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샌드박스 님의 서재입니다.

용사는 독재합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샌드박스
작품등록일 :
2020.02.08 15:46
최근연재일 :
2020.02.26 09:00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21,511
추천수 :
671
글자수 :
151,751

작성
20.02.22 09:05
조회
594
추천
26
글자
17쪽

7장 : 푸른 깃발의 주인(2)

DUMMY

<2>

“기, 기사 리엔! 귀인을 뵙습니다!”


이튿날 오전. 슬슬 시내로 나갈 채비를 하고있던 용사에게 군기가 바짝 든 모습으로 젊은 여기사가 여관방에 나타났다.


“응?”


원장님 대신 귀인이라는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쓴 호칭은 그렇다 치더라도. 칙칙한 여관 복도 아래 보이는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어제는 투구 안으로도 제법 예쁘장한 얼굴이었는데... 일단 눈탱이가 밤탱이에 오똑한 코가 퉁퉁 부어있었다.


“맞았냐?”

“죄송합니다! 어제는 제가 큰 무례를 범했습니다!”


기사답게 우렁찬 발성의 목소리. 그러나 장소가 장소인지라 이대로 두면 민폐였기에 용사는 일단 그녀를 안으로 들였다.


“캐서린이 보낸 거야?”

“네! 감사 기간 동안 동행하며 수발을 들라 하셨습니다.”

“쯧쯧. 내가 애 잡지 말라니까, 하여간.”


딴에는 용사를 생각해서 한 일이겠지만, 본의 아니게 멀쩡한 기사 하나를 잡은 꼴이 되어버린 터라 용사는 조금 미안함을 느꼈다.

그래서 퉁퉁 부어있는 리엔의 얼굴을 슬쩍 찔러보았다. 단지 손가락이 스치기만 했는데도 리엔은 극심한 고통에 신음을 삼켰다.

기사라는 족속들이 기본적으로 몸이 튼튼하고 고통에도 익숙한 존재라는 것을 감안하면 얼마나 심하게 맞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어쩌면 고문요령까지 듬뿍 들어갔을 실력으로.


“에휴. 몸은? 일단 그거 좀 벗어봐라.”

“예?”


그 말에 순간 눈동자가 흔들리던 리엔은.


“아, 알겠습니다!”


라고 즉시 태세를 전환하며 입고있던 티셔츠부터 단추가 몇 개 튕겨나갈 정도로 거침없이 벗어던지다가 용사에게 혼났다.

속옷까지 모두 벗으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임마! 너는 나를 뭘로 보는 거야.”

“······.”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눈물을 글썽거리던 리엔은 일단 저기 가서 얌전히 앉아있으라는 용사의 말에 정말 착하게 저기 가서 엉덩이를 붙였다. 석상처럼 미동조차 하지 않는 모습으로.

용사는 어쩔 수 없이 있다가 클라라에게 치료를 부탁해야겠다고 생각하며 하던 준비나 마저 하기로 했다.


“주십시오! 짐은 제가 들겠습니다.”

“그래라. 너무 튀는 행동만 좀 자제하고.”

“알겠습니다!”


곧 준비를 끝낸 용사가 마지못해 직접 들어도 되는 작은 서류가방을 리엔에게 건네며 시내의 약속장소로 향했다.




&




웬일로 약속장소에 먼저 나타나서 기다리고 있던 클라라가 이어서 도착한 용사와 리엔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이럴 수가. 설마 잡히신 겁니까?”

“잡혔겠어요?”

“그럼 잡으신 겁니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계속 하고 있는지.

이 사제는.


“그럴 리가 있나요. 조사하러 오신 거예요. 인사하세요. 이쪽은 중앙 감찰단의 집행관이신 리엔 기사님이세요.”


그에 리엔이 무언가를 입 안에서 우물거리며 고개만 꾸벅 숙이며 클라라와 눈을 마주쳤다. 클라라가 어색하게 마주 화답했다.

조사하러 왔다는데 꼭 비서같은 느낌이긴 했지만.

리엔의 타박상은 어느새 많이 완화되어 있었다.

용사도 원래는 클라라에게 치료를 부탁하려고 했었는데, 중간에 아무리 생각해도 집행관의 치료를 자기가 클라라에게 부탁하려니까 이상해서 아쉬운대로 가지고 있던 상비약을 먹였던 것이다.

물론 상비약이라고는 하지만 무려 용사가 가지고 다니는 약이라 이 정도 타박상 쯤은 반나절이면 붓기가 모두 빠질 터였다.


“오늘 정식으로 보고하시는 겁니까?”

“그래야죠. 딱히 수정할 부분도 없으니까요.”


텔의 실력이 워낙 출중했어야지.

초안이고 뭐고 그녀가 실수했을 가능성도 없을 뿐더러, 이미 대략적인 내막까지 알고 있는 용사의 판단에 보고서는 더 이상의 검토가 무의미할 정도로 완벽했다. 더 미룰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당분간 바빠 지겠군요.”

“그렇겠죠.”


‘수도라... 거의 2년 만인가? 얼마나 바뀌었으려나.’


물론 이번 건으로 황제의 표창을 당연시 하고 있는 용사의 속마음을 들었다면 클라라가 지금처럼 태연하지는 못했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텔이 도착했다.

평소답지 않게 부스스한 모습이었다.

이유를 슬쩍 물어보니 늦잠을 자서 기다릴까봐 옷만 챙겨입고 달려왔다고 했다. 의뢰소의 숙직실에도 샤워시설은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 분은 왜 여기에 계신 거죠?”


의뢰소로 향하며 일행의 가장 우측에서 조용히 걷던 리엔을 가장 왼쪽에서 걷던 텔이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며 물었다.


“조사하러 오셨답니다.”


대답한 것은 클라라였다.


“무, 무슨 조사요?”

“저도 그게 의문입니다만.”


용사는 끼어드는 대신 반쯤 열려있던 의뢰소의 문을 활짝 열고 들어섰다. 점심시간을 맞아 홀도 데스크도 한적했던 의뢰소에 미묘한 긴장이 내려앉았다. 이틀이면 흑마법사 소식이 도시까지 나돌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수많은 시선이 일행의 행적을 좇는다.


“식사시간에 고생이 많으시네요.”

“아, 아니에요 텔 씨.”


1차 인원을 먼저 떠나보내고, 자리를 지키고 있던 텔의 동료가 올 것이 왔구나 하는 표정으로 긴장하며 일어났다.

곧 용사가 리엔에게 건네받은 가방에서 몇 묶음의 가지런한 서류를 꺼내 창구 너머의 직원에게 건넸다.


“3급 용병 류 몽블랑. 몽블랑 신전의 클라라 부교. 몽블랑 북부 의뢰소의 텔 모리아 사무원. 이상 3인. 블랙스톤 광업소 산하 7광구 악마 소동에 관한 의뢰완료 보고 드립니다.”

“네. 접수되었습니다.”


고생 끝. 아니 고생 시작이었다.




&




일행과 잠깐 점심을 먹고 돌아왔는데 의뢰소의 분위기는 아까와 전혀 달라져 있었다. 소식을 듣고 진작 조직하여 기다리고 있던 몽블랑치안청 산하 합동수사단이 일찌감치 진을 치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수사단 대표 한스 웨그너 반장입니다.”

“3급 용병 류 몽블랑입니다.”


가볍게 악수를 나누고 그의 팀원들이 기다리고 있던 회의실로 향했다. 여기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었고, 본격적인 수사 이관에 앞서서 참고인과 안면도 익힐 겸 임시로 내어준 것이었다. 오래 걸릴 일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많은 홀에서 할만한 이야기도 아니었으니까.


“몽블랑 신전의 클라라 부교입니다.”

“사무원 텔 모리아입니다.”


용사가 한스 웨그너 반장과 가볍게 향후 조사의 방향에 대해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클라라와 텔이 정식 조사를 시작할 각 분야의 담당자들과 개별적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클라라는 사제인 만큼 광산에서 있었던 일, 특히 그날 밤에 광산에서 만난 흑마법사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텔이 보고서에 꼼꼼히 적긴 했지만 보고서 이전에 증언으로만 전해들을 수 있는 미묘한 분위기 같은 것이 있는 것이다.


“일단은 현장기록과 일치하는군요.”

“벌써 현장 실사를 다녀오신 겁니까?”

“아. 저희는 아직이고. 이게 여러가지 사건이 복합적으로 물려있는 건이다 보니 윗선에서도 중앙 감찰단과 공조수사로 진행하다 일단락 되면 모두 넘겨받는 쪽으로 가닥이 잡힌 모양입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그동안의 조사자료를 1차로 넘겨받은 참이고요.”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한쪽에 조용히 앉아있던 여기사 리엔을 가볍게 돌아보았다. 이야기를 듣고있던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걸 무슨 수로 다 외웠냐고요?”

“네. 아무리 그래도 그걸 모두 기억하셨다는게...”

“그런가. 그렇게 이상한가요?”


텔은 보고서의 숫자 단위가 모두 확실하냐는 비리팀 담당 수사관의 질문에 기억하고 있는 장부의 내용과 틀림없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수사관은 쉽게 믿지 못했다. 곧 믿게 되겠지만.


“자자. 그건 돌아가서 차차 확인들 해보시고.”


누가 현직 수사관 아니랄까봐 안면만 익히려고 나온 자리에서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취조에 반장이 좌중을 돌아보며 말했다.


“우선 치안청을 대신해서 어렵고 궂은 일을 본인의 의무 이상으로 훌륭하게 완수해주신 세 분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모두 수고해주신 세 분께 큰 박수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세찬 박수소리가 잦아들자 반장이 말을 이었다.


“아울러 부서간 의견 조율을 확실히 하여, 수고해주신 세 분을 자잘한 참고인 조사 때문에 수시로 청으로 불러내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주시고. 마지막으로 이미 협의가 되었으니까 수사 과정에서 부당한 외압이나 명백한 비위행위 등을 발견할 경우 주저하지 마시고 저쪽에 계신 리엔 기사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소개드립니다. 중앙 감찰단 소속 집행관, 기사 리엔입니다.”


그에 작은 수군거림이 터져나왔다.

늦게 합류한 몇몇은 아까부터 한쪽에 조용히 앉아있던 리엔을 그냥 의뢰소 직원이겠거니 했는데 무려 우는 아이도 죽여버린다는 그 조직의 집행관이었으니까.


‘흑마법사가 문제가 아니었어.’


그리고 그제야 수사관들도 슬슬 실감하고 있었다.

이 건이 위로 올라가면 평범한 시민도 한 번은 이름을 들어봤을 고위 귀족가와 맞닿은 엄청난 규모의 사건이었다는 것을.


“당분간 이 도시에 머물며 치안청을 오갈 예정이니 어려운 일이 있으면 부담 말고 찾아주십시오. 잘 부탁드립니다.”


기사가 군대로 따지면 영관급 장교에 가깝고, 특히 중앙 감찰단이란 조직의 특성상 집행관쯤 되면 웬만한 고위 귀족들도 벌벌 떨 정도로 까마득한 지위였지만 수사관들을 대하는 리엔의 태도는 정중하기만 했다.

물론 하란다고 진짜 편하게 대할 수 있을 리가 없었지만 그럼에도 수사관들은 곧 그녀를 찾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직감했다.

수사 당사자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저녁에 한잔하셔야죠?’

‘오늘요? 좋죠.’

‘또 사제님 술 이야기 하시는 것 같은데······.’


물론 정작 당사자 셋은 큰 걱정 없이 그런 시선을 나누고 있을 뿐이었지만, 또한 이것이 용병업계의 좋은 점이기도 했다.

아무리 치열했던 의뢰도 의뢰가 끝나는 순간 선이 그어지는 것이다. 용사가 용병 생활을 마음에 들어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3>

일행과 함께 기분 좋게 한잔 하고 헤어진 뒤. 어제에 이어 오늘도 기다렸다는 듯이 찾아온 캐서린 랭포드와 함께 용사는 구도심의 허름한 주점의 문을 열어젖혔다.


“안 바쁘냐?”

“바쁩니다.”


안주가 나오기도 전에 거품이 가득한 맥주를 입술과 코에 묻혀가며 시원하게 들이켠 캐서린이 한숨과 함께 잔을 탁 내려놓았다.


“코에 거품 묻었다.”

“그런 건 말 안해주셔도 압니다. 좀 높아서 말이죠.”


그녀는 거품을 소매로 슥 닦아낸 뒤 기다렸다는 듯이 물었다.


“일을 왜 이렇게 크게 벌이신 겁니까?”


용사는 그저 빤히 묘령의 얼굴을 응시했다.


“죄를 밝히는데 이유가 필요한가?”

“그런 말이 아니잖습니까.”


캐서린이 단숨에 남은 맥주를 다 비운 뒤 안주를 가져오던 점원에게 새로운 맥주 한 잔을 시키며 말했다.


“수도에 지금 비상이 걸렸습니다. 이유는 아시겠죠. 대체 어디다 빨대를 꽂아두었는지는 몰라도 무려 원장님이 직접 지방의 작은 이권다둠에 개입하고 공론화시켰다는 것을 전해들은 귀족 가문들이 미쳐 날뛰고 있단 말입니다. 수도에 남겨놓은 행정 부단장이 지급으로 연락하길, 오늘, 아니 이제 어제군요. 어제는 로크톤 가의 가주가 찾아왔다더군요. 제가 지은 죄가 많아서 감옥에 가야 할 것 같다고요. 미친 거 아닙니까? 명문가 가주가 십 년 전에 꼴랑 돈 몇백 플로라 횡령한 일 가지고 왜 여기다 자수를 하냐고요. 오지 말라고 이런 데.”


캐서린이 머리를 감싸쥐며 열변을 토해냈다.

정말 걱정이 많아 보이는 표정이었다.


“미친새끼네 그거.”


로크톤 가라면 동부 평야지대에 영지를 둔 현 원로원 소속의 서열 10위권의 대 귀족가문으로 홀로 제국의 기초곡물 중 11퍼센트 이상을 공급하고 있는 농업의 큰손들이었다. 특히 걔네 포도주가 기가 막힌데 정말.


“로크톤 가 뿐만이 아닙니다. 아마 지금 이 시간에도 쟁쟁한 귀족 가문들의 날고 기는 중진들이 같지도 않은 비리를 손수 만들어서 제발 나 좀 잡아가 달라고 단의 행정을 마비시키고 있을 겁니다. 애들이 무슨 죄입니까? 애들이 무슨 힘이 있다고요.”

“문제네.”


비로소 용사가 사태의 심각성을 이해했다.


“근데 걔네가 미친 걸 왜 나보고 그러냐 너는?”

“······.”

“이러면 설득력이 없으려나?”


그에 캐서린이 용사를 죽일듯이 노려보았다.


“네. 설득력이 없습. 니다만.”

“미안하다.”


그래서 용사는 일단 허심탄회하게 사과부터 하기로 했다.

정말 몰랐다. 이게 또 이렇게 될 줄이야.

사실 어느정도 반응을 하긴 할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


잠시 말없이 술과 안주를 비우던 캐서린은.


“그래서 어떡할 거냐고요! 다 풀어줄 수도 없고요.”

“그냥 다 풀어주던지.”

“지금까지 해온 것이 있는데 어떻게 그럽니까. 적어도 저희는 그럴 수 없습니다. 아시잖습니까. 너희는 피도 눈물도 없는... 한 자루 검이 되어야 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원장님이 하신 말이잖습니까. 캐서린... 그러니까 울지 ㅁ.”

“알았어!”


용사가 부끄러움에 결국 항복을 선언하고 말았다.

그런 말을 이런 상황에서 꺼내다니. 너무한 거 아냐 진짜.


‘으... 내가 호랑이 새끼를 키웠지.’


“가주들에게 편지 돌려.”

“편지 가지고 되겠습니까?”

“이번에는 경고의 의미였다고 전해! 내가 화가 많이 났는데 니가... 아니 황제가 필사적으로 설득해서 이번에는 자숙하는 선에서 넘어가기로 했다고. 또 내가 지금의 생활을 마음에 들어하고 있어서 이 문제 때문에 지금의 생활이 방해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앞의 말은 임기응변이었지만 뒤의 말은 어느정도 진심이기도 했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악마들도 감감 무소식이었고.


“제가 씁니까?”

“아냐. 편지 하나를 받아도 나와 관련되면 수십 년 된 편지와 대조해서 필적감정까지 하는 놈들이야. 아무리 정밀하게 해도 네가 무슨 수로 수많은 가문의 수많은 마법사들의 눈을 모두 속이겠냐?”

“그럼 초안 잡아서 보내겠습니다.”

“그래. 반성하는셈 치고... 근데 내가 조금 생각해봤는데. 우리도 슬슬 인쇄기를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하지 않을까?”


그에 캐서린이 기가 찬다는 듯이 헛웃음을 흘렸다.


“수기로 쓰십시오. 장 수로 한 300장 될 겁니다.”

“너무행. 나 늙어서 사실 요즘 관절염도.”

“전속 사제단을 붙여드리면 되겠습니까?”

“······.”


잠시 잊고 있었다. 캐서린이 용사 눈에야 딸 같은 영원한 애송이라지만, 이제는 제국에서 손가락에 꼽힐 정도의 실권을 지닌 중년의 권력자라는 것을. 물론 중년이라는 말을 하면 싫어하겠지.


“할게! 하면 되잖아!”

“감사합니다.”

“일단... 통신기 줘봐.”


용사가 이마를 감싸 쥐며 캐서린에게 건네받은 수도의 중앙 감찰단으로 통하는 마법공학 통신기를 앞에 올려놓고 가볍게 마력을 집어넣었다. 최근에 발명된 물건으로 장거리에서도 무선으로 상대와 대화를 할 수 있게 해주는 최신 첩보기기였다.

곧 테이블 위의 상자가 웅웅거리며 공명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멀리 떨어진 수도에 존재하는 같은 수정자의 통신기와 감응하면서 주파수가 맞춰졌고, 마침내 통신이 연결되었다.


“예. 제국 황실 비서단 총 비서관 알프레드 그레이엄스입니다. 말씀을 해주십시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목소리만 들어도 수염을 멋지게 기르고 집사의 전형일 것 같은 노인의 중후한 목소리가 등장했다.

용사가 당황하며 캐서린을 돌아보았다.

감찰단에 통신을 걸었는데, 얘가 왜 여기서 나와?


“여보세요? 듣고있으니 말씀을 해주십시오.”

“어······. 접니다.”


순간 통신기 너머에서 뭔가 쿵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아니, 이 사람이 갑자기 왜 여기서 나오는 거야.

그도 당황해버린 것이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지만.


“그렇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용사에게는 긴 전생에서 나오는 연륜이 있었기 때문에 크게 당황한 기색 없이 임기응변으로 이야기를 잘 끝낼 수 있었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황실 총 비서관이 정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정리를 해두겠습니다.”

“예. 그럼 그렇게 해주시고.”

“······.”

”건강하시죠?”

“예. 폐하도 저도 늘 건강합니다. 인사원장님.”


뭐, 아닌 밤중에 늙은이 수명을 10년은 줄어들게 만든 사람이 할 인사치고는 참 양심도 없어 보이기는 했지만.

그렇게 통신이 종료되고.


“이... 죽을래?”


용사는 결국 미워 죽겠는 캐서린의 멱살을 잡고 짤짤 흔들었다. 그러나 캐서린은 호호 웃는 것으로 자신이 오랫동안 모신 직속 상관의 겉모습 뿐인 분노를 가볍게 흘려넘길 뿐이었다.


“하하. 제 작은 복수입니다만.”

“에라. 술이나 먹자.”

“네. 원장님.”


새벽이 깊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캐서린은 이 술자리가 영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술김에 그냥 속으로 생각만 했다.

이제는 한때의 용사만큼이나 소중한 사람이 생겨버린 이상 더는 그녀가 가져서는 안 되는 낡은 꿈이었으니까.


[용사지만 독재합니다]

18. 푸른 깃발의 주인(2) - 끝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용사는 독재합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근황 +6 20.03.28 283 0 -
공지 복귀지연 공지입니다 +5 20.03.02 336 0 -
23 8장 : 소녀와 데이트와 스토커(5) +3 20.02.26 441 25 17쪽
22 8장 : 소녀와 데이트와 스토커(4) +5 20.02.25 484 23 15쪽
21 8장 : 소녀와 데이트와 스토커(3) +6 20.02.24 515 31 18쪽
20 8장 : 소녀와 데이트와 스토커(2) +7 20.02.23 578 33 17쪽
19 8장 : 소녀와 데이트와 스토커(1) +7 20.02.22 671 23 16쪽
» 7장 : 푸른 깃발의 주인(2) +1 20.02.22 595 26 17쪽
17 7장 : 푸른 깃발의 주인(1) 20.02.21 621 22 15쪽
16 6장 : 부족한 재능과 어긋난 미련(3) +1 20.02.20 609 20 13쪽
15 6장 : 부족한 재능과 어긋난 미련(2) +1 20.02.19 612 19 15쪽
14 6장 : 부족한 재능과 어긋난 미련(1) 20.02.18 637 22 12쪽
13 5장 : 애들 장난(2) 20.02.17 651 22 14쪽
12 5장 : 애들 장난(1) +1 20.02.16 661 21 12쪽
11 4장 : 양손의 꽃(3) 20.02.15 690 20 15쪽
10 4장 : 양손의 꽃(2) 20.02.14 737 25 11쪽
9 4장 : 양손의 꽃(1) +1 20.02.13 816 21 14쪽
8 3장 : 3급 용병 류 몽블랑(2) 20.02.12 881 30 13쪽
7 3장 : 3급 용병 류 몽블랑(1) 20.02.11 923 28 16쪽
6 2장 : 소녀와 수상한 팬클럽(3) 20.02.10 1,103 34 19쪽
5 2장 : 소녀와 수상한 팬클럽(2) +1 20.02.09 1,215 39 12쪽
4 2장 : 소녀와 수상한 팬클럽(1) +1 20.02.09 1,372 37 14쪽
3 1장 : 광산의 악마(2) +3 20.02.08 1,684 44 17쪽
2 1장 : 광산의 악마(1) +2 20.02.08 2,308 55 15쪽
1 프롤로그 : 예정된 종막 +3 20.02.08 2,696 51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