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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머신 : 두 번째 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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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바보
작품등록일 :
2022.07.31 19:56
최근연재일 :
2022.08.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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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04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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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13화

DUMMY

아르카논을 떠나고서부터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제발 타룬의 감지 범위에서 벗어났기를 빌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고 있다.


호수급 마력을 가진 이의 능력이 얼마나 강력한지 가늠조차 할 수 없기에.


그때 풀숲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

청력이 일반인의 것과 같아 마수의 접근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

서둘러 방어막을 전개하며 풀숲을 노려봤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단검을 틀어쥔 채 말이다.


“음. 사람?”


다행히 들려온 것은 제국어였다.

현재 국가 체제가 무너지고도 대부분의 인류가 교류를 위해 사용한다는 그 제국어.


그러나 반갑진 않다.

다시는 사람을 믿지 못할 것 같기에.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던 것은 금발의 여인이었다.

눈매가 날카로운 것이 한 성격 할 것 같다.


곧 그녀의 옆으로 다섯 명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하나같이 각성자였다.

그들은 몸을 단련한 흔적이 없으며 등을 감싸는 망토를 두르고 있는 것이 마법사인듯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이가 입을 열었다.


“호오, 마법사군! 그것도 보조계열. 우리와 같이 가겠나?”


믿을 수가 없다. 타룬도, 패트릭도, 엠버릭도...모두 처음에는 친절했다.


그보다 마법사들의 도시는 아직 한참을 더 가야 할 텐데 어째서 마법사 무리가 여기에 있는 것일까.

물론 이들이 마법사들의 도시에서 왔다는 증거는 없긴 하다만.


“흠, 꽤나 고생을 한 것 같은데, 일단 우리와 함께 가세나.”


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야, 내 특기인 의식 잃기를 시전했으니.


***


젠장. 또 처음 보는 곳에서 눈을 떴다.

내가 의식을 차린 것은 어떻게 알았는지 누군가 노크를 하고는 문을 열었다.

숲에서 내게 말을 걸었던 노인이다.


“일어났나?”

“여기가 어딘지 알 수 있겠습니까.”


아무런 감정을 담지 않은 어조로 그에게 물었다.


“젊은 친구가 말투가 딱딱하군 그래. 여긴 마법사들의 도시 ‘메자이아’라고 하네.”


메자이아는 분명, 마법사들의 도시다.


기껏해야 하루 정도 의식을 잃은 것 같은데 말이 안 된다.

마법사들의 육체로 그 먼 거리를 하루 만에 이동하다니.


이에 대해서 그냥 직접적으로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온 것입니까?”

“흠, 마법사라면 텔레포트 정도는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거늘.”


마법에 대해서는 엠버릭에게 들은 것이 전부인 내게는 생소한 단어였다.


“자네는 어디서 온 것이고 왜 그런 꼴을 하고 있었는지 궁금하군.”


그의 어조에서 강압적인 느낌은 받지 못했다.

오히려 별 상관은 없는데 그래도 알긴 알아야 해서 물어보는 느낌이랄까.


“저는, 마법사를 노예로 부리는 곳에서 탈출했습니다.”


아르카논에서 탈출한 내가 이곳에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타룬이 추격해 올지도 모른다.

그래서 적당히 둘러댔다. 붉은 해골단 헴버튼에게 들은 세상이야기로 말이다.


“거짓말이군.”

“...?”


설마 거짓말을 구별해 내는 마법도 있는 것인가.

하지만 그의 눈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괜찮네. 이 노인네는 자네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네.”

“...”

“억울함, 분노, 슬픔...뭐가 자네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내게 말해주련?”


어차피 그 앞에서는 아무것도 숨길 수가 없는 것을 깨닫고는 말했다.


“...배신당했습니다.”


그리고 노인은 더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내 아픈 사람을 너무 귀찮게 했군. 쉬게나.”

“여기서 지내도 되는 겁니까?”

“물론, 당연히 된다네. 자네가 기사만 아니라면 얼마든지.”

“...?”


그는 싱긋 웃어 보이며 마력을 일으켰다.

곧 그의 발아래로 아공간 마법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복잡한 술식이 나타났고, 노인은 삽시간에 사라졌다.


그가 말했던 텔레포트 마법인 듯했다.


그보다 ‘기사만 아니라면’ 이라니.

뭔진 몰라도 이 도시는 ‘기사’를 배척하는 것 같다.


침대 옆 탁자 위에 놓인 과일과 다과를 집어 먹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평생을 나고 자란 곳에서 배신당했는데, 이들을 덜컥 믿고 정착해버린다면 난 구제불능의 바보다.

하지만 당장 갈 곳도 없다. 다시 성벽 밖으로 나간다면 또 위험천만한 모험이 기다리고 있겠지.


결국 나는 세상에 대한 정보도 수집할 겸, 힘도 키울 겸 이곳에서 잠시 정착하기로 했다.

하지만 어떠한 경우라도 그들에게 정을 주거나, 믿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다짐하기도 잠시, 창문을 열고 도시를 살폈다.

내가 있던 곳은 도시의 중심에 있는 거대한 성이었는데, 척 봐도 마법사들이 살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검은 색감, 중간중간 나 있는 창문, 하늘 높이 솟아오른 첨탑까지.

흥미로운 것은 첨탑의 꼭대기로부터 뻗어 나온 거대한 방어막이 도시의 상공을 덮고 있다는 것.


시력을 강화하여 자세히 보려 했으나...

시력이 강화되지 않는다.


“...?”


현재 ‘마법사 모드’를 사용하고 있던 것을 까먹었다.


여기서 무의식적으로 육체를 활성화했다가는 정말 큰일 날지도 모른다.

적어도 기사를 왜 싫어하는지는 알아봐야 할 것 같다.


도시를 직접 구경하기 위해 방을 나섰다.

나가는 길을 몰라 한참을 헤맸는데, 그러면서 마주친 마법사만 10명이다.

친절히 길을 알려주는 이도 있었고, 그냥 훽하니 무시해버리고 가는 이들도 있었다.


그보다 성에서 잠깐 마주친 것만 10명이라니.

아마도 더 많겠지.


이들 중 상당수가 원소계열의 마법을 구사한다면 그야말로 대학살 병기가 아닌가.


타룬이 쫓아와도 마법사 행세만 하고 있다면 안전하리라.

그런 생각을 한 나는 1층 데스크에서 출입증과 함께 노인의 언질도 전달받았다.


“장로님께서 원하시는 만큼 지내다 가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여기, 출입증입니다.”


딱히 붙잡지도, 내쫓지도 않는다는 말인가.

아무런 책임도, 의무도 없이 얻은 자유라.

왠지 모르게 자꾸 마음이 풀린다.

허나 이들을 믿을 순 없다.


산뜻한 공기를 마시며 거리를 돌아다녔다.

광장의 분수대에서는 마법 술식이 새겨진 아티펙트에서 깨끗한 물이 뿜어져 나왔으며, 냉기를 유지하는 아티펙트에서 음료와 아이스크림을 꺼낸다.


아르카논에서는 구경도 못 해본 아티펙트가 여기에는 널려 있다.


물론 공격형, 방어형 아티펙트나 아공간 주머니 같은 것들은 없으나, 일상생활을 보조하는 아티펙트가 이렇게 흔할 줄이야.


게다가 더욱 충격적인 것은, 드워프였다.

아르카논에서도 전설과 소문으로만 듣던 드워프다.

하지만 소문과는 달리 그들의 키는 허리까지 오지도 않았으며, 덥수룩하고 이상한 콧수염도 없었다.


오히려 키는 나와 비슷했고, 뼈대만 조금 굵어 보일 뿐이다.


아티펙트가 많은 것이 드워프와 관련 있는 것일까.


한참을 돌아다니며, 타룬의 금고에서 가져왔던 돈으로 군것질을 실컷 했다.

평화로웠던 곳에서, 존경받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그러는 동안 신기한 것을 발견했는데, 바로 마법 아카데미라는 것이다.

물론 내가 들어갈 생각은 추호도 없고 갑자기 아카데미물로 꼴아박아버릴 생각도 없다.


그저 마법사 양성에 힘을 쓴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야 마법 지식은 기득권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박혀 있었기에.

비각성자들도 마법을 배워볼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새롭다.


아카데미 옆에서 기웃거리는데, 놀랍게도 아카데미의 교사는 아까 만난 노인네였다.

설마 여기서 애들을 가르치고 있을 줄이야.


청력을 강화하여 수업을 엿듣고는 싶었으나 불가능했다.

마법사 모드는 모든 신체 능력을 포기해야 하기에.


아카데미 옆에는 도서관이 있었다.

혹시나 마법 관련 서적이 있을까 하여 한 번 둘러보기로 하였으나-


“신원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근육질 거한 두 명이 나를 가로막았다.

야만족이었다.


현재 이들이 인간이라는 설과, 수인족이나 엘프처럼 이종족이라는 설이 있는데, 통설은 후자다.

그보다 정말로 기사만 아니면 되나 보다.

아님 이들에게 특별한 사정이 있던 것일까.


마법을 사용하면 들여 보내줄까 생각도 해봤으나 그 전에 성에서 받은 출입증을 보여주니 야만족의 거한들은 바로 태도를 바꾸었다.


“실례했습니다, 마법사님. 즐거운 독서 되십시오.”


모든 야만족들이 저렇게 격식을 배우진 않았을 터.

이곳 메자이아가 특이한 것이리라.

그런 생각을 하며 도서관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과연 마법 관련 서적이 있었으나, 생각해보니 내가 제국어를 말할 줄만 알지 읽고 쓰는 것은 할 줄 몰랐다.


물론 나노머신을 가진 나이기에 1시간 만에 제국어를 머릿속에 집어넣은 것으로 해결 가능했다.

지금은 뇌가 100%활성화된 상태이기도 하고.


글을 깨우친 뒤에 다시 도서관을 둘러봤으나, 내 기대와는 달리 아주 기초적인 마법 서적만 있을 뿐이다.


내 목적은 당연히 보조계열 이외의 마법에 대한 탐구였으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결국 나도 스승이 필요하다.

그럼 가르침을 청하는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도서관을 둘러봤는데, 의외로 약초학과 포션 제조 서적은 모두에게 개방되어 있었다.

할 일이 없던 나는 그것들을 통째로 외울...순 없었고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랩탑에 옮겨놨다.


속으로 읽는 것만으로도 랩탑에 타이핑 할 수 있으니 1000페이지에 달하는 책 10권을 옮겨 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나는 마법사들의 성으로 돌아갔다.

출입증에는 내가 배정받은 방 호실과 열쇠가 걸려있었기에 내 방이 생긴 것이나 마찬가지다.


식당이 있다고 들어서 그리로 향하는데, 숲에서 보았던 금발의 여인을 마주쳤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


그녀도 밥을 먹으러 가는 것 같았으나 말을 걸진 않았다.

그야,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내가 그녀에게 관심을 가질 이유도 없고, 그녀가 나한테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그녀는 그저 메자이아에 있는 마법사 중 한 명이고, 나는 메자이아를 들린 한 명의 손님일 뿐.


구석에서 밥을 먹는데 아까의 노인이 내게 다가왔다.


“도시는 어떻게, 잘 둘러보았는가?”

“예. 마법 좀 가르쳐 주십시오.”


이번에도 중간의 대화는 많이 생략했다.

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까는 경계의 눈초리를 보이더니만.”

“네, 전 여기 있는 아무도 믿지 못합니다.”


어차피 그 앞에서는 거짓말이나 통하지 않는다.

뜬구름 잡으면서 대화를 길게 늘리는 건 내 성정에 안 맞기도 하고.


“그런데 이 노인네가 자네에게 마법을 가르쳐줘야 하는 이유는?”

“그건 가르쳐 주시면서 생각해보시죠. 뭐, 제가 어딘가에는 쓸모가 있겠죠.”


노인은 다시 너털 웃음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자네, 배신당했다고 하지 않았는가? 내 무엇을 믿고 가르쳐 달라는 거지? 내가 자네를 실험쥐로 쓸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어차피 그런 마음을 품으셨다면 제게 선택지는 없을 것 같습니다만.”


내가 그에게 마법을 배우든 배우지 않든, 그가 날 어떻게 하려고 마음 먹었다면 내게 저항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

그의 경지는 호수 이상일 테니.


“헌데 한 가지 문제가 있네.”

“예.”

“내게서 아니, 메자이아에서 마법을 배우려면 최소한 5년은 이곳에 묶여 있어야 해.”

“굳이 그런 규칙을 둔 이유가?”

“그야, 메자이아의 가르침을 가지고 약탈자의 소굴로 들어갈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메자이아가 기사를 배척하는 것은 약탈자들과 관련 있을지도.


“그럼 5년 동안 어떤 조치가 취해지는 것이죠?”

“세뇌를 한다는 게 아니야. 그저 나쁜 길로 빠지지 않게 교육한다는 것이지.”


5년이라.

너무 길다.


“헌데 그게 왜 문제입니까?”

“자네는 곧 떠날 것 같으니까.”


정답이다.

난 내가 여기서 원하는 것을 얻으면 바로 떠날 것이다.

도망치듯 말이다.

그는 그런 나를 꿰뚫어 본 것이다.


“그렇군요. 혹시 성함이라도 알 수 있겠습니까?”

“슈리엘 일세. 난 본체에게 가봐야 하니 먼저 일어나겠네. 그럼.”


음? 본체? 무슨 본체?

물어볼 틈도 없이 자리를 뜨는 슈리엘이다.


***


날이 밝고 나는 다시 도시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돌아다니며 분수대에서 물을 뿜어내는 아티펙트의 술식, 화덕에서 열기를 유지하는 술식, 시원한 바람이 몰아치게 하는 아티펙트의 술식, 가로등의 불빛을 유지하는 술식 등을 모두 옮겨적었다.


안 가르쳐주면 독학해주마.


그리고는 방 안에서 하루 종일 마법진과 술식이 빼곡히 적힌 종이들을 들여다봤다.

밥도 안 먹고 방 안에 틀어박힌 채 말이다.


그렇게 3일째 되던 날, 드디어 책상에서 일어났다.


“도무지 이해가 안 돼.”


이미 보조계열 마법의 사고 체계를 가져버린 나는 원소계열 술식의 원리가 이해되지 않았다.


물론 억지로 모든 술식을 외워보기도 했다.

하지만 술식을 전개할 수조차 없었다.

원리를 모르기에.


‘보조계열 마법과 원소계열 마법을 구성하는 법칙과 규칙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래서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난 이미 보조계열 마법의 사고 체계가 진리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니, 그와 다른 것들은 모두 강제로 배척하게 된다.


하지만 난 욕심쟁이다. 그것도 나노머신을 가진.


‘두 사고 체계가 서로 간섭하지 않고 내 머릿속에 들어오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한참을 고민하던 그때, 랩탑이 눈에 들어왔고 시도해볼 만한 것이 생각났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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