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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머신 : 두 번째 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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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바보
작품등록일 :
2022.07.31 19:56
최근연재일 :
2022.08.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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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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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44화 - 엘론드(3)

DUMMY

“아 비켜 보라고. 우리 여친이 죽어가잖아.”


헤이나에게 거머리처럼 붙어 있는 하겐을 내동댕이친 나는 팔을 걷어 올렸다.


“놈! 무슨 짓이냐! 헤이나에게 손을 댄다면 결코 가만두지 않을 것이야!”


하찮게 바닥을 구른 하겐이 벌떡 일어나 외쳤다.

그의 말에 주변의 경비 인원들이 달려와 나를 포위하고 섰다.


아무래도 이 모지리는 엘프 사회에서 지위가 꽤나 높은 듯했다.


“나한테 우리 헤이나를 살릴 방법이 있는데.”

“왜 아까부터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냐! 그보다 네까짓 게 무슨 수로...!”

“후우, 여기서 내가 활약했던 거 본 엘프 거수.”


내 말에 병실로 같이 실려 왔던 이들 상당수와, 흰색 가운을 입은 엘프들까지도 손을 들었다.

의사들은 현장에서 환자를 옮기고 치료하면서 날 본 것이리라.


“그럼 이렇게까지 하는 나한테 뭔가 뾰족한 수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엘프 다시 거수.”


이번에는 주변에 있던 대부분의 엘프들이 손을 들었다.

좋다. 따분한 설명 때려 넣기가 필요 없어졌다.


약간의 이성을 되찾은 하겐은 부들거리며 경고했다.


“만약 헤이나의 상태가 악화된다면 네놈을 오체 분시하여...”

“이 새끼 아까부터 시끄럽다 거수.”

(번쩍-)

“...”


드디어 적절한 환경이 갖춰진 나는, 사실 고민 중이다.

그녀의 몸 안에 있는 흑마력을 흡수한다면 그녀는 살아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왜?

얘는 헤일리가 아니다.

이는 분명한 사실이며, 내가 그녀를 위해 희생해야 할 어떠한 이유도 없다.


내 여친 헤일리는 메자이아에서 공부하고 있을 테니.


그래, 아무 이유도, 근거도, 그래야 할 의무도 없는데.

도저히 내버려 둘 수가 없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한 이가 죽어가고 있는데 어떻게 손 놓고 있는단 말인가.


침대에 가까이 다가간 나는 허리를 숙여 그녀와 입술을 포갰다.


“너...!”


당연히 하겐이 반발했으나 곧바로 헤이나의 몸을 잠식했던 흑마력이 점점 사라지자 일단은 지켜보는 그였다.


그녀의 전신으로 퍼져 나가던 흑마력이 내게로 흡수되어갔다.


“야 근데, 다리 맞았는데 왜 입으로 빼내냐고.”

“...”

“야 대답해.”


사실이라 반박할 수가 없다.


그 뒤로 얼마나 지났을까, 헤이나를 잠식하던 흑마력이 전부 내게로 흡수되었다.

불규칙적인 호흡과 심장박동이 다시 안정을 되찾자 주변의 엘프들도 한시름 놓았다.


“야 이제 진짜 그만해.”


하겐이 ‘난 손도 못 잡아 봤단 말이야...!’라며 혼자 궁시렁거리던 그때 헤이나가 눈을 떴다.


더 가까운 곳에서 우리는 잠시동안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제는 확신했다.


그녀는 헤일리가 아니다.


날카로운 눈매도, 커다란 눈망울도, 입술의 촉감도 모두 헤일리였지만, 그녀는 헤일리가 아니다.


혹시나 하는 감정과 남아 있던 미련을 모두 털어버린 채 고개를 들었다.

그래, 그저 닮은 사람이다. 너무 닮아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고 이제 그녀는 안정을 되찾았다.


그 길로 중환자실을 빠져나온 내 곁으로 세 명의 엘프가 다가왔다.


“저, 아까 정말 대단하셨습니다!”

“아까 그 무기를 다시 한번 보여주실 수 있으신가요?”

“잠식을 치료하시다니! 대단합니다!”


눈을 반짝이는 젊은 엘프들이다.

슬프게도 셋 다 남자다.


키가 크고 긴 머리를 올려 묶은 것이 아록.

짧게 친 머리에 눈썹이 짙은 것이 테레드.

늘씬한 다른 엘프들과는 달리 근육이 발달한 카르시다.


그리고 다들 피부는 새하얗고 잘생겼다.

쏴버릴까.


그보다 아주 젊어 보이는데도 전장에 나갔던 이들이다.

개중에는 내 바로 옆에서 싸우기도 했고.


“몇 살이지 다들?”

“아, 저희는 이제 막 쉰을 넘겼습니다!”

“50살...이요?”

“아, 엘프들의 평균 수명은 300살입니다. 하이엘프들은 그보다 더하여 1000년을 넘게 사십니다.”


짙은 눈썹의 테레드가 엘프들은 50살부터 성년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아, 말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그건 그렇고, 내가 잠시 여기서 지내도 되는 건가?”

“당연하죠! 지금 ‘엘론드’ 내에서는 다들 형님 이야기만 합니다!”


엘론드는 이 지하 궁전을 말하는 것 같다.


이어서 삼인방은 나를 빈방으로 안내해 주겠다며 발걸음을 옮겼다.


지하 궁전 엘론드는 설산 밑의 거대한 빙하를 깎아 만든 듯했는데 한기가 돌진 않았다.


“엘프들은 왜 이런 극지방에, 그것도 지하로 들어가서 사는 거야?”


무슨 비화가 숨겨져 있는 걸까.

이에 근육질 카시르가 답했다.


“아주 옛날에 타종족들, 그 중에서도 인간들이 어린 엘프를 잡아다 노예로 만든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형님 같은 좋은 인간도 있긴 하지만, 지금도 안심할 수 없다더군요.”

“이런.”


좋지 않다.

언젠가 헥스테카에 위기가 닥쳤을 때 원거리 전에 능숙한 엘프들의 도움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혹은 이렇게 동떨어진 곳에서 살아가다간 강력한 마수 무리에게 각개격파 당할 수도 있고.


“그건 그렇고 너네 안 추워? 뭐 아이스 엘프 그런건가?”

“아뇨 저희도 밀림이나 다른 지역에서 사는 엘프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저 마력으로 체온을 유지하는 거죠.”


긴 말총머리를 찰랑거리는 아록은 자신들은 기동력이 중요하기에 두꺼운 옷을 입지 않는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의 말대로 간간이 보이는 어린 엘프들만 마수의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있을 뿐, 마력을 각성한 엘프들은 모두 얇은 천 옷을 입고 있었다.


“그런데 엘론드 안은 그렇게 안 춥네?”


체온을 유지하던 마력을 거두어들여도 될 정도다.


“불의 정령들이 돌아다니면서 온기를 뿜어내고 있거든요.”

“아, 얼음이 녹을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빙옥(氷玉)이 여기저기 박혀있어 오히려 자라나는 얼음을 깎아내야 할 판이니까요.”

“그리고 엘론드를 다스리는 펠리나스 에르벨님께서는 얼음과 바람, 나무를 다루는 바다급 마법사이십니다. 그 외에도 열 가지가 넘는 속성의 정령과도 계약하셨기도 하구요.”


아, 진짜로 조용히 있어야겠다.


참고로 설산 지대의 엘프는 에르벨 가문의 하이엘프들이 총체적으로 다스린다고 한다.


그렇게 계속 밑으로 내려가던 그때, 어디선가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검과 짙은 남색의 갑옷으로 중무장을 한 것을 보건대 결코 좋은 의도로 온 것은 아니리라.


“이봐 인간. 같이 좀 가줘야겠다.”

“바리온씨! 무슨 일이죠?”


곧바로 아록이 나를 변호하려고 나섰으나, 바리온이라 불린 호수급의 병사의 입에서는 충격적인 말이 튀어나왔다.


“저자는 현상 수배서에 장검 세 개의 등급으로 등록되어있는 인간이다. 곁에서 떨어지도록.”

“장, 장검 세 개 말입니까?”


그의 말에 엘프 삼인방은 경계의 눈초리를 보이며 내게서 거리를 벌렸다.


“하하 이건 또 무슨 오해일까.”

“우리를 도와준 것은 고맙네만, 저항한다면 우리도 무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네.”


말투가 강압적이긴 하나 그도 내 활약상을 들었는지 최소한의 존중은 해준다.


결국 나는 다시 마력 구속 수갑을 찬 채 어딘가로 연행되어 갔다.


‘트랜스퍼가 엘론드와도 교류를 하고 있던 것인가? 그보다 내가 왜 현상수배서에 올라가 있는 거지?’


일단 여기서 변명해봤자 고구마만 실컷 먹을 것이기에 잠자코 따라갔다.


병사들에게 둘러싸여 엄중한 감시를 받으며 끌려가는데, 이상하게도 길이 외워지지 않았다.


‘이 길목을 돌면 아까 지나왔던 곳이 나오는 데...?’


나노머신의 계산은 계속해서 틀렸다.

보통은 길과 궁전의 구조가 머릿속에 들어왔어야 하는 것이 정상.


아마 지하 궁전 전체에 마법이 걸려 있거나, 경지가 높은 안개의 정령이 수를 써놓은 것이리라.


미로 같은 얼음 복도를 돌아다니길 한참, 드디어 거대한 철문에 도달했다.

짙은 남색을 띠는 이 문은 극지방에서만 발견된다는 블랙 미스릴로 지어진 것이었다.


고풍스럽기보다는 전체적으로 매끄럽고 부드럽다는 느낌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쿵쿵!


앞서 걷던 바리온이 일행을 멈추고는 손에 마력을 두르고는 문을 두들겼다.

안에서 대답이 들려오기를 예상했으나 곧바로 문이 열렸는데, 신기하게도 좌우에 문을 밀고 있던 엘프는 없었다.


통짜 블랙 미스릴로 만들어진 문을 마력만으로 연 것이다.

무겁기로는 아다만티움에게도 밀리지 않는 금속이라는 것을 생각했을 때 이 안에서는 정말로 말을 가려서 해야 할 것 같다.


바리온은 내게 들어가라는 손짓만 남긴 뒤 비켜섰다.


올라오는 긴장을 억누른 채 안으로 발걸음을 옮긴 곳에는 과연 다른 엘프들보다 귀가 더 길고 눈 밑으로 검은 문양이 길게 이어진, 하이엘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의자는 넓은 호선을 그리며 놓여 있었는데 7명의 하이엘프 중 가운데 있는 이가 펠리나스 에르벨이라는 것을 짐작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바닥에는 보고를 올리는 인원이나, 나처럼 끌려온 이가 서야 할 자리라는 듯 둥글게 색칠된 곳이 있기에 눈치껏 그리고 걸음을 옮겼다.


그제야 높은 천장과 벽에 새겨진 조각 등이 눈에 들어온다.


무형의 압박감에 고개가 절로 수그러지던 그때, 가장 왼쪽에 있던 하이엘프가 입을 열었다.


“그대 이름이 무엇이지? 예명이 아닌 본명을 말해줬으면 좋겠군.”

“케인이라고 합니다만, 현상수배서는 저도 영문을 모릅니다.”


사실 예상가는 것이 있긴 하다.


최근에 검은 해골단을 본의 아니게 엿멕인 적이 있었는데 그때 얼굴을 보였을 터.

프랑켄슈타인 때는 모두 전멸해 버려서 신경 쓰지 않았건만, 내 불찰이다.


“사실 트랜스퍼는...”

“뒤가 구린 조직이라는 거 우리도 알고 있네.”

“...?”

“하지만 그들의 정보가 못 믿을 만한 것도 아니지.”


하이엘프들은 냉랭한 눈빛으로 날 흘겨봤다.


“일단 수배서를 볼 수 있겠습니까? 제 죄목이 무엇인지는 알아야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에 하이엘프 한 명이 손을 휘젓자 어디선가 종이 한 장이 바람을 타고 날아와 내 앞에 멈췄다.


눈을 게슴츠레 뜬 나는 내 몽타주 밑에 적힌 죄목과 특이사항을 빠르게 훑었다.


“영지 네 개 전복, 8개 상단 습격 후 금품 약탈, 남자아이만 노려 납치 후...”


마지막은 뭔데.

차라리 업무 방해를 써놓으라고!


“이에 대해 할 말이 있나?”

“아시다시피 아직 저는 연못이 된 지, 제국력을 기준으로 1년도 채 지나지 않았습니다. 제 경지를 충분히 가늠하실 수 있으실 테지요. 헌데 아무리 작은 영지라도 보통은 기사가 최소 5명은 있을 것이고 마법사도 분명히 있을 겁니다. 게다가 상행이라고 하면 못 해도 10명 이상의 각성자를 대동하는 것이 보통 아닙니까?”

“확실히, 자네가 특별한 구석이 있긴 하나 여기에 쓰여있는 것들을 해냈다기에는 믿기 힘들지. 하지만 마지막 죄목이 걸리는군. 남자아이를 납치해서...”


마지막 거는 뭘 어떻게 증명해야 할까.

그냥 인정하는 게 나을지도.


그때 7명의 하이엘프 중 가운데에 있던 이가 대화를 종결시켰다.


“그만.”


그의 중후한 음성과 함께 홀을 가득 채우는 진한 마력이 나를 휘감았다.


그 직후 펠리나스의 날카로운 눈빛이 나를 훑었는데, 그 찰나의 순간 동안 마치 발가벗겨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우선 수배서에 쓰여있는 것들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네. 필시 트랜스퍼 그 작자들과 마찰이 있었겠지.”

“그럼 왜...”

“그대가 흑마법을 익혔으니까.”

“...!”


헤이나의 흑마력을 추출해낸 것이 화근이었나.

하지만 이내 내 추측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펠리나스는 내 아공간 속에 뭐가 들었는지 들여보는 것까지도 가능할 터.


“헌데 이번에 헤이나라는 아이를 치유하기 전까지는 타 생명체의 생명력에 손을 댄 흔적이 없더군.”

“기회를 주신다는 겁니까?”

“그렇다. 어차피 케인 그대가 엘론드의 위치를 알아버린 이상 그냥 보내줄 수도 없는 노릇. 자기 자신을 증명해 보이지 않는 이상 억류해 둘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해 주길 바란다.”

“증명이라면,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 거죠?”

“어떤 식으로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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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화 - 엘론드(3) +2 22.08.26 640 20 13쪽
43 43화 - 엘론드(2) +1 22.08.25 721 22 14쪽
42 42화 - 엘론드(1) +1 22.08.24 782 26 14쪽
41 41화 - 1세대 인류(2) +1 22.08.23 856 30 14쪽
40 40화 - 1세대 인류(1) +1 22.08.22 910 27 14쪽
39 39화 - 설원지대(2) +3 22.08.21 977 28 12쪽
38 38화 - 설원지대(1) +3 22.08.20 1,041 30 15쪽
37 37화 - 어스퀘이크(7) +1 22.08.19 1,067 28 13쪽
36 36화 - 어스퀘이크(6) +1 22.08.18 1,052 30 13쪽
35 35화 - 어스퀘이크(5) +1 22.08.17 1,078 30 13쪽
34 34화 - 어스퀘이크(4) +1 22.08.16 1,108 34 14쪽
33 33화 - 어스퀘이크(3) +1 22.08.15 1,135 32 12쪽
32 32화 - 어스퀘이크(2) +1 22.08.14 1,195 33 13쪽
31 31화 - 어스퀘이크(1) 22.08.14 1,205 30 13쪽
30 30화 - 모래 사막의 저격수 22.08.13 1,253 29 13쪽
29 29화 - 새로운 탄환 +3 22.08.13 1,287 30 15쪽
28 28화 - 사막의 유적(2) 22.08.12 1,336 31 13쪽
27 27화 - 사막의 유적(1) +1 22.08.12 1,381 36 12쪽
26 26화 - 미래가 아닌 과거 +2 22.08.11 1,440 38 13쪽
25 25화 +1 22.08.11 1,444 35 13쪽
24 24화 22.08.10 1,439 35 12쪽
23 23화 +2 22.08.10 1,454 36 13쪽
22 22화 +1 22.08.09 1,538 36 13쪽
21 21화 +1 22.08.09 1,628 37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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