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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독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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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박스
작품등록일 :
2020.02.08 15:46
최근연재일 :
2020.02.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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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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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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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6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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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장 : 애들 장난(1)

DUMMY

5장 : 애들 장난

평범한 사람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을

실제로 하고 있는 존재들.

ㅡ 천재란 무엇인가 中 ㅡ


<1>

미팅 이틀 뒤. 이른 새벽.

격식있는 정복을 입고 평소답지 않게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한 소녀가 있었다.

아니. 소녀 같아 보이는 것은 겉모습뿐이고 사실 인생에서 가장 화창한 나이를 지나고 있는 한 여인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텔 모리아.

조금 멀리 지금 막 잠에서 깨어난 듯 부스스한 행색으로 비척이며 걸어오고 있는 사제가 보였다. 그녀는 단단히 취한듯 보였는데, 물론 술이 아닌 잠에 흠뻑 취한 상태였다.


“부교님! 좋은 아침이에요.”

“으으. 역시 저는 새벽 체질이 아닌가 봅니다.”

“확실히 그래 보이셔요.”


클라라는 곧 사양 없이 새벽 이슬로 축축한 길 옆의 가로수에 기대 앉아 꾸벅꾸벅 고개를 떨구기 시작했다. 조금 뒤 텔이 수줍은 미소를 머금었다.


“류 씨. 좋은 아침이에요.”

“다들 일찍 오셨네요?”


마지막으로 10분 정도 지나 용사가 도착했다.


“흠냐흠냐.”


그사이 클라라는 이미 내려놓았던 텔의 가방을 끌어안고 꿈나라로 도망간 상태였다. 침까지 흥건하게 흘려가면서.

그걸 본 텔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사제님. 그만 일어나세요.”


불러보지만 반응이 없다.

결국 잠시 지켜보던 용사가 다가가 흔들어 깨웠지만.


“음냐. 잘래.”

“이런 데서 주무시다 입 돌아가면 어쩌려고.”

“몰라아. 음냐. 고치면 돼.”

“크큽.”


잠꼬대인지 아닌지 모를 소리에 결국 부들대던 텔이 소리내어 키득거렸고.


“텔. 미리 미안해요.”

“네?”


다음 순간 용사가 거침없이 텔의 가방을 뻥 걷어찼다.


“꺅! 내 가방! 너무해요!”

“으어어어?”


텔이 붕 날아가는 가방을 따라 후다닥 달려가는 가운데 달게 자다가 느닷없이 흙바닥에 널부러진 클라라가 눈을 떴다.

깜빡깜빡.

서로의 눈동자가 잠시 마주쳤다.


“하핫. 좋은 아침입니다. 늦으셨군요.”

“······.”

“류 씨! 남의 가방을 발로 차면 어떡해요!”


용사는 일단 허리를 숙여 클라라의 손을 맞잡았다.

제법 날렵하게 몸을 일으키는 클라라였다.


“후하. 감사합니다.”

“그럼 가시죠.”


긴 말은 없었다. 다만 구겨지고 침에 젖은 가방을 앞으로 안은 채 훌쩍이면서 손수건으로 닦고 있는 텔의 시선만 앞서가는 용사와 사제의 뒤통수에 원망스럽게 꽂히고 있을 뿐.

일행은 얼마 안 가 검문소에 도착했다.

몽블랑 시의 북부로 통하는 시 외곽의 넓은 대로변에 있는 작은 초소는, 낮에는 형식적으로 보여주기식의 경비를 설 뿐인 곳이지만 밤 시간대에는 상황이 달랐다.


“흠흠.”

“정지! 정지해라! 너희들은 이제부터 초병의 통제에 따른다.”


일행이 순순히 걸음을 멈췄다.

철컥거리는 발소리와 함께 중무장한 병사가 다가왔다.

그러는 동안 용사가 힐끗 초소를 살폈다.

객관적인 전력에서는 저기 어둠 뒤편에서 뒷짐을 지고있는 초소장을 제외하고 나머지 다섯 명 모두 용병 기준으로 4급 정도에 불과한 하급 병사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목적이 통제가 아닌 감시와 예방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최악의 경우에도 노련한 3급에 준하는 초소장이 상황은 전파할 수 있는 수준.


“잠시 검문 있겠습니다.”


초병은 투구 아래 흉흉한 눈빛으로 일행을 슥 둘러보았다. 멀리 초소 앞의 전등이 달빛에 약간의 밝기를 더했다.


“이쪽은 다른 도시가 없는 방향입니다. 어떤 목적으로 새벽 시간에 북부의 경계를 벗어나는지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의뢰차 탄광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뒤에 두 분도 일행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초병은 곧 휴대용 전등을 켜서 용사의 가슴께에 달린 용병장을 확인했다. 동시에 클라라와 텔의 모습도 같이 살폈다.

병사는 이어서 클라라에게 다가갔다.


“사제십니까?”

“네.”

“확인이 필요합니다. 동의하십니까?”


클라라는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의문인 눈치였지만 용사가 별 말이 없자 이내 마지 못해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네. 그러시죠.”


다음 순간 병사가 허리춤의 군용 단검을 뽑아 망설임 없이 자신의 손바닥을 얕게 그었다. 텔이 깜짝 놀라며 움츠러드는 가운데 클라라가 태연하게 손을 뻗었다.

따스한 빛이 한차례 손바닥을 쓸어내자 순식간에 그의 상처가 아물었다. 그 사이에 손이 낫기까지 걸린 시간까지 확인한 병사가 정중한 표정으로 클라라에게 고개를 숙였다.


“실례했습니다. 오늘도 신의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앞날에 늘 여명이 함께하길.”


마지막으로 병사는 텔에게 다가갔다.


“신분을 증명할 명패가 있으십니까?”

“네. 있습니다. 여기. 텔 모리아. 몽블랑 북부 의뢰소의 2년차 사무원이고, 의뢰 건으로 담당 용병님과 동행중이에요.”


거기까지 들었을 때 병사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서 일행을 다시 돌아보았다.

용병. 사제. 공무원.

아무리 생각해도 일반적인 조합은 아니다.


“확인 끝났나?”

“네! 그렇습니다!”


그때 멀리서 뒷짐을 지고 있던 초소장이 정적을 가르고 일행에게 다가왔다. 검문을 하던 병사가 반사적으로 자세를 높였다. 초소장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용사에게 다가갔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아닙니다. 당연히 협조해야죠.”


관례적인 운을 뗀 뒤. 주저 없이 용사에게 말했다.


“의뢰장좀 볼 수 있겠습니까.”

“비밀유지 의무 위반으로 불가합니다.”


잠시 용사와 초소장의 시선이 팽팽하게 부딪쳤다.


“알겠습니다. 그럼 살펴가십시오.”


당황스러울 정도로 급변하는 분위기에 병사로부터 신분패를 돌려받던 텔이 의문을 지우지 못했다.

치안이 불안정한 지방 소도시에서나 볼법한 이상하게 깐깐했던 검문도 그랬고. 용사라면 무언가를 알고 있겠지만 외근 경험이 별로 없는 텔로써는 그저 추측만 할 뿐이었다.


“통과!”


초소장이 크게 소리치자 병사들의 경계가 누그러졌다.

일행은 다시 밤길을 걷기 시작했다.


“보험을 들어둘 생각이었을 거예요.”

“보험이요?”

“귀찮은 일에 엮이지 않겠다는 거죠.”


얼마간 걸어 초소가 어둠 너머로 사라졌을 즈음, 결국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는 텔이 용사에게 다가가 물었고 용사가 그렇게 답했다.

텔은 슬슬 감이 잡힐 것 같았다.

사제가 붙은 의뢰인데 용병이 고작 하나. 그것도 3급 용병. 모순이다. 신전의 동행이 필요할 정도의 의뢰가 고작 3급에 불과하다는 것은 중요한 쓰레기만큼이나 모순적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이상한데 심지어 남은 한 명은 의뢰소에서 파견 나온 말단 공무원이었다. 그런 조합이 새벽부터 도시 밖으로 나가고 있었으니 초소장의 과민반응도 이해가 가는 대목이었다. 그것이 과할 정도로 엄격한 검문을 받은 이유였다.


“솔직히 저도 그게 여전히 의문이었습니다만.”


침묵하던 클라라가 쌜쭉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서. 정말 무슨 속셈이십니까?”

“범인 잡으러 간다니까요.”

“진심이셨습니까?”

“물론이죠.”


그러나 이미 의뢰를 충분히 검토해본 클라라는 그다지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용사가 숨기는 이상 텔이라고 다르겠느냐마는.

일행은 해가 뜰 무렵에 광산의 정문을 지났다.

완만한 7광구 부지를 지나 새벽에도 변함없이 환하게 불을 밝힌 탄광 사무소 건물로 들어선다. 24시간 3교대로 돌아가는 광산의 특성상 늘 당직계통 이상의 인력이 유지되고 있었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

사무실 문 앞에는 이런 문패가 붙어 있었다.


“계십니까.”


물론 그런 것을 신경 쓸 용사가 아니었지만.


“오잉? 누구쇼? 이 야밤중에.”


한참 의자에 기대 꾸벅꾸벅 졸다가 느닷없는 인기척에 깜짝 놀라 일어나는 것은 완장을 차고있는 한 중년 사내였다.

그는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따라 들어오는 한 여인과 한 소녀를 확인하고는 이내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내저었다.


“보안구역이니 저리 나가슈. 면회라면 저기 기숙사 경비실로 가보시고. 그리고 너무 일찍 오셨수다. 지금 시간이 몇 십니까?”

“텔 서류좀 줄래요?”

“아니 글쎄 서류가 있어도 여기가 아니라니까 그러네.”

“네. 여기요.”

“허허.”


용사는 황당해하며 다가오는 남자를 무시하며 곧 텔이 건넨 구김 하나 없는 의뢰장을 보란듯이 펼쳐들며 말했다.


“지정의뢰 건으로 나왔습니다.”

“잉?”

“현 시간부로 제국 형법 제 127조... 아무튼 이런이런 법적 근거에 의해서 류 몽블랑 3급 용병에 의해 제국으로부터 정식으로 위임받은 수사권이 발효되었음을 알립니다. 수사권은 지금으로부터 24시간 동안 유효하며 관계자에게는 협조의 의무가 발생합니다.”

“······.”

“모든 수사과정은 몽블랑 신전의 현직 사제인 클라라 몽블랑 부교에 의해 공증될 것이며, 또한 본 대리인은 어머니 여신의 이름 아래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수사할 것을 맹세합니다.”


이윽고 담담한 고지의무가 끝났을 때.


“흠흠. 혹시 이거 지금 농담이오?”

“유선으로 확인해보시겠습니까?”

“뭐······. 확인은 당연히 해봐야 하겠습니다만. 허허.”


텔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키고 말았다.

꿈에 나올 것 같은 광경이었으니까.

눈앞의 완장을 찬 남자를 포함해서, 어느새 하던 일을 멈추고 어둑한 사무실 곳곳에서 이쪽을 돌아보고 있는 수십 쌍의 냉소 섞인 시선이란. 마치 전신이 강제로 발가벗겨지는 듯이.


“자매님. 괜찮으십니까?”

“아, 네.”


물론 그 정도로 겁에 질리거나 할 정도로 심약한 텔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난생 처음 겪어보는 맹목적인 다수의 적의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살면서 그녀가 언제 이런 시선을 겪어보았겠는가.


“하다 보면 익숙해져요.”


그런 가운데 클라라가 텔에게 속삭였다.

그녀 또한 경력이 출중한 현직 사제였다.

이런 민감한 의뢰에 수없이 동행해봤다.


“하지만 믿어도 좋아요. 적어도 짧게나마 제가 겪은 류 씨는, 물론 가끔 실없는 소리를 하긴 하지만, 그래도 늘 무언가를 보여주는 분이셨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겠죠. 믿어봅시다.”

“하긴.”


팽팽하던 텔의 긴장감이 이내 한풀 꺾였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 고민을 끝낸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심드렁한 말투와 귀찮음이 역력한 표정으로.


“뭐······. 알겠수다. 그렇다니 그런 거겠지.”


물론 이지모드인 용사에게는 무감각할 뿐이었지만.


“협조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뭐부터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일단 장부부터 좀 봤으면 하는데 자료실이 어딥니까?”


그에 남자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이런 코딱지만한 사무실에 자료실이 있겠습니까. 저기 캐비넷 안에 잘 정리되어 있습죠. 보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막내야!”


곧 사내의 목소리에 군기가 바짝 든 모습으로 한 젊은 남자가 달려와 어색하게 일행의 앞에 와서 섰다.


“그리고 휴게실도 좀 사용했으면 합니다만.”

“예. 내어드려야죠.”


날카롭던 사무실의 공기는 이제 조소와 황당함으로 물들어가고 있었지만 의외로 용사는 그다지 개의치 않는듯했다.

그 어떤 착각을 했든 사실이 아니었으니까.


‘그래. 많이 무시해둬라. 차라리 그게 더 편하니까.’


그냥 3명이면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텔 하나만으로도 이 정도 규모의 사무실은 털고도 남는 것이다.

용사의 안목이니 믿어도 좋았다.


[용사지만 독재합니다]

12. 애들 장난(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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