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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머신 : 두 번째 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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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바보
작품등록일 :
2022.07.31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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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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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10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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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DUMMY

다섯 개를 합친 굵직한 회로의 출력을 버틸 수 있는 몸.

그 해결책이 아주 가까이 있었다.


“프롤쿠르, 피 좀 줄 수 있겠나?”


실수로 폭발탄을 쏘긴 했어도 그가 탈출하는 데에 도와준 나다.

피 몇 방울 정도야 뭐, 무리는 아닐 터.


야만족의 질기고 강인한 육체의 유전자 정보만 추출할 수 있을 정도면 된다.


헌데 그는 대답이 없었다.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그의 얼굴을 올려다봤을 때, 갑자기 천막 안의 공기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니 어느새 우악스러운 손이 내 목을 틀어쥐고 있었다.

분노에 얼굴을 일그러트린 프롤쿠르였다.


“케인, 넌 방금 나한테 목숨을 빚졌다.”


그 어느 때보다도 낮게 깔린 목소리는 그가 얼마나 화났는지 말해준다.


“전사의 피를 취하는 것은 오로지 전투에서 패배했을 때다. 지금 네 부탁은 나를 모욕하는 것이다.”

“...”

“내 피를 원한다면, 나와의 결투에서 승리하고 날 죽인 다음에야 가져가라.”


프롤쿠르는 몸을 훽 돌려 침구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는 그 즉시 코를 골며 잠들었다.


...지금 쏴버려?


그랬다간 밖에 있는 수백 명의 야만족까지 상대해야 한다.


하는 수 없이 랩탑을 챙겨서 천막을 나왔다.

그가 뒤끝을 부리진 않겠지만, 문제는 야만족의 피를 어디서 얻냐는 것.


낮은 순위의 녀석에게 결투를 신청하여 상처를 낸다면 피를 얻을 순 있겠으나, 내게는 완성된 전사의 피가 필요하다.


여기서 문제.

과연 호수급 강자인 프롤쿠르와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

그리고 내가 그를 죽일 수 있을까?


어찌어찌 상처를 내도, 프롤쿠르를 죽이지 않고서 피를 취하게 된다면 그를 모욕하는 것이다.

고작 나의 욕심 때문에 한 부족의 족장을 모욕하는 것이 과연 정당하냔 말이다.


참으로 복잡한 야만족의 규칙이지만, 그들의 일부분이 된 나는 이를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오늘은 결투도 없겠다, 바닥에 앉아서 바렛 M1000이나 분해하기로 한다.


사실 미스릴로 만든 거라 기름칠하거나 솔로 닦아줄 필요 없이 그냥 마력으로 한번 휘감으면 관리가 된다.

그럼에도 금속끼리 맞물리는 소리가 좋아서 가끔씩 분해하곤 한다.


그때 땅에서 울림이 느껴졌다.


이는 나만 느낀 것이 아닌지 주변의 야만족들 중 나와 경지가 비슷한 이들도 땅에 귀를 대거나 사방을 향해 안력을 돋구며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무언가 오고 있는 것이리라.


마력을 일으켜 분해된 부품들을 끌어당기자, 철컥! 소리와 함께 조립된 형태로 바렛 M1000 이 내 손에 잡혔다.


곧바로 스코프와 시력을 조정한 나는 저기 멀리서 야만족 무리가 다가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봐 룽게른, 너네랑 똑같이 생긴 녀석들이 도끼를 들고 오는 중인데 혹시 적인가?”


57번째로 강한 룽게른의 표정이 굳어갔다.


“제길!! 피켈 족이다!!”

“뭐하러 오는 건데.”

“우리 족장의 목을 따러 오는 것 같다...”

“목? 그것이 왜 필요하지?”

“야만족들의 왕 자리에 도전하려면 족장급의 목 5개와 그 족장들의 부족을 포섭해야 한다...”


점점 룽게른의 목소리가 기어들어 가기 시작했다.


“프롤쿠르를 믿지 못하는 건가?”

“그렇다. 우리 족장은 약한 편이다.”

“...?”


전부터 느낀 것인데 얘네들은 거짓말이나 돌려서 말하는 걸 못한다.

아무래도 피켈 족의 족장과 한 번 싸워서 진 전적이 있던 것일까.


도끼를 든 이들이 마력을 각성하지 않은 야만족들도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가까이 다가오자, 슈란츠 족도 서둘러 전투를 대비했다.


천막에서 나오는 프롤쿠르도 한없이 진지하고 무거운 표정으로 자신의 대검을 들어 올렸다.


“케인, 너는 떠나라.”


외부인인 내가 휘말리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리라.


“내가...”


내가 도와주면 승산이 있다.

이는 나도 알고, 프롤쿠르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허나 그의 눈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전사의 것이었고, 이를 본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곧 양쪽 진영은 푸른 들판에서 마주했다.


피켈 족 진영에서는 족장으로 보이는 이가 자기 몸집만 한 도끼를 들고는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프롤쿠르!! 피켈 족에서 첫 번째로 강한 전사이자 피켈 족의 족장인 나 테른하르가 결투를 신청한다!!”

“좋다!! 결투 방식은 내가 정하겠다!! 너와 나!! 일대일로 승부를 본다!!”

“좋다!! 장소는 내가 정하겠다!! 초원 한가운데의 돌산으로 와라!!”

“좋다!! 시간은 내가 정하겠다!! 내일 해가 가장 높이 떴을 때로 한다!!”

“좋다!!...”


처음에는 웅장했는데 몇 분째 자기들끼리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계속 뭘 정하는 것을 보니 지루해진다.

아무튼, 결투를 신청한 피켈족은 프롤쿠르가 수락하자 다시 돌아갔다.


‘이럴 거면 부하 한 명만 보내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으나 이는 야만족만의 방식이자 전통이리라.


나는 프롤쿠르에게 다가갔다.


“난 또 오늘 바로 싸우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럴 거면 나보고 왜 떠나라 한 거지?”

“두 개의 부족이 뭉쳐질 때, 저항하는 녀석은 죽는다. 그리고 넌 외부인이지 않나. 여기에 남아 있다가 죽지 말고 얼른 가라.”

“...괜찮나?”

“그럼!!!! 나 프롤쿠르는 겁먹지 않는다!!!!”


느낌표를 네 개나 쓰다니.

이 녀석도 어지간히 무섭나 보다.


“그래, 난 가 보겠다.”


여기에는 내가 끼어들 만한 근거도, 이유도, 명분도 없다.

짐이랄 건 원래 없었으니 그대로 천막들 사이를 지나치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청력에 속닥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비겁한 테른하르 새끼. 호수만큼 깊어진 지 얼마 안 된 족장을 노리다니.”

“들은 바로는 약한 족장들만 노려서 결투를 신청한다더군.”

“흥! 앞에서는 정정당당한 척, 용맹한 척하더니.”


뭐, 이제는 나와 상관없는 일이므로 나는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


초원 한복판에 뜬금없이 솟아올라 있는 돌산.


언제부턴가 이곳은 초원에서 살아가고 있는 야만족들이 일대일 승부를 펼치는 장소가 되었다.


마치 바다급 기사가 깎아 놓은 듯이 날카롭고 뾰족한 산봉우리 수십 개가 하나의 굵직한 산봉우리를 둘러싸고 있는데, 그 굵직한 산봉우리 정상은 마치 일대일 승부를 위해 만들어 놓은 듯 평평하고 넓었다.


그리고 그 위에서 두 야만족의 족장이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승부가 끝나기 전까지 다른 야만족은 올라올 수 없는 것이 불문율인 이곳에서 오로지 그 둘만의 결투가 펼쳐지기 직전이다.



“킥...! 네 아비가 과연 목만 남은 아들을 보고는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군!!”

“약한 놈만 골라서 괴롭히면 좋나?”

“그럼!! 강자는 약자를 괴롭히기 위해 존재한다!! 몰랐나?!”

“언젠가 네놈도 임자를 만날 것이다.”

“그게 지금은 아니지!!!”


조롱과 함께 테른하르는 거대한 도끼에 검은 마력을 피워내며 달려들었다,

이에 프롤쿠르 또한 질 수 없다는 듯 마력을 끌어올려 맞섰다.


콰아앙!


무식하리만치 거대한 두 무기가 부딪치자 허공으로 마력 입자가 흩날리고 고막을 강타하는 굉음이 수십 개의 산봉우리 사이로 퍼져나갔다.


“하!! 역시 그 애비에 그 아들인가!! 힘 하나는 인정한다!!”


그리고 다음 순간, 테른하르가 도끼를 한 손으로만 쥐더니 그의 팔이 흐릿해졌다.

놀랍게도 그는 속도를 무기로 한 속검(速劍)을 익힌 것이다!


거대한 도끼가 사방에서 몰아쳐 온다.


강검(强劍)을 익힌 프롤쿠르는 4번의 도끼질을 한 번의 검격으로 상쇄시켜야 했기에 방어하는 것조차 급급했다.


허나 테른하르도 상대의 단단한 방어를 간단히 뚫지 못했다.


치열한 공방 속에서, 먼저 초식을 꺼낸 것은 테른하르였다.


{이름 모를 도끼술 : 네 개의 단두대}


곧 프롤쿠르의 머리 위로 거대한 검은색의 도끼날 네 개가 떨어져 내렸다.


집채만 한 마력의 날붙이가 공기를 가르며 낙하하던 그때, 프롤쿠르의 대검이 세차게 허공을 갈랐다.


{바바리안의 무기술 : 건중대검(健重大劍)}


그의 검 끝에서 튀어나간 호선의 참격이 하늘 위로 솟아올랐다.

이는 어찌나 굵직하고 넓던지 떨어져 내리던 도끼날을 모두 집어 삼켜버렸다.


쿠구구구구궁!


두 거대한 마력이 충돌하며 자욱한 마력의 증기가 피어올랐다.


숨조차 쉬기 어려운 고밀도의 마력 증기 속에서 두 거한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음 초식을 펼쳤다.


맹렬하게 회전하는 검은색 도끼날이 프롤쿠르에게 쇄도하는가 하면, 마력을 입혀 대검 위에 대검을 피워낸 그는 검면을 눕혀 이를 받아 내었다.


양옆에서 목과 옆구리, 골반과 허벅지를 노려오는 도끼날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하늘을 가리키는 대검에 막혔다.


카가가각!


초식의 격돌이 있은 후, 다시 거대한 도끼와 대검이 맞닿은 채로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서로를 노려보던 둘은 거의 동시에 이마에 마력을 두르고는 머리를 맞부딪쳤다.


으적! 빠각! 콰직!


프롤쿠르가 더 돌대가리였는지, 세 번 만에 뒷걸음치는 테른하르다.


“후우, 그래. 내가 너를 너무 얕봤다.”


이마에서부터 흘러내린 피를 핥짝인 그는 히죽 웃으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순간 그의 부츠가 회색빛을 뿜어내더니, 바람이 그의 발목 아래를 휘감았다.


씨익 웃어 보인 테른하르는 전보다 가벼워진 몸놀림을 선보이며 프롤쿠르에게 쇄도했다.


마치 두 개의 도끼를 동시에 휘두른 것처럼 양쪽에서 목을 노리고 날아든다.

프롤쿠르는 재빨리 고개를 숙였으나 볼에서는 피가 터져 나왔다.


원래 야만족은 아티펙트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전통이자 암묵적인 규칙이다.

그것이 결투라면 더더욱.


허나 이를 따지고 있을 새도 없이 테른하르는 도끼를 치켜든 채로 측면에서 달려들었다.

프롤쿠르가 대검을 눕히며 방어 자세를 취하던 그때, 상대는 돌연 자세를 낮추고 발로 바닥을 쓸었다.


곧 부츠로부터 뿜어져 나온 풍압에 바닥의 돌가루가 프롤쿠르에게로 몰아쳤다.


급히 손바닥으로 풍압을 일으켜 시야를 걷어냈으나 이미 거대한 도끼는 프롤쿠르의 어깨를 가르기 직전이었다.


콰드득!


가까스로 도끼 자루를 잡아 팔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막은 프롤쿠르다.

하지만 테른하르의 도끼는 승모근을 파고들어 어깨의 뼈에 단단히 박혀버렸다.


회색의 부츠의 거친 발길질에 대검을 든 전사는 볼품없이 뒤로 나가떨어졌고, 다시 대검을 들어보지만 검 끝은 사시나무처럼 흔들렸다.


“이제 우리 야만족은 바뀌어야 한다!! 왜 멍청하게 전통을 고집하고, 자존심만 내세우는가!!”

“그게 우리의 정체성이다!!”

“그 정체성 때문에 다른 종족들이 우리를 어떤 취급하는지 모르는 건가?! 내가 왕이 되어서 모든 것을 바꿀 것이다.”


그 뒤로 일방적인 폭행이 이어졌다.


테른하르의 거센 도끼질에 프롤쿠르는 뒷걸음치기 바빴고, 그의 몸에는 상처가 하나둘씩 늘어났다.


챙그랑!


검을 놓치고,


서걱!


다리의 힘줄이 끊어졌다.


콰직!


그나마 멀쩡했던 어깨뼈마저 부러진 프롤쿠르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다.


“전사로서 마지막 배려다. 남길 말이 있는가?”

“일단 슈란츠 족에서 362번째로 강한 전사 스놀러에게 전하는 말이다. 너는 나중에 위대한 전사가 될 것이니 계속해서 수련에 정진하도록 하라.”

“끝인가?”

“아니 이제 361번째로 강한 전사 베도르에게 전하는 말이다. 고기만 먹지 말고 채소를 같이...”


프롤쿠르의 주둥이는 멈출 줄 몰랐다.

그래도 230번째까지는 들어줬던 테른하르가 도끼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나머지는 내가 지어내서라도 전해줄 테니 넌 이만 목을 내놓아라!!”


쐐애액!


전투 내내 프롤쿠르를 몰아붙였던 도끼가 이제는 아무런 가로막힘 없이 그의 목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때 어디선가 쇳조각이 날아와 테른하르의 팔뚝에 박혔고, 도끼날의 궤도는 아슬아슬하게 틀어져 땅바닥에 박혔다.


“어떤 녀석이냐!!”


곧 한 사내가 넓적한 산봉우리로 내려서더니 허공에서 흰색 검을 꺼내며 겨누었다.


“피켈 족의 테헤란로. 결투를 신청한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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