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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박스 님의 서재입니다.

용사는 독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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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박스
작품등록일 :
2020.02.08 15:46
최근연재일 :
2020.02.26 09:00
연재수 :
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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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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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751

작성
20.02.09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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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장 : 소녀와 수상한 팬클럽(2)

DUMMY

그렇게 도착한 뒷골목에서 허리춤에 낡은 칼을 찬 선두의 근육마초가 마치 아이를 타이르듯 용사에게 말했다.


“형씨. 응? 그러면 안 되잖아.”

“······.”

“하루종일 목숨 걸고 칼밥 먹다가 한가한 날 대견하게 일하는 모습 보고 있으면 참 많은 위로가 된다고.”

“······.”

“우리가 무슨 시비를 걸었어? 형씨에게 원한을 샀어? 우린 절대 이런 취급 받을 이유가 없다고.”


일단 하나만큼은 확실해지고 있었다.

최소한 이들이 하수는 아니라는 것.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주먹부터 휘두르면 하수다. 말로 윽박질러 위압적인 행동을 한다고 해도 결국 중수.

진짜 고수들은 쉽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논리를 앞세운다. 그러면서도 상대가 날뛸 경우 제압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으니 그것이 곧 굳건한 발언력이 된다.

하지만 뭐라는 건지. 진짜.


“물론 우리가 떳떳하지 못하게 보인다는 것은 인정해. 하지만 단언하건대 이성적인 감정은 티끌만큼도 없어. 세상에는 꼭 내가 갖지 않아도 바라만 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사람이 있는 법이라고. 혹시 그런 감정 느껴본 적 있어?”


시꺼먼 사내들이 동의하듯 고개를 주억거린다.

처음에는 용사도 이놈들이 혹시라도 덤비면 어디까지 얼마나 몽둥이로 쓰다듬어줘야 할지 속으로 고민하고 있었지만, 의외로 그런 고민은 그다지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딘가 머리가 이상한 놈들이라는 것은 이제 잘 알 것 같았지만 일단 물리력을 행사할 생각은 없는 것 같았으니까.


“저기요. 아저씨들. 지금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계신 겁니까? 여신님이요? 그 여신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신이 실존하는 세상이었다. 여기서 여신은 글자 그대로 용사가 만나왔던 그 여신님을 뜻했다.

그러나 그 여신님이 아니었는지 결국 한 단계 위협 수준을 높여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리는 사내였다.


“이 자식이 감히. 여신님께 되도 않는 수작을 걸고 눈물까지 흘리게 만들어놓고 끝까지 시치미를 뗄 생각이냐.”

“아. 텔이요?”


비로소 상황을 이해한 용사의 앞에서 사내가 답지 않게 가슴을 움켜쥐며 말했다.


“크흑. 이 장웅! 정수리에 벼락을 맞은 그날 이후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해 그림자처럼 살기로 했다. 너 이자식, 대답 똑바로 하는 것이 좋을 거야.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한 거냐?”

“······.”


그냥 텔의 오해를 바로잡지 않은 진담반 농담이었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비장해서 용사는 잠시 생각을 골랐다.


“근데 혹시 소문으로만 듣던 텔 팬클럽이십니까? 진짜 있었네.”

“그렇다! 우리가 바로... 아니 이 자식 말 돌리지 말고 대답해라. 대체 왜 그런 거냐? 응? 만약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한다면 이곳이 너의... 아무튼 각오해라.”


용사는 인상을 찡그렸다. 아까 누가 귀에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고막 상태가 안 좋았는데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듯한 목소리에 상태가 더 악화되는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오늘 오전에는 신전에 가서 치료를 좀 받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겸사겸사 피로도 풀고 말도 전해둘 겸.


“아. 팬클럽이면 진작 말을 하시지······.”


용사는 씩씩거리는 장웅이라는 용병을 뒤로하고 가방 속에 손을 넣어 무언가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이 자식! 사람이 말을 하는데 딴짓을... 응?”


흥분해서 얼굴을 가까이 가져오던 장웅은 순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용사가 꺼낸 물건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저번 달에 들의 주인 토벌하고 표창 받으며 찍은 사진인데요. 텔이 담당자여서요. 어때요 잘 나왔죠?”


귀족들이나 가지고 있는 값비싼 마법 사진기로 찍은 움직이는 사진 속에는 빨간 빵모자를 쓰고 구석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텔의 모습이 생생하게 찍혀 있었다.

사진 속에는 텔의 옆으로 용사를 비롯해 몽블랑 북부 의뢰소의 지점장과 수도에서 내려온 관리들이 줄줄이 찍혀있었지만 지금 사내들의 눈동자에는 오직 한 명만이 담겨있을 뿐이었다.

용사도 개인적으로 아끼는 사진이었지만 모든 물건은 꼭 필요한 사람들의 손에 있을 때 더 빛나는 법이었으니까.


“필요하다면 드릴 수도 있고요.”


순간 사내들의 시선이 일제히 용사에게로 모여들었다. 솔직히 이쯤되자 아무리 용사라지만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천년의 세월을 살아오면서 귀신부터 시작해서 악마, 마인, 괴수, 살인마, 변태까지 별의 별 존재들을 다 경험해본 용사였지만 머리가 이상한 사람들은 여전히 좀 무서웠으니까.


“어······. 저, 정말입니까?”

“그럼요. 자요.”


장웅은 순간 당황하면서도 사양하지 않고 용사가 건네는 사진을 떨리는 손으로 받아들고 있었다.

솥뚜껑 같은 손이 조그만 사진을 신줏단지 모시듯 조심스럽게 들고있는 모습이 웃기면서 무서웠다.


“이번 일 마무리되면 사진을 한 번 더 찍을 것 같은데. 원한다면 그때 수도에서 내려온 사진사에게 부탁해서 큰 사이즈로 추가로 인화해서 하나 더 드릴 수도 있고요.”

“······.”

“세상 서로 돕고 사는 거죠. 안 그래요?”


그러자 결국 멀쩡하게 생겨서는 용사가 건넨 사진을 가슴에 소중하게 감싸안은 채 소리 없는 눈물을 한줄기 주룩 흘린 장웅이 결심하듯 숫자는 8명이지만 부피로는 15명쯤 되어보이는 근육 마초들을 돌아보며 외쳤다.


“얘들아 뭐하냐.”

“엥?”


그러다 잠시 용사를 돌아보며 묻는다.


“저기. 근데 혹시 주시는 김에 몇 장 더 뽑아서 주실 수 있으신지······. 혹은 아예 필름까지도.”

“예. 뭐 가능할 것 같네요.”

“좋아! 가능하시단다!”


급기야 정열적인 함성마저 내지르는 마초들이었다.

장웅이 외쳤다.


“뭐햐냐! 다들 은인께 인사드리지 않고!”

“······.”


곧 용사는 마초 9명의 절도있는 직각 인사를 받으며 골목을 뒤로했다. 뒷골목 폭력배와 다름없는 모습에 지나가던 행인들이 소리 죽여 수군대고 있었다. 자꾸만 숨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지는 용사였다.


“쯧쯧.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아무리 용사가 실제로 살아온 세월에 비해 과거의 영광에 취해 살아가는 꽉 막힌 뒷방 늙은이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지만, 그것에도 정도라는 것이 있었다. 솔직히 기가 찰 따름이었다.

저래봬도 저중에서 3급 용병 자격증 없는 사람이 없고, 장웅은 무려 경력있는 2급 용병이었기 때문이었다.

평판이 준수한 2급 용병의 경우 전투력만 비교해도 제국군의 웬만한 특수전 야전장교와 비교해도 꿇리지 않는 수준으로, 업계에서도 상위 1%의 무력이었다.

물론 그 위로 1급과 특급이 있지만 특급은 애초에 현직 1급을 대상으로 TO가 정해진 명예직이니 배제하고, 1급은 제국 전체를 대상으로 무투대회를 열어도 100위 안에 무조건 들어갈 괴물들이니 현실적으로 그의 위치는 대단한 것이었다.

그런 사람이 저러고 있다.




&




성스러운 치료마법의 빛이 작은 기도실을 밝게 채우고 있었다.

여기에 잔소리만 없었다면 딱 좋았겠지만.


“형제님은 자신의 몸을 조금 더 소중히 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 큰 병 걸리면 어쩌시렵니까?”

“부교님. 이번에는 진짜 억울하거든요.”

“변명일 뿐입니다. 물론 이번에는 억울할 수 있겠지만, 저는 평소의 행실을 종합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할 말이 있다면 해보시지요. 들어드리겠습니다.”

“······.”

“하아. 정말 이렇게 사소한 일로 기초보장 횟수를 사용해야 하셨습니까? 정작 큰 병이나 부상을 입었을 때 남은 보장횟수가 없어 죽어가며 기다려봐야 정신을 차리시겠습니까? 돈도 돈대로 쓰면서요. 형제님도 잘 아시잖습니까.”

“네. 알죠.”

“다 형제님을 생각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네. 조심하겠습니다.”


경건하게 긴 수건과 같은 하얀 천을 머리에 얹어 양쪽 어깨로 늘어뜨리고 있는 여사제가 걱정스럽다는듯이 용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용사도 이게 다 자기를 걱정해주는 말이라는 것은 알고있었지만 걱정도 과하면 잔소리가 되는 법.


“클라라 부교님. 그건 그렇고 조만간 기부금을 내야 할 일이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시간이 좀 될까요?”

“직업적으로요?”

“네.”


그에 여사제가 표정을 굳혔다.

용병이 기부금을 낸다는 말은 공신력 있는 신전의 사람과 동행하며 의뢰과정과 결과에 공증을 받는다는 뜻이었다.

그 대가로 신전은 기부금을 얻고 사제는 실적을 얻으며 용병은 의뢰의 진실성을 증명받는 일종의 공생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물론 그럴 필요가 있는 민감한 의뢰에만 한해서.


“저 요즘 바쁩니다. 다른 분께 부탁하세요.”

“좀 큰 건이 될 것 같아서 그래요. 부교님같이 절차대로 칼 같은 분이 없잖아요. 설령 혈육이라도 냉정하게. 네?”


여사제의 고운 미간에 실금이 번졌다.


“지금 절 칭찬하는 건가요? 욕을 하는 건가요?”

“물론 칭찬이죠!”

“······.”


척! 치료가 모두 끝나고 확인까지 마친 그녀가 감정을 담아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짚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맡더라도 최소 두 배는 받아야겠습니다. 워낙 괴상한 사건들에 매번 절 엮으셨어야죠. 양심도 없게. 양심은 치료도 못한다지요.”


그럼 그렇지.

용사가 흡족하게 웃으며 손가락 네 개를 펼쳤다.


“좋아요. 네 배를 드리죠.”

“생각보다 더 심각한 일인가보군요.”

“그렇게 됐습니다.”

“하아. 좋습니다. 이 한 몸 여신님을 위해 헌신해야죠. 사제복을 입을 때 여신의 이름을 걸고 한 맹세는 아직도 유효합니다. 하지만 만약 이 일로 제가 사제복을 벗게 된다면 형제님을 매우매우매우 원망하게 될 것 같으니 주제넘은 일이 아니길 빕니다.”


당연한 소리를.

용사는 대답할 가치도 느끼지 못했다.

지금 눈앞에 존재하는 조금 유능해 보이는 3급 용병이 사실은 제국 최고의 실권자라는 걸 눈앞의 젊은 부교는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할 필요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걱정이었다.


“그럼 조만간 찾아뵙겠습니다.”

“다쳐서 오지만 않으신다면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하하...”


뼈가 있는 말에 용사는 쓰게 웃으며 관용적인 인사를 건넸다.


“오늘도 신의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앞날에 늘 여명이 함께하길.”


겉은 틱틱대도 마음은 따듯한 여자라고.

용사는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믿기로 했다.

용사는 곧 신전을 나섰다.




&




다음날 용사는 오전까지 잠을 잤다. 간만에 한량처럼 음주가무를 실컷 즐기고 새벽에 잠들었기 때문이었다.

요즘 몽블랑에 하나 둘 생기고 있는 기계식 반주기가 있는 노래주점 이야기였는데, 너무 잘 불러서였는지 홀에서 술을 마시던 사람들이 귀족 나으리 그만 내려가라고 열광했다.

그 환호성에 용사는 두 곡 정도 더 부르다가 주인이 처음 듣는 옛날 노래지만 100점이라며 상품으로 준 독한 술을 먹고 훅 취해서 숙소로 돌아온 참이었다.

당장 급한 일도 없고. 잠에서 깬 용사는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아니 생각하는 것을 생각했다.


“······.”


걱정을 위한 걱정. 이렇게 멍하니 있다가 다시 저녁이 되어 습관처럼 술이나 먹다 한량처럼 새로운 내일을 맞아버릴텐데 하는.


‘그래. 의뢰소라도 나가보자.’


용사는 박차듯 일어나 방에 딸린 세면실에서 간단히 얼굴만 씻고 추레한 몰골로 여관을 나서 중심가로 향했다.

거의 천 년 동안 부지런히 살아온 용사였고, 이지모드인 지금도 하룻밤 이상을 무의미하게 보내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용사지만 독재합니다]

05. 소녀와 수상한 팬클럽(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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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8장 : 소녀와 데이트와 스토커(1) +7 20.02.22 671 23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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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장 : 소녀와 수상한 팬클럽(3) 20.02.10 1,103 34 19쪽
» 2장 : 소녀와 수상한 팬클럽(2) +1 20.02.09 1,216 3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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