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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너와삽 님의 서재입니다.

노총각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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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너와삽
작품등록일 :
2017.08.12 09:47
최근연재일 :
2018.03.25 20:07
연재수 :
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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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116
글자수 :
208,691

작성
17.11.09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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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3
추천
3
글자
13쪽

4화. 반드시 앉아서 가리라

DUMMY

한진우는 이틀 연속 과음에 따른 몰려오는 속쓰림과 두통에 제대로 몸을 가눌 수 없었다. 어제는 간만에 그의 아버지랑 새벽까지 달렸다.


그는 아버지가 술에 취할 때마다 하는 ‘내가 분당에 평당 100원일 때 땅을 사러 가려했는데 갑자기 똥이 마려워서 집으로 돌아가느냐고 못 샀다. 엉엉엉.’ 한탄을 96번째 들었다.


한진우는 간신히 한걸음, 한걸음 걸어 나가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9호선에 밀려 그나마 덜 북적인다는 말을 듣는 2호선이었지만, 전대 넘버원 지옥철의 명성은 썩어도 준치 수준이었다.


출근시간에는 바로 바로 지하철이 빠르게 도착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역 안에는 직장인들과 학생들로 넘쳐났다.


‘오늘 하루만 제발 앉아서 갔으면 좋겠다..’


혹시나 운 좋게 자리가 나기를 바라며, 열차에 탑승했지만, 역시나 자리는커녕 발 디딜 틈조차 없게 승객들로 가득했다.


그는 그냥 체념한 듯, 고개를 푹 숙인 채 달려가는 열차의 리듬에 몸을 맞추며 회사로 향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전방 2미터 앞에서 한 학생이 급하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자, 찬란한 공간이 열렸다.


너무나도 눈부신 아름다운 회색 플라스틱의 매끈함


그 아찔한 자태에 한진우는 잠시 넋이 나갔지만, 금세 정신을 차리고 집중했다.


‘둥 두두둥둥 두두둥둥 두두둥. 빠바 바바바 바 바바밤~~’


미드 덕후 한진우의 귓속에서는 왕좌의 게임 오프닝 OST가 울려 퍼지고, 회색왕좌에 앉기 위해 그는 온 전력을 다해 앞으로 뛰어 나갔다.


‘가랏. 한진우 제트 터보 1호!!!!!!!!’


공항에서 여객기가 착륙할 때 바퀴를 내리 듯, 한진우가 바로 눈앞의 왕좌에 그의 엉덩이를 내리깔고 탈환에 성공할 무렵.


“!!!!!!!!!!!!!”


한 여성이 빠른 속도로 다가와 그를 어깨로 밀치고 회색 왕좌의 주인공이 되었다.


‘뭐야 이건??’


눈앞에서 먹이를 빼앗긴 하이에나처럼, 한진우는 눈에 불을 키고 어깨빵녀를 노려봤다.


검은 긴 생머리, 어깨를 다 드러낸 붉은 상의, 짧은 검정치마, 어딘가 살짝 손을 댄 것 같은 약간의 부자연스러운 얼굴, 하지만 결론적으로 빼어난 미모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한진우와 눈길이 마주치자, 비웃듯 가볍게 미소 지었다. 패배자에게 퍼붓는 승리의 세레모니 같았다.


‘아아아아!!!!’


한진우는 너무나 뼈아픈 패배에 분노했지만, 딱히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는 상심하지 않고 모든 감각을 동원해 이른 바 ‘자리에 앉아서 가기 프로젝트’를 가동시켰다.


그는 우선 노약자 칸을 제외하고 일반인들 좌석 중앙에 기지국을 펼쳤다. 전철 안에 있는 사람들의 연령과 옷차림새, 직업 등을 면밀히 스캔했다.


자고 있는 나태한 낙오자 같은 사람들보다는 깨어있는 미래지향적 인간들이 많은 쪽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했다.


좌석에 앉아있는 두 명의 중앙에 위치하여 다리를 약간 벌리고 1타2피의 경계를 걸쳐 영역을 확장하였다.


이름하여 ‘화개장터 작전’


전라도와 경상도를 다 먹겠다는 심정으로 슬금슬금 다리를 벌리고 손잡이도 넓게 잡았다. 정면의 적들과 대치하는 상황임에도 좌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특히 뒷좌석은 점령하기 쉬운 고지였기에 지하철 유리를 통해 비치는 모습을 보며 언제는 뒤로 문워크를 시전 할 생각으로 주시했다.


그 때 반경 3미터 부근 9시 방향에서, 자기계발 책을 무릎에 놓고 핸드폰을 만지작하던 20대 후반의 여인의 움직임이 포착됐다.


그녀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다가 핸드폰을 자신의 백 안에 넣었다.


매의 눈으로 그 상황을 포착한 한진우는 아주 자연스러운 게걸음 댄스모션으로 몸을 이동시키려고 했다.


바로 그 순간.


자신의 코앞에서, 마치 고랭지 배추를 연상하게 하는 파마머리를 하고 자주색 백팩을 맨 채로 자리에 앉아있던 중년 아주머니의 엉덩이 들썩임이 보였다.


열차는 잠실나루역을 지나 곧 있으면 강변역에 도착할 때쯤이었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탕수육 부먹? 찍먹?’

‘짜장이냐? 짬뽕이냐?’

‘순대먹을 때 소금이냐? 막장이냐?’


인생은 항상 선택의 연속이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한진우는 그 기로에 서 있었다.


‘대체 이번 역에서 내리는 진범은 누구일 것인가..’


그동안 명탐정 코난을 보며 큰 죄 없이 수백명이 죽어가는 것을 본 한진우였다. 코난 모드로 태세 전환을 하며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외쳤다.


‘홍장미(하이바라). 나에게 힘을 줘.’


전 세계에서 가장 눈치없는 미란이보다는 이런 상황에선 시크함과 명석함을 지닌 츤데레의 정석 ‘홍장미’에게 도움을 청했다.


‘초점 없는 네 두 눈의 사랑을~ 느낄~~ 수는 없지만~~’

머릿속에서 명탐정 코난 오프닝 곡이 울려 퍼졌다.


‘초점 없는 네 두 눈의 사랑은 느낄 수 없지만, 자리에서 일어나는 당신은 잡아낼 수 있어!!’


그 때.


홍장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애정이 있는 듯 없는 듯 무심하면서도 정감 있는 차가운 보이스.


“한코난!! 강변역에서 내려야 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봐.”


“고마워. 장미야. 나 명탐정 한코난. 꼭 이 난제를 해결할게. 지켜봐줘.”


강변역이라 하면 테크노마트와 동서울고속버스터미널이 대표적으로 떠올랐다.


바로 눈앞의 백팩 아주머니는 장거리를 가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테크노마트에서 데이트를 할 것 같지도 않았다. 금방 내릴 것 같은 느낌은 들었지만 강변역과는 거리가 멀었다.


다음으로 자기계발녀. 사무실에 적합한 정확히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치마의 정장 스탈 옷차림이었기에 장거리로 버스를 탈 인물은 아니었다.


주말이었다면 군대에 있는 남자친구의 면회를 가기 위해 버스터미널을 이용할 수 있었겠지만 오늘은 평일 출근시간이었다.


하지만, 명탐정 한코난은 한물 간 데이트장소라도 테크노마트에서 애인을 만날 수 있고, 일하는 사무실이 강변역에 있을 수도 있었기에 수학적 확률로 보면 백팩 아줌마보다 이 아가씨가 내릴 확률이 더 높다고 빛의 속도로 판단했다.


바로 눈앞의 아주머니, 3미터 옆에 떨어진 직장여성. 이 중에 과연 역에서 내리는 진범은??


고민하고 있던 한코난에게 홍장미의 외침이 들려왔다.


“한코난. 너의 육감보단 수학적 분석의 힘을 믿어!!!!”


“그래. 장미야. 너의 말에 따를게!!”


전철은 점점 강변역 근처에 다다르고 정차 일보 직전이었다.


명탐정 한코난은 전철이 완전히 멈추기 바로 직전에 자기계발녀에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백팩아줌마, 자기계발녀 모두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과연 누가 내릴 것인가... 과연 범인은. 범인은!!!!


우선 자기계발녀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더니 자신의 백에서 손거울을 꺼내더니 피부가 화장을 맛있게 잘 먹었는지 확인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쿵!!’


뒤통수를 오함마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은 한진우였다.


이렇게 된 이상 자신이 원래 있던 자리에 아주머니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못된 놀부 심보로 그 쪽을 바라보았는데..


그의 바람을 처참히 무너뜨리며 아주머니는 역이 정차하고 한참 후에 급하게 자리에 일어나 재빠른 걸음으로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녀가 떠난 자리에는 어떤 대머리 아저씨가 자리를 차지하고는 다리를 쩍 벌리며 영역을 표시하였다.


‘그냥 가만히 있을 것을...’


그가 사기가 저하되어 기운이 빠져 있을 때쯤, 저 멀리서 편안한 자세로 앉아있는 어깨빵녀를 보게 되었다.


‘반드시 앉아서 가리라!!!!’

다시 전의를 불태우는 한진우였다.


한진우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목적지인 왕십리역까지는 이제 6정거장 남았다.


그는 눈을 감고 다시 홍장미를 불렀다.


“한코난. 곧 건대입구 역이야.”


홍장미의 조언은 짧았다. 한진우는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건대입구면 당연히 건대생들이 내릴 것이고 건대는 큰 학교이기에 많은 학생들이 하차할 것이었다. 답은 간단했다.


주위 상황과는 상관없이 학생들만 찾아 두리번거렸다. 긴 좌석에 대부분 1~2명씩은 학생들이 앉아있었다.


학생들이 많아도 친구끼리 앉은 좌석은 피했고 혼자 앉아있는 학생들이 많은 긴 좌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뒤를 돌아보니 전철 안을 한참 걸어 왔다.


‘이제 운명에 맡기자. 우리 건대 학생분들 잘 부탁해요. 요로시쿠 오네가이시마스.’


한진우는 다음역이 건대입구라는 안내멘트가 들려오자 앞에 앉아있는 학생들의 반응을 살폈다.


아직까지는 별 움직임이 없이 각자 핸드폰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몇 초가 흐른 후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몸을 들썩이는 학생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건 훼이크다. 그냥 이 곳이 내 무덤이라고 생각하고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으리.’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명언을 떠올리며 가마니처럼 가만히 있기로 한 한진우였다.


드디어 지하철이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는데도 한진우 바로 앞의 학생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다시 초조함과 불안함이 밀려왔다.


한진우가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 마침 이번엔 3시 방향에서 스포츠머리를 한 남학생이 읽고 있던 책을 백팩에 넣는 것이 목격되었다. 학교 과잠바로 보이는 외투를 걸치고 있었다.


‘건대 학생인가본데..’

한진우는 다시 갈등하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어서 중간이라도 갈 것이냐. 아니면 미지의 세계로의 모험을 택할 것이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기 시작한 무렵.


그 때 다시 들려오는 홍장미의 앙칼진 목소리.


“한코난, 니 자신의 감각과 판단을 믿어!!”


“장미야. 아깐 감보다는 분석을 믿으라며.”


“아깐 내가 아니었어. 밥만 쳐 먹고 사고만 치는 뭉치의 농간에 놀아났던 거야. 이름이 왜 뭉치겠어. 번역자가 민석이나 진수 같은 평범한 이름을 두고 왜 뭉치로 지었겠냐고. 지가 보기에도 저 뚱땡이가 허구헌날 사고뭉치 짓만 하니깐 뭉치로 라임을 맞췄겠지. 나를 믿고 또한 너를 믿기를 바라. 넌 세계 최고의 명탐정 한코난이야!!”


홍장미의 조언에 힘을 얻은 한코난은 고개를 숙이고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그래. 장미야. 이 험한 세상에 진정 믿을 것은 내 자신뿐이야.”


한진우는 바로 앞에서 꼼짝도 안하는 세 명의 학생들이 있는 자리를 뒤로 하고 자신의 가방을 만지고 있는 스포츠머리 남학생의 앞으로 다가갔다.


전철이 점점 속도를 줄여 곧 정차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진우는 마른 침을 삼키고 두근대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결과를 받아드리기로 했다.


건대입구역에 도착하여 문이 열리자 한진우가 먼저 자리에 있던, 전혀 움직임이 없는 세 명의 학생들은 마치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일제히 일어나서 내렸다.


‘콰!! 콰앙!!!’

다시 쇼크가 한진우에게 찾아왔다.


그는 눈이 휘둥그래진 채로 앞자리의 학생에게 집중했다. 드디어 그 학생도 가방을 쥐고 몸을 일으켰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리.’ 혹시 모를 몸싸움에 대비해 장판대교의 장비처럼 굳건히 영역을 지켰다. ‘이 고귀하신 분의 하차에 누가 되지는 않을까’ 조조를 경호하다가 장렬히 죽음을 맞이한 전위의 심정으로 온 몸을 다해 그 학생을 호위했다.


‘자 이제 진달래길을 걸으시죠. 야구점퍼 스포츠머리 이름 모를 남학생님. 당신의 이름은 중요치 않습니다. 당신의 한발 한발 힘찬 발걸음만이 중요할 뿐이에요. 이 쪽이 나가시는 문이랍니다.’


정중함과 경건함, 그리고 사명감으로 무장하고 혼잡한 길을 터냈다.


바로 그 때. 그 고결한 학생이 문으로 나가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다, 갑자기 순간 뒤로 돌아서 자신의 백팩을 지하철 선반 위로 올리더니 재빠르게 물찬 제비처럼 다시 자기 자리에 앉았다.


‘쿠콰콰쾅!!’


그의 뒷모습을 보고 한진우는 좌절하였다.


학생의 야구점퍼 뒤편에는 영어로 한양유니버시티가 적혀있었다.



결국 한진우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서서 긴 시간을 보냈다.


‘젠장..’


역 안에서 왔다갔다 분주하게 보냈더니 어느새 술이 깬 듯 했다.


그는 많은 인파에 떠밀려서 역 밖으로 나갈 때쯤, 오늘의 원흉 어깨빵녀가 앞에 가는 것을 보았다.


‘원수는 같은 역에서 만난다더니, 저 것도 직장이 이 근처인가보네.’


한진우는 혼자 구시렁거리며 걸어가는데 우연치 않게 어깨빵녀와 가는 방향이 같았다.


그녀에 대한 분노는, 그녀의 뒤태를 보고 점점 사그라들었다.


하얀 피부. 가는 허리에 긴 다리, 무엇보다도 서구적인 골반에 넋을 잃었다.


‘그래. 사람은 누구나 잘못할 수 있는 법. 내 너를 용서하마.’


한진우는 너그러이 어깨빵녀를 용서하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런데, 그 미모의 여성은 한진우가 일하는 ‘공기밥’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어? 저 여자 왜 우리 회사로 들어가는 거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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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7화. 시동이 걸리다 17.11.12 354 4 12쪽
6 6화. 승리감 17.11.11 366 4 13쪽
5 5화. 훈훈한 사무실 17.11.10 454 4 15쪽
» 4화. 반드시 앉아서 가리라 17.11.09 474 3 13쪽
3 3화. 내가 모르는 AV배우는 없다 +3 17.11.07 560 4 18쪽
2 2화. 결혼이야 하고는 싶지만.. 17.11.07 1,146 4 19쪽
1 1화. 두 남녀 +1 17.08.12 4,488 8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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