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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실 님의 서재입니다.

I am 엔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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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해실
작품등록일 :
2023.12.04 23:07
최근연재일 :
2024.02.19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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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4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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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①

DUMMY

1996년 10월 22일



“하나도 재미없어!”


새빨간 단풍잎과 샛노란 은행잎이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색채를 뽐내는 10월의 어느 날,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푯말이 세워진 커다란 느티나무 뒤로 6살 가인이 잔뜩 토라진 채 주저앉았다.


오늘은 가인이 다니고 있는 소망유치원 가을 소풍날


바깥으로 나오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만 같은 맑고 화창한 가을 날씨에 유치원 원장은 놀이공원으로 소풍장소를 확정했다.


이에 행여 원생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반별로 단체복을 맞춰 입은 소망유치원 아이들은 하나 같이 들뜬 얼굴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소풍장소로 정해진 드림랜드는 15세 미만 아이들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놀이기구뿐 아니라 직접체험이 가능한 소규모 동물원까지 조성되어있어 유치원 및 초등학교 소풍장소로 인기가 많은 곳이었다.


그러나 새싹반 가인은 이곳이 전혀 즐겁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놀이공원이기 때문이었다.


“왜 또 여기냐고!”


통통한 볼에 찡그린 얼굴로 오리처럼 삐쭉 입을 내민 가인이 다시 혼잣말을 뱉어냈다.


이곳 드림랜드의 소유주는 국내 중견기업 미래유통 회장 이강수의 아들 이태진 사장이었다.


그는 그의 딸 가인이 태어나기 5년 전, 서울 근교 부지를 매입해 아이들만을 위한 작은 세상을 만들어주고자 심혈을 기울여 드림랜드를 탄생시켰다.


물론 수익성과는 거리가 먼 투자였다. 그러나 이태진은 자금을 아끼지 않았고 그의 아내 도미연도 적극적으로 나서며 동물원 설계 및 조성에 직접 참여했다.


3년여의 열애 끝에 32살 동갑내기로 결혼식을 올린 이태진과 아내 도미연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난임으로 5년 째 아이를 갖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얀 날개가 달린 아기천사가 내려와 회전목마를 타는 꿈을 꾼 후 도미연은 기적처럼 임신을 했고 9개월 후 딸 가인을 출산했다.


그리고 3년 후, 미연은 다시 건강한 사내아이 이서인을 출산하며 그녀의 꿈을 완성시켰다.


4살 무렵, 부모 손을 잡고 이곳 놀이공원에 왔던 가인은 처음 만난 신기한 세상에 빠져 주말이면 늘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러나 6살이 된 지금의 가인에게 드림랜드는 이제 더 이상 신비로운 세상도 설레지도 않은 지루한 놀이터가 되어버렸다.


이에 가인은 이곳으로 소풍을 온다는 소식에 일부러 시간을 맞춰가며 도착한 그녀 부모가 보이자 몰래 도망쳐 나와 200년 된 느티나무 뒤로 숨어버린 거였다.


그렇게 한참을 토라져있던 가인이 나무 뒤에서 살짝 고개를 내밀었다.

혹시나 자신을 찾고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러나 회전목마 앞 색색별로 단체복을 입은 소망유치원 아이들이 저마다 시끄럽게 재잘대는 가운데 가인의 부모 이태진과 도미연은 준비해온 마시멜로우 꾸러미와 함께 한 세트로 포장된 티와 모자를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이에 환호하는 아이들과 선물을 가방에 넣어주느라 정신없는 선생님들이 가인 눈에 보였다.


“치! 나는 찾지도 않네. 내가 없어진 줄도 모르나 봐”


자신을 찾지도 않는 선생님과 엄마 아빠에 더 단단히 삐진 가인이 머리카락 한 올도 삐져나오지 않도록 나무 한 가운데로 몸을 움직였다.


행여 뒤늦게 자신을 찾아 이름을 불러대도 절대 나가지 않으리란 다짐으로.


그러나 얼마 못가 꼬르륵 거리는 뱃속 신호는 6살 아이가 무시하기 어려운 본능적 압박이었다.


곧, 가인이 등에 매고 있던 가방을 열어 막대사탕 하나를 꺼내들었다.


6살 인생 최애 간식으로 가인이 핑크색 공주 옷만큼이나 아끼는 동그란 과일맛 사탕이었다.


부시럭 부시럭


껍질이 벗겨진 막대사탕이 입안으로 쏙 들어가자 금세 기분이 좋아진 가인이 나무에 등을 기댄 채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러나 나뭇가지 사이로 파고든 햇살과 맑은 하늘의 정취를 느낄 리 없는 가인은 이제 겨우 6살이었다.


아이는 막대사탕이 녹아 없어질 때까지만 숨어있을 작정이었다.


이태진과 도미연이 나타나자 가인이 나무를 찾아 숨어든 건 엄마 아빠에 대한 작은 복수심이었다.


동생이 태어나며 나눠야했던 가족들의 사랑에 가인은 사랑을 혼자 독차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배워가는 중이었다.


온통 자신에게만 쏠렸던 시선이 흐트러지는, 전과 다른 분위기에 뭔지 모를 소외감을 느꼈던 게 그 시작이었다.


그녀를 세상 최고라 하며 함박웃음을 지었던 할아버지도 퇴근 후 항상 가장 먼저 안아주던 아빠도 이제는 동생 이서인에게 같은 웃음과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어른들의 모습을 그녀는 받아들여야 할 현실에 놓여있었다.


그렇다고 동생이 미운 건 아니었다.

사랑을 독차지하려 꾀를 쓰지도 투정을 부리지도 않는 그저 해맑은 3살배기 남자아이였으니까.


다만,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갑작스레 바뀐 가인의 세상이 6살 아이에게는 무척이나 낯설고 차가울 뿐이었다.


그런 아이의 마음을 눈치 챈 이태진과 도미연이 유치원 소풍날에 맞춰 여기까지 온 이유이기도 했다.


다니던 유치원을 나와 이곳 소망유치원 원생이 된지 이제 2개월째인 딸이었기에 더더욱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그들이었다.


그러나 사랑스러운 딸을 힘껏 한번 안아주고는 이내 다른 아이들을 챙기느라 정신없는 모습에 가인은 또다시 소외감을 느끼는 중이었다.


바쁜 시간을 쪼개 놀이공원에 온 이유가 사랑하는 딸을 위한 거라는 걸 어린 가인이 깨달을 리 없었다.


“심심해”


입을 오물거리던 가인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나무 뒤로 숨은 지 채 10분도 안된 사이였다.


아주 살짝 후회 같은 마음이 밀려오기도 했다.


질리도록 타본 놀이기구에 질리도록 만져본 동물들이지만 이렇게 혼자 숨바꼭질을 하는 건 더더욱 재미없었으니까.


더군다나 아무도 자신이 화가 나있다는 사실과 없어진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게 사탕으로 허기를 달래고 있는 아이의 힘을 쭉 빠지게 했다.


그래서인지 가인은 지금 이 상황이 하나도 재미없었다.


‘그냥 나갈까?.’


북적거리는 인파 소리를 뚫고 들려오는 까르르 거리는 친구들의 웃음소리에 6살 인생 최대의 고민을 하는 순간이었다.


“집에서도 서인이만 예뻐하잖아.. 엄마 나빠!”


뭔가를 떠올린 가인이 마음을 고쳐먹고는 다시 토라진 입술로 사탕을 빨았다.


동그란 막대사탕을 다 먹을 때까지는 엄마 아빠 그리고 선생님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기로 한 거였다.


그렇게 5분이 흐른 후였다.


콩알만 하게 남은 막대사탕을 입에 문 가인이 최대한 들키지 않게 땅에서 일어나려는 찰나였다.


바스락!


간신히 한 걸음 옮긴 빨간 구두에 바짝 마른 낙엽이 밟히자 놀란 가인이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멈춰 섰다.


그리고 그 순간,


“어? 꼬마야!”


누군가 가인을 향해 그녀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이름을 불렀다.


어른남자 목소리였다.


살짝 고개를 돌린 가인이 올려다보니 역시나 그녀보다 몇 배나 키가 크고 거인만한 한 남자가 아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살짝 덥수룩한 윤기 없는 머리에 검정색 니트 그리고 얇은 검정색 가죽재킷을 걸친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어른이었다.


순간 본능적 경계심이 발동한 가인이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너,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


어른남자 역시 살짝 놀란 얼굴이었다.


6살 아이를 바라보는 눈빛도 이미 동심과는 거리가 멀어있었다.


“지금..이요”

“정말?”

“......”

“애 겁먹었잖아!”


잔뜩 겁에 질린 가인이 동그란 눈을 크게 뜬 채 눈치를 보자 남자 뒤에서 나타난 젊은 여자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지금 방금 여기에 들어왔구나?! 그치?”


허리를 숙여가며 나긋나긋한 말투로 재차 확인하는 여자에 가인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허리를 편 여자가 남자와 무언의 눈빛을 주고받고는 마치 잘됐다는 듯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언니랑 오빠가 여기 놀이공원이 처음이거든. 근데 병아리 옷보니까 저기 저 유치원 아이 같은데, 맞니?”


이번에는 가인의 눈높이에 맞춰 쪼그려 앉은 여자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상냥하게 물어왔다.


작은 체구에 긴 파마머리를 휘날리며 청바지에 흰색 후드 그리고 카키색 야상을 걸친 여자는 두껍게 쌍까풀 진 큰 눈과 함께 연신 웃음을 띠고 있었다.


“...네”

“아~ 그렇구나. 근데 왜 여기 있어?”

“그냥요”


가인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자신과 눈을 맞추고 있는 여자에게 대답했다.


나쁜 언니 같지는 않았지만 처음 보는 낯선 어른이었기에 차마 눈을 바라보진 못했다.


“으음~ 그래, 알겠어. 그럼 언니가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매우 친절한 여자의 음성에 가인이 두 눈을 멀뚱멀뚱 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서있는 아저씨랑 아줌마 말이야. 혹시 저 아저씨 아이가 너랑 같은 유치원 다니니?”

“..왜요?”

“어? 아, 그게..”


예상치 못한 아이의 반문에 살짝 당황한 여자, 전유정이 고개를 들어 가인 뒤에 서있는 남자, 차진수와 눈을 마주쳤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인 차진수가 전유정 옆에 쭈그리고 앉아 가인을 향해 불쾌한 입냄새와 니코틴에 변색된 누런 이를 드러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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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네 스스로 그걸 증명해 24.02.18 19 0 13쪽
69 악어의 눈물?! 24.02.17 26 0 12쪽
68 진실은 나만 알고 있거든 24.02.15 31 0 11쪽
67 I’m 엔젤 24.02.14 19 0 11쪽
66 그녀 없는 그녀이야기 ② 24.02.13 38 0 10쪽
65 그녀 없는 그녀이야기 ① 24.02.13 59 0 11쪽
64 죽음의 기운 24.02.09 38 0 12쪽
63 두렵다기보다 화가 날 것 같아 24.02.08 21 0 12쪽
62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생이네. 24.02.06 40 0 11쪽
61 거드리지 말았어야 할 상대를 건드린 기분이야 24.02.05 26 0 13쪽
60 제가 알고 싶은 건 약점이 아니라 진실입니다. 24.02.04 56 0 11쪽
59 모든 게, 완벽해 24.02.03 66 0 11쪽
58 3분 48초 24.02.02 34 0 10쪽
57 난 진실이 필요하거든 24.01.31 24 0 12쪽
56 억울하고 화가나 미칠 것 같지? 24.01.30 42 0 11쪽
55 그는 내일이 없어보였다. 24.01.29 41 0 11쪽
54 각자의 길에 들어서다. 24.01.28 34 0 11쪽
53 목격자 24.01.27 36 0 11쪽
52 이미 늦었어 24.01.26 24 0 10쪽
51 그녀는 그 집에 사는 유령이었다. 24.01.25 38 0 13쪽
50 가능한 영원히.. 24.01.23 26 0 10쪽
49 그건 극복하는 게 아니야. 받아들이는 거지 24.01.22 58 0 13쪽
48 정말 신이 있다고 믿나요? 24.01.21 35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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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그는 딸을 잃어버렸고 나는 유일한 친구를 잃어버렸다. 24.01.17 38 0 10쪽
43 온 세상 불행이 마치 나만 공격한 것 같았지 24.01.16 37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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