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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너와삽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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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너와삽
작품등록일 :
2017.08.12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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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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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08,691

작성
17.11.12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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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7화. 시동이 걸리다

DUMMY

주선자는 법인차량 키와 주유일지를 챙겨, 한진우의 뒤를 따랐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둘은 잠시 어색함의 시간을 가졌고, 먼저 한진우가 입을 떼었다.


“회사 차가 경차였군요.”


“네. 물류팀 차량을 제외하면 다 작은 차예요.”


차에 대해 잘 모르는 주선자는 준중형, 중형, 대형 구분이 어떻게 되는지 잘 몰랐다.

그녀에겐 봉고차만 아니면 다 작은 차였다.


‘음.. 장거리는 좀 빡세겠네..’


앞으로 많은 시간을 함께 있어야 할 회사 전용 차량이 조금 불편한 경차였기에, 한진우는 조금 실망을 했다.


하지만 주선자는 차종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경운기라도 탈 수 있을 것 같이 즐거웠다.


기다리던 중, 드디어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둘은 한 좁은 공간 안에 같이 위치했다.


엘리베이터 내부 오른편에는 커다란 거울이 있었고, 주선자는 ‘혹시라도 얼굴에 뭐가 묻지는 않았을까’하며 힐끔힐끔 거울을 바라보았다.


한진우도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려 잠시 거울을 보다, 둘은 거울 속에서 눈길이 마주쳤다.


“주대리님은 눈이 정말 크네요. 동그랗고.. 부럽네요. 전 찢어진 눈매라 은근 콤플렉스에요.”


“콤플렉스라니요. 여자들이 팀장님 같은 눈을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주선자는 조금 흥분하며 너무 빠른 타이밍으로 솔직히 말해버렸다.


한 거울로 주선자와 한진우는 나란히 서서,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웃음 지었다.


마치 다정한 연인끼리 셀카를 찍는 듯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지상 5층에서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짧은 시간.


주선자에겐 노란 유채꽃의 향기가 가득 느껴졌고, 부드러운 연보라빛 구름이 그녀를 공중으로 떠받치는 듯, 몸이 날아갈 것 같이 가벼웠다.


‘땡. 지하 1층입니다.’


아름다운 꿈에서 현실로 끌어오는 무미건조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칙칙하고 어두운 지하로 들어왔건만, 주선자의 눈에서 보는 한진우의 넓은 등짝은 더욱 빛났다.



바로 그때.



너무 정신이 팔려서, 그리고 이것저것 주섬주섬 싸들고 뒤따라가느냐고, 주선자는 미끄러운 주차장 바닥에 잠시 휘청거렸다.


‘으악!!!’


‘어머’, ‘아야’ 등등 많은 여성스러운 단어가 많았지만, 주선자의 선택은 최악인 ‘으악’이었다.


전쟁영화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비명에 가까웠다.


마치 음소거 기능을 누른 것처럼, 조용하던 주차장을 크게 울리는 무지막한 소리였다.


그런 그녀의 비명을 듣고 한진우는 주선자에게 다가와서 가볍게 어깨를 감쌌다.


“괜찮아요? 안 다쳤어요?”


“네. 잠깐 미끄러워서 놀라서 그랬어요.”


예상하지 못했던 한진우의 따뜻한 스킨십에 주선자는 이대로 계속 있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쉬운 여자로 보일 것 같아 살며시 그의 품에서 떨어졌다.



한진우에게도 주선자의 머릿결에서 나오는 평범한 샴푸의 향기가 아찔하게 다가왔고, 놀란 그녀의 크고 청초한 눈망울에 빨려 들어갔다.


‘어..’


한진우는 잠시 딴 생각을 하다, 자신의 손이 주선자의 몸에 닿아있음에 놀라서 급히 손을 떼었다.


불순한 의도는 아니었지만, 순간 난처함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미안해요. 일부러 손을 대려고 한 건 아니었어요..”


“아니에요. 오히려 고마운 걸요.”



주선자가 웃으며 말하자, 한진우도 그리 심각하게 받아드리지는 않았다.


둘은 다시 나란히 걸었고 그들의 차량이 있는 곳에 도달했다.



'삐빅'



두 눈을 깜빡이여 '나 여기 있어'를 알리는 조그마한 흰색 경차.

옆면에는 '공기밥'로고가 큼지막하게 붙어있었다.


한진우와 주선자는 자리에 앉았다.


주선자는 보조석 위쪽에 있는 거울을 피고, 머리를 쓸어 넘기며 피부 컨디션을 점검했다.


한진우는 좌석 높이와 백미러 각도를 조절한 후, 핸드폰을 거치대에 놓고 네비게이션 어플을 실행한 후 목적지를 지정했다.


'빠르고 편안한 안내를 제공하겠습니다. 와틀란 네비.'


상큼한 목소리가 들리고, 차는 출발할 준비를 마쳤다.


"안전벨트 멨죠?"


"네~"


"그럼 갑니다~~"


주선자는 더 크게 '네 좋아요~~~~'를 크게 외치고 싶었으나, 오늘의 컨셉은 '조신'이었기에 감정을 아꼈다.


한진우와 주선자를 서로 잠시 마주본 후, 약간의 쑥스러움을 머금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시동은 걸렸다.



--------------------------------------------


구매팀 자리에는 나미애만 홀로 덩그러니 남았다.


혼자 있기도 뻘쭘하고, 어차피 오래 일할 마음도 없는 터라 나가서 커피 한잔하고 올까했지만, 그래도 삼촌 회사인데 너무 튀지는 말자고 마음을 잡았다.


그녀는 방금 있었던 한진우의 선택에 꽤 여전히 신경이 쓰였다.


'생각할수록 기분 나쁘네..'


그리고 나갈 때 마주친 주선자의 눈빛이 떠올라 속이 부글거렸다.


'그 땅딸막한 년.. 두고 봐라..'


나미애가 분노를 삭이고 있을 때, 어디선가 오버스러운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핫, 안녕하십니까~”


30대 중후반에 약간 작은 키, 포마드로 머리를 넘기고 약간 짧은 정장바지를 입은 한 남성이 회사 사무실 내 이 곳, 저 곳에 인사를 하고 다녔다.


공기밥 거래처인 일일식품 조경태 사장이었다.


평소 과시욕이 넘쳤고, 거래처를 돌아다니면서 마음에 드는 여직원이 보이면 물불 안 가리고 적극적으로 들이대기로 유명했다.


뒷소문은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재력과 재치 있는 언변으로 나름대로 여성들에게 인기는 있는 편이었다.


그는 오늘 공기밥에 새로 온 구매팀장에게 인사 겸 그리고 귀여운 눈망울의 주선자를 보기 위해 들렀다.


‘음.. 한진우 팀장.. 듣자 하니 은근히 까다롭다고 하던데..’


외식업계 바닥은 좁은 편이어서, 그도 한진우에 대한 평판을 다른 업체들을 통해 대충은 듣고 왔다.


‘우리 깜찍한 선자씨도 잘 있으려나.. 어디 보자..’


조경태는 구매팀 자리를 두리번거리다가, 한 여인에 시선이 꽂혔다.


‘헉. 뭐지 저 숨이 막히게 아리따운 여인네는..’


그는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던 나미애를 보고 넋이 나갔다.


‘저런 스타일이 또 외제차라면 껌벅 죽는 스탈이지 후후..’


조경태는 살며시 머리를 만지고, 셔츠의 왼팔을 살짝 걷어 명품 시계를 드러냈다.


그리고 그의 주무기인 고급진 차 키를 손에 쥔 채 나미애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조경태가 밝게 인사했지만, 나미애는 그를 무시한 채 모니터만 바라보았다.


‘오호라.. 좀 튕긴다 이거지? 넌 내 옆자리에 탈 자격이 있어. 오빠가 좋은 차에 태워줄게.’


그는 나미애의 차가운 태도에, 더욱 흑심이 생겼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일일식품 대표 조경태라고 합니다.”


나미애는 조경태가 계속 귀찮게 하자, 짜증이 섞인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조경태는 이 때다 싶어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갔다.


그는 명함을 꺼내주는 척하며, 왼쪽 손목에 명품 시계를 슬쩍 비쳐 보였고, 결정적으로 그의 고급 외제차키를 보여 재력으로 승부를 걸었다.


그런 그의 행동을 보고, 나미애는 잠시 한숨을 쉬더니 그녀도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어 책상에 ‘쾅’하고 내려놓고 조경태에게 말했다.


“지금 아무도 없으니깐, 볼일 보셨으면 얼른 집으로 가세요.”


나미애가 책상에 내려놓은 건 그녀의 페라리 키였다.


“페.. 페라리.. 그것도 상위 클래스 버전..”


조경태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로, 밖으로 나갔다.


‘너깟 놈들한테 눈곱만큼도 관심 없다고..’


나미애는 다시 인상을 찌푸리며 한진우를 떠올렸다.


----------------------------------



한진우와 주선자가 탑승한 차는 칙칙한 지하를 빠져나와, 선명한 4월 햇살을 만끽하며 달렸다. 라디오에선 90년대에 유행했던 오래 된 명곡들이 잔잔하게 흘러나왔다.


“주대리님은 집이 어디에요?”


“저는 성남 살아요.”


“정말요? 하하. 저 초중고 다 성남에서 나왔는데. 학교 어디 다녔어요?”


한진우는 혹시나 학교 후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물었다.



“저는 고향이 부산이라 학교를 다 그쪽에서 나왔어요.”


“부산이라고예? 우리집 김옥분 여사님도 부산 출신입니데이.”


한진우의 어설픈 사투리에 주선자는 피식 웃었다.



“어머니 고향도 부산이고, 수산물 구매하러 부산 많이 다녀서 그쪽은 빠삭해요. 특히 감천쪽에 냉동창고는 거의 다 가봤어요.”



“그러시구나.. 팀장님은 댁이 어디세요?”


“저는 잠실 살아요.”


“집 좀 사시는군요.”


“다들 잠실 산다고 하면, 부자인줄 아는데 잠실은 급이 꽤 여러 단계가 있어요. 리얼 잠실인은 결코 아닌 평민이랍니다.”


“에이. 그래도 성남만 하겠어요..”


“주대리님은 그럼 8호선 타고 잠실역에서 갈아타겠네요?”


“네 집에서 버스타고 역에 나와서 지하철타고 하면 도어 투 도어는 한 시간 삼십 분 정도 걸려요.”


“캬.. 여기서 성남사람을 보게 되다니. 성남은 정말 좋은 동네에요. 교통 편하고. 남한산성 있고.. 단 언덕이 많은 게 흠이지만요.”


“성남 맛집 잘 아시겠네요? 추천 좀 해주세요. 전 이사 온 지 몇 달 안 돼서요.”


“음.. 수진역에 ‘더사랑’이라는 즉석떡볶이 집이 있어요.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지만, 고등학교를 그 근처에서 나와서 성인이 될 때까지도 단골이었죠. 맛도 맛이고, 싸고, 양도 많고. 무엇보다 학생 때 다들 돈이 없으니 잔돈 다 모아서 사장아주머니 드리면 뒤에 백원 단위는 다시 돌려주셨어요. 꼭 가보시길.”


“꼭 가봐야겠네요. 저 떡볶이 엄청 좋아하거든요.”


“다음에 한번 같이 가요. 떡볶이 풀코스로 모실테니. 하하.”


주선자는 한진우가 정말 같이 갈 마음이 있어서 저렇게 말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빈말인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잠시 고민 후에 용기를 내었다.


“팀장님. 그럼 이번 주말에 떡볶이 사주세요.”


한진우는 너무 갑작스런 데이트(?) 제안에 당황했지만, 특별한 약속도 없었고, 친구들도 거의 성남에 있었기에 흔쾌히 받아들였다.


“좋아요. 여태껏 먹어보지 못 했을 엄청난 맛의 향연을 기대하시길.”


“훗. 팀장님의 미각을 믿어보도록 하지요.”


주선자는 팔짱을 끼고, 과연 날 만족시킬 수 있을까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한진우는 그런 그녀의 모습이 깜찍해보였다.


“대리님은 주말에는 보통 뭐하세요? 취미 같은 거 있어요?”


한진우의 질문에 주선자는 ‘미소년 아이돌 감상이요.’라고 차마 말할 수 없었기에, 가장 무난한 답을 택했다.


“저는 스트레스 풀러 가끔 야구장에 가요.”


“오. 어느 팀 응원하는데요?”


“저는 롯데 팬이에요. 부산갈매기~”


“풋. 엘롯기 하위권 삼총사. 푸하하하.”



한진우가 비웃자, 주선자는 그를 쏘아보며 물었다.



“그러는 팀장님은 어디시길래 저희 롯데를 무시하는 거죠?”


“저는 전통의 강호. 대 슈퍼 두산 베어스랍니다.”



주선자는 ‘그럼 다음에 두산 대 롯데 하면 같이 야구장 가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여기서 더 들이대면 너무 심하게 들이대는 것 같아서 자제했다.



“팀장님은 취미가 뭔데요? 그때 보니깐 야동을 매우 좋아하시는 것 같은데..”


주선자는 눈을 게슴츠레 뜨며 물었다.


“험. 험. 그건 그냥 본능이라서.”


그녀의 질문에 한진우는 당황했지만, ‘그래요. 나 야동매니아에요.’ 라고 차마 말할 수 없었기에, 그도 최대한 무난한 답변을 했다.


“저는 미드랑 애니메이션 보는 걸 좋아해요.”


“오타쿠시군요? 야동에다 애니까지..”



예상 못한 돌직구에 한진우는 움찔했다.



“그렇게 심한 편은 아니고.. 명탐정 코난 팬이랍니다.”


“명탐정 코난이라니.. 조금 의외네요.”

‘헐.. 조금 깬다..’라는 표정을 지으며 주선자가 말했다.


“코난이 어때서요!!!”

오타쿠 한진우는 발끈했다.


“그냥. 팀장님 이미지랑 조금은 안 맞는 것 같아서요. 호호.”


‘음..’

듣고 보니, 나쁜 뜻은 아닌 것 같아서 한진우는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이천 물류센터로 가는 길 내내 화기애애한 대화들은 이어져 갔다.


그러다 갑자기 한진우는 표정이 진지하게 바뀌더니 낮은 어조로 주선자에게 말했다.


“저. 대리님. 오늘 물류센터 왜 가는 줄 아세요?


“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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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화. 시동이 걸리다 17.11.12 355 4 12쪽
6 6화. 승리감 17.11.11 366 4 13쪽
5 5화. 훈훈한 사무실 17.11.10 454 4 15쪽
4 4화. 반드시 앉아서 가리라 17.11.09 474 3 13쪽
3 3화. 내가 모르는 AV배우는 없다 +3 17.11.07 560 4 18쪽
2 2화. 결혼이야 하고는 싶지만.. 17.11.07 1,146 4 19쪽
1 1화. 두 남녀 +1 17.08.12 4,489 8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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