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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바보님의 서재입니다.

나노머신 : 두 번째 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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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바보
작품등록일 :
2022.07.31 19:56
최근연재일 :
2022.08.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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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432

작성
22.08.0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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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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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5화

DUMMY

몇몇이 경계를 서고 주변을 탐색하는 동안, 그리즐리베어는 가죽은 가죽대로, 살코기는 살코기 대로, 그 외에 쓸만한 것은 그것들대로 분류되었다.


이는 당연히 막내인 내가 했다.


여기서는 도축과 해체가 특기이자 준각성자인 바르뮤가 내 지도를 담당했다.

가죽을 벗기는 법, 피를 빼는 법, 뼈를 피해 살을 가르는 법 등.


설명만 들어도 그가 얼마나 실력있는 사냥꾼인지 알 것 같다.

생긴 것도 뼈대가 굵어 처음에는 야만족인 줄 알았다.


“뭐야, 해본 적 있는 거야?”


바르뮤는 가슴까지 내려오는 턱수염을 손끝으로 문질거리며 말했다.

정확히 어디를 찌르고 갈라야 하는지 등을 알려주긴 했으나 정말 완벽하게 해낼 줄은 몰랐을 터.


나도 이게 가능할 줄은 몰랐다.

오감 중 촉감을 강화하고 손끝에서 느껴지는 감각을 따라 갈랐더니 그가 말한 대로 됐다.


“그보다 이걸 어떻게 가져갑니까?”


피 냄새는 둘째치고 살코기만 내 몸무게의 세 배를 훌쩍 넘길 것 같다.

바르뮤는 피식 웃으며 턱짓으로 어딘가를 카리켰다.


그의 턱짓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엠버릭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해체는 끝났나?”

“옙. 부탁드립니다.”


곧 그가 손을 펼치자 허공에 복잡한 술식이 떠올랐고, 한쪽에 분류해 놨던 그리즐리 베어의 사체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소문으로만 듣던 아공간 마법이리라.

영지를 나서면서 짐을 옮길만한 것을 가져오지 않는가 싶더니만.


“너도 엠버릭님은 알지? 보다시피 보조계열의 마법사이시고.”

“멋지네요.”

“원소계열인 제르닌 님보다?”


농사조에 있으면서 이따금 씩 제르닌의 원소계열 마법을 보긴 했으나 둘의 분야가 완전히 달라서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원소계열의 마법사는 다른 전투원으로 대체가 가능하지만 보조계열의 마법사는 대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사냥조는 다시 사냥감 수색을 재개했다.

그러는 사이 주황색 피를 가진 마수를 몇 번이고 마주쳤다.


허나 그때마다 일반 전투원과 준 각성자들이 나서서 순식간에 정리해버렸고 내게는 해체작업 짬 처리만이 돌아왔다.


7색의 등급 중에서 두 번째로 약한 등급 정도야 기사가 나설 필요도 없다는 것이 새롭긴 하다.

문제는 새롭기만 할 뿐, 직접 맞설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


아무리 나노머신을 가졌다고 해도, 마력을 각성하지 못하면 평생 이 수준에서 정체되어 있을 것이다.


준각성자에게 단 한 대조차 스치지도 못하는 그런, 일반인보다 좀 더 건강한 일반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게 되어버린다.


그래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좋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며 불안에 떠는 인생보다는 적어도 뚜렷한 목표가 정해진 인생이 훨씬 낫지 않은가.

난 운이 좋다. 정말로 운이-




“...?”


쿵 쿵 쿵


이게 무슨 소리일까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육중한 무언가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꽤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라 그런지 나와 패트릭 말고는 이를 알아챈 사람은 없었다.

문제는 패트릭의 안색이 좋지 않다는 것.


[전원 산개 진형! 목표물은 북동쪽에서 접근 중! 녹색 등급의 오우거다!]


이 상황에서 설렌다면 내가 이상한 것일까.

물론 이상한 거겠지?

심장이 미친 듯이 마구 뛰어대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두려움이나 공포 때문은 아닌 것 같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냥조 인원들이 무기를 빼 들고는 저마다의 자세를 잡았다.


난 무기가 없는 것은 둘째치고, 이들의 합격술에 애매하게 끼어들었다가는 방해만 될 것 같아 말없이 뒤로 빠졌다.


하지만 직감이 말해준다.

내게도 기회가 올 것이라고.

그 기회를 붙잡으려면 준비가 되어있어야겠지.


‘근력, 체력, 민첩, 동체 시력, 균형감각, 유연성, 신체 강도, 순발력 최대치로 조정’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거칠게 뛰는 심장과 오우거의 것으로 추정되는 존재의 육중한 발소리가 겹친다.

곧 라르와 일반 전투원들도 녀석의 발걸음을 들을 수 있을 만큼 거리가 좁혀졌다.


그리고 잠깐의 정적이 있은 후, 시야를 가리던 거대한 나무 두 개가 옆으로 꺾이며 오우거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문제는, 머리가 하나가 아니라는 것.


[정정한다. 목표물은 청색 등급의 트윈헤드 오우거. 비각성자들은...영지로 복귀하도록.]


머릿속에 울리는 패트릭의 전음에, 자리에 있던 사냥조 인원들의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그리고는 하나둘씩 무기를 집어넣고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꼭 살아서 돌아와 주십시오.”

“아르카논에는 패트릭 경이 필요합니다.”


저들도 아는 것이다.

여기 있어봤자 짐만 될 것이란 사실을.


비각성자들은 맨 뒤에 있던 나를 지나쳐가며 도시로 향했다.

그러면서 ‘얘는 왜 안 가지?’라는 표정으로 나를 봤으나 발걸음을 멈추는 일은 없었다.


“가실 거면 검 좀 빌립시다.”


아직 이름도 모르고, 앞으로도 알 일 없을 것 같은 사내에게 말했다.


“아서라. 자칫하다간 방해만 하다 죽는다.”

“도망치는 것보단 낫습니다.”

“아니, 방해하는 것보단 도망가는 게 더 낫지.”

“적어도 짐은 안 됩니다.”


그는 잠깐 고민하다가 검집에서 검을 뽑아 내게 건넸다.


“기왕이면 살아서 돌려달라고.”


인간 중 절반 이상이 도망치자 트윈헤드 오우거는 화가 났는지 괴성을 지르며 돌진해왔다.

이 앞을 막아서는 패트릭의 몸 위에는 얇고 푸른색의 장막이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엠버릭의 버프 마법이리라.


쿠궁!


3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체구.

전신을 뒤덮은 단단한 근육.

살벌한 기세로 내리꽂히는 거대한 몽둥이.


패트릭은 공격을 받아내기만 급급할 뿐, 의미있는 반격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각각 다른 방향에서 준각성자인 라르와 바뮤르가 각자 검을 겨눈 채로 빈틈을 노리고 있으나, 그들도 알고 있다.

잘못 끼어드는 순간 즉사다.


‘...나도 그냥 갈까?’


아니다.

후방 지원 마법사 한 명, 전위가 한 명, 미끼가 두 명.

딱 봐도 라르랑 바르뮤는 도움 안 될 것 같아서 미끼로 치거나 없는 셈 치기로 한다.


‘할만 한 것 같-’


빠각! 쿵 쿠궁!


마침 라르랑 바르뮤가 뒤에서 슬금슬금 접근하다가 얻어맞고 나가떨어졌다.

이제 정말로 없는 셈이다.


뒤에서 보고 있던 내 감상으로는 기사 한 명만 더 있으면 그래도 해볼 만한 상황은 만들어질 것 같다.

상대를 죽이진 못해도 전원 살아서 돌아갈 수는 있을 것 같다는 뜻이다.


판단을 마친 나는 라르와 바르뮤가 그저 기절한 것임을 확인한 뒤, 건네받은 검을 빙빙 돌리며 녀석과의 거리를 좁혔다.


‘이래봬도 뒤에서 멀뚱멀뚱 보고만 있진-’


투확!


내가 녀석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서자 트윈헤드 오우거는 패트릭을 무시하고 곧바로 내게 돌진해왔다.

머리 하나는 패트릭을 상대하고 있었으나 다른 머리 하나는 나를 경계하고 있던 것이리라.


“제이릭! 당장 도망쳐!”


이제는 전음도 사용하지 않고 목청껏 외치는 패트릭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자세를 낮추고 녀석의 공격에 반응했다.


쇄애액-후웅!


녀석의 주먹이 아슬아슬하게 한끝 차이로 빗겨나간다.

내 모든 관절이 한계까지 휘고 접히며 녀석의 공격을 흘려낸다.

그러니까, 뒤에서 멀뚱멀뚱 보고만 있던 건 아니다.


시력을 최대로 올려 두 가지를 분석했는데, 하나는 트윈헤드 오우거의 습관이고, 다른 하나는...


촤아악!


패트릭의 자세다.

투박한 검이 녀석의 가슴팍을 그으면서 지나간다.

비록 얕고 얇은 생채기만 겨우 남았으나, 핵심은 머리 하나의 주의를 끌 정도는 된다는 것.


그 사이 패트릭이 오우거의 뒤를 잡고 몸을 날렸다.

허나 두 머리 중, 처음부터 패트릭만을 주시하고 있던 오우거의 머리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목덜미를 향해 날아드는 패트릭의 검을 몽둥이로 막고는, 반대손으로 정확히 나를 노리며 휘둘러온다.


부우웅!


이번에도 아슬아슬하게 고개를 숙여 피해냈는데, 그 간격이 조금씩 좁혀지고 있다.

동체 시력으로 보고 피하기보다는, 분석한 녀석의 습관을 토대로 미리 회피 동작을 취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목숨을 건 도박인 셈.


트윈헤드 오우거는 그 이름처럼 머리가 두 개라 그런지 사각이 없으며 몸뚱이가 큰 주제에 공격을 뻗고 회수하는 동작이 날래다.

결정적으로, 내 공격은 몸으로 때우면서 패트릭의 공격은 착실하게 막아내는 노련함까지.


그때 패트릭이 외쳤다.


“엠버릭! 제이릭에게도 버프를!”


그 즉시 내 몸 위로 푸른색 장막이 떠올랐으며 검을 쥔 손아귀에 힘이 강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촤아악!


내 검이 남기는 생채기의 깊이가 더 깊어지자, 날 주시하고 있던 머리의 눈매가 꿈틀거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곧 녀석의 움직임도 한층 더 빨라졌고 버프를 두르고 있음에도 다시금 내 회피 동작과 오우거의 공격 간의 간격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다시금 심장이 간질간질한 느낌이 올라왔고 흥분에 시야가 좁아져 간다.


사선으로 내려 찍히는 방망이에 타이밍을 맞춰 파고든다.

곧바로 훤히 빈 녀석의 옆구리에 검격 한 번.

다시 횡으로 휘둘러오는 방망이에 고개를 최소한으로만 젖히며 흘린다.

활짝 열린 몸통에 검격 두 번, 뒤늦게 가드를 올리는 녀석의 팔에 검격 한 번.


무서운 점은 저 공격을 받아내면서도 패트릭의 움직임은 완전히 봉쇄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공격할 틈이 생기는 것도 패트릭 덕이긴 하지만, 희망은 분명히 보였다.


다시 녀석의 신경이 패트릭에게로 향했을 때 나는 검을 고쳐잡고 녹색의 몸뚱아리로 쇄도했다.


‘할 수 있다...!’


녀석이 패트릭과 공방을 주고받던 그때, 별안간 육중한 몸이 회전하더니 정강이가 내 머리 높이까지 올라왔다.


발차기까지 할 줄은 몰랐으나 눈에 보이는 공격이었기에 충분히 돌파할 만했다.


그런 판단을 내리며 정강이의 궤도에 들어간 그때, 갑자기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작아지고,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다음으로는 손아귀의 힘이 풀리며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모아 뒀던 에너지가 다 바닥난 것이리라.


이를 깨달았을 때는 이미 시커먼 정강이가 내 시야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늦지 않게 엠버릭의 방어막이 나를 감쌌으나-


챙그랑-쩌어억!


청색 등급 마수의 일격을 버텨내기에는 무리였다.

모든 능력치가 원래대로 돌아가 충격을 전혀 줄이지 못한 채 직격당했고, 그대로 수 미터를 날아가다 풀숲에 처박혔다.


머리가 어지럽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전신이 욱신거린다.

얼굴의 칠공에서 피가 마구 쏟아져 나온다.

즉사는 면했으나, 곧 의식이 끊어질 것 같다.


의식이 끊어지면 아마도,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까.

본능적으로 이를 알고는 있으나 시야가 점점 어두워지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제...릭!”


먹먹해지는 귓가로 패트릭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허나 이제 그마저도 희미해지며 눈꺼풀이 감겼다.

그리고 감각과 의식이 끊겼다.


***


패트릭은 지금 상황이 몹시 피곤하다.


숲도 깊이 들어가지 않고 위험한 녀석들의 흔적은 요리조리 피해 다녔는데 결국 오우거를 만나버린 것이다.


머리 하나짜리라면 그래도 희망은 있었다.

허나 오우거는 머리의 개수가 늘어날수록 힘과 지능이 올라가며, 피도 한 등급씩 짙어진다.


칠색 등급체계 중에서 청색은 무려 세 번째로 강한 축에 속하는 녀석이고, 최소한 세 명 이상의 연못급 각성자는 있어야 상대할 만하다.


말 나온 김에 각성자의 경지에 대해 설명해 보자면, 우물-연못-호수-바다의 경지가 존재한다.


이는 각성자가 가진 마력의 ‘그릇’을 나타낸 것으로, 더 많은 마력을 가지고 있을수록 기사는 더 강한 힘을 낼 수 있고 마법사는 더 강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연못과 호수의 중간에 걸쳐 있는 수준인 그는 당연히 트윈헤드 오우거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아직 호수에 도달하지 못했으니 그냥 연못 급인 셈.


하지만 신입이 어딘가 비상한 재주를 가지고 있어 자세를 따라 하질 않나, 자신은 막기도 급급한 오우거의 공격을 모두 피해내지 않나, 신기한 녀석이다.

그래도 그 덕에 희망이 보이는 것도 같았다.


오우거의 머리 중 하나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약간 어리숙해 보였기 때문에 더더욱.

즉 녀석도 완전한 청색 등급이 아니란 소리다.


그런데 방금 그 신입이 나대다가 맞고 나가떨어졌다.

제대로 맞은 것 같은데 구사일생으로 마력을 각성하지 않는 이상 곧 숨이 끊기리라.


그래서 존나게 기도했다.


제발, 저 어린 양에게 기적이 일어나기를.


그 기도가 하늘에 닿은 것일까.

신입의 주변으로 잔잔한 바람이 흐르기 시작했다.

곧 그 바람은 푸른색을 띠었고, 작은 소용돌이의 모양을 이루었다.


그 소용돌이의 가운데에는 신입, 아니 제이릭이 누워있었다.


마력이 그의 몸에 스며들며 아작났던 뼈가 붙고 뜯겨나간 살이 다시 차올랐다.

그가 ‘마력의 우물’을 파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다시 일어서는 제이릭을 확인한 패트릭은 마음을 다잡았다.

제발 살아서 돌아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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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2화 +3 22.08.04 1,850 44 14쪽
11 11화 +1 22.08.03 1,906 41 13쪽
10 10화 +1 22.08.03 2,006 4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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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7화 +1 22.08.02 2,414 4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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