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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실 님의 서재입니다.

I am 엔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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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해실
작품등록일 :
2023.12.04 23:07
최근연재일 :
2024.02.19 23:14
연재수 :
7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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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수 :
346,831

작성
24.01.16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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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온 세상 불행이 마치 나만 공격한 것 같았지

DUMMY

“송미호가 지명수배자라는 건 알고 있었습니까?”

“지명수배자요? 하!”


전혀 몰랐다는 듯 황당한 표정과 함께 수현이 헛웃음을 보였다.


“전혀 모르고 계셨군요”

“돈 얘기 말고는 딱히 오고간 대화가 없어서요”

“지명수배자는 웬만해선 일을 벌이지 않는데, 송미호는 왜 찜질방에서 절도를 했을까요?”

“이전에 비해 보낸 돈이 적었으니까요. 부족하다고 느꼈겠죠”


질의에 또박또박 응대하는 수현을 성경사가 가만히 응시했다.


그러나 이가인 만큼이나 감정을 잘 숨기는 나수현이었다.


“언제까지 돈을 줄 생각이었습니까?”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툰 거고요”

“아, 알겠습니다.”


소매를 걷은 수현이 보란 듯 시계를 들여다봤다.


어느 새 경찰서에 도착한 지 2시간이 지난 후였다.


“형사님”

“네”

“절 의심할 수밖에 없는 정황이란 거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협조했고 앞으로도 필요하면 협조할 생각이에요. 하지만 결단코, 전 그날 그 여자를 만나지 않았습니다.”


똑 부러지게 방어하는 수현에 성경사가 의미 모를 너그러운 미소를 보였다.


“나수현씨를 지목해서 수사 중인 건 아닙니다. 송미호를 찾고 있는데다 수사망을 좁히기에는 아직 밝혀진 게 없어서요. 송미호만 찾으면 다 밝혀질 테니 그때까지만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순간 문득 수현의 고개가 갸웃했다.


“실종된 지 5일이 지났는데 찾을 가능성이 있긴 한 건가요?”

“그럼요. 실종상태이긴 하지만 송미호 스스로 잠적했을 수도 있고 만약 납치사건이라면 어딘가에 감금되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겠군요. 그럼 저는 가 봐도 되는 거죠?”

“네”


성경사가 일어서자 수현이 일어났다.


“새로운 소식이 있으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오늘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잠시 후, 수현이 경찰서를 걸어 나왔다.


그러나 처음 이곳에 발을 들일 때만큼이나 그녀는 마음이 무거웠다.


마치 송미호 실종사건에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그녀를 관여시킨 느낌이었다.


모든 정황이 자신을 향하게끔.


무려 5일 째 행방이 묘연한 송미호도 그녀 마음을 무겁게 했다.


걱정이 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왕 사라진 거, 끝까지 수사망을 잘 피해 다니다 얌전히 늙어갔으면 싶은 마음이었다.


두 번 다시 눈앞에 나타나지만 않는다면.


왜 그 여자가 잡히지 않았으면 하는지 수현 자신도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굳이 그 이유를 찾으려 애쓰지도 않았다.


경찰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는다면 어디선가 잘 살고 있을 거라 생각하면 그만이니까.


곧, 수현이 계단에 발을 디뎠다.


그런데 순간 문득, 그녀 머릿속에 송미호와 주고받았던 마지막 대화가 떠올랐다.



「“근데 왜, 삼백이야?”

“미처 다, 쓰지 못할 것 같아서”」



멈춰 선 수현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렸다.



***



종로경찰서




양경사는 생각에 잠긴 가인을 기다려주는 중이었다.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매우 꺼리는 탓에 양경사는 그녀를 사무실책상 앞이 아닌 조사실로 데려왔다.


그러나 하나뿐인 조명 아래 아무런 표정이 없는, 그래서 조금은 섬뜩하기까지 한 이가인과 적막 속에 있자니 불편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가인에게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한 아려오는 과거였다.


그래야 사진 속 인물의 눈빛을 똑바로 대면할 수 있을 테니까.



이혼 후, 가인이 수현을 찾아갔을 때는 발목을 덮는 눈이 수북이 쌓인 12월이었다.


그 사이 단발이었던 수현의 머리는 어깨를 덮고 있었고 다소 심플했던 그녀의 복장은 러블리한 원피스로 바뀌어 있었다. 영국인 남자친구가 생긴 거였다.


오랜만에 자신을 찾아온 가인에 수현은 남자친구와의 저녁 약속을 취소하고 그녀를 만났다.


그런 수현에 가인은 그동안 자신에게 있었던 많은 일들을 뒤로하고 그녀의 이야기를 먼저 경청했다.


수현은 22살 동갑내기를 만나고 있다고 했다. 평소 친구로 지내던 이웃집 청년이었다.


그러자 가인은 어쩌면 당연한 것들을 매우 진지하게 물었다.


“남자친구가 잘해주니?”

“네 남편 분만큼은 아니겠지만 딱 22살다운 포용력이 있어”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 봐. 궁금해”

“음.. 되게 솔직한데 배려가 있어. 근데 또 그 배려가 지나치거나 가식적이지가 않아. 딱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영역만큼만 배려해”

“뭔가 좀 어려운데? 좀 더 쉽게 얘기해줘”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좋은지 수현이 입가에 웃음을 머금었다.


“진솔하다는 표현이 더 맞을 거 같아. 그 친구는 절대 가식적으로 친절하거나 함부로 약속을 하지 않거든. 그게 처음에는 좀 차가워 보이기도 했는데, 사귀고 보니까 너무 편하더라. 늘 한결 같으니까 나한테 소홀해 졌다거나 변했다는 느낌이 조금도 없어”


순간 상체를 기울여가며 수현 얘기에 집중했던 가인이 앞에 놓인 물 잔을 들어올렸다.


오랜만에 만난 수현이 왜 이렇게 예뻐졌나 싶었다.


그녀는 진짜 ‘사랑’을 받고 있는 거였다.


자신과는 다르게.


“텍스트라 잘 실감은 안 나지만 22살 치고는 가치관이 괜찮네”

“응. 좀 오그라들기는 한데 솔직히 말하자면..”


망설이다 활짝 웃은 수현이 이어 말했다.


“내 앞에 수호천사가 나타난 것 같은 기분이야”


살짝 발그레한 수현에 미소를 보인 가인이 가만히 창문 너머 밖을 바라봤다.


창밖은 여전히 내리는 눈이 소리 소문 없이 무서운 속도로 세상을 하얗게 점령하는 중이었다.


그때였다. 수현이 길게 뻗은 손으로 가인의 팔을 건드렸다.


“이제 네 얘기도 좀 해줘. 결혼해보니까 어때? 연애 때보다 더 좋아?”


뭔가 어마어마한 신혼생활을 기대하는 수현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나, 헤어졌어. 한 달 전에”

“뭐?”


순간, 머릿속이 하얘진 듯 멍하게 있던 수현이 이내 가인의 손을 잡았다.


“미안. 난 그것도 모르고 신나게 내 얘기만 했네..”

“아니야. 우중충한 내 얘기보다 훨씬 좋았어. 덕분에 밥도 맛있었고”


가인은 짤막하게 결혼생활을 끝낸 이유를 밝히며 학교를 졸업하는 대로 한국에 돌아갈 거라 말했다.


“정말? 아주 가는 거야?”

“응. 너는 여기 계속 있을 거지?”

“나도 처음엔 그럴 생각이었는데, 남자친구가 같이 한국에 가자고 해서”

“남자친구가?”

“응. 나를 더 잘 이해하려면 내가 자라온 문화를 알아야 한다면서 졸업하고 바로 가자고 하더라고”


순간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눈보라가 휘날리며 식당 유리창이 흔들거렸다.


“벌써 결혼까지 생각하는 거야?”

“난 아닌데, 그 친구는 빨리 하고 싶은가 봐”


아니라고는 했지만 수현도 싫지는 않은 얼굴이었다.


“그렇구나.. 어머! 내 정신 좀 봐. 시간을 너무 많이 뺏었네.”


시계를 들여다본 가인이 서둘러 옷과 가방을 챙겼다.


“오늘은 우리 집에서 자고 가. 눈도 많이 오잖아”

“아니야. 나 때문에 남자친구 약속도 깼다며. 가서 남친이랑 좋~은 시간 보내세요!”


그렇게 가인과 수현이 식당을 나온 건 오후 5시였다.


그러나 종일 내리는 눈에 일찍 해가 사라진 바깥세상은 마치 한밤중인 듯 어두컴컴했고 드문드문 보이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분주했다.


가인은 다음을 기약하며 식당 앞에서 수현을 보낸 후 택시에 올라탔다.


창밖으로 보이는 거리의 사람들은 하나 같이 행복해 보였다.


온 세상 불행이 마치 그녀에게만 공격한 것 같은... 뭔가 억울한 마음이었다.


“나도.. 그런 사람 만나고 싶다”


나지막이 중얼거린 가인의 말을 캐나다인 운전사는 알아듣지 못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



다음날




일찍 호텔을 나온 가인이 밴쿠버에서 그녀가 거주하는 토론토로 가기 위해 공항으로 가던 길이었다.


요란한 폰 벨소리와 함께 전화를 받은 가인은 결국 비행기에 탑승하지 못했다.


어젯밤, 수현이 실종됐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였다.


최초 실종신고를 한 건 수현의 남자친구였고 가인에게 소식을 전한 건 수현의 언니였다.


차를 몰고 집으로 가고 있다는 남자친구와의 통화 이후 연락이 끊긴 거였다.


수현은 남자친구와 함께 그의 집에서 영화를 보기로 약속했었다.


그런데 불과 20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2시간이 지나도 소식이 없자 남자친구는 수현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남자친구는 계속 통화를 시도하며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23번째 연결음이 들려올 때였다.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수현이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거친 숨소리만 내쉬던 그녀는 꺼져가는 목소리로 알 수 없는 말을 뱉은 후 전화를 끊었다.


첫마디는 남자친구인 제임슨의 이름을 부른 거였다.


그러나 그마저도 발음이 어눌했다.


그런데 문제가 된 건 두 번째 말이었다.


“가.. 가... kills..”


순간 누군가에게 낚아채진 듯 폰은 꺼졌고 이후 그녀도 그녀의 폰도 종적을 감췄다.


실종신고 후 경찰은 밤을 새가며 주변 일대를 수색했다.


그러나 무릎까지 쌓인 눈과 격해지는 눈보라에 제대로 된 수색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에 결국 바람이 잦아든 아침에야 경찰은 다시 수색을 시작했고 몇 시간 후, 밴쿠버 시내에서 멀지 않은 주택가 근처에서 버려진 수현의 자동차를 발견했다.


그리고 곧이어 공원 쓰레기통에서 훼손된 그녀의 빈지갑과 혈흔이 묻은 찢어진 옷가지를 찾아낼 수 있었다.


경찰은 집으로 돌아가던 수현이 강도를 만났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었다.


소식을 들은 가인은 자발적으로 경찰서에 출석해 전날 수현과 함께 움직였던 동선과 시간을 설명했다.


동시에 그녀는 자신의 알리바이도 증명했다. 또한 경찰과 함께 수현을 찾아 나서기도 했다.


경찰과 함께 한다는 건 가인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동행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신경안정제를 복용하면서까지도 그 동행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수현은 실종자 명단에서 그 이름을 지우지 못했다.


*


얼마 후, 다가온 새 해와 함께 토론토로 돌아간 가인은 슬픔 가운데서도 수현이 돌아올 거라는 희망을 놓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누군가 가인을 찾아왔다.


한 번도 본적 없는 수현의 아버지와 그녀의 가족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서 받았던 이전의 따뜻한 눈빛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었다.


그들은 가인을 의심하는 중이었다.


수현의 남자친구 제임스와의 통화에서 그녀가 남긴 끝맺지 못한 음성 때문이었다.


느닷없이 사라진 수현을 애타게 찾고 있는 그녀 가족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의 매서운 눈빛은 가인을 슬프게 만들었다.


수현과 더불어 그 가족과 함께 보냈던 시간들.. 거기다 약까지 복용해가며 경찰과 함께 수현을 찾아다녔던 가인이었다.


그럼에도 수현의 가족은 하나같이 그녀를 의심하는 모양새였다.


그때 가인은 난생 처음 누명을 쓴 기분이 이런 거라는 걸 느꼈다.


특히 그날 처음 만난 수현의 아버지는 가인을 보자마자 마치 딸을 죽인 살인자인양 그녀를 노려봤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증오의 눈빛이었다.


당시 생명의 위협을 느낀 가인은 어쩔 수 없이 경찰을 불렀다.


그리면서도 그들에게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다.


그런데 수현의 부친이 연행되기 전, 그는 그녀에게 한마디를 남겼다.


“난 반드시 내 딸을 데려간 범인을 찾아내 죽일 거야”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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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네 스스로 그걸 증명해 24.02.18 19 0 13쪽
69 악어의 눈물?! 24.02.17 26 0 12쪽
68 진실은 나만 알고 있거든 24.02.15 31 0 11쪽
67 I’m 엔젤 24.02.14 19 0 11쪽
66 그녀 없는 그녀이야기 ② 24.02.13 38 0 10쪽
65 그녀 없는 그녀이야기 ① 24.02.13 59 0 11쪽
64 죽음의 기운 24.02.09 38 0 12쪽
63 두렵다기보다 화가 날 것 같아 24.02.08 21 0 12쪽
62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생이네. 24.02.06 40 0 11쪽
61 거드리지 말았어야 할 상대를 건드린 기분이야 24.02.05 26 0 13쪽
60 제가 알고 싶은 건 약점이 아니라 진실입니다. 24.02.04 56 0 11쪽
59 모든 게, 완벽해 24.02.03 66 0 11쪽
58 3분 48초 24.02.02 34 0 10쪽
57 난 진실이 필요하거든 24.01.31 24 0 12쪽
56 억울하고 화가나 미칠 것 같지? 24.01.30 42 0 11쪽
55 그는 내일이 없어보였다. 24.01.29 41 0 11쪽
54 각자의 길에 들어서다. 24.01.28 34 0 11쪽
53 목격자 24.01.27 36 0 11쪽
52 이미 늦었어 24.01.26 24 0 10쪽
51 그녀는 그 집에 사는 유령이었다. 24.01.25 38 0 13쪽
50 가능한 영원히.. 24.01.23 26 0 10쪽
49 그건 극복하는 게 아니야. 받아들이는 거지 24.01.22 58 0 13쪽
48 정말 신이 있다고 믿나요? 24.01.21 35 0 11쪽
47 마음이 앞서면 일을 그르칩니다. 24.01.20 36 0 10쪽
46 오해 그리고 낙인 24.01.19 40 0 11쪽
45 그곳은 천국이었다. 24.01.18 36 0 10쪽
44 그는 딸을 잃어버렸고 나는 유일한 친구를 잃어버렸다. 24.01.17 38 0 10쪽
» 온 세상 불행이 마치 나만 공격한 것 같았지 24.01.16 37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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