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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박스 님의 서재입니다.

용사는 독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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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박스
작품등록일 :
2020.02.08 15:46
최근연재일 :
2020.02.26 09:00
연재수 :
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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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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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5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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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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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8장 : 소녀와 데이트와 스토커(5)

DUMMY

<6>

따듯한 면발이 얼큰한 육수와 함께 후루룩 넘어간다.

크. 용사의 표정이 만족스럽게 녹아들어갔다.


“와. 좋네요.”


주인장이 껄껄 웃으며 서비스로 한 그릇을 더 내밀었다.

용사가 사양 않고 해물 육수가 일품인 국수를 받아들었다.


“내륙이라 신선한 해산물 받기가 애매하셨을 텐데. 구안지방 전통요리를 몽블랑에서 먹어볼 줄이야.”

“하하. 그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주인장은 원래 대륙 서쪽, 다도해에 있는 작은 항구마을에서 국수집을 하던 주방장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워낙 작은 마을이라 사실 돈이 되는 것은 아니었고. 그냥 먹고는 살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고 살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보았다.

중앙에서 시작된 급격한 산업화가 드디어 결실을 맺으면서, 그 시골 오지의 작은 항구마을에까지 동력선이 밀고 들어오는 모습을.

주인장은 그때 딱 느꼈다고 한다. 요즘 사람들이 괜히 고향을 버리고 도시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렇게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해물 국수 만드는 것밖에 없던 그도 이촌향도의 붐에 편승해서 가게를 팔아치우고 적당한 도시로 무작정 상경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저도 고생이 많았지요. 어떻게 좋은 건물 주인 만나 좋은 가격으로 자리를 구하기는 했습니다만. 생소한 음식에. 일단 해물을 구하는 것부터가 문제가 많았습니다. 자동차를 통해 시장으로 해산물이 유통되고 있기는 했으나 값도 값이지만 대부분 생선류고 제가 원하는 대합은 전혀 유통되지 않고 있었으니까요.”


생선도 금방 상하지만 요즘에는 길도 좋아지고 자동차도 빨라져서 늦어도 하루를 넘기지는 않는다고 했다.

얼음을 쓰면 충분히 소비될 정도의 시간은 버틸 수가 있는 것이다. 아예 산 채로 활어로 수조에 담아 운송하는 사람들도 나오기 시작하는 모양이었고. 하지만 조개류는 상하는 속도가 넘사벽이라나.


“물론 대합을 쓰지 않아도 국수를 만들 수는 있지만... 영 맛이 살지 않아서. 그래서 일단 덮어두고 서쪽 검문소로 나갔죠.”


그리고 관찰했다고 한다. 운수회사를 통해서 직접 들여오는 것도 한두 번이지. 밑지고 장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는 발견했다고 한다.

도시를 나가는 짐차와 들어오는 짐차의 차이점을.

들어오는 차는 대부분 짐칸이 여유롭거나 비어있는데 반해서 나가는 차는 차축이 휘어져라 짐이 실려있더라 이거였다.

몽블랑이 거대한 광업도시였고, 광물 뿐만 아니라 각종 기초 철물들도 주조되어 다른 도시로 수출되는 공업도시이기 때문이었다. 같은 값의 물건이 들어오고 나가도 나가는 쪽의 무게가 압도적이었으니까.

그러다가 운 좋게 항구도시로 정기적인 운송을 담당하고 있는 고향 사람을 만났고, 그에게 부탁해서 저렴한 가격에 산지에서 직송한 수산물을 매일 새벽에 받게 되었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


“그나저나.”


한창 이야기를 마친 주인은 슬슬 비어가는 용사의 두 번째 그릇을 바라보다가 힐끗 가게 한쪽의 수상한 여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 분은 혹시 아는 분이십니까?”

“글쎄요.”


한바탕 밀물처럼 밀려왔던 점심시간이 끝나고 슬슬 저녁시간을 준비해야 하는 나름 한가한 오후 시간.

그런 허름한 가게에서 전혀 어울리지 않는 차림으로 마치 고급요리를 먹듯이 국물 한 방울 흘리지도 않고 국수를 젓가락에 말아서 면과 국물을 따로따로 떠먹고 있는 여인은 확실히 눈에 띄는 것이었다.


‘에휴.’


말을 해서 무엇 하리.


“별 건 아니고. 스토커 같은 거랄까요.”


그 말에 여인의 몸이 가볍게 움찔 떨렸다.

물론 주인은 껄껄 웃는 것이 다른 의미로 이해한 모양이었지만.


“허허. 좋으시겠습니다.”

“······.”


곧 만족스럽게 부른 배를 두드리며 용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사코 사양하는 주인에게 묵묵히 소은화 두 개를 내민 뒤 그녀의 곁을 지나며 흘리듯이 툭 던졌다.


“그거 고춧가루 툭툭 쳐서 후루룩 하면서 먹는거야.”

“······.”

“무슨 귀족 사교회 왔냐. 쯧쯧.”


그에 움찔 몸을 떠는 제나.

하지만 곧 용사의 말대로 맑은 국물에 고춧가루를 툭툭 쳐서 주변을 힐끗 살피더니... 이내 자신을 주목하고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후루룩 면발을 시원하게 들이켰다.


“······!”


느낌표가 하나 크게 떠올랐다.

확실히. 지금까지도 생각보다 맛있긴 했지만.

부족했던 마지막 단추가 채워지는 느낌.


“저, 저기요.”

“응. 생각 없어.”

“······.”


물론 오늘도 용사의 대답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태도에는 약간의 변화가 있었는데.


“있다 목욕탕에서 보자.”

“아니, 무슨.”

“뭐 다른 일 있어?”


순간 황당하다는 듯이 그런 용사를 올려다보는 제나였지만, 이내 체념하듯 작은 한숨을 내쉬는 그녀였다.


“물론 오늘도 갈 예정이긴 하지만. 당신. 남들이 들으면 오해할법한 발언은 좀 삼가주셨으면 좋겠는데요.”


아닌 게 아니라 아까부터 둘을 아빠 미소로 바라보고 있던 국숫집 주인장의 표정이 점점 묘해지고 있었다.

덮어놓고 목욕탕이라 그러면 남들은 둘이 신혼집이라도 차린 줄 알겠지만 사실 그냥 대중목욕탕을 말하는 것이었으니까.

그것도 둘이 시간약속을 하고 만나는 것도 아니었고 오며 가며 종종 로비에서 마주치는 정도였고.


“근데 과일 우유는 당신이 사는 건가요?”

“내가? 왜?”

“와. 그저께는 제가 사지 않았었나요?”


웃겨. 하면서. 그런 용사의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의외로 오늘따라 순순히 인정하고 있는 용사였다.


“그런가. 그럼 그러지 뭐.”


그래.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그거면 된 거겠지. 하면서. 비로소 떠나가는 용사에게서 시선을 떼고 다시 의외로 맛있는 국수를 다시 한젓가락 음미하기 시작하는 제나였다.




<7>

한나절이 멀다하고 우연히, 혹은 의도적으로 용사의 주위를 따라다니며 귀찮게 굴던 제나는 어느날을 기점으로 용사 대신 장기간의 여행 준비를 위해 몽블랑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흥. 당신 정말 그렇게 나오시겠다. 나중에 가서 후회하지 말아요.’라고 전혀 후회할 것 같지 않은 소리를 늘어놓은 뒤 정말로 마음을 접은 쪽에 가까웠지만.

그렇게 귀찮았던 것도 잠시. 슬슬 미운 정이 들어서 한 번쯤 다시 마주칠 때가 됐는데... 라고 생각하던 어느 저녁.

가을비도 쓸쓸하게 오겠다. 평소처럼 홀로 허름한 주점에 앉아 바삭한 파전을 안주삼아 하얀 막주를 만끽하고 있는데, 문뜩 새하얀 손 하나가 비어있던 반대편 의자를 잡아채고 있었다.


“호오. 이런 곳이 다 있었네요.”

“뭐야. 너였냐.”


상대를 확인한 용사가 정말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반쯤 들이키던 사발을 마저 기울였다.

이어서 크... 소매로 입에 묻은 막주를 닦아내며 인생의 즐거움을 만끽하는데 제나가 황당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더럽게. 자요. 차라리 이걸로 닦아요. 애초에 흘리지를 말던지 왜 멀쩡한 옷 소매를 더럽히고 그러세요?”


물론 항상 깨끗한 손수건을 품 속에 가지고 다니는 제나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었지만, 용사는 그녀가 내민 알록달록한 손수건을 받아드는 대신 작게 실소할 뿐이었다.


“와인이었다면 그렇게 마셨겠지.”

“네?”

“됐다. 니가 임마 게맛을 알아?”


애초에 살아온 환경이 다른 계층끼리 무슨 식도학을 논하겠는가. 먹을게 넘쳐나서 재료 고유의 맛조차 초월해 없는 재료까지 만들어내 먹던 귀족들과, 그거라도 있는 것이 감지덕지라 없는 비오는 밤 실파라도 다듬어 솥뚜껑에 부친 파전에 막주를 물이 뚝뚝 새는 초가지붕 밑에 앉아 먹던 서민의 차이인 것을.


“게맛... 뭐요? 근데 이건 무슨 요리인가요?”


그러는데, 허락도 받지 않고 젓가락을 뽑아 접시 위의 파전을 조심스럽게 깨작이던 제나가 이내 눈을 질끈 감고 앵두 같은 입술 안으로 바삭한 파전을 한조각 집어넣고 있었다.


“그래서 감상은?”

“음. 뭐랄까. 바삭하고... 짭짤하면서...”


제나는 곧 황궁의 깐깐한 집사들조차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만큼 기품있는 모습으로 고작 입안의 파전을 씹어 삼킨 뒤 마지막으로 손수건으로 입술을 가볍게 닦으며 말했다.


“생각보다 괜찮은데요?”


이어지는 젓가락질이 대범해지고 있었다. 물론 용사의 눈치 따위는 조금도 보고있지 않았고. 결국 체념하듯 한숨을 내쉰 용사가 근처를 지나가던 점원을 불러 파전과 막주를 추가했다.


“그나저나 오랜만이네. 바빴나봐?”

“그러게요.”


창밖으로 잠시 소강상태가 되었던 가을비가 다시 세차게 쏟아지고 있었다. 힐끗 시선을 돌려 제나의 행색을 살핀다.

이런 비 속을 뚫고 걸어왔다면 머리카락이나 어깨를 비롯해서 어딘가 한곳은 젖어있기 마련이었지만 유심히 살펴봐도 어느 곳 하나 조금도 젖어있는 기색 없이 멀쩡하기만 했다.

과연. 이래보여도 이름 모를 어느 명문가의 핏줄이며, 천재축에 들어가는 마법사이긴 하다는 것일까.

보통의 마법사들도 하고자 한다면 비를 피하는 것쯤은 가능했지만 그걸 숨 쉬듯이 간단하게, 범인들은 눈치채지도 못할 정도의 마력만 움직여서 해결한다는 것은 분명히 대단한 것이었으니까.


“어머. 이건 뭐죠?”

“막주.”


용사는 제나의 앞에 놓인 빈 사발병에 점원이 새로 내온 막주병을 넉넉하게 기울이면서 말을 이었다.


“아무튼 꼭 기억해라. 비오는 날 밤에 이 둘은 경건한 사제도 달려오게 만든다는 진리의 조합이니까.”

“참나. 웃겨.”


용사가 또 되도 않는 허세를 부린다고 생각했는지 잠시 코웃음을 치던 제나였지만, 이내 생각보다 이 조합이 대단히 괜찮다는 것을 느끼면서 분한 듯 사발을 내려놓고 있었다.


“그래서 준비는 잘 되어가고?”

“그럭저럭요. 예정대로 내일 출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내일이라.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제나는 어깨를 으쓱 하며 새롭게 빈 잔을 받았다.


“근데 혹시 북부에 가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있지.”

“극지에도 가보셨나요?”

“음. 거기도 몇 번 가봤고.”


사실 이번 생에는 극지는커녕 북부의 고원지대에도 가본 적이 없었지만, 어쨌든 가보긴 한 것이었으니까 거짓말도 아니었다.

그러나 제나는 그다지 신뢰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몇 번이나요? 에이, 당신. 미인 앞이라고 해서 공수표 남발해봤자 제게는 소용없는 거 아시죠?”

“······.”


나름대로 농담이었음에도 반응조차 하지 않는 용사의 모습에 다소 무안해졌는지 헛기침을 흠흠 하던 제나가 물었다.


“식량, 장비, 돈, 명패, 지도, 필기구와 수첩까지. 일단 이정도 꼼꼼하게 준비했는데 혹시 제가 뭘 놓친 부분이 있을까요?”

“그쪽 용병도 같이 준비한 건가?”

“네. 여러가지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그러면 뭐... 애초에 1급 용병이라는 것이 딱지치기로 딸 수 있는 위치도 아니었으니까 어련히 알아서 잘 했을까 싶기도 했지만.


“피임도구는?”

“뭐, 뭐요?”


순간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물어보지만.


“왜 그렇게 놀라? 그럼 청춘 남녀가 몇 달이나 되는 의뢰를 단둘이 떠나는데 정말 의뢰만 하게 될까 봐?”


인간은 동물과 달리 오랜 역사 동안 별도의 발정기가 없이 1년 내내 임신이 가능하도록 진화해왔고, 용사는 아차 하는 순간에 미숙한 애송이들이 사고치기 딱 좋다는 것을 알았다.


“뭐래. 저희 그런 사이 절대 아니거든요?”

“사람 일은 모르는 거더라고.”

“와. 이 사람이 진짜 귀족을 뭐로 보고. 저 그렇게 문란한 여자 아니거든요? 진짜 운 좋은 줄 아세요. 농담으로라도 우리 가문 어른들이 이런 소리 들었으면 경을 쳤을 테니까. 물론 정혼자는 없긴 하지만 아무리 요즘이라도 이런 소리 나돌면 당신 소리없이 가요.”


물론 귀족으로 치면 눈앞의 용사 또한 일단은 귀족의 신분이긴 했지만, 역시 제나와 같은 명문가와 비교하면 당연하게 급이 떨어질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래. 아무튼 조심하란 소리야.”

“네. 에휴. 뭐 진지한 조언을 바란 내가 바보지.”


씩씩대며 다시금 반쯤 남아있던 사발을 들이켜는 그녀. 막주가 과실주와 함께 소리 없이 훅 가버리기 딱 좋은 술이라는 것을 알고있는 용사였기에 한소리 건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저 술 약하지 않거든요?”


그래. 딱 저렇게 말하다가 다들 가버린다.

물론 용사가 여자에 굶주린 평범한 20대의 남자였다면 이게 웬 떡이냐 하는 상황이었겠지만, 20대는커녕 200대도 진작에 넘어선 상태였기 때문에 그냥 그래라 하고 말 뿐이었지만.


“그래서. 고작 그것 때문에 이 밤에 나온 거야?”

“그것도 있고. 그냥요. 비가 와서 그런지 좀 싱숭생숭하더라고요. 이제 여기도 마지막이구나 하는 생각에 거리를 걷고 있었는데 문뜩 창문 너머로 당신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들어왔죠.”

“역시 스토커냐?”

“뭐래. 어차피 당신도 혼자서 마시고 있었으면서. 그래요. 저 정도는 눈에 차지도 않을 정도로 당신 눈이 정수리에 달린 건 이제 알겠지만, 솔직히 그렇게 높아서야 세상에 당신 눈에 찰 여자가 있기는 하려나 모르겠네요.”


그에 용사는 가볍게 실소하며 되물었다.


“눈이 뭐? 정수리? 에라이 임마. 그러니까 그걸 니가 왜 걱정하냐고.”


뭐, 엄밀히 말하면 틀린 말도 아니라서 이제는 여신님을 봐도 무덤덤하게 되어버린지 오래였다지만.

그러나 누군가에게 진심을 주는 일 또한 다시는 하지 않기로 다짐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좋은 일이기도 했다. 비극이 예정된 사랑은 미련만을 남길 뿐이었기에.


“아. 몰라몰라. 한잔 더 줘요.”

“주긴 하겠는데. 양껏 마셔. 취하면 버리고 갈 거야.”

“그러시던지요. 업고 가는 것보다는 낫겠죠.”


하여간 뭐라는 건지. 이 귀찮은 여자가.


“하여간 너도 고생을 자처하는 성격이구나. 솔직히 내가 보기에는 굳이 가문을 숨기고 아까운 용돈까지 털어가면서까지 네가 직접 이럴 이유가 있는 일인가 싶은 것도 사실이거든.”

“저도 알아요. 그래도 안 돼요. 그건.”


그러나 제나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일축했다.


“왜?”

“왜냐뇨. 아무리 그래도 제가 당신에게 그런 것까지 밝힐 이유는 없지 않을까요? 이렇게 보여도요. 사람은 누구에게나 각자의 사정이라는 것이 있는 거라고요.”

“······.”

“그리고 뭐요? 용돈이요? 이거 용돈 아니거든요? 대학 다닐 때 내 시간 쪼개서 제국 법대 지망하는 다른 가문 동생들 입시 과외 해주면서 번 피 같은 돈이에요. 용돈은 무슨. 엘리트 마법사 몸값을 너무 무시하지 말아주세요. 제 돈은 제가 벌어 쓰니까.”


결국 용사는 어색하게 침묵하다가 마지못해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었다. 비록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제나의 끝마디에서 억눌려있던 약간의 울분을 느꼈던 것이다.

어차피 피차 술자리 푸념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해도 꺼릴만한 화제를 이어갈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한동안 꿍얼꿍얼거리던 제나가 한숨을 푹 내쉬며 새롭게 갓 나온 바삭한 파전을 집어들고 있었다.


“역시 상당히 괜찮네요.”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지난 뒤 슬슬 서로 할만한 이야기도 다 떨어져갈 무렵. 슬슬 취기를 느끼는지 머리를 가볍게 짚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제나였다. 반짝이는 금화 한 개를 건네면서.


“그동안 귀찮게 해서 죄송했어요. 겸사겸사. 파전 정말 맛있네요. 덕분에 새로운 음식을 알았달까. 저는 이제 돌아갈 건데, 나중에 가문에 올 일 있으시면 연락하세요. 그래도 인연인데 섭섭하게 내치지는 않을게요. 자칭 3급 용병 씨.”


물론 그렇게 떠나가는 제나는 정작 자기의 성을 알려주지 않았지만, 알고자 한다면 알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었고. 또 의례적인 말에 기여코 가문을 묻는 것도 눈치가 없는 행동인 것 같아서 그냥 고개만 끄덕이기로 했다. 의외로 밥값도 받았고.


“그래. 다음엔 내가 사지.”

“뭐래.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닌가요?”


피식 웃으면서 등 뒤로 팔을 가볍게 흔들어 인사하더니, 주점의 입구를 나서는 순간 직전까지의 취기가 무색하게 차분한 분위기로 돌변하며 고차원적인 마법회로를 즉석해서 그려낸다.

그리고 고작 눈 몇 번 깜빡할 시간만에 형형색색의 빛무리만을 남긴 채 허공으로 완벽하게 녹아들었다.

그쯤해서 용사도 막잔을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에게 받은 금화는 안주머니에 곱게 넣어두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받고 땡 치기에는 확실히 아까운 인연이었다. 그녀 또한 천재의 재능을 타고난 마법사였고, 서로가 살아있는 이상 언제고 다시 마주칠 것이 분명했으니까.

물론 그때가 정확히 언제가 될지는 미지수였지만.

일단 수도에 다녀와서 생각하기로 하자.


[용사지만 독재합니다]

23. 소녀와 데이트와 스토커(5) - 끝


작가의말

당초 공지한대로 27, 28, 29일은 휴재입니다. 3월 1일까지는 돌아올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나저나 일일연재를 하니까 제가 봐도 이런 연결 파트에서는 호흡이 늘어지는 감이 있는데, 몰아서 읽을 때 최대의 경험을 하도록 호흡을 잡고 있긴 하지만, 라이브 집필본에는 최대한 반영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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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8장 : 소녀와 데이트와 스토커(4) +5 20.02.25 485 23 15쪽
21 8장 : 소녀와 데이트와 스토커(3) +6 20.02.24 515 31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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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7장 : 푸른 깃발의 주인(2) +1 20.02.22 596 26 17쪽
17 7장 : 푸른 깃발의 주인(1) 20.02.21 621 22 15쪽
16 6장 : 부족한 재능과 어긋난 미련(3) +1 20.02.20 610 20 13쪽
15 6장 : 부족한 재능과 어긋난 미련(2) +1 20.02.19 612 19 15쪽
14 6장 : 부족한 재능과 어긋난 미련(1) 20.02.18 637 22 12쪽
13 5장 : 애들 장난(2) 20.02.17 651 22 14쪽
12 5장 : 애들 장난(1) +1 20.02.16 662 2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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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4장 : 양손의 꽃(2) 20.02.14 737 2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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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3장 : 3급 용병 류 몽블랑(2) 20.02.12 882 30 13쪽
7 3장 : 3급 용병 류 몽블랑(1) 20.02.11 923 28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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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2장 : 소녀와 수상한 팬클럽(2) +1 20.02.09 1,217 3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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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롤로그 : 예정된 종막 +3 20.02.08 2,696 5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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