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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린버터 님의 서재입니다.

대공가의 소드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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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렛
작품등록일 :
2024.07.19 13:39
최근연재일 :
2024.09.10 06:26
연재수 :
4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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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30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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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시궁창 왕자 3

DUMMY

열세명으로 구성된 그들은 잘 다려진 회색의 군복을 입고 있었다. 일제히 계단을 내려오는데 움직임에 한점 흐트러짐이 없었다.


평소에 어지간히 제식 훈련을 받은 듯했다. 입고 있는 군복도 일반적인 예식용 제복과는 다른, 화려함보다도 실전에 치중한 형태였다. 여기저기 덧댄 가죽이 얼핏 보면 실전에서 막 구른 베테랑 용병 같은 느낌을 풍겼다.


연방군?


리안의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소집령이 내려질 때부터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었지만 웨일 준장이 직접 휘하의 장병을 의뢰에 참가시키는 건 확실히 계산 밖의 일이었다.


절도 있는 발걸음으로 용병들 앞에 선 선두의 사내가 가볍게 목을 가다듬었다. 등 뒤로는 나머지 12명의 병사들이 질서정연하게 도열했다. 일개 병사들과는 다른 제복과 그 위로 걸친 망토가 가볍게 부풀었다 가라앉았다.


“반갑다, 제군들. 나는 이번 작전의 지휘를 맡게 될 연방군 3군단 소속, 그린힐 2중대의 중대장인 차프 대위다.”


“......”


“앞서 들은것과 같이 브레일 백작가와 연계한 다이어울프 변종의 포획 및 사살 의뢰는 웨일 준장님의 명령 하에 연방군과의 합동 작전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이는 다이어울프의 변종이 타 마을이나 민가에 끼칠 피해를 하루빨리 최소화하기 위함이며, 용병 제군들의 사상자를 최대한 줄이려는 웨일 준장님의 배려이기도 하다.”


용병 수십에 연방군 소속 정규군 열 셋.


용병들이 저마다 눈빛을 교환하는 가운데 리안은 조용히 장병들을 살폈다. 11명의 병사들은 다른 용병들과 특출나게 다를 바 없는 전력이지만 선두의 사내와 바로 오른쪽에 있는 두명은 달랐다.


보는 것만으로도 본능적으로 안다.


기본적인 마나를 다룰 수 있는 1위계 마법사 둘.


공식적인 소속은 3군단이지만 귀족들의 사병 철폐 이전에는 웨일 남작가의 기사이자 워커였을 것이다. 사내 오른쪽의 남자의 어깨에는 검은색 견장 위로 은빛 다이아몬드 하나가 박혀 있었다. 리안의 추측대로라면 저 대위의 예하 부대 소속 소대장일 터였다.


아마도 제국과의 전쟁에서 실전을 직접 겪은 병사.


그것도 꽤나 실력있는 워커들이다. 전쟁 이후 원래도 귀했던 마법사는 더욱 귀해졌다. 대기중의 마나를 받아들여 마법이란 이적을 일으키는 선택받은 자들. 1위계 마법사만 되어도 17가문의 서임을 받을 수 있는 최소조건에 부합한다.


리안이 구태여 자신이 마법사라는 소문을 부정하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십대 초반이나 되었을법한 출신 모를 소년이 마나를 각성했다는 소문을 믿을 머저리는 없었다. 리안 스스로도 자신이 어떻게 마나를 사용할 수 있는지 몰랐으니까.


그것도 첫 살인을 겪은 여덟살의 나이에 처음 마나를 각성했다면.


“지금 모인 숫자가 의뢰에 참여하는 전부라고 생각해도 되겠나?”


좌중을 한번 둘러본 차프 대위가 근처에 서있던 지부장에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총원은 몇이지?”


“서른 넷입니다.”


“서른 넷이라. 여기에 내 부대에서 추려낸 14중대 소속 장병 열두명을 더하면 나까지 포함해 마흔 일곱이로군.”


“차고 넘치는 전력이군요.”


“다들 들었나?”


차프 대위가 목소리를 높였다.


“목표로 하는 몬스터는 하나. 그에 반해 우리는 마흔 일곱이다. 추가로 엘도르 기사단 또한 몬스터의 뒤를 쫓아 추적하고 있으니 제군들이 생각하는 불미스러운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수근거림이 커졌다. 이번에는 지부장도, 차프 대위도 용병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확실히 브레일 백작가와 엮여있는 만큼 과하다 싶을 정도의 편성이었다. 자신의 목숨을 제일로 여기는 용병들마저 특별한 반발 없이 설득될 정도였다.


“그전에 우선 한 가지.”


어수선함이 가라앉을 즈음 차프 대위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혹시 여기 마법사가 있나? 작전을 위해서라도 중요한 부분이다. 워커든 소서러든 상관없으니 있다면 거수하라.”


무언가를 찾기라도 하듯 방황하던 차프 대위의 눈동자가 어느 한 곳에 멈추었다.


용병들이 눈길이 약속이라도 한듯 두 곳으로 갈렸다. 하나는 지부장과 차프 대위가 서 있는 앞쪽 부근의 남자. 다른 하나는 구석에서 소리없이 상황을 지켜보던 리안이었다.


눈치를 보던 남자가 보다못해 먼저 손을 들었다. 등에 매고있는 대검이 제 키만큼 커다랬다.


“자네는?”


“용병인 게일이라고 합니다.”


“1위계 마법사인가....”


“그렇다고 해도 별 대단한 건 아닙니다. 범위 마법은 고사하고 그저 단순하게 신체 강화나 모닥불을 지피는 정도지요. 다른 1위계 마법사와 비교하기가 민망한 수준입니다. 제가 대위님의 눈에 찰지 모르겠군요.”


“그 정도면 충분하다. 기본적인 마나 활용만 할 줄 알아도 어지간한 병정 열보다 나으니까.”


작게 고개를 끄덕인 남자가 자리에 앉았다. 이제 모두의 관심은 리안 한명에게 향해 있었다.


몇몇 용병이 속삭였다.


“저 꼬맹이....”


“마나를 각성했다는게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잖아. 이래도 되나?”


“연방군 장교 앞에서 거짓을 고할 수도 없으니 지 입으로 말하겠지.”


“조용! 대위님 앞이다. 다들 정숙하도록.”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지부장이 일갈로 수습했다. 그러면서도 은근슬쩍 이쪽을 향해 내던지는 시선에서는 숨길 수 없는 호기심이 엿보였다. 지부장을 따라 자연스럽게 리안과 눈이 맞은 차프 대위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후드 너머로 보이는 리안의 앳된 인상에 조금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다가, 언제 그랬냐는듯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많이 어리군. 실례가 아니라면 이름을 물어도 되겠나?”


세상 자상한 질문에 리안은 속으로 조소를 삼켰다. 지난 5년 가까운 시간동안 거친 속세의 풍파를 견뎌낸 소년은 상대의 눈과 표정만 봐도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대강 알 수 있었다.


처음 1층에 들어왔을 때부터 계속해서 힐끔거린 주제에 태연한 척을 하다니. 겉으로는 애 취급을 하면서 혹시 마법사가 아닐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을 품고 있는 것도 우스웠다. 리안의 나이를 대충 짐작했다면 용병들의 호들갑이 말도 안된다는 걸 알 텐데도 그랬다.


리안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차피 이런 취급은 익숙했다. 모난 돌은 정 맞기 마련. 리안은 솔직하게 대답할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고 억지로 거짓말을 고할 필요도 없었으니, 단지 평소대로 흘려보내면 될 일이었다.


“리안입니다.”


리안은 단답으로 대답했다. 조금은 거만하기까지 한 태도에 오른쪽에 서 있던 소대장으로 추측되는 남자의 미간이 움찔했다.


“성은?”


“죄송하지만 대위님의 저의를 모르겠군요. 당연히 없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는 농민이셨고, 어머니도 마찬가지로 귀족이 아닌 평민이셨습니다.”


“정말인가?”


“정말입니다. 오히려 제쪽에서 묻고 싶군요. 대부분의 귀족들의 작위가 사라져 남은 귀족이라고는 브라알라스의 왕가를 포함한 17가문밖에 없는 이 시국에, 그깟 성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지켜보던 용병들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보다못한 오른쪽의 남자가 나서려던 순간이었다. 차프 대위가 여전히 시선을 리안에게 고정한 채 왼팔로 남자를 막았다.


“작위는 사라졌으나 성까지 사라진 건 아니네. 자네 말대로 알맹이 없는 허울뿐인 귀족들이라 해도, 군에서의 입지와 쌓아온 재산은 유효하지. 가문 자체가 사라진 게 아니니까 말일세.”


리안의 이름을 묻던 직전과는 전혀 다른 서늘한 눈동자가 소년의 전신을 뜯어보았다. 후드의 그림자 아래로 비치는 앳된 하관, 다 자라지 않은 몸, 허리춤에 걸린 잘 손질된 검까지.


“브라알라스어가 꽤나 유창하군. 중부 지역 사람들은 특유의 억양 때문에 구분하기 쉬운 편인데... 마치 한평생 이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 같아.”


냉소와 함께 던진 물음이 더없이 날카로웠다.


“어머니께서 중부 출신이셨습니다. 아버지를 따라 브라알라스로 시집오셨으니 어쩌면 그 때문일지도 모르겠군요.”


리안은 당황하지 않고 맞받아쳤다.


“하하.”


느닷없이 차프 대위가 크게 웃었다. 용병들은 물론 지부장과 장병들마저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는 가운데 그가 말했다.


“그러니까 마법사가 아니라는 말이지?”


“......”


“미안하네. 내가 의심이 많은 성격이라. 자네를 추궁하려던 건 아니었어. 불쾌했다면 사과하지.”


중년의 장교가 불신의 눈빛을 거두었다.


“전쟁이라는게 참 야속해. 자네같이 어린 소년이 부모를 잃고 펜이 아닌 검을 잡고 있으니. 그래도 마법사의 유무와는 관계없이 당장 여기에 자네보다 나은 전사는 없는 듯하군. 이보게, 지부장.”


“말씀하십시오.”


“저 둘 말고 자네가 추천할만한 다른 용병은 없는가?


“그러시다면....”


정신을 차린 지부장이 용병 몇명을 추천했다.


“좋군. 나쁘지 않아.”


차프 대위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 부대를 제외한 용병 제군들은 임시로 나눈 3개의 분대로 활동하게 될 것이다. 1분대 11명, 2분대 11명, 3분대 12명. 각 분대의 분대장은 용병 게일, 리안, 그리고 지부장이 추천한 로건 이 세명이다. 분대장들은 서로 상의하여 원하는 용병들을 골라 분대를 꾸리도록 한다.”


용병들이 제각기 고개를 주억거렸다. 벌써부터 누구와 팀을 짤 것인지 의논하는 이들도 있었다.


“출발은 내일 오전 10시, 브레일 백작가와 이어지는 동쪽 야산 초입에서 집결한다. 자칫하면 며칠 넘게 야영할 수 있으니 단단히 준비를 해오도록.”


할 말을 마친 차프 대위가 부하들을 이끌고 길드를 나서기 전에 마지막 한마디를 남겼다.


“궁금한게 있다면 각 분대장을 통해 질문하라. 자세한 작전은 내일 아침에 설명하겠다. 이상이다.”


***


“일은 잘 풀렸냐?”


의도치않게 분대 편성을 끝마친 리안은 도시 외곽에 자리한 작은 공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흰 수염이 쇄골까지 내려온 늙은 대장장이가 계산대에 앉아 검을 손질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잘 안 풀린 것 같구나.”


“아니요, 별 문제는 없었습니다.”


“그러냐? 갑자기 소집령을 내렸다기에 무슨 큰일이 난 줄 알았는데.”


“그냥 평소와 같은 간단한 의뢰였습니다. 브레일 백작가에서 이번 겨울 사냥에 실패를 했는데, 그중 몬스터 한 마리가 그린힐쪽으로 도망치고 있으니 포획 및 사살에 협조하라는 얘기였어요.”


“브레일 백작가라....”


리안이 계산대를 사이에 두고 노인 앞에 섰다. 늙은 대장장이는 눈썹을 한번 까딱였을 뿐, 그 이상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놀라지 않으십니까?”


“놀라다니?”


“브레일 백작가와 엮인 일입니다. 바로 그 17가문 중 하나요.”


“네 입으로 평소와 같은 간단한 일이라 하지 않았느냐.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보다 칼이나 줘 봐라. 여기 온 것도 그 때문 아니냐.”


리안은 순순히 허리춤의 검을 풀어 노인에게 건넸다. 손질하던 검을 잠시 옆에 내려놓은 노인은 검집을 조심스럽게 당긴 후 콧날에 걸쳐둔 안경을 고쳐썼다.


“미친놈. 칼 꼬라지가 왜 저번보다 심해진 거냐.”


“잠깐 쓸 일이 있었습니다.”


“쓸 일이 있었다?”


“밤에 도적들 습격이야 하루이틀 일이 아니니까요.”


“암만 그래도 그렇지, 내 칼을 한달만에 깨먹은것도 모자라 이제는 2주만에 칼날을 걸레짝을 만들어 놔? 겉만 번지르르 잘 관리하면 뭐하냐. 말년에 더 놀랄 것도 없다고 생각했건만, 하다하다 아주 기가 차서....”


노인은 걱정보다는 혀를 차며 불만을 쏟아냈다. 리안은 노인의 불평을 한귀로 흘리며 근처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노인은 연신 중얼거리면서도 칼날을 이리저리 뒤집으며 상태를 살폈다.


“이건 이제 못 쓰겠다.”


“이번에는 다르다고, 전의 가격에 두배를 받은 게 정확히 13일 전이었습니다.”


“야 이 망할 애송아. 그거야 들어간 강철이 그만한 값을 했으니까 그런 거고. 가장 중요한 네 마나가 지랄맞은 걸 나보고 어쩌라는 거냐.”


“그래서 분명 그것까지 고려해서 부탁드렸을 텐데요.”


“이, 이놈이...?”


노인의 두 눈에 핏발이 섰다.


“계속 말하지만 내 칼에는 문제가 없어! 그린힐 대대 전체에 칼을 납품한지 벌써 3년도 넘었다. 웨일 남작의 기사였던 워커들도 불만없이 잘만 쓰고 다니는데, 이게 왜 내 잘못이란 말이냐!”


“......”


“네 마나를 버틸 검을 만드려면 저 17가문에 전속된 대장장이는 불러와야 될 거다. 아니, 내 장담하는데 그놈들도 땀을 뻘뻘 흘릴 걸. 대체 뭔놈의 마나가 쓸때마다 칼날을 갈아먹어? 그러니까 내가 조심해서 쓰라고 누누이....”


“이게 마지막입니다.”


“뭐?”


“의뢰가 끝나자마자 떠날 겁니다.”


브레일 백작가의 이름에도 아랑곳하지 않던 노인이 처음으로 황망한 기색을 내비쳤다.


“잭은. 잭은 알고 있냐?”


“조만간 말할 예정입니다.”


“어디로 갈곳은 있고?”


“아직 제대로 정하지는 않았습니다.”


“군에 투신할 생각이냐.”


리안은 침묵으로 긍정했다.


더 이상 이 도시에 볼일은 없었다. 혼자 남겨진 뒤로 지난 5년. 수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동안 리안이 깨달은 건 단 하나였다.


돈과 무력. 어떤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는 의지와 냉철한 정신.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그린힐에서 반년이란 시간을 보낸 이유는 다름아닌 그 때문이었다. 안전하게 의뢰를 수행하면서 실력을 쌓을 수 있는 변방의 한적한 도시. 검술은 이미 완숙에 이르렀고, 돈도 꽤나 모였다. 마법사로서의 경지도 슬슬 벽에 가까워져 있었으니 미래를 위해서라도 그린힐을 떠나는게 맞았다.


“연방군이라....”


리안과 2주를 함께한 검을 노인은 주저없이 실패작을 모아둔 낡은 상자 안에 던져버렸다.


“출세하기엔 나쁘지 않겠지. 휴전 협정을 맺긴 했지만 완전히 종전을 한 건 아니고... 출신도, 신분도 모를 이방인이 칼 한자루 들고 기어 올라갈만한 자리가 군 말고는 마땅찮은 것도 사실이니까.”


“......”


“그래도 쉽지만은 않을 거다. 지금 군의 수뇌부는 17가문에는 들지 못해도 그에 버금가는 권세를 가졌던 가문들이 꽉 잡고 있어. 실력만큼이나 출신이 중요하니 언젠가 차별과 텃세 때문에 후회할 날이 올 거다.”


“압니다.”


리안은 노인의 말에 동의했다. 기존의 신분제를 철폐하면서 그 대가로 주어졌던 게 바로 군에서의 지위다. 한때 귀족이었던 자들의 자제들은 장성인 아버지의 후광을 등에 업고 평민들보다 사관학교에 훨씬 수월하게 들어갈 수 있었다.


“휴전이라도 길어지는 날에는 필시 군의 예산과 규모가 축소될 테고, 출세하기는 더더욱 힘들어질게 뻔한데. 그래도 군에 입대할 거냐?”


“예.”


“차라리 백작가를 선택하는 것이 나은 선택일 수 있어.”


“17가문이 잘도 배경없는 고아를 데려가겠군요.”


“배경없는 고아? 마음에도 없는 소리하지 마라. 들어가려면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는 놈이... 그냥 네가 사람을 못 믿는 게 아니더냐.”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짧은 한숨을 내쉬며 리안을 지나친 늙은 대장장이는 공방 한쪽에 걸려있는 검들 중 하나를 꺼내 던졌다.


“이건...?”


“가져가라. 얼마나 오래갈지는 모르겠는데, 적어도 당장 줄 수 있는 검들중에는 가장 튼튼한 녀석이다.”


“얼마입니까?”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됐다.”


리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작별 선물이라고 쳐라. 아마도 오늘 보고 내가 죽을 때까지 다시 못 만날 것 같으니까.”


“......”


리안은 말없이 칼자루를 잡아당겼다. 검집과 가드 사이로 드러난 새하얀 칼날이 눈이 부실 정도로 맑았다. 이전에 두배를 주고 구입한 검보다도 상급의 물건. 전에 방문할때는 없었으니 만든지 얼마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제프.”


고민하며 입을 우물거리던 리안이 가까스로 감사 인사를 건넸다.


“고마워요. 검도, 이때까지의 호의도 전부 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불만스러운 듯한 콧숨과 함께 노인은 계산대로 돌아갔다. 용무를 끝낸 리안은 약간의 아쉬움을 털어내고 몸을 일으켰다.


문을 열기 전, 등 뒤로 낮은 음성이 들려왔다.


“반년이었지만 애송이 너랑은 꽤 질긴 인연이었지.”


“......”


“넌 분명 천재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만하지는 마라. 마나는 되도록이면 최대한 숨기도록 해.”


“알겠습니다.”


“내 검까지 내주었으니 어디가서 허무하게 죽지 말고.”


열린 문 너머로 차가운 겨울 바람이 밀려들었다.


“안 죽어요.”


리안은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중얼거렸다.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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