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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실 님의 서재입니다.

I am 엔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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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해실
작품등록일 :
2023.12.04 23:07
최근연재일 :
2024.02.19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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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7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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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자

DUMMY

며칠 후

 

 

경찰 측에서는 되도록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최대한 비밀로 하려 했던 사건이었다.

 

그러나 귀신 같이 눈치가 빠른 기자들이 감출수록 곰팡내가 나는 매캐한 냄새를 못 맡을 리 없었다.

 

게다가 그 사건은 숨길래야 숨길 수 없는 결정적인 진실을 담고 있었다.

 

얼마 전, 인천의 한 쓰레기 매립 소각장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한 남자가 발견됐다.

 

소각장에 출근한 직원이 쌓여있는 쓰레기 더미 사이에 묻힌 사람을 발견하고는 곧장 신고한 거였다.

 

해가 떠도 쌀쌀한 12월의 겨울 날씨에 5~60대 가량의 남자는 상하의 모두 내의만 걸친 채 손발이 단단히 결박되어 있었다고 했다.

 

게다가 폭행을 당한 듯 전신에는 크고 작은 상처와 멍 자국이 선명했고 의식은 거의 없는 상태였다고 했다.

 

하여 도착한 경찰에 의해 곧바로 병원으로 실려간 남자는 이후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의사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남자의 신분을 조사한 경찰은 그가 종로경찰서 서장 박영일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후, 그의 의식이 완전히 돌아올 때까지 한동안 비밀유지를 하기로 결정했다.

 

*

 

3일 뒤, 의식이 완전히 돌아온 그는 충격이 컸던 듯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의료진들이 병실을 드나들 때면 화들짝 놀란 어깨를 움츠리며 알 수 없는 공포에 손발을 떨었다. 이에 경찰은 병실 앞에 소수의 인력을 배치한 후 면회를 일체 금지시켰다.

 

수사를 위해 무엇보다 빠른 안정과 회복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런데 이틀 후, 갑자기 경찰을 부른 박영일은 내내 봉쇄했던 입을 떼며 자초지종을 털어놨고 그의 이야기를 들은 경찰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가 평창동 연쇄살인마에게 납치되었었다는 진술을 했기 때문이었다.

 

지난 주말 오후, 골프를 치고 사우나를 다녀오던 귀가 길에 문제가 생긴 차량을 대신해 택시를 이용한 게 납치의 시작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그러나 문제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박영일이 대부분의 상황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그는 결박된 채 감금되어 있었던 곳조차 천장에 매달린 백열등 외에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단 한 가지, 박영일이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게 있었다.

 

바로 연쇄살인마의 모습이었다.

 

박영일은 범인이 3~40대 정도의 건장한 체격을 가진 남자라고 했다. 뒤집어 쓴 복면으로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그의 왼쪽 손등에는 역삼각형의 표독스런 독사 머리가 그려져 있었으며, 자신을 연쇄살인마라고 당당하게 밝힌 남자는 스스로를 가리켜 ‘품격 있는 구원자’라고 소개했다고 했다.

 

그러자 살인의 이유를 묻는 박영일에 그는 평화를 위해 처단한 것뿐이라며 죄책감 따위는 느끼지 않았다고 했다.

 

또한 범인은 배우 지경하도 자신의 작품이라고 밝히며 그녀가 숨지기 전 담배를 쥐어주자 손을 매우 떠는 게 인상적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하듯 웃었다고 했다.

 

그러나 곧, 눈 깜짝할 새에 날아든 강력한 주먹에 그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고 진술했다.

 

1차 조사를 마친 경찰은 서장을 신변보호 대상자로 선정하며 24시간 그를 경호하기 시작했고 곧 연쇄살인마가 잡힐 거라는 기대감에 국민들은 동요했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퇴원 후 집으로 돌아온 서장 박영일은 일절 외출을 하지 않고 있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납치 트라우마로 인해 그가 점점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는 거였다.

 

경찰에게 진술을 할 때까지만 해도 범인을 잡고자하는 열망과 의지가 넘쳤던 서장이었다.

 

그런데 진술이 끝난 다음날부터 그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방 한구석에 웅크린 그가 수시로 내뱉는 말은 단 한마디뿐이라고 했다.

 

“난 약속을 지켰어”

 

 

 

***

 

 

 

가인은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하는 중이었다.

 

주말 사이 그녀는 단양에서 재림과 함께 패러글라이딩 체험을 한 후 올라왔다.

 

마침 따뜻한 날씨와 잔잔한 바람이 그녀가 마음껏 하늘을 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러나 이 순간 가인이 행복한 건, 난생 처음 하늘을 날아본 경험 때문이 아니었다.

 

단양에서 서울로 올라온 토요일 밤, 재림은 가인의 집 거실에서 그녀에게 프로포즈를 했다.

 

재림이 결혼이야기를 꺼낸 이후 다섯 번째 만난 날이었다.

 

아직 다섯 번의 만남이 남아있었음에도 먼저 약속을 어긴 그는 가인의 작고 가녀린 손가락에 눈 결정체 모양의 작은 다이아가 박힌 반지를 끼워주며 당황한 그녀에게 확신을 주었다.

 

이어 멋들어진 멘트와 함께 재림은 그녀의 탄생일인 2월 4일, 결혼식을 올리자고 말했다.

 

그리고 그날 그가 가인에게 보여준 견고한 믿음은 곧, 그녀로 하여금 추측성 루머 양산이 아닌 결혼발표라는 정면 돌파를 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확신을 원하는 가인의 속내를 간파한 재림의 빈틈없는 프로포즈였다.

 

그렇게 꿈같은 주말을 보낸 그녀는 바로 오늘, 외부행사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 미리 준비한 기사를 내보냈다.

 

기사의 헤드라인은 ‘전 미래유통 이강수 회장 손녀 결혼발표’였다.

 

오전 일찍 유포한 기사는 순식간에 제목만 바뀐 복붙 기사들로 사회면을 도배했다.

 

바뀐 기사제목에는 조회수를 선점하기 위해 대부분 ‘이가인’ 이나 ‘손녀’라는 말 대신 ‘비운의 상속녀’라는 수식어가 올라왔다.

 

그러나 가인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곧 대중들에게 잊혀 질 수식어였으니까.

 

그리고 잠시 후,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일개 치과의사 따위에 빠졌냐며 빗발치는 친인척들의 전화를 뒤로하고 가장 먼저 이사장실을 찾은 건 영원이었다.

 

기사를 보고 달려온 그녀의 반응은 해바라기가 만개한 얼굴이 대신하고 있었다.

 

얼떨떨하고 다소 긴장된 가인의 마음을 가라앉혀줄 유일한 지원군이었다..

 

“이가인! 결혼 축하해!!”

 

영원은 직장 상사가 아닌 친구로서 진심으로 가인에게 축하를 건넸다.

 

“고마워. 영원이 네 덕분에 실감이 좀 나네”

“너, 나 안 만나는 동안 되게 열심히 살았구나?!”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 어떻게 3년 째 연애하는 나보다 진도가 빨라? 잘 어울린다 생각했지만 이렇게 빨리 결혼할 줄은 몰랐어”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놀란 토끼마냥 커진 영원의 두 눈이 가인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로 향했다.

 

“어머머! 이거 커플링이야? 지난주만 해도 분명 없었는데?!”

“주말에 꿈같은 일이 있었어. 그리고 지금은 보다시피 용기를 냈고”

“기자, 유튜버, 악플러들이라면 끔찍이 여겼던 네가 먼저 기사 낸 거 보니까 확실히 알겠네. 공선생님이 어떤 사람인지”

 

영원의 말에 가인이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반지가 그녀에게 주는 심리적 효과는 실로 대단했다.

 

마치 재림이 함께 있는 듯한, 그래서 아무것도 두렵지 않은 놀라운 담대함이 그녀 안에 자리 잡은 거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무표정한 수현이 마실 차를 갖고 들어온 가운데 한 눈에도 들떠있는 영원과 비교적 침착한 가인이 그녀를 의식했다.

 

“수현아, 너도 기사 봤지?!”

“네. 조금 전에 읽었습니다.”

“이게 꿈이야 생시야? 이가인이 결혼이라니.. 정말 생각도 못한 미래야”

“이사장님, 결혼 미리 축하드립니다.”

“고마워. 수현이 너도 곧 좋은 사람 만날 거야”

 

영혼 없는 덕담에 수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조금 전, 그녀는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고소를 대비한 자료준비였다.

 

아침부터 득달 같이 달려온 악플러들은 이미 기사 마다 흔적을 남기며 누군가의 불행을 위해 열정을 바치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제껏 가인을 조롱하거나 비하했던 것과는 달리, 악플러들은 그녀의 결혼 상대자인 공재림을 저격하고 있었다.

 

이미 그에 대한 근거 없는 소문들을 만들어 대중들을 가스라이팅화 시키려는 그들의 열정적인 인생낭비가 시작된 셈이었다.

 

악플러 최효준이 연쇄살인마에게 살해되며 ‘이블데드’는 사라졌지만, 지구상에 수많은 바퀴벌레가 알을 낳듯 여전히 양산되고 있는 ‘악’은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본능이자 선택이었다.

 

그들은 이가인이 댓글을 거의 들여다보지 않는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하여 이가인이 아닌 공재림을 괴롭혀 그녀와의 결혼이 무산되도록 부질없는 업적에 매달리는 중이었다.

 

그런 가운데 유독 수현 눈에 띈 댓글이 있었다.

 

 

[속보 : 이가인 치과의사 남편 의문사. 이 글은 곧 성지가 된다]

 

 

아직 결혼식도 올리지 않은 마당에 피가 거꾸로 솟을 악담이었다.

 

그러나 수현은 당장은 보고하지 않기로 했다.

 

차분해 보이지만 연신 반지를 만지작거리는 들뜬 가인의 모습이 오늘만큼은 다시없을 행복을 실컷 만끽하라는 그녀의 자그마한 자비였다.

 

얼마 못 가 공재림은 더 이상 그녀에게 행복의 아이콘이 되지 못할 테니까.

 

“식장은? 알아봤어?‘

“교회에서 할 생각이야. 공선생님도 동의했고”

“신혼집은?”

“우리 집에서 살겠대. 내가 동생 기다리는 중이라고 흘리면서 한 말을 기억하고 있더라고”

“와~ 공선생님은 완벽히 너를 위해 준비된 사람이구나!”

“나도 좀 얼떨떨해.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기도 하고..”

 

조곤조곤 감정을 드러내는 달라진 가인에 흥분한 영원이 박수를 쳤다.

 

그러나 테이블 위에 조용히 차를 내려놓은 수현은 그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남의 결혼에 신경 쓸 만큼 한가한 머릿속이 아니었으니까.

 

본의 아니게 등장한 연쇄살인마로 인해 성가셨던 김서현의 협박은 힘들이지 않고 해결할 수 있었다.

 

납치사건 이후 일체 외출을 하지 않고 있는 박영일은 김서현과 주치의 그리고 일부 경찰 외에는 아무도 집에 들이지 않고 있다고 했다.

 

세상 무서울 게 없는, 원하는 건 무엇이든 거침없이 거머쥐었던 독불장군 박영일이 한순간 그렇게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게 수현은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감정을 드러내는 지금 눈앞의 이가인처럼.

 

순간 사무실을 나가려는 수현 뒤로 텐션 높은 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저녁, 시간 돼?”

“응. 왜?”

“할 얘기가 있어서”

“그래? 그럼 편한 시간으로 이따 알려줘”

“오케이!”

 

*

 

그날 오후, 뉴스에서는 혼수상태에 있던 차진수가 결국 사망했다는 속보가 흘러나왔다.

 

가인이 결혼발표 기사를 낸 바로 오늘, 그는 사망한 거였다.

 

기사를 접한 가인은 알 수 없는 안도감을 느꼈다.

 

먼저 세상 밖으로 발을 디디니 모든 게 순리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예감이었다.

 

그녀 입가에 감출 수 없는 미소가 드러난 순간이기도 했다.

 

처음으로 세상을 이겼다는 희열이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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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악어의 눈물?! 24.02.17 26 0 12쪽
68 진실은 나만 알고 있거든 24.02.15 31 0 11쪽
67 I’m 엔젤 24.02.14 19 0 11쪽
66 그녀 없는 그녀이야기 ② 24.02.13 38 0 10쪽
65 그녀 없는 그녀이야기 ① 24.02.13 59 0 11쪽
64 죽음의 기운 24.02.09 38 0 12쪽
63 두렵다기보다 화가 날 것 같아 24.02.08 21 0 12쪽
62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생이네. 24.02.06 40 0 11쪽
61 거드리지 말았어야 할 상대를 건드린 기분이야 24.02.05 26 0 13쪽
60 제가 알고 싶은 건 약점이 아니라 진실입니다. 24.02.04 56 0 11쪽
59 모든 게, 완벽해 24.02.03 66 0 11쪽
58 3분 48초 24.02.02 34 0 10쪽
57 난 진실이 필요하거든 24.01.31 24 0 12쪽
56 억울하고 화가나 미칠 것 같지? 24.01.30 42 0 11쪽
55 그는 내일이 없어보였다. 24.01.29 41 0 11쪽
54 각자의 길에 들어서다. 24.01.28 34 0 11쪽
» 목격자 24.01.27 37 0 11쪽
52 이미 늦었어 24.01.26 24 0 10쪽
51 그녀는 그 집에 사는 유령이었다. 24.01.25 38 0 13쪽
50 가능한 영원히.. 24.01.23 26 0 10쪽
49 그건 극복하는 게 아니야. 받아들이는 거지 24.01.22 58 0 13쪽
48 정말 신이 있다고 믿나요? 24.01.21 35 0 11쪽
47 마음이 앞서면 일을 그르칩니다. 24.01.20 36 0 10쪽
46 오해 그리고 낙인 24.01.19 40 0 11쪽
45 그곳은 천국이었다. 24.01.18 36 0 10쪽
44 그는 딸을 잃어버렸고 나는 유일한 친구를 잃어버렸다. 24.01.17 39 0 10쪽
43 온 세상 불행이 마치 나만 공격한 것 같았지 24.01.16 37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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