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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신의 음악을 듣는 천재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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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삽화
밤 10시 25분
작품등록일 :
2024.08.24 22:09
최근연재일 :
2024.08.30 22:25
연재수 :
7 회
조회수 :
801
추천수 :
13
글자수 :
36,553

작성
24.08.24 22:19
조회
210
추천
1
글자
10쪽

1화

DUMMY

1789년 4월의 프랑스.


요즘들어 거리의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다.

가난한 자들의 신음이 들끓었던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뭐라고 해야하나.

그들의 얼굴에서 분노가 사라졌다고 해야할까.


부당한 현실에 맞서서 귀족들을 욕하던 그들이 잠잠해졌다.

대신에 차분한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나간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맥락의 작가들이다.


장 자크 루소, 볼테르, 몽테스키외 등 계몽주의 작가들.

대개가 체제전복적인 사상을 담고 있는 사상가들.


화를 내며 분노를 드러내던 이들이 잠잠해지니, 오히려 이게 더 섬뜩하게 느껴졌다.

태풍의 오기 전의 고요함.

딱 그러한 느낌이다.


“태풍이 불어온다면 나의 운명은 어찌 될 것인가.”


고개를 내리고 걸으며 몽상에 잠겼다.


“사르야 드 몽루아. 신은 어떠한 이유로 날 이 땅에 보내셨는가···.”


요즘 길거리의 분위기때문일까?

널리 성행하는 사상가들의 영향때문일까?

요즘따라 내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다.


“알 수가 없군.”


아무리 되뇌여봐도 알 수가 없다.

나 조차도 내가 누구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도 그럴게 난 이 세상의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 인간이니까.


나는 귀족도 아니고 평민도 아니다.

귀족의 피와 천민의 피를 반반씩 이어받은 나는 이 나라의 사각지대에 끼어있는 존재다.


나의 아버지, 형제들, 여타 귀족들은 나를 자신들과 같은 부류라 생각치 않는다.

귀족의 이름을 가졌지만 귀족의 지위와 신분은 갖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일반 시민들이 날 자신의 친구라 여기느냐?

그것도 아니다.

그들은 날 욕한다. 귀족이라 부르면서.


어느 곳에도 끼지 못 하고 외로이 떨어져 있는 존재인 나는 섬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 누구도 찾지 않고, 그 누구도 바라보지 않는 섬.

다만, 내 섬에도 유일하게 들려오는 게 있다.


내게 친구가 있고, 삶의 구원이 있고, 신의 은총이 있다면, 그것은 음악뿐이었다.



*



텅 빈 성당안으로 들어왔다.


“조용하군. 오늘은 어떠한 음악을 연주하는게 좋을지···.”


친구가 없다보니 나는 나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외로움을 견뎌내는 방법 중 하나다.

성당의 한켠에 자리한 피아노 앞에 앉았다.


“너는 무슨 음악을 연주하고 싶냐?”


건반에 귀를 가져다댔다.

가끔 이런 모습을 들킬 때면 날 미친놈 쳐다보는듯한 시선이 느껴졌지만 뭐가 대수인가.

어차피 내 섬에는 나밖에 없고, 이 피아노가 유일한 친구인데.


“그래. 그게 좋겠군.”


집에서는 피아노에 손 조차 가져다 댈 수가 없다.

쥐 죽은 듯이 살아야하는게 내 처지긴 하다만, 아버지는 내가 피아노에 손을 가져다대는것 자체를 싫어했다.

천민이나 치는 게 피아노라고 했다.


귀족의 신분은 부여하지 않았으면서 귀족의 체면은 지켜야된다는건가?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이다.

내가 느끼는 외로움만큼, 부당함만큼 피아노를 내리쳤다.


쾅-


성당 가득 울려퍼지는 피아노소리가 날 전율케 했다.

속박된 내 몸을 자유로이 비상하게 했다.


호흡이 점점 더 가빠져간다.

내 연주는 점점 더 빨라진다.

자유롭고 싶은 만큼, 이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은만큼 음악은 나만의 음악으로 변해간다.


마침내, 건반에서 손가락을 떼며 눈을 떴을 때였다.

유리창을 뚫고 들어오는 한줄기의 햇살이 눈을 부시게 했다.


“언제 들어도 아름다운 음악입니다.”


뒤를 돌아보자, 성당의 신부님이 앉아있었다.


“언제 오셨습니까?”

“처음부터 쭉 듣고 있었습니다. 천상의 멜로디가 들려오는데 어떻게 지나칠 수 있겠습니까.”


나의 유일한 청중.

발렌티노 신부님.

그가 짧게 기도를 올린 후, 내 곁으로 다가왔다.

건반을 지긋이 눌렀다.


“신기합니다. 처음은 분명 헨델의 파사칼리아를 연주하시지 않았습니까?”


음악에 조예가 깊으신 분이다.


“네, 그랬죠.”

“근데 자연스레 다른 곡으로 넘어가더군요. 처음 듣는 음악이던데 직접 작곡하신 겁니까?”


이걸 작곡이라 할 수 있을까.

그저 내 감정에 따라, 마음이 들려주는 소리에 따라 연주하는 것 뿐이었다.


“그저 손가는 대로 연주했을 따름입니다.”

“그게 작곡이죠. 작곡이란게 따로 있겠습니까? 제가 볼 때 사르야님의 음악에는 신의 은총이 깃든 듯 합니다.”

“신의 은총이라니요. 가당치 않습니다.”

“아닙니다.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다. 그거 아십니까? 사르야 님이 찾아오실 때면 저는 일부러 외출도 하지 않습니다. 사르야 님의 음악을 듣고 싶어서요. 그리고 이건 우리끼리의 비밀인데.”

“무슨 말을 하시려는 겁니까?”


백발의 신부님이 기분좋은 미소를 지었다.


“때로는 기도보다도 사르야님의 음악을 들을 때, 그와 한 걸음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농담이 과하십니다, 신부님.”

“하하하. 진심입니다.”


빈말이 할지라도 듣기 좋은 말이었다.

나도 비슷하다.

처음만 하더라도 누군가 내 음악을 듣고 있다는 걸 부끄러워했지만 지금은 그 반대가 되었다.


신부님이 내 음악을 들어준다는 거에 감사했고, 말이 안 되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사람들에게 내 음악을 들려주고 싶게 되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다리를 절뚝이며 뛰어간 신부님은 펜과 종이를 가지고 돌아왔다.


“기록을 해놓는게 어떠십니까?”

“기록?”

“네. 사르야 님의 모습은 보여줄 수 없어도, 음악만은 보여줄 수 있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들었으면 합니다. 사르야 님의 음악을.”


종이에 그어진 다섯 줄의 수평선이 오늘따라 다르게 느껴진다.

섬에 갇힌 내가 세상에 보내는 목소리.

이 오선지를 통하면 나 또한 이 세상 속 한 시기를 살아갔음을 기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 사르야 드 몽루아가 유령이 아닌 실체가 있는 존재였음을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억나십니까? 방금 사르야 님이 한 연주.”

“네, 기억나긴 합니다만···.”

“그러면 한번 적어보시지요.”


머뭇거리기도 잠시, 난 오선지 위로 작은 점을 찍었다.

그 이후로는 내가 어떻게 악보를 그려나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귓가에서는 끊임없이 음악소리가 몰아쳤고, 난 그대로 받아적었다.

이건 작곡이 아니었다.

작곡이라기 보다는 내 이름을, 내 존재를, 내가 살아있음을 적어내려가는 일이었다.


귀족도 아니고 일반 시민도 아닌 나.

신분과 위계질서로 점철된 세상 속 그 어느축에도 낄 수 없는 나 사르야 드 몽루아.

그런 내가 음악이 되어 살아숨쉬고 있었다.


“아는 사람을 통해 이 곡을 공연장에서 연주할 수 있는지 물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가능하겠습니까?”

“노력해보겠습니다. 저 또한 제가 느낀 즐거움을 많은 이들이 느꼈으면 하는 바램이 있으니까요.”


그가 내게 기도를 했다.


“신의 가호가 당신과 함께하길.”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났다.

전운이 느껴졌던 태풍은 기어코 프랑스를 강타했다.

바스티유 감옥이 습격당했고, 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되었다.


그리고 내 음악은 정말로 세상 속에 울려퍼지게 되었다.



*



난 지금 광장에 모인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중이다.

그들의 울부짖음이, 성난 목소리가 나와 내 옆으로 쏟아진다.


내 옆에 있던 귀족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한 때는 세상의 위에서 군림하던 그는 피와 오물을 흘리며 이 세상을 떠나갔다.


“다음.”


내 차례가 되었다.

누군가가 내던진 돌멩이가 내 이마에 맞고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돌멩이 위로 뜨거운 피가 흘러내렸다.


“죽여버려! 저 귀족놈의 목을 잘라버려!”


저들은 나를 귀족이라고 불렀다.

나는 귀족인가? 여전히 알 수 없는 문제다.

칼을 든 사형집행인이 내게 마지막 시간을 주었다.


“할 말이 있나?”


나는 입을 여는 대신 눈을 감았다.

군중들의 노랫소리를 더 집중해서 듣고 싶기 때문이었다.


다른 누구의 음악도 아닌 내 음악.

내가 작곡한 음악이 가삿말까지 갖춰서 저들의 입속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수십, 수백, 수천의 입에서 내 음악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이들은 부르짖는다.


Liberté, Égalité, Fraternité

자유. 평등. 우애.


이들이 부르짖는 노랫말처럼 난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자유로웠다.

이들의 노랫소리를 타고 저 하늘로 날아갈 수 있을 정도로.


또한 그 어느때보다도 평등과 우애를 느끼고 있었다.

내 음악이, 나의 멜로디가 이 세상 가득 울려퍼지고 있었으니까.


나는 살아있음을 느꼈다.

그러니, 죽을 수도 있었다.

지금 나는 죽는게 아니라 음악속에 묻히는 일이니.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으니.


“사르야 드 몽루아. 나는 귀족이 아니다.”

“변명을 대봤자 너의 운명이 달라지는 일은 없어.”

“나는 너희들과 같은 평민도 아니다.”


태양을 가린 칼날이 눈앞에서 번뜩인다.

세상이 나의 음악으로 가득찬 오늘, 난 눈을 감았다.


“나의 신분은 음악이다.”


.

.

.


그런데 이게 뭘까.

나의 삶이 끝나는 줄 알았는데···.


촛불이 일렁이는 공간속에서 난 눈을 떴다.

주위에는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따뜻한 분위기가 느껴졌고, 내 눈앞에는 피아노가 놓여있었다.

턱시도를 입은 남자가 한손에 쟁반을 들고 다가왔다.


“왜 연주 안 해? 어디 아파?”


나는 여전히 무대 위에 있었다.

다만, 처형대가 아닌 피아노가 있는 작은 무대 위에.


작가의말

잘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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