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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바보님의 서재입니다.

나노머신 : 두 번째 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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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바보
작품등록일 :
2022.07.31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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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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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432

작성
22.08.12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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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7화 - 사막의 유적(1)

DUMMY

머리가 어지럽다.


만약 내가 나노머신을 투여당하고, 온갖 첨단 문물의 잔해가 널려 있던 곳이 과거라면...그 문명은 어디로 간 거란 말인가?


‘설마 세상과 단절된 곳인가?’


허나 곧 이 생각은 틀렸음을 깨달았다.


내 기억으로는, 리트먼 박사는 인류가 멸망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파괴된 마도공학의 결정체의 흔적들, 무언가와 싸우다 부서진 안드로이드들을 생각해보면 아무래도...과거의 인류가 한 차례 멸망했던 것은 틀림없다.


이건 아하 그렇구나 하고 넘길 문제가 아니다.


그 찬란했던 문명이 멸망했다.

어떠한 재앙이 헥스테카를 덮쳤겠지.

그리고 이는 높은 확률로 마수와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도 인류는 성벽 안에 옹기종기 모여서 바들바들 떨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새로운 영지와 도시가 건설되는 수는 마수들의 공격으로 함락하는 영지와 도시의 수보다 적다.


동시에 드문 의문은, 그래서? 내가 무언가를 해야 하나? 내가 뭔데?

내가 열심히 뛰어다닌다고 인류가 다시 마수를 상대로 일어설 수 있을까?

무슨 사명이 주어진 것도 아니고, 이 세상에서 주인공일 리도 없는 내가 꼭 무언가를 해야 하는가?


난 그저 거대한 자연 앞에서 압도당하는 한 명의 인간에 불과하다.

이 광활한 우주적 관점에서 본다면 나는 먼지 한 톨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 일단 세상을 더 둘러보자.

둘러보고 나서 결정하는 거다.


내 손아귀에 운명을 뒤바꿀 만큼의 힘이 들어온다면 그때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리트먼은 분명 세상을 ‘헥스테카’라고 칭했다.

현 인류도 이 행성을 ‘헥스테카’라고 부르고 있고.


1세대의 모든 흔적이 없어진 지금, 1세대와 2세대를 연결짓는 누군가가 있다는 뜻.


어쩌면 아직 살아있을지도 모른다.

미래 최첨단 기술로 의식을 안드로이드에 옮겨놨을 수도 있고, 신체 개조 기술이 극한까지 발달하여 수명이 길게 늘어났을 수도 있다.


기회가 된다면 이것에 대해서도 알아봐야 할 터.


생각을 정리하며 휴식을 취하길 잠시, 마력과 체력이 어느 정도 회복된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 기회에 어스웜들이 뚫어놓은 터널을 한 번 구경해볼 참이다.


아래로 갈수록 사암이 나타나면서 지반이 단단해져 갔다.

그 덕에 터널의 형상이 유지되고 있던 것이리라.


만약 전부 모래였다면 구멍이 바로 메워졌을 테니.


앞뒤로 기감을 넓히며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나이트 비전’


곧 어둠으로 물들었던 터널이 색감을 갖기 시작했다.


만약 어스웜이 나타난다면 어떻게 맞서야 하는가.

이 좁은 공간에서 앞뒤로 포위당한다면 어떻게 뚫고 나가야 하는가.


발생 가능한 상황 들을 떠올려 보며 하나씩 대처 방안을 생각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롬버가 말하길, 사막 지대에서는 상상하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는 곳이다.


한 걸음 갈 때마다 변수가 하나씩 늘어난다는 그의 말을 떠올리며 터널을 걷던 도중, 앞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청력 강화’


마수인가 싶었으나, 한껏 올라간 청력은 인간의 말소리를 포착해냈다.


“그러니까 유적이...에 있는...”

“나도 몰...까라면...”


터널의 굴곡 때문에 귀에 잡히는 소리가 완전하지 않다.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으나, 이내 눈앞에는 가상의 선이 보였다.

이 앞부터는 저 작자들의 감지범위일 터.


나도 꽤나 지친 만큼 사서 고생하고 싶진 않기에 발걸음을 돌릴까 고민했으나, ‘유적’이라는 단어가 날 유혹했다.


결국 나는 기척과 숨소리, 발소리까지 최소화 한 채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나이트 비전을 두른 시야는 얼마 안 가 사내들을 발견했다.

그들은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갑주를 입고 있었는데, 그 위로 푸른 해골이 그려져 있었다.


붉은 해골단의 헴버튼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이들은 트랜스퍼에 소속된 집단으로, 정보를 취급하는 자들이라 들었다.


정보 수집을 목적으로 하면서도 마법사를 제외한 모두가 연못급의 각성자인 것을 보면 확실히 대단한 집단이다.

마법사는 아직 우물급이었으나 어딘가 특출한 구석이 있으리라.


그럼 무력을 담당하는 검은 해골단은 얼마나 강한 것일까.

분명 각 조의 조장이 호수급일 터.


그런 생각을 하며 정신 차리니 어느새 나도 그들의 행렬의 끝에서 따라 걷고 있었다.

문제는 이들도 이걸 모르고 있다.

기척을 풀었음에도 말이다!


그렇게 기묘한 동행이 시작되었다.


“후우, 이 방향으로 가는 거 맞지?”

“앞이 안 보이니까 답답하네.”


나야 보조계열의 ‘나이트 비전’을 사용할 수 있긴 하나 이들은 어째서인지 횃불이나 빛을 밝히는 아티펙트를 사용하지 않았다.


순간 나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횃불 하나만 밝히면 안 되나? 혹시 몰라서 가져 왔는데.”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있을 때 앞쪽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오기 전에 몇 번이나 말했지 않나? 마수든 도적들이든 불빛을 보고 찾아온다면 임무가 골치 아파진다고.”

“아 그랬지 참.”


여기서 우리가 뭐하는 중이냐고 물었다간 의심을 살 터.

강약 조절을 할 필요가 있다.


그때 돌연 선두에서 걸음을 멈췄다.

다른 이들도 앞의 발소리를 듣고는 제자리에서 멈춰섰다.


“무슨 일이지?”

“아무래도 갈림길인 것 같다.”

“제길 지도를 기억하는 사람 있나?”


이에 나도 모르게 답했다.


“지금 이게 첫 번째 갈림길인가? 그렇다면 오른쪽으로 가야 해.”

“...”

“...”


설마...들킨 건가?

정적이 이어지던 그때 바로 앞에 있던 녀석이 말했다.


“역시 너야. 이래서 내가 뒤를 맡긴다니까.”

“...?”


그 뒤로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이들은 내게 의지했다.

그리고 어느새 재미를 들려버렸다.


오른쪽 세 번, 왼쪽 두 번, 이번엔 다시 오른쪽, 이번에는 가운데 길로.


“제길! 다들 지도도 확인 안 하고 온 거냐고! 이 임무가 얼마나 중요한지 잊은 거야?”


아찔한 강약 조절.


이에 선두에서 일행을 이끌던 이가 답했다.


“미안하다...내 실착이다.”

“네 입으로 말해봐! 우리가 지금 뭐 때문에 이곳에 왔는지!”


됐어, 자연스러웠어.


“우리는...유적에 숨겨진 지도 조각을 찾으로 가는 중이지.”

“그 지도 조각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어서 떠올려 보란 말이다!”

“그래...우리의 숙원을 이뤄줄 ‘그것’이 위치한 장소를 가리키고 있지. 고맙다, 덕분에 다시 목표 의식을 되찾았다. 역시 너야.”


숙원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슬슬 이 관계를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골치가 아파질 때쯤 선두의 사내가 말했다.


“드디어 유적의 외벽에 도착했다. 다 네 덕분이야.”

“그래 너가 없었다면 우린 길을 잃고 헤매다 어스웜을 맞닥뜨렸겠지.”

“역시 너야.”


아니 그보다 어떻게 도착한 건데.


나이트 비전의 시야로 선두에 있던 사내가 손의 촉감으로 확인하고 있는 벽을 확인했다.

과연 사암 사이에는 이질감이 느껴지는 소재의 벽이 묻혀 있었다.


그리고 대장 격으로 생각되던 사내는 벽에서 손을 떼고는 검에 마력을 둘렀다.


“다들 뒤로 물러나도록. 외벽을 깨부수고 유적 안으로 들어간다.”


그의 손에서 펼쳐진 기본 검술은 전에 보지 못했던 종류의 것이었다.

척 보기에도 묵직함이 느껴지는 검은 사암 사이에 묻혀 있던 벽을 강하게 내리쳤다.


쿠우우웅!


‘중검(重劍)?’


터널을 타고 퍼져나가는 무거운 공기의 떨림.


그때 멀리서부터 또 다른 진동이 느껴졌다.

어스웜이리라.


이에 푸른 해골단의 사내들은 분주해졌다.


쩌어억! 쿠우웅! 콰직!


번갈아거며 건물의 외벽을 두들기던 그때, 드디어 벽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 사이로 빛이 새어 나오고 있다는 것.

아마도 유적 안에는 횃불이나 빛을 밝히는 아티펙트가 놓여 있는 듯했다.


이제 작별해야 할 때가 온 것이리라.


사실 한 명 조져놓고 외형 변형이랑 음성 변질 기능으로 흉내를 내볼까 하였으나 약탈자도 아닌 이들에게 손을 댈 수는 없는 법.


‘클로킹’


유적의 외벽이 무너지며 빛이 쏟아져 나왔으나, 이미 나는 허공에 녹아든 상태였다.


“자! 한 명씩 들어가! 어스웜이 오고 있다!”


8명의 푸른 해골단은 유적 안으로 잽싸게 들어갔고, 나 또한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뒤따라 몸을 날렸다.


얼마 뒤 그들이 조를 이루고 흩어진 후, 나는 천천히 유적 안을 둘러봤다.


색이 바래진 벽돌로 만들어진 유적 내부에는 음산한 기운이 맴돌고 있었다.


바닥과 벽에는 온통 알 수 없는 문자들로 가득했는데, 규칙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마법 술식이리라.


‘마법사 모드’


곧 마력이 뇌로 몰리며 사고 체계가 마법사의 그것으로 전환되었다.


하지만 처음 보는 종류의 마법임에도 탐구열이나 소유욕은 어째서인지 끓어오르지 않았다.

메자이아에서 마법사의 사고 체계로 원소계열의 아티펙트들을 봤을 때와 상반된 느낌.


오히려 불쾌하고 배척해야 할 것 같은 기분까지 든다.


‘이것이 흑마법이군.’


기회가 된다면 들여다보기로 하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방을 나서니 마치 개미굴처럼 복도를 따라 크고 작은 방들이 보였다.


푸른 해골단은 여기서 ‘지도 조각’이라는 것을 찾고 있을 터.

사내가 말했던 것을 곱씹어보면 숙원을 이뤄줄 ‘그것’을 나타낸 지도라고 하였는데, ‘그것’이 뭘까.

거기까지 무리해서라도 물어봤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던 그때, 중간 크기의 방에서 인간의 형체가 쏟아져 나왔다.

허나 그것은 인간이라고 하기보단, ‘인간이었다’라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이리라.


대부분 피부는 이미 썩어 문드러졌으며 두 눈동자도 앞이 보이는 건가 싶을 정도로 탁해 보였다.

게다가 팔다리 중 하나가 없는 것은 기본이었고, 몇몇은 장기가 반쯤 튀어나와 있었다.


뭐, 끔찍하긴 한데, 강해 보이진 않는다.


달려오는 시체들을 향해 바람의 마력을 일으켰다.

곧 허공에서 바람이 뭉쳐 기다란 호선의 형상을 띄더니, 내 손짓에 따라 통로를 가득 메우며 마물들을 마중 나갔다.


슈화아악!


칼날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토막 난 시체들이 후두둑 하고 널브러졌다.

절단면 사이로 검게 곪아 버린 피와 누런 고름이 지독한 악취를 풍기며 새어 나온다.


‘후각 0으로 조정’


불씨를 머금은 바람을 날려 보내 시체들을 태워버리고는 반대편 복도로 향했다.


복도를 지나며 방도 몇 개 살펴보았으나, 시체 마물들만 간간이 튀어나올 뿐이다.


내가 아무리 마법을 보조 수단으로만 사용한다고 한다지만, 썩어 문드러져 가는 시체들을 상대로 기사의 육체를 꺼낼 필요는 없었다.


허나 마물은 움직이는 시체가 끝이 아니었는지, 더욱 끔찍한 몰골을 한 것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사자의 머리에, 몸통은 산양의 것인데 꼬리 대신에 뱀 두 마리가 달린 해괴한 생명체가 내 앞을 가로막는다.

효율이 아니라, 실험이 목적이었던 것인지 녀석은 균형조차 잡지 못했다.


재료가 되었던 동물들도 저 꼴이 되는 것은 원치 않았으리라.


하지만 녀석들의 약점을 파악해야 하는 나로서는 마법으로 이것저것 건드려 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뇌전계열의 공격을 맞으면 신경계가 꼬여버려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한다는 것을 파악한 나는 재빨리 녀석을 재로 만들었다.


인간이 미안해.


그 뒤로 더 빡세 보이는 것들이 나타났다.

동물이 아닌 마수를 베이스로 여러 가지를 엮어 만든 것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으나, 복도를 물로 가득 채우고 전류를 흘려보내니 좋아 죽는다.


나는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45 [탈퇴계정]
    작성일
    22.08.12 14:43
    No. 1

    시간대가 늘어나니 나중에 과거 가기 쉽게 마수 농장이나 원심분리기로 농축시켜서 워프 재료 준비해야할듯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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