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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너와삽 님의 서재입니다.

노총각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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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너와삽
작품등록일 :
2017.08.12 09:47
최근연재일 :
2018.03.25 20:07
연재수 :
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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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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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글자수 :
208,691

작성
17.11.07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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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2화. 결혼이야 하고는 싶지만..

DUMMY

불과 몇 시간 전, 한진우는 새롭게 적응해야 할 환경을 떠올리며 밀려오는 스트레스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보수적인 곳이면 기본 정장이 낫겠지? 아냐. 너무 올드하고 답답해 보일 수 있어. 그럼 세미 정장으로 입고 갈까? 아니야. 건방져 보일지도 몰라.’


‘직속상관은 어떤 업무 스타일이려나. 야근을 회사에 대한 충성도로 생각하는 사람일까. 정치 성향은 어느 쪽일까. 주말마다 등산가자고 하는 거 아닌 가 몰라.’


‘초반에 어떤 컨셉으로 각인시킬까. 조금 강하게? 처음부터 적을 만들 수도 있는데.. 친절하면서 정중하게? 아니야. 너무 만만해보여서 일이 많아질지도 몰라.’


그는 오만가지 잡생각들로 이직 후 첫 출근을 걱정하며 회사에 도착했는데.




처음 마주친 건, 머리 긴 스컹크 한 마리였다.


눈앞에 보이는 동물의 동공은 진도 6.5 규모로 크게 흔들리고 있었고, 몸은 굳어있었다.


그래도 육안으로는 암컷으로 보였기에, 무안하지 않게 아무런 일도 없는 듯이 자연스럽게 행동하려 미소를 보이며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12년 전의 군대 화생방 수준의 독가스가 그의 입과 코로 파고들었다.


순간 정신을 잃을 뻔 했지만, 태연한 척하려 애를 쓰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저.. 출근하면 회의실로 오라고 하셨는데, 어디로 가면 되나요?”


한진우가 먼저 말을 건넸지만, 주선자는 당황스러움에 마치 박물관 동상처럼 돌이 된 채 꼼짝할 수 없었다.


상황도 상황이었지만, 자신이 예상했던 직속 팀장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주선자는 입사동기인 인사팀 임대리 자리에서 한진우의 사진은 아주 잠시 보았었다. 현대 과학기술의 최대 집대성인 ‘포토샵’의 우수함을 잘 알고 있었기에 별 기대는 안했지만, 이력서 사진보다 훨씬 깔끔하고 말쑥한 그의 외모에 놀랐다.


한진우가 물어 온 질문의 대답보다도 “이력서 사진을 다시 찍으면 좋겠어요.”라는 첫 마디를 말해주고 싶은 그녀였다.


주선자는 잠시 멍한 상태였지만, 상황을 수습하려 수줍게 답을 했다.


“네. 안녕하세요.. 이쪽으로 오시면 돼요..”


두 사람은 어색한 상태에서 같이 대회의실로 향했다.


주선자가 문 앞에 서서 뭔가 쑥스러운 듯 ‘쭈뼛쭈뼛’ 망설이자, 한진우가 그녀의 앞에 서서 노크를 하고 문을 열어 제꼈다.


‘드르륵’ 문이 열리자, 회의실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한진우에게 쏠렸다.


그 틈에 주선자는 얼굴을 손으로 가린 채 쏜살같이 맨 뒤 공간으로 숨어들었다.


회의실 내부는 겉으로 보기와는 다르게 꽤 넓은 평수였다. 길게 뻗은 직사각형 원목 탁자가 몇 개가 일렬도 놓여있었다. 중간쯤에 프로젝터 빔이 푸른빛을 내며 깜박이고 있었고, 탁자의 맨 끝 중앙에 회사 대표로 보이는 40대 중후반 남성이 여유 있는 모습으로 다리를 꼬고 등받이에 기대어 있었다.


목탁의 주변으로 팀장급의 사람들이 나름대로 편안한 모습으로 위치해 있고, 짬이 안 되어 보이는 젊은 직원들은 그 주위를 둘러싸고 겹겹이 좁게 앉아 있었다.


뉴페이스의 등장으로 뭔가 어수선해지자, 공기밥 대표이사 권성태는 위엄있게 말했다.


“전에 말했듯이 오늘 새로 구매팀장이 왔습니다. 반갑게 맞아줍시다. 자 한팀장도 자기소개 간단히 부탁해요.”


소식을 미리 접한 직원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외근과 현장업무가 많이 있는 직원들은 ‘새로운 구매팀장’이라는 단어가 귀에 꽂히며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구매팀장의 모습은 ‘까칠함’, ‘거만함’, ‘갑질’ 등의 고압적인 느낌이었기에 마른 몸의 하얀 피부를 지닌 한진우를 보면서 어딘가 약해 보이고, 과연 잘 할 수 있을까란 의문을 가졌다.


기대 반, 우려 반 회의실 내의 모든 사람들은 한진우에게 더욱 집중하였다.


그는 부담스러운 자리에서의 자기소개였지만, 자신 있는 미소를 보이며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한진우라고 합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외식 구매 담당자임을 자부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짧고 간결했지만 당당한 어조와 정확한 발음, 귀에 잘 들어오는 약간의 중저음의 목소리.

특히 ‘대한민국 최고’라는 단어 선택에서 나오는 자신감은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회의실에 있던 직원들은 박수로 그를 맞았고, 권성태 대표도 흡족한 미소를 보였다.


그냥 자리로 들여보낼까도 생각했지만,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인지 궁금했기에 다시 한진우에게 물었다.


“여기 모인 사람들에게 한팀장이 ‘구매’업무가 무엇인지 알려줘 봐요.”


갑작스러운 질문을 받았지만, 한진우는 당황하지 않고 다시 목을 가다듬은 후 당당하게 말했다.


“흔히들 구매 업무를 생각하실 때, ‘원가절감’이란 단어를 떠올리실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구매 업무는 정직한 업체에서 안전한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을 받아 적시에 사용처에 공급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무언가를 깎는다는 개념보다는 얼마나 원활하게 공급해주느냐가 중요합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이 근무함에 있어 저희 구매팀에서 건강한 심장이 되어 열심히 펌프질 해드리겠습니다.”


한진우의 말이 끝나자 다시 한 번 박수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렇게 모두들 웃음 지으며 그를 환대하고 있을 때, 주선자는 잠시 넋이 나간 채로 한진우에게서 눈을 떼지 못 하였다.


모든 것이 안 보이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 오직 한진우에게만 빛이 보였고, 그와 자신의 거리 사이에는 아름다운 꽃길로 이어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시간은 멈춘 것 같았고, 주위에 모든 잡음은 그녀의 귓가에 들리지 않았다. 오직 한진우의 목소리만이 메아리로 울려 퍼졌다.


주선자가 환상 속에 빠져 들어갈 때쯤, 옆에 있던 임대리가 그녀의 팔을 툭툭 건들며 귓속말을 걸어왔다.


“새로 오신 분. 생각보다 괜찮은데? 외모도 그렇고 목소리도 좋고. 안 그래?”


임대리의 말에 움찔하였지만, 주선자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뭐.. 그냥.. 근데 내 스타일은 아냐.”


“그래? 주대리 스탈은 아니어서 다행이네. 그럼 내가 한번 꼬셔볼 까나?”


임대리의 말은 농담처럼 느껴졌지만, 그녀도 한진우가 나름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주선자는 ‘안 돼’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자격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꿈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온 그녀는 한진우고 뭐고 일단 화장실로 냅다 뛰었다.


시간이 흘러 회의가 끝나자 직원들은 모두 각자의 부서 위치로 돌아갔다.


구매팀은 사무실 제일 안쪽 구석에 위치해 있었다. 구매팀장의 자리는 그 중에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모니터 화면이 보이지 않게, 회사의 구매단가 노출의 우려를 방지하기 위해 철저히 가려져 있었다.


한진우는 우선 자신의 자리 배치에는 굉장히 만족해했다. 업무에 집중하기도 좋고, 또한 딴짓거리하기도 편한 자리였기에 출근하자마자 그가 좋아하는 웹툰과 웹소설을 보고 하루 업무를 시작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그의 자리 앞에는 주선자와 지금은 비어있지만 조만간 채용할 예정인 신입사원의 자리가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그렇게 높지 않은 파티션으로 서로 소통하는 데는 크게 불편함은 없어보였다.


이전 자리의 주인이 완벽하게 자리정돈을 하고 가지는 않은 것 같아서, 책상 서랍 속에 있는 잡동사니들을 비워나갔다. 그러는 사이에 주선자가 자리로 돌아와서 그의 앞에 앉았다.


한진우는 오전에 무안한 일이 있었던 여직원이 자신의 자리 앞에 앉자 같은 팀임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표정을 보니 아직 어색하고 민망해하는 것 같아서 그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주선자에게 말을 걸었다.


“한진우라고 해요. 앞으로 잘 부탁해요.”


한진우가 다정하게 말을 걸어오자, 주선자는 얼굴은 마주치지 못한 채 작은 목소리로 수줍어하며 답했다.


“네. 팀장님. 저는 주선자라고 합니다. 저도 잘 부탁드려요..”


“지금 많이 바쁘세요? 첫날인데 앞으로 잘 부탁드릴 겸 커피한잔 살게요.”


한진우는 현재 구매팀 업무 계획 논의도 하고, 밑에 직원과 조금 친해지기 위해 말을 건넸다.


주선자는 머뭇거리다가 다시 수줍게 대답했다.


“네.. 좋아요..”


한진우는 별 생각 없이 제안한 커피타임이었지만, 주선자에게는 업무적 관계 이상의 은은함 달콤한 이벤트로 느껴졌다.


그녀는 설렜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둘이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저. 구매팀장님. 잠시만요.”

마케팅팀 소미영 팀장이었다.



소팀장은 수수하게 생긴 얼굴에 늘씬한 기럭지와 볼륨이 넘치는 몸매의 소유자로 언제나 짧고 달라붙는 패션으로 남성들의 시선을 끌었다. 무언가에 금방 싫증을 느끼는 타입으로 주변에 남자는 자주 바뀌었다. 남자직원들에게는 따뜻한 미소를 자주 보였고 여직원들에게는 히스테리틱한 행동을 보여 평가는 극과 극을 보였다.


그녀는 한진우에게 구매팀과 급하게 논의할 것이 있다고 하며 그의 팔을 살며시 자신의 몸으로 끌어당기며 자리로 향했다.


‘저런 래쉬가드 입은 독두꺼비 같은 년이. 하필 이런 중요한 시기에!!!’


주선자는 분노했다.


소미영은 한진우에게 은근슬쩍 스킨십을 하며 설명했다. 내일 있을 메뉴 촬영에 필요한 A급의 신선한 식자재 구매 요청이었다. 주선자에게 물었어도 될 일이었지만, 그녀는 새로 온 남자팀장과 말을 섞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에 그에게 부탁하는 척하며 말을 걸었다.


생각보다 둘의 대화가 길어지자, 주선자는 우선 서랍 속에서 손거울을 꺼내 다시 한번 머리를 정돈하고 안정적으로 심호흡을 진행했다.


‘오전에 개망신을 만회하겠어. 나의 넘치는 매력으로!!!!’


구매팀장과 마케팅팀장의 간단한 미팅이 끝나고, 한진우는 다시 주선자에게로 다가갔다.


5미터도 안 되는 짧은 거리인데 주선자에게는 왜 이렇게 길게 느껴지는지, 한진우의 걸음걸이는 슬로우 모션으로 보였고 다시 심장이 쿵쾅거렸다.


‘팀장님. 저 이제 나갈 준비가 다 되었어요. 어서 오시길. 오호호호.’


주선자는 음흉한 미소를 보이며 한진우를 맞이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한팀장. 우리 강남 직영점에서 식사해 본 적 있나?”


어디선가 권성태 대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못 가봤습니다.”


“그래? 마침 가는 길인데 같이 가자고. 직원들 소개도 시켜 줄 테니.”


“네. 알겠습니다.”


주선자에겐 아쉬운 순간이었지만, 한진우에게는 출근 첫날 회사 사장의 지시였기에 일말의 고민도 없이 따랐다.


한진우는 주선자에게 다음 커피타임을 기약하며 황급히 회사 대표 뒤를 따라 뛰어갔다.


그렇게 직장인들의 바쁜 월요일은 순식간에 지나갔고, 기쁨의 퇴근을 맞이하였다.


퇴근길에 주선자의 머릿속은 한진우에 대한 설렘과 뭔가를 잊은 듯 약간의 불안감이 공존하였다.


‘뭐지.. 뭘 까먹은 것 같긴 한데..’


그렇게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을 때쯤, 지하철 문이 열리고 한 아주머니가 흰색 푸들을 자식처럼 안고 탑승했다. 그 모습을 보고 주선자는 잊고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 새끼 길냥이!!’


오전에 급하게 동물병원에 맡겨 두었던 아기 고양이가 생각이 났다.

그녀는 지하철역에서 내리자마자 병원으로 곧장 달려갔다.


병원 직원은 미소로 반기며 투명 플라스틱으로 된 작은 반려동물 케이스를 건넸고, 그 안에는 아주 작고 이쁜 새끼 고양이가 곤히 잠들어 있었다. 주선자는 그 모습을 보고 힘든 월요일 업무 스트레스가 모조리 치유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혹시나 이 작은 동물이 깨지는 않을까, 조심스레 케이스를 받아들고 계산을 하려 했다. 데스크 직원은 다시 활짝 미소를 보이며 금액을 불러주었다.


“접종 비용, 케이스 비용, 그리고 초유 등등 해서 9만 7천원입니다.”


“네? 얼마라구요?”

주선자는 자신이 잘못 들었는지 다시 한번 직원에게 금액을 물었다.


“네. 손님. 합계 9만 7천원입니다. 앞으로 접종 두 번 더 있을 거예요. 그 땐 1회당 5만원 정도로 예상하시면 되겠습니다.”


‘컥’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지출에 주선자는 정신을 잃을 뻔 했다. 하지만 없어 보이기 싫었고, 눈앞의 작은 동물은 너무나 사랑스러웠기에 당당하게 일시불로 계산하고 병원 문을 나섰다.


주선자는 집에 가는 길에도 몇 번씩이나 케이스 안을 들어다보며, 터져 나오는 미소를 주체하지 못 했다.


환히 웃고 있을 무렵에, 주선자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김지민]


주선자는 케이스를 떨어뜨리지 않게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선자야. 어디고?"


"내? 집에 가는 길이다."


부산 출신인 주선자는 오랜 친구와의 통화에 꾹꾹 봉인해두었던 사투리 보따리를 풀어헤쳤다.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들과의 통화 때는 자동적으로 방언키가 켜졌다.


"밥은 묵었나?"


"집에 가서 먹어야지. 니는 집인 갑네. 좀만 있으면 아줌마 되는데 하루라도 나가서 노는 게 안 낫나?"


"그냥 모르겠네. 기분이 점점 이상하다."


"뭐가 이상하노. 난 니가 부러워 죽겠구만."


"선자 니는 언제 결혼할 끼고? 니는 아직 앳되어 보이고 이쁘장하니까 주변 머시마들이 벌떡 세운 채로 들이대지 않나?"


"뭐라노. 그런 거 없다. 밤마다 허벅지를 벅 벅 긁는데 이제는 피가 날라 칸다."


주선자의 말에 둘은 깔깔대며 크게 웃었다.


"내 결혼식 때 오면 우리 오빠 친구들 중에 제일 잘생긴 놈으로 바로 자리 만들어 줄끄마."


"맞나. 니 분명 약속했데이. 야수 같은 놈으로 하나 엮어도."


"크크 알겠다. 조심히 들어가고 2주 후에 보자이~. 사랑한데이."


"오야. 나도."



주선자는 흐뭇한 표정으로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흥겨움도 잠시, 부러움과 외로움이 차올랐다.


그녀는 친구의 카톡 프로필 사진에 있는 화려한 웨딩드레스에 자신의 얼굴을 넣어 상상했다.


나름 잘 어울림에 시무룩했던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음.. 난 신혼여행은 몰디브로 가서~ 아무도 없는 해변가에서~ 크으..'


주선자가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을 때쯤, 또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


주선자는 살짝 한숨을 쉬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엄마~~”


“우리 이쁜 딸. 잘 지내고 있지?”


“응. 당연하지. 저녁은 드셨어요?”


“지금 먹었어..”



주선자는 어머니의 자신 없는 목소리가 더욱 작아짐에 무슨 말을 하려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엄마. 내가 이번 달 우수사원으로 보너스 탔거든. 안 그래도 전화할려고 했는데. 내일 용돈 많이 넣어 드릴 테니 맛난 거 사 드셔요~”


“응? 그래. 고맙다. 엄마가 많이 미안해..”


“미안하긴. 무슨. 내가 조만간 돈 많이 벌어다 줄 테니. 몸 건강 차리세요. 기운 내시고!!”


짧게 통화를 끝낸 뒤, 주선자는 은행 어플로 잔고를 확인했다. 다른 29살의 여성들은 모은 돈으로 시집 갈 준비 다 해놓고, 여행도 다니며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는데, 그녀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학창시절부터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지금까지 열심히 일했지만 통장 잔고는 3백만원을 넘지 못했다.


'내 까짓 게 무슨 시집이냐..'


주선자는 하늘을 향해 크게 한숨을 내뱉었다. 자신에 손에 쥐어진 작은 생물에 대한 걱정도 함께 밀려왔다.


'야옹아. 아무래도 너랑은 인연이 아닌가 보다. 돈 많고 착한 집사 만나게 해줄게.'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터벅터벅 집으로 향했다.



저녁 11시경.


한진우는 회사 대표와 함께 강남직영점을 방문하여 직원들과 술자리까지 하고 얼굴이 벌건 채로 집안에 들어왔다.


거실 안에는 그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이 심각한 표정으로 자리하여 있었다.


“진우. 밥은 먹었니?”

그의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아들의 식사 여부를 물었다.


“네. 술을 훨씬 더 먹긴 했지만..”


“어서 오너라. 마이 썬. 오늘 우리 패밀리의 중요 회의가 있단다.”

한진우의 아버지 한성준은 근엄하고 씩씩하게 가족회의 시작을 알렸다.


“다들 알다시피 우리의 새로운 가족 ‘베토벤’이 눈을 떴다. 사랑스러운 우리 토벤이 외로워하지 않게 한 마리를 더 입양하려고 하는데 여러분 생각은 어떠한가.”


‘베토벤’은 한진우의 여동생이 회사 동료로부터 입양한 먼치킨 새끼고양이였다.


귀가 어두워 자신의 말을 잘 못 알아듣는다고, 한성준이 붙여준 이름이었다.


갓 태어난 고양이가 사람 말을 알아들을 리가 만무했지만, 한성준은 자신의 작명 센스에 흡족해했다.


처음에 그는 반려동물의 입양을 극구 반대했지만, 지금은 가장 충성스러운 집사가 되어 자나 깨나 베토벤 생각뿐이었다.


“난 반대에요.”

한진우의 어머니 김옥분은 냉혹하게 반대표를 던졌다.


“아니. 마이 달링. 대체 왜..”

한성준은 서운한 듯 물었다.


“베토벤 하나로도 힘든 데 이 좁은 집에 고양이 두 마리면 날리는 털은 어떡할려고.. 난 절대 반대에요.”


잠시 침묵이 흘렀고, 그 다음은 한진우의 여동생 한수진이 말했다.


“난 찬성. 한 마리 더 있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오. 마이 도러. 역시 넌 훌륭한 마이 도러야.”

한성준의 얼굴에는 다시 화색이 돌았다.


이제 남은 건. 한진우.

모든 가족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도 찬성.”


아들의 찬성표에 아버지는 크게 기뻐하였고, 어머니는 실망감으로 그에게 따지는 듯이 이유를 물었다.


“니가 다 청소할 거야? 두 마리나 필요한 이유가 있어?”


“마이 대리. 마이 마미. 마이 시스털. 우리 토벤이도 지금은 그냥 순수한 깜찍이지만, 쟤도 엄연한 수컷이에요. 곧 있으면 종족번식의 욕구가 차오를 것이라고. 그러니 난 암컷으로 입양을 해서 짝을 지어줬으면 해.”


한진우의 대답에, 모두들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분위기가 싸늘해지자 한성준이 입을 열었다.


“하긴. 마이 썬의 생각을 진정한 남자인 나로서는 이해해. 나도 저 놈 태어났을 때 저렇게 맑고 순수한 작은 아이가 지금처럼 만날 방문 잠그고 야동 시청에 매진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으니. 다들 수컷을 이해해주길 바라며 이 회의의 결과를 발표합니다. 찬성 3, 반대 1로 새로운 가족을 하나 더 맞이하기로 합니다. 이상.”


한진우의 가족회의가 끝나갈 때 쯤, 주선자는 고양이 입양카페에 가입하여 좋은 주인을 찾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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