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화. 프롤로그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깼다.
시계를 확인한다.
2027년 3월 7일 오전 6시 30분,
또다시 돌아왔다.
부정하고 싶지만 이것은 현실이다.
열셋, 아니, 열네 번째 맞는 고등학교 1학년의 첫 등교일이다.
이제 곧 방문이 열릴 것이다.
그리고 무뚝뚝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밥 먹어라.”
침대에서 일어나 열다섯 살 소년의 모습을 연기할 준비를 시작한다.
옷을 걸쳐 입고 방을 나서 식탁으로 향한다. 음식을 준비하던 어머니가 나를 보고 싱긋 웃으신다.
화석처럼 굳어진 내 마음이 약간이나마 반응하는 유일한 시간이다. 하지만 잠시뿐이다. 식탁에 앉아 아버지를 바라본다.
“백호, 너 자꾸 사고 칠거면 도장 나오지 마.”
“네.”
“......”
내가 반항할 거라 예상했던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셨다.
하나 둘 셋,
찰싹
“아!”
“싫다는 애 잡아다 억지로 가르치더니, 이제야 좀 재미를 붙였는데 갑자기 나오지 말라고 하면 어떻겠어요? 당신은 애 마음은 조금도 생각 안 해요?”
“아니, 그게 아니라, 이 녀석이 몸 건강해지라고 무술을 가르쳐놨더니 자꾸 애들하고 싸우는데 써먹으니까...”
“그게 우리 아들 잘못이에요? 힘없는 애들 괴롭히는 나쁜 놈들 말리다가 싸움 붙고 그런 거잖아요.”
“어허, 자고로 무도인이란...”
“됐으니까 식사나 하세요. 국 식어요.”
입만 열면 무도인의 자세에 대해 강조하는, 앞 뒤 꽉 막히고,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날 것처럼 보이는 아버지이지만 어머니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나 마찬가지다.
이 끝도 없이 반복되는 회귀가 시작되기 전,
그러니까 진짜 열다섯이던 시절의 나는 뭐라고 대답했었을까?
모르겠다. 그런 사소한 기억을 떠올리기에 나는 너무 오랜 시간을 살아왔다.
그렇기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딱 하나뿐이었다.
“안 그래도 도장은 그만 나가려고요.”
“그러니까 당신은 쓸데없는 소리 말고 우리 아들 더 튼튼해지게 운동이나 잘... 응? 호야, 방금 뭐라고 했어?”
“무술은 더 이상 안 배워도 될 것 같습니다.”
“잠깐, 우리 아들 말투가 왜... 그건 그렇다 치고, 진짜? 너 아빠처럼 무술사범 되고 싶다며? 갑자기 마음이 변한 거야?”
네, 저도 그쪽이 더 재미있긴 한데 그걸로는 이 저주를 끝낼 수가 없어서요, 엄마.
차마 입 밖으로 뱉을 수 없는 말을 삼키고 대신 지금 필요한 대답을 내놓았다.
“걱정 마세요. 운동은 계속 할 거니까요.”
“그래?”
“네, 종목만 좀 바꿔보려고요.”
“뭘로?”
“야구요.”
“야구? 내가 아는 그 야구?”
“네.”
어머니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셨다. 아버지 역시 놀라셨는지 평소 손도 안대시던 어리굴젓을 입에 넣으셨다가 급하게 싱크대로 달려가셨다.
어릴 때부터 덩치에 안 맞게 몸이 약해 억지로 무술을 가르쳐온 아들이 갑자기 자기 입으로 다른 운동을 한다니 놀랄 수밖에 없겠지. 그것도 생뚱맞은 야구를.
네, 저도 이런 말을 해야 하는 제가 원망스럽습니다.
“자세한 건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잘 먹었습니다. 저 들어가서 등교준비 할게요.”
“응? 으응, 그래. 아들. 잠깐! 여보, 그거 어리굴젓이야!”
뭇국에 밥을 말아 거의 마시듯 해치우고 다시 내 방으로 들어와 문을 잠갔다.
그 순간 내 귓가에 누군가의 소름끼치는 속삭임이 들려왔다.
<...를 우승시키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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