 실력이 부족한 건 전혀 아니었다.

단지 게티아르가 가지치기나 화초 재배 등 기초적인 일 말고는 되도록 놔두라고 지시했을 뿐이다.


"이래야 대비를 하지."


아리송한 말이었지만 로이벤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라이칸스로프는 숲을 좋아하니 말입니다."


로이벤이 그림자에서 완전히 벗어나더니 게티아르가 앉았던 자리에 서성였다.

돌바닥에는 오래 전에 새겨진 듯한 칼자국이 있었다.

말없이 바닥만 보는 로이벤을 보며, 게티아르가 입을 열었다.


"그래. 하는 행동을 보니 말리러 온 건 아닌 모양이군. 용무가 뭐지?"


게티아르가 잠시 영지를 떠난다는 건 성내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유까지 아는 자는 드물었다.

대부분은 영주가 기사들과 함께 앞으로 일주일간 사냥을 하러 떠난다고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진실을 완전히 숨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진실을 아는 소수의 사람들은 게티아르에게 직접 찾아와 한 번 더 재고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때문에 게티아르는 그들의 의견을 물리치는 데에 많은 시간을 써야 했다.

다만 재미있는 부분은 있었다.

어떤 이는 아예 죽을 것이라고 기정사실화했지만, 어떤 이는 있지도 않은 허구에 쫓겨 이상한 일을 벌이지 말라 직언하는 이도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성내에 라이칸스로프의 가죽이 떡하니 걸려 있는데도 믿지 않는다는 건가.

물론 따로 허락받지 않고서는 절대 가죽이 걸린 방에 들어가지 말라 명령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게티아르는 알고 있었다.

성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몰래 들어가서 구경했다는 것을.

그런데도 라이칸스로프의 존재가 허구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건 왜 그런 것일까.

진실이 눈앞에 있는데도 믿지 않으려 하는 건 어떤 마음에서 비롯된 걸까.


"저도 데려가주십시오, 영주님."


상념에 잠겨 있던 게티아르가 불현듯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방금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것인지 확인했다.


"뭐라고 했지, 로이벤 조사대원?"

"저도 데려가달라 청했습니다."


그제야 게티아르는 로이벤의 복장이 단순한 외출복이 아님을 발견했다.

어디 먼 길을 떠나려는 여행자처럼 단단히 준비한 복장이었다.


"수행인이라 생각해주시면 됩니다. 영주님께서 불편하실 일이 없게 옆에서 보좌해드리겠습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나에게도 손과 발이 있다, 로이벤. 내 일은 내가 처리할 수 있어."

"예. 제 눈에도 똑똑히 보이는군요. 하지만 하나 더 생기면 좋지 않겠습니까."

"글쎄, 불편하기만 할 듯한데."

"생각해보니 그렇군요. 손이 세 개라니. 징그럽긴 합니다."


로이벤은 담담한 얼굴로 빠르게 수긍했다.

우스운 일이었지만 둘 다 미소를 짓지 않았다.

완곡하게 거절을 표현하려던 게티아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자신과 이렇게 당당히 독대한 조사대원이 있었던가.

보고를 할 때를 제외하고는 이렇게 사적인 자리에서 만난 적은 드물었다.

그렇기에 게티아르는 로이벤이 정확히 어떤 성격인지 잘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처럼 고집을 부리는 성격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어딜 가려고 하는지는 알고 있을 테니 긴 말은 안 하지. 여차하면 목숨을 보장받지 못할 수도 있다."

"영주님은 참 친절하신 분이군요."

"그런가. 고맙군."

"그래도 따라갈 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 저 또한 영주님을 비롯한 다른 분들에게 발목 잡히고 싶진 않습니다. 제가 짐이 된다면 버리고 가셔도 무방합니다."

"그럴거면 아예 따라가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왜지?"

"영주님과 같은 이유입니다."

"내 이유가 뭐지?"


로이벤이 어느 한 곳을 유심히 쳐다봤다.

시선을 따라간 게티아르는 제 손에 들고 있는 다미달을 발견했다.


"저도 같은 이유입니다."


라이칸스로프를 죽이기 위해.

로이벤은 그리 말하고 있었다.


"라이칸스로프가 남기는 흔적은 어떤지, 맹수와 차이점이 있다면 어떤 점이 다른 건지 확인해보고 싶습니다. 그걸 알면 이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도 윤곽이 잡히겠지요."

"이전에 있던 일이라면.."


당신이 생각하는 게 맞다는 듯 로이벤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사대원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부채감인가.

아니면 그도 게티아르처럼 다른 이들에게 말할 수 없는 사정이라도 있는 건가.

게티아르는 여러 생각이 교차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로이벤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제 직분을 다 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검이 현란하게 휘둘렸다.

어지러운 궤적을 사방에 흩뿌린 다미달은 최종적으로 검집에 안착했다.

그럼에도 로이벤의 눈에는 아직 허공에 그려진 은빛 그림자를 볼 수 있었다.


"말 탈 줄 알겠지, 로이벤 조사대원?"

"예. 열심히 배웠습니다."

"그럼 이따 동이 트는 시각에 성문 앞으로 나오도록. 시간 되면 바로 출발할 테니 늦지 말고 와."

"감사합니다. 영주님."


깊이 절을 해보인 로이벤은 서둘러 자리를 떴다.

길을 잘 모르겠다던 아까의 말과 달리 걸음에 거침이 없었다.

사박사박하며 나뭇잎과 풀을 짓밟는 발걸음 소리가 이내 사라졌다.

어느덧 산맥 너머로 피어오르는 해가 찬란한 광채를 흩뿌릴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훈련은 못 했군.'


얘기하느라 어느새 시간이 다 가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묘한 고양감이 몸을 데우고 있었다.

이제까지 훈련으로밖에 상대하지 못했던 가상의 적을, 실제로 만날 수도 있어서 그런 걸까.

훈련을 아무리 열심히 해봤자 실전 한 번 보다 못할 것이다.

게티아르는 떠오르는 해를 등에 지고서 마굿간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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