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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독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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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박스
작품등록일 :
2020.02.08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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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6 09:00
연재수 :
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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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751

작성
20.02.18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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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6장 : 부족한 재능과 어긋난 미련(1)

DUMMY

6장 : 부족한 재능과 어긋난 미련

물론. 재능이 없다고 해서 죽으라는 법은 없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그래. 그냥 병신 짓이라는 거지.

ㅡ 가장 치열했던 어느 회차, 니첼 스테이서 ㅡ


<1>

“정말 너무하시는군요.”

“아. 길잡이는 됐습니다.”

“그런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아실 텐데요?”


낮 동안 사무실을 뒤집어놓은 애송이 셋에 속이 부글부글 끓었는지 온종일 갱내 사무소에 틀어박혀 있던 현장소장이 꾸벅꾸벅 졸던 모습이 무색하게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이쯤하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무엇이 충분하다는 것인지 공감하기는 힘들었지만.


“대체 이 밤에 왜 여길 내려가시겠다는 겁니까?”


곤란했다. 정말 여러가지 의미로.

찔리는 것이 있든 없든 이들이 다치기라도 하는 순간에 없는 죄도 만들어서 뒤집어 쓰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당연히 좋은 소리가 나올 수가 없었다.


“수사중에는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하아. 너무하시는군요 정말.”

“랜턴만 내어주시죠. 책임은 저희가 지겠습니다.”

“······.”

“그것도 안 됩니까?”


침묵하는 사제와 담담히 요구하는 용사의 말에 그저 원망스럽게 노려보던 현장소장이 결국 체념하듯 손을 까딱했다.

이쪽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직원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벽에 걸린 간부용 랜턴들을 가져다주었다. 상태가 좋은 물건이었는데 적어도 이런 것으로 장난을 칠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용사가 직원에게 물었다.


“배터리 하나당 얼마나 갑니까?”

“10시간까지 갑니다.”

“핸드 랜턴은요?”

“걔는 안 꺼진다고 보시면 됩니다. 꺼지기 전에 구조대가 먼저 도착하겠죠. 배터리 잔량도 문제가 없네요.”


탄광은 총 3교대로 돌아가는데, 투입시간을 제외하고 실 작업시간이 6시간 남짓이니까 보통 예비 배터리는 비상용으로 하나씩만 더 챙기는 모양이었다. 순찰자는 그마저도 필요 없었고.


“부교님. 필요하십니까?”

“저는 괜찮습니다.”


용사는 클라라를 슬쩍 돌아보았지만 그녀가 고개를 내젓자 본인 것만 한 세트 챙긴 뒤 여분의 배터리 없이 사무실을 나섰다.

클라라 또한 마법사였고 조명 마법쯤은 아무리 전투직종이 아니라고 한들 기본 중의 기본에 불과했으니까.


“소문대로 분위기 끝내주는군요.”


밤공기는 제법 차가웠다. 그것은 환풍기로 바람을 밀어넣고 있는 입구 쪽 광산도 마찬가지라 승강기를 타고 탄광 아래로 내려가는 내내 클라라는 칠흑 같은 심연의 나락으로 이어지는 철망 밑의 바닥을 내려다보며 팔뚝을 가볍게 쓸었다.

그녀 또한 몽블랑의 시민으로서 그동안 광산의 악명은 자자하게 들어왔지만 현실은 상상 이상으로 열악한 공간이었다.


“내려가면 좀 나아질 거예요. 오히려 더워지겠지만요.”

“끔찍하군요. 과연 악마 소동이 벌어질 만합니다.”


클라라가 질색하듯 몸을 떨었다. 그나마 찝찝함의 수준에서 멈춘 것은 역시 그녀가 유능한 현역 사제이기 때문일까.

이 세계의 사제란 신의 힘을 사역하는 규격외의 존재 따위가 아니었고, 단지 다른 사람보다 여신을 조금 더 특별하게 생각할 뿐인 치료마법에 특화된 마법사 집단에 가까웠다.

보통의 마법도 물론이지만 사제의 편리해보이는 치료마법도 결국 재능과 노력이 필요한 이유 있는 기적이라는 것이다.

특히 클라라는 개중에서도 엘리트 코스를 밟다가 다들 기피하는 사제의 길을 택한 특이한 케이스였고. 보통의 마법사들은 알기 힘든 여러가지 잡다한 공용마법과 이론에 해박한 편이었다.

비록 제국 마법대학 시절에는 전공은 기본만 하고 교양에만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한다며 별종 취급을 당하기도 했지만.


“곧 도착하겠네요.”


용사는 멀리 메아리치듯 반사음이 가까워지는 심연의 나락을 주시하면서 잔잔한 그의 호수에 가벼운 파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럼 가시죠.”


질주는 용사의 가벼운 도약으로 시작되었다. 정말 가볍게 발을 구를 때마다 듬성듬성 외로운 조명만이 빛을 밝히고 있는 텁텁한 갱도가 휙휙 스쳐 지나간다. 클라라가 뒤늦게 따라붙었다.

용사는 조금 전 갱내 사무실 벽에서 확인한 입체도와 일전의 기억을 더듬어보며 미로같이 얽힌 갱도를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




한참을 달리던 용사가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도착한 곳은 작은 공동이었다.

원래였다면 인근의 광부들과 기자재로 북적였을 이곳도 악마 소동으로 7광구의 최심부가 멈춰선 이후 지금은 휑하니 비어있을 뿐이었다.


“이곳입니까?”

“아마도요.”

“아마도라뇨?”


뒤늦게 도착한 클라라가 구슬땀을 훔치며 물었다.


“그걸 확인하려고 모셔온 거라서요.”

“아. 그렇군요.”


대충 상황을 이해한 클라라가 용사의 뒤를 따랐다.

발소리만이 웅웅 울리는 칠흑같은 공동을 가로질러 한쪽 벽면에 선다. 동그랗고 좁은 노란색 랜턴 불빛과 클라라의 백색 조명 마법만이 으스스하게 새까만 주변을 밝히고 있었다.


“여기네요. 보시는동안 저는 주변을 경계할게요.”

“예. 맡겨 주시지요.”


곧 클라라가 비유적인 의미로 팔을 걷어붙이며 평범해보이는 동굴 벽면에 손바닥을 얹었다.

아주 극미량의 마력이 암반을 타고 은밀히 퍼져나간다. 클라라가 찾아내고자 하는 것은 인식의 결계 뒤에 은폐된 누군가의 비밀 공간.

물론 용사는 이미 확신하고 있었지만 마법사도 아닌 3급 용병이 그렇게까지 해버리면 괜한 의심을 살 수 있었으니까.

절차란 중요하다. 당장은 편하겠지만 나중에 불필요하게 귀찮은 일을 만들지 않으려면.

한동안 지루한 탐색이 이어지다가.


“흐음. 흥미롭군요.”


클라라는 곧 작은 감탄과 함께 긴장을 누그러뜨렸다.


“있나요?”

“예. 있습니다. 이걸 용케도 발견하셨군요. 형제님은.”

“어때요. 열 수 있겠어요?”


용사의 물음에 클라라가 일말의 고민도 없이 답했다.


“이래봬도 제국 마법대학 출신입니다. 해주가 문제겠습니까만은.”

“하긴.”

“예. 핵심은 침입을 상대에게 들키느냐 들키지 않느냐에 있겠지요. 조악하게나마 이런저런 보안회로를 많이도 걸어 놨더군요. 완해를 하려면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대단한 것이었지만 용사는 조금 고민을 해보기로 했다. 단순히 좋은 것으로만 따지면 들키지 않는 쪽이 무조건 좋았지만, 들키는 쪽도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었다.

만약 방심한 상대가 잠적이 아니라 확인차 이곳에 나타나게 된다면 현장 검거까지 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용사가 있는 이상 그럴 일은 없겠지만 중간에 놓친다고 해도 최소한 인상착의 정도는 확보해둘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럼 이렇게 하죠. 대놓고 부수면 의심을 살 수 있으니까.”

“아하. 이해했습니다.”


역시 노련한 현직 사제라서 이야기가 빠르다.


“간만에 몸 좀 풀겠군요. 재미있겠는데요?”


클라라가 씩 웃으며 본격적으로 동굴 벽면에 양 손을 올렸다. 순간 놀랍도록 섬세한 마력의 흐름이 벽면의 마력회로와 간섭을 일으키며 몽환적인 빛무리를 뿌려대기 시작했다.

마력은 곧 세상의 법칙에 대한 간섭이고. 간섭은 돌고 돌아 에너지로 환원된다. 즉, 에너지를 받아 들떴던 전자가 안정화되며 빛을 토해내는 것이다.

깊게 들어가면 골치아프지만 쉽게 말해서 핵심은 클라라가 지금 은신처의 마력회로를 정밀하게 수정하는 중이라는 뜻이었다.


‘역시. 이분도 보통은 아니야.’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벌써 천년 동안 날고 기는 마법의 천재들과 함깨했던 용사의 안목에 확실히 클라라 부교도 이런 시골 촌구석 신전에서 썩어갈만한 재목은 절대 아니었다.

천재는 아니라도 최소한 한가지 분야에서 이름을 날릴 수는 있는 수준이다. 물론 본인은 지금의 생활을 바라는 모양이었지만.

해주에는 1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흠. 그래. 이런 식이었나.”


처음에는 조금 고전하는듯 했지만 곧 접근방법을 파악한 클라라가 마력회로를 감싸고 있는 보안회로를 하나 둘 빠르게 벗겨나가기 시작했다. 파릇파릇하던 학창시절에 배운 것도 있었고, 기초공식에 의거해서 즉석해서 파훼식을 구상해낸 것도 있었다.

그것이 정규교육을 받은 마법사와, 재능이든 천성이든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낙오한 어중이 떠중이와의 차이였다.

현대마법이란 더이상 주먹구구식으로 전승되는 문외불출의 시행착오가 아니었고. 학계라는 제국 차원의 거대한 마법사 집단에 의해 매 순간 개량되고 정립되는 이론체계를, 학계에서 낙오한 사이비 마법사 따위가 독학으로 상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교과서나 학술지, 혹은 어디서 구한 고서적 따위에서 얻어배운 낡고 조악한 보안회로 정도는 결국 정규급 마법사가 교양으로 배워놓은 상식 수준에서 정리가 되는 것이다.


“끝났습니다.”


클라라는 곧 눈앞의 환영을 치워내고 폐쇄된 공동에 숨겨진 비밀통로를 보란듯이 개방해냈다.

이렇다 할 폭발도 소란도 없었지만 용사의 민감한 감각에 마지막 순간 짧게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특이한 마력 파동을 놓치지 않았다.


“느끼셨는지 모르겠지만, 가장 난이도가 높은 부분에서 중첩되어있던 알람마법 하나를 슬쩍 흘렸습니다. 너무 상대를 과대평가 한 것이 아닌지 걱정되는 것도 사실입니다만. 뭐 이것도 감지 못할 정도면 애초에 그냥 어중이 떠중이라는 뜻이니 걱정할 필요도 없겠지요.”

“예. 충분한 것 같네요.”


어차피 용사가 무슨 한 명의 무고한 희생자도 참지 못하는 동화책 속의 용사도 아니었고. 마왕을 잡지 못하면 다 끝장날 세계라는 것을 아는데 그런 사소한 일을 신경이나 쓸까.

그것보다도.

클라라가 물었다.


“그래서. 바로 들어가실 겁니까?”

“예.”


그에 클라라가 염려를 표했다.


“조금 위험하지 않을련지요? 입구가 좁고 어떤 함정이 깔려있을지 모르는데 자칫 바깥에서 공격당하게 되면 불리하지 않겠습니까? 잘못하면 매몰될 수도 있고. 차라리 숨어있다 뒤를 치는 게 어떻겠습니까?”

“흠······.”


용사가 허리를 숙여 멧돼지굴 같은 깜깜하고 좁은 통로 내부를 슬쩍 들여다보다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생존자가 있다면... 지금 들어가는 게 맞겠죠.”

“것도 그렇긴 하군요.”

“네. 그리고 설령 매몰되더라도 구조대가 도착할 때까지만 살아있으면 되는 거고. 그건 간단하잖아요? 그리고 그렇게 두지도 않을 거고요. 사제님에게도 저에게도 그정도 실력은 있으니까.”

“뭐······.”


클라라도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고작 흑마법사 하나 따위.

클라라의 성격에 무섭지도 않을 뿐더러 특히 생존자라는 말이 결정적으로 그녀를 움직였다. 이내 결심을 굳힌다.


“알겠습니다.”

“걱정되면 부교님은 밖에서 기다리셔도 되는데요.”

“에이. 그건 아니지요.”


클라라가 털털한 웃음을 짧게 토해내며 기어가듯 무릎을 꿇고 안으로 들어가는 용사의 뒤를 따랐다.


“형제님은 아직도 저를 모르십니까. 제 일 아니라고 선을 긋거나 조그만 위협에도 몸을 사릴 것 같았으면 애초에 형제님을 따라 여기에 내려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아시잖습니까.”

“뭐... 인정합니다.”

“그리고 매번 사제님 사제님 하면서 상전처럼 떠받들리기만 하다가 가끔 이렇게 형제님과 같이 다니면 혈기 넘치던 학생 때 생각도 나고 정말 좋습니다. 다시 젊어진 기분이랄까요.”


여러가지 의미로 용사가 키득 웃으며 말했다.


“그럼 학교로 돌아가서 석사위를 노려보시는 건?”

“세상에. 추억은 추억일 때 아름다운 법이라지요.”


클라라가 정색하며 능청을 떨었다.

곧 십수미터의 굴이 끝나며 굳게 닫힌 원형의 문이 나타났다.

용사가 톡톡 두드려본다. 무척 단단한 소리가 났다.


“어. 철문입니까? 뭣하면 녹여서 열어도 되는데요.”

“아뇨. 그럴 것 까지 있나요.”


마법적인 보안이라면 주변의 눈도 있고 해서 조금 ‘우수한’ 3급 용병을 가장한 용사가 함부로 손댈 수 없었지만, 물리적인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그 정도 힘이라도 용사급 요령이 더해지면.


쿵!


“열렀는데요. 뭘.”

“······.”


용사의 뒤를 따르다 그의 엉덩이 너머에서 먼지와 함께 틀째로 실내로 굴러떨어지는 한 뼘 두께의 철문을 멍하니 바라보던 클라라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포복을 재개했다.


[용사지만 독재합니다]

14. 부족한 재능과 어긋난 미련(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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