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죽일까.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살의’를 흘려 버렸다.
“그렇게 가면 안 되지. 그래도 내가 이렇게 시간을 냈는데.”
노필상.
그는 내가 흘린 살의도 눈치채지 못했다.
‘내가 손을 잡히다니.’
너무 안일해졌다.
그래서 잠깐 화가 났다.
얼마나 평화에 찌들었으면 ‘살의’도 감지하지 못하는 삼류 폭력 조직에게 손목을 잡힌단 말인다. 심지어 엔터를 운영한다면 현역도 아닐 것이다.
“앉아! 어린놈의 새끼가-”
이제는 반말에 욕까지 한다.
뒤로 뭐라뭐라 길게 말했지만, 굳이 듣지 않았다. 그저 이놈을 어떻게 해결할까. 혹은 그냥 무시해야 할까 고민하는 중이었다.
“야! 내 말 안 들려? 일단 앉아보라니까. 아직 신인 주제에, 이 업계에서 묻히고 싶어? 어디 싸가지없이-”
아직 말이 안 끝났네.
어떻게 할까.
‘그래, 그게 있었지.’
나는 좋은 생각이 났다.
이왕이면 활용해보자.
김상철과 찍을 [무채색]이 떠올랐다.
그래서 손을 살짝 뿌리치며 등을 돌렸다.
“야, 이 새끼야! 감히 날 무시해?”
나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
.
.
“······X발, 뭐야.”
노필상은 어이가 없었다.
좋은 계약이라고 말하고 바로 사인하고 싶다는 말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직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단다.
그렇게 말하는 놈들은 모두 똑같다.
이곳이 마음에 안 든다는 뜻이다.
‘계약하지 않겠다는 뜻이지.’
상품은 좋다.
얼굴도 생겼고 피지컬도 좋다.
‘넷플 흥행 배우?’
당장 다음 작품에서 절절 맬 수 있다.
하지만 당장 써먹을 곳은 많겠지.
작품 잘 돼서 광고 먹으면 좋겠지만, 안 되면 지방 행사나 돌리면 된다. 그것도 안 되면 사모님들 접대나 하게 시켜도 된다.
그걸로도 4억 정도는 금방 빼 먹는다.
“······이 새끼가, 어이가 없네.”
생각하고 보니까 화가 난다.
이놈을 어떻게 조질까.
애들 풀어서 반쯤 죽여놔?
그렇게 하면 사인은 받을 수 있을 텐데.
‘사인만 받으면 되는데.’
위약금으로 묶어 놓고 몇 년 뺑뺑이 돌리면 기름 좔좔 흐르는 동아줄 하나 만들 수 있겠지.
하지만 그때.
툭.
불이 꺼졌다.
마치 누군가 두꺼비집을 내린 것처럼.
꺄악-!
밖에서 비명이 들렸다.
“X발, 뭔 일이야!”
불이 꺼졌다고?
게다가 왜 비명을 지르고 지랄인가.
“하- 되는 일이 없군. 일단 그 새끼 사는 곳부터 조져야겠는데.”
앞이 잘 안 보인다.
하지만 별 일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콰작-! 쿠드득.
끄아아악!
“······?”
무슨 소리일까.
뭔가 부러지는 소리.
그리고 비명?
퍼억, 툭. 스걱-!
끄으으으윽!
“X발! 괴, 괴물이야!”
밖에서 비명이 들렸다.
애들이 쓰러지는 소리와 섬뜩한 소리까지. 노필상은 식은땀을 흘리며 책상을 더듬었다. 한쪽에 날카롭게 갈린 대검을 쥐었다.
‘뭐지? 뭐야. 어떤 새끼지? 옆 동팔이네인가. 날 담그러? 왜?’
혼란스러웠다.
오늘 종일 일진이 안 좋다. 밖에 대기하는 놈들이 못해도 7명은 있을 거다. 동팔이네가 작정하고 왔으면 못해도 15명은 데려왔을 것이다.
그래도 지지는 않을 것이다. 노필상, 강남 바닥의 칼잡이였다. 이 대검이면 다섯이든 열이든 상대할 수 있다.
“X발, 오늘 되는 일이 없네.”
하지만 그는 몰랐다.
이 습격의 주체가 누구인지.
‘난 당하지 않는다.’
노필상은 이를 악 물었다.
조직을 은퇴하고 [필상 엔터]를 만들기까지 얼마나 고생했는가.
조직 생활을 하면서 많은 생사의 고비를 넘겼다. 배에 칼이 찔려 내장이 튀어나온 적도 있고, 목에 칼이 박힌 적도 있다.
수십 명에게 포위되었어도 살아남았고 다수와의 싸움은 일상이었다. 일대일로 싸운다면,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 있었다.
“······.”
정적이 흘렀다.
대기했던 수가 7이다.
그런데 그걸 전부 쓰러뜨렸다고?
누가 쓰러뜨렸을까.
우리가? 우리를?
“해치웠나?”
노필상은 내뱉고 말았다.
금지된 대사를.
휘리릭-!
푸욱!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문밖에서 날아온 단검 하나가 노필상의 오른쪽 어깨에 박혔고, 대검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끄윽!”
순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된 거지?
‘뭐지!?’
노필상은 입을 막곤 눈알을 돌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암막 커튼 사이로 새어 나오는 얇은 빛줄기 하나가 전부다.
“······.”
공기가 달라졌다.
이상했다.
어깨에 대검이 하나 박혔을 뿐이다. 이런 상처는 전에도 많이 겪어봤고, 싸울 수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다.
뭔가 다르다.
살을 애는 듯 날카롭다.
오금이 굳고 손발에 땀이 난다.
‘뭐지?’
이건 뭔가 달랐다.
적 수십에 포위당해도 멀쩡했다.
배짱 하나는 강남 바닥 최고다.
그런데 이건 아예 차원이 달랐다.
“······흐으으윽.”
숨을 죽이려고 해도 멈추지 않는다.
두렵다.
죽는 것일까.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어깨를 찔렸다고? 다른 애들이 당했다고? 고작 그 정도로 두려울 내가 아니야!’
그렇게 되뇌였다.
하지만 이건 불가항력이었다.
그저 살고 싶었다.
살아야 한다!
그런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하지만 방법이 없다.
무력하다.
‘포기할까?’
포기하고 말 것도 없다.
이미 죽은 목숨이다.
살려주지 않겠지.
그는 깨달았다.
이게 사냥당하는 입장이구나.
아무것도 못하고.
자비를 빌어야 하는.
가련한 짐승.
번뜩-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살갗을 애는 한기.
등골이 쭈뼛 서는 소름.
이런 게 말로만 들었던 ‘살기’인가.
스윽.
아무것도 어둠에서 무언가 드러났다.
“으아악-!”
하얀 눈동자가 눈앞에 나타났다. 새어 들어오는 빛 때문일까. 아니면 진짜 악마이기 때문일까. 노필상은 방금 본 눈동자에서 단 하나의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단 하나.
재미.
아니, 이건 갈증이다.
살의로 가득한 눈동자였다.
“끄르륵.”
기절했다.
목이 돌아가지도 않았음에도.
.
.
.
이놈들을 처리하는 건 어렵지 않다.
아무런 감정 없이,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전원을 내리고 하나씩 제압하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냥 지나치기엔 아까웠다.
‘무채색.’
요즘 촬영을 준비하는 각본이라 그럴까. 이 어둠 속에서 사냥하는 나, 그리고 사냥당하는 피식자의 구도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였다.
얼마 전에 완성된 [이름 없는 별]을 보면서 느꼈던 연출과 구도에 대한 깨달음 덕분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 두려움이 가득 차오른 인간은 툭 치면 무너질 듯하다.’
무채색의 한 문장이다.
나는 [무채색]의 ‘김철수’가 되어 있었다. 그저 감정 없이 제압하는 게 아닌, 포식자가 되어 사냥한다.
휘릭-!
단검을 던졌다.
그러자 대검을 놓친 노필상은 두려움에 떨기 시작한다. 다 보고 있었고 바로 제압할 수 있었지만, 굳이 그러지 않고 지켜봤다.
‘흔들리는 노란 눈동자엔 죽음을 코앞에 둔 인간의 나약함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지금까지 포식자인 줄 알았던 짐승은, 한 마리의 가련한 사슴이 되었다.’
누가 봐도 강렬한 인상을 지닌 조폭이었다. 문신에, 장신구에, 흉터와 얼굴 그 자체까지.
하지만 지금은 어떨까.
그런 외모 따위는 전혀 상관없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보더라도, 그는 죽음을 코앞에 둔 가련한 짐승일 뿐이다.
‘이게 김철수의 입장일까.’
아니다.
조금만 갈증을 일으켜보자.
복면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눈은 보인다. 그렇다면 더 몰입한다. 색깔이라는 감정에 대한 갈증.
너를 사냥한다.
한 마리의 포식자가 된다.
‘죽인다.’
그것은 ‘살의’의 폭증.
죽이겠다는 강렬한 의지의 발현.
‘살기’였다.
“끄르륵.”
기절했다.
심지어 오줌도 지렸다.
“······이건가.”
딱히 기분이 좋진 않다.
하지만 ‘김철수’는 즐겼다.
어떻게 연기하면 되는지 알 것 같았다.
‘오랜만이네.’
‘살기’라는 것은 이제 갓 군인이나 킬러가 되었을 때, 동료가 죽는 것을 보고 반쯤 미쳐 적을 죽이겠다고 달려들 때나 드러나던 감정이다.
애송이 시절의 방종 같은 것.
나도 군인이 되었을 때 간혹 나왔다.
하지만 이후에는 잊고 살았다.
아니, 숨겼다는 게 맞겠지.
‘김철수는 딱 이 시기겠지.’
덕분에 연기에 도움이 되겠다.
* * *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이 감각, 오랜만이다.
그리고 재미있었다.
“······계약은 파라솔이랑 해야겠네.”
역시 계약금이 과하면 의심부터 해야겠다.
그 분위기의 소속사를 보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았던 나는 반성해야 한다. 아직도 일반인과 그게 아닌 것의 구분이 잘 안 된다.
‘더 조심하자.’
그렇게 다짐했다.
[무채색]
좋은 작품이다.
내 의견이 들어가서 그런 것도 있다. 하지만 김상철의 능력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이었다.
‘각본이 너무 좋아.’
그리고 그 연출이 궁금했다.
아니, 편집이라고 해야 할까.
후보정작업.
‘상상이 안 되네.’
김상철이 그리는 그림이 있을 것이다.
그게 궁금했다.
사락.
나는 각본을 펼쳤다.
오늘 별일(?) 없었지만, 소속사를 알아본다고 시간을 많이 썼다. 그나마 오랜만에 ‘살기’라는 것을 떠올렸으니, 그게 가장 좋은 성과랄까.
‘좋았어. 이걸 연기에 활용해보자.’
그날, 각본을 읽고 또 읽었다.
외우는 건 이미 다 외웠다.
하지만 이 각본은 읽을수록 그 안에 숨겨진 의미가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김철수’라는 [무채색]의 주인공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다음 날이 되었다.
.
.
.
“서진아!”
김상철이다.
오늘 드디어 [무채색]의 촬영을 시작한다. 지금까지 각본을 수정하느라 기간이 늘어졌다.
“안녕하세요! 박서진씨.”
구윤정이 손을 번쩍 들어 인사했다.
그녀는 항상 이렇게 인사한다. 웃으면서 펄쩍 뛰는데, 밝은 빛이 뿌려지는 것 같다.
“오랜만이네요.”
최진욱 배우도 옆에 있었다.
문득 이 장면을 보면서 묘한 감정이 들었다. 다들 다른 작품에서 만났던 이들. 그리고 하나하나 나와는 거리가 멀었던 빛나는 별이었다.
그런 사람이 한자리에 모였다.
나만 신기한 걸까.
“그러게요. 요즘 잘 지내시죠?”
“[이름 없는 별]이 너무 잘 되고 있어서, 바빠졌죠. 광고가 너무 들어와서······ 서진씨도 꽤 들어왔을 거 같은데.”
최진욱이 물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소속사가 없다. 광고를 받아줄 곳도, 처리해줄 곳도 없다는 뜻이다.
“아, 그렇군요. 계속 같이 촬영해서 그런가 신인이라고 생각 못 하고 있었네요. 워낙 잘해서.”
최진욱은 진심으로 잊고 있었다.
그때, 옆에 있던 구윤정이 말했다.
“소속사 정했어요? 우리 소속사 들어오면 참 좋을 텐데.”
“윤정이, 너네?”
“네! 대표님도 인사했어요.”
“그쪽이면 괜찮지. 분위기도 좋고 자유롭기도 하고. 특히, 대표님이 믿을 만한 사람이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고민 중이다.
다른 곳들은 계약 조건이 비슷하다.
최소 3년, 계약금 5천만 원 정도.
계약금을 더 잘 주면 기간이 늘어난다.
구윤정의 소속사 [파라솔]이라는 소속사의 계약 조건이 확실히 좋았다. 그리고 평판도 좋은 것 같다.
‘1년이면 한동안 수익을 낼 생각 없다는 건데.’
다른 소속사에서 그랬다.
1년은 안 된다.
계약금이 들어가면 쉽지 않다.
광고를 의무적으로 찍어야 한다.
일정 배분율이 달라질 수 있다.
‘다 그랬지.’
특별한 변수 없으면 [파라솔]에 들어갈 것 같다. 확정은 아니지만, 굳이 더 볼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그때였다.
“일단 촬영할까요?”
김상철이 눈치를 보다 슬슬 끼어들었다.
소속사 이야기는 다음에 해도 된다.
“오늘 촬영 장소는 여깁니다.”
그가 뒤를 가리켰다.
폐공장이다. 공사가 중단되지 꽤 오래되어 보이는 장소. 이곳에서 메인 스토리가 진행된다.
“오늘을 포함해서 3일 정도만 촬영하면 될 겁니다. 최진욱씨랑 구윤정씨가 참여하는 장면은 최대한 오늘 안에 끝내보려고요.”
단편이라 촬영 기간이 짧다.
그렇게 촬영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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