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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실 님의 서재입니다.

I am 엔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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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해실
작품등록일 :
2023.12.04 23:07
최근연재일 :
2024.02.19 23:14
연재수 :
7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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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46,831

작성
24.01.15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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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사진 속 그는..

DUMMY

“아니요. 이전, 그러니까 일주일 전에 만났습니다. 제 집 앞에 웅크리고 앉아있더라고요”

“그때 무슨 대화를 나눴습니까?”

“생활비를 달라고 해서 다퉜습니다. 2년 전부터 갑자기 엄마라고 나타나서는 돈을 뜯어가고 있었거든요”


송미호와의 일화를 설명하는 수현 얼굴에는 여전히 어떤 감정도 담겨있지 않았다.


모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생모가 나타나 돈을 뜯어갔다면 적잖게 분노가 쌓였을 법도 한데, 그녀는 그것조차 초월한 듯했다.


성경사는 그제야 통화 당시 수현이 단호했던 이유를 눈치 챘다.


그녀에게 ‘엄마’라는 단어는 태어나 처음 들어본 낱말처럼 낯설고 어색했던 거였다.


나수현은 송미호에게 어떤 감정이 형성될 만큼 모녀관계로 시간을 보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감정 없는 수현의 그 태도가 정황과 맞물려 의심을 증폭시키기에는 충분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다음날 회사 경비실을 통해 현금 삼백만원을 전달했습니다.”


폰을 연 수현이 현금을 인출한 내역이 담긴 은행 계좌를 경사 앞에 내밀며 말을 이었다.


“저는 송미호씨가 실종된 당일 밤, 집밖으로 나온 적이 없습니다. cctv 확인해보세요”


머릿속이 복잡해졌는지 말이 없는 성경사에 잠시 정적이 이어졌다.


성경사는 수현이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를 바라보는 성경사의 눈빛은 너그럽지 않았다.


신고를 받고 찜질방에 도착한 경찰은 송미호가 지명수배자임을 확인한 후 곧장 그녀의 행적을 추적했다.


송미호가 몸담았던 사기조직 일당은 3년 전 대부분 검거된 상태였으나 송미호는 그녀가 자주 드나들었던 카지노에서도 모습을 감춘 채 끝내 검거되지 못했다.


그러나 성경사는 그동안 송미호가 어떻게 잘도 숨어 살았는지 그 이유를 알아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 되자 버렸던 딸을 찾아가 뻔뻔하게도 돈을 뜯어먹고 살고 있던 거였다.


수현의 입장에서는 분명 몹시 화가 날 일이었을 터였다.


송미호가 실종된 지금, 2년 간 돈을 뜯긴 수현의 입장이 불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



같은 시각 종로경찰서




머리를 기울여 사진을 들여다본 가인이 고개를 들었다.


“한 사람은 알겠는데, 다른 한 사람은 처음 보는 분이에요”


정직한 가인의 대답에 양경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첫 번째 사진 속 인물을 알고 있다는 말씀이시죠?”


마치 다 알고 있었다는 듯한 뉘앙스가 경계심 없던 가인의 신경을 건드렸다.


물론 내색하진 않았다.


“네. 이분은..”


살짝 머뭇거린 가인이 말을 이었다.


“캐나다 유학시절, 제 친구 아버지에요”


어렵게 말은 이은 그녀가 많은 감정이 담긴 숨을 내쉬었다.


그녀에게는 결코 꺼내기 쉽지 않은 과거였다.


좋았던 추억이자 동시에 시리도록 아픈 추억이기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순간의 선택으로 친구가 살해된 데다 동생까지 잃어버렸다는 괴로움을 견딜 수 없었던 가인이 선택한 도피처는 유학이었다.


그리고 그런 가인의 심경을 눈치 챈 그녀의 어머니 도미연은 홀로 유학을 가겠다는 가인의 결심을 선뜻 받아들였다.


때로는 새로운 환경과 사람들이 고통뿐인 과거를 지나가게 만들기도 했으니까..


그러자 처음에는 완강히 반대했던 이태진도 아내의 설득에 따라 결국 딸의 홀로 유학을 허락했다.


무조건 반대만 하기에는 어딘가 위태로워 보였던 가인이었다.


이에 결국 그녀는 혼자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낯선 캐나다 땅에 발을 디뎠다.


그러나 그곳에서의 생활도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일찍 양어 교습을 받았던 탓에 그녀의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친구들을 사귀는데 있어서는 좀처럼 간단하지가 않았다.


아이들은 얼굴이 어두운 가인에게 나름 호기심을 가졌지만 가까이 다가오진 않았다.


그녀에게서 밝은 에너지가 없다는 걸 무의식적으로 느낀 거였다.


그렇게 타국에서도 점점 혼자가 된 가인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에게 한 여학생이 다가왔다.


같은 반은 아니었지만 한국에서 온 가인을 눈여겨보고 있던 한국인 유학생이었다.


그녀가 처음 가인에게 말을 걸어온 건 평일 하교 길이었다.


“저기, 혹시 한국에서 왔니?”


낯선 타국에서 한국말이 들리자 땅바닥에 시선이 꽂혔던 가인의 고개가 돌아섰다.


“어?..어”


그녀에게 말을 걸어온 여학생은 마치 코알라를 사람으로 만들어 놓은 것 같은 통통한 볼에 오밀조밀한 눈 코 입이 무척 귀여운 인상이었다.


키는 가인보다 작았지만 그녀를 포용하는 깊은 눈빛은 가인의 키보다 훨씬 커보였고 그렇게 두 사람은 친구가 됐다.


가인에게 먼저 손을 내민 그녀의 이름은 나수현이었다.


수현은 초등학교 5학년 때 3살 터울의 언니 그리고 엄마와 함께 캐나다에 와서 살고 있다고 했다. 가인과 같은 유학생 신분이었다.


순간 가인은 그녀가 잠깐 부러웠다.


교육청에서 제공한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는 그녀로서는 차마 말 할 수 없는 가족의 부재가 그리울 수밖에 없는 시절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선택한 홀로 유학길을 후회한 건 아니었다.


동생을 잃어버리기 전과 똑같은 마음으로 가족을 볼 수 없었기에 괴로움 대신 외로움을 택한 그녀였다.


때문에 가인은 아주 ‘잠깐’ 수현이 부러웠을 뿐이었다.


수현은 매우 친절했고 따뜻했으며 가인을 친구 이상으로 챙겨주었다.


그녀를 집으로 초대한 수현의 어머니 또한 마치 딸을 대하듯 가인을 받아주었다.


그렇게 그 둘은 소위 베프가 됐고, 몇 년 후 가인은 무사히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타국에서조차 과거에 붙잡혀 있던 그녀가 수현과 그 가족의 도움으로 현재를 살아낸 거였다.


수현의 언니는 이미 다른 주에서 대학을 다니는 중이었고 모친은 수현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긴 타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 후 가인과 수현도 서로 다른 대학에 입학하면서 만남의 횟수는 현저히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우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곧 다가올 엄청날 일들 또한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2년 후, 12살 연상의 한국남자와 결혼을 결심한 가인은 처음으로 수현에게 그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수현은 좋은 사람을 만났다며 기뻐하면서도 우려하는 마음을 내비쳤다.


연애 기간이 너무 짧았던 데다 기복이 심한 가인의 심리를 잘 알고 있었기에 마냥 들떠있던 그녀를 차분히 가라앉혀주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확고했던 가인 마음에 친구의 조언이 들어올 리 없었다.


그녀는 절대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라며 수현을 안심시켰다. 그리고는 수현에게 결혼식 날 증인이 되어달라고 부탁했다.


하객 한 명 없이 교회에서 치르는 단출한 결혼식이었지만 하나 뿐인 친구였던 수현의 축하를 바란 거였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가인의 결혼식에 참석한 수현은 두 사람의 결혼을 축복하며 유일한 하객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3개월 후,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기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이혼을 해버린 가인은 한 달간 유렵여행을 다녀온 후 수현을 찾아갔다.



***



중랑경찰서




의문의 전화를 받은 송미호는 중랑구에서 평창동 딸의 집 앞까지 택시를 타고 와서는 홀연히 사라졌다. 최근 송미호가 접촉한 인물 또한 나수현, 단 한 명뿐이었다.


그간 나수현은 그녀가 버려진 것과 더불어 25년 만에 나타나 금전을 요구한 생모에 분명 엄청난 분노를 쌓아두고 있었을 게 분명했다.


다만, 엄마로서 바라보는 감정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바라보는 비인격적인 추악함에 대한 분노였을 터였다.


그동안 쌓여온 수현의 인내와 증오심이 당장 무슨 일을 벌여도 이상하지 않았을 상황이었다.


그녀를 바라보는 성경사의 눈빛이 너그럽지 못한 이유였다.


송미호는 새로 구입한 옷과 신발, 화장품 등을 찜질방 사물함에 그대로 둔 채 그곳을 나갔다.


그녀가 떠날 생각이었다면 모두 챙겨갔을 짐이었다.


영상에 잡힌 송미호 얼굴은 무척 들떠 있었다.


당시 찜질방 목격자들 증언으로는 전화를 받은 후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송미호 때문에 시끄럽다는 항의로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을 정도였다고 했다.


송미호는 곧 자신이 사라질 거라는 걸 조금도 예측하지 못한 거였다.


“월요일 밤, 혹시 집에 혼자 계셨습니까?”

“네”


수현이 한 치의 머뭇거림 없이 대답했다.


그러나 복잡한 머릿속을 건드리는 신경통은 어쩔 수 없었다.


하필 그날 그 시간에 배불뚝이가 그녀 집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장례식장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수현이 또다시 양주를 마셔야했던 그 시간에 송미호가 사라진 거였다.


그러나 자신을 의심하고 있는 형사 앞에서 절대 들켜서는 안 되는 과거의 시간이었다.


곧, 불쾌한 얼굴의 수현이 눈을 치켜떴다.


“형사님, 저는 지금 참고인입니까? 아니면 용의자입니까?”


정색하며 물어오는 수현에 살짝 움찔한 성경사가 헛기침을 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직은 참고인입니다. 해서 몇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성경사가 다시 질의를 주도했다.


범인이거나 혹은 용의자가 될 수도 있는 참고인에게 끌려 다니는 순간 말린다는 걸 그는 익히 잘 알고 있었다.


“송미호에게 빚이 있었다거나 혹은 쫓긴다거나 하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까? 아니면 평소와 다른 초조함이 보였다거나 하는”

“그 여자와 저는 서로를 살필 만큼 가깝지 않습니다.”


송미호와 관련한 어떤 질문도 의미 없음을 수현은 간결한 대답으로 일축했다.


그러자 성경사가 질문을 바꿨다.


“그런데 왜 돈을 주셨습니까? 그것도 2년 동안이나”

“저한테 지옥을 선물해 준 보답이었어요.”

“모친, 아니 송미호가 많이 원망스러웠겠네요.”

“아니요”


또렷하고 선명한 수현의 두 눈이 그녀가 말을 잇기 전 먼저 반박했다.


“그 여자가 절 지옥에 버려준 덕에 엄청난 동아줄이 내려왔고 전 지금 잘살고 있는 걸요”


성경사는 공감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출생과 동시에 부모에게 버려진 수현이 어떤 고난을 거쳐 이가인 비서가 되었는지 그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잘살고 있다는 그녀에게서 중요한 한 가지를 발견했다.


체념이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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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네 스스로 그걸 증명해 24.02.18 19 0 13쪽
69 악어의 눈물?! 24.02.17 26 0 12쪽
68 진실은 나만 알고 있거든 24.02.15 31 0 11쪽
67 I’m 엔젤 24.02.14 19 0 11쪽
66 그녀 없는 그녀이야기 ② 24.02.13 38 0 10쪽
65 그녀 없는 그녀이야기 ① 24.02.13 59 0 11쪽
64 죽음의 기운 24.02.09 38 0 12쪽
63 두렵다기보다 화가 날 것 같아 24.02.08 21 0 12쪽
62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생이네. 24.02.06 40 0 11쪽
61 거드리지 말았어야 할 상대를 건드린 기분이야 24.02.05 26 0 13쪽
60 제가 알고 싶은 건 약점이 아니라 진실입니다. 24.02.04 56 0 11쪽
59 모든 게, 완벽해 24.02.03 66 0 11쪽
58 3분 48초 24.02.02 34 0 10쪽
57 난 진실이 필요하거든 24.01.31 24 0 12쪽
56 억울하고 화가나 미칠 것 같지? 24.01.30 42 0 11쪽
55 그는 내일이 없어보였다. 24.01.29 41 0 11쪽
54 각자의 길에 들어서다. 24.01.28 34 0 11쪽
53 목격자 24.01.27 37 0 11쪽
52 이미 늦었어 24.01.26 24 0 10쪽
51 그녀는 그 집에 사는 유령이었다. 24.01.25 38 0 13쪽
50 가능한 영원히.. 24.01.23 26 0 10쪽
49 그건 극복하는 게 아니야. 받아들이는 거지 24.01.22 58 0 13쪽
48 정말 신이 있다고 믿나요? 24.01.21 35 0 11쪽
47 마음이 앞서면 일을 그르칩니다. 24.01.20 36 0 10쪽
46 오해 그리고 낙인 24.01.19 40 0 11쪽
45 그곳은 천국이었다. 24.01.18 36 0 10쪽
44 그는 딸을 잃어버렸고 나는 유일한 친구를 잃어버렸다. 24.01.17 39 0 10쪽
43 온 세상 불행이 마치 나만 공격한 것 같았지 24.01.16 37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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