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영지전"
그렇게 영지전 준비는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진행되었고, 시간은 흘러 어느덧 영지전 날의 아침이 밝았다.
나는 이른 아침 식사를 여유롭게 즐기고 연무장에 도열해 있는 병사들을 뿌듯하게 훑어보곤 마치 산책하러 나가는 양 그들을 이끌고 가벼운 마음으로 영지를 나섰다.
영지전에 대한 소문은 영지민 전체가 알고 있었지만, 아무 걱정 없어 보이는 나와, 진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을 만큼 당당한 페드로의 표정으로 인해 더 많은 수의 병력과 싸워야 한다는 사실에도 병사들은 전혀 불안해하지 않았다.
나와 페드로가 준비한 '전장'은 영지에서 도보로 약 한 시간 남짓한 거리로 영지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있었다.
처음 페드로는 나의 명을 듣고 왜 이곳에 공터를 조성하는데 의문을 가져 질문하였지만 나는 긴 설명 대신 영지병들의 훈련을 위한 곳이라 대충 둘러대었다. 그리하여 페드로는 영지민들을 동원하여 이 '전장'이자 '훈련장'을 완성하였다.
한참 먼저 도착한 우리는 병력 배치를 끝내고 숲에서 휴식을 취했다. 그렇게 이른 아침 출발한 해가 중천에 걸릴 때쯤 숲 저편에서 병력이 속속들이 진입하기 시작했다.
듀발 후작의 지원을 받는 만큼 그들은 분명 멀끔한 장비들과 잘 먹고 잘 훈련되어 있을 병사들일 테지만 보이는 지금 보이는 행색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그들의 행색은 전부 숨을 헐떡이며 땀에 절어있었고, 오는 길이 험했는지 저마다 나뭇잎이나 나뭇가지들을 이리저리 꽂고 있었고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였다.
그들의 행색이 그런 이유는 간단했다. 이곳은 최근에야 내 지시로 만들어진 곳으로 내 영지에서가 아니라면 따로 길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울부짖는 숲'은 꽤 넓고 울창한 수해로 숲 밖에 있는 영지에서 여기까지 오려면 최소 몇시간 이상은 길이 없는 숲을 헤집고 올 수밖에 없는 데다 숲에 익숙하지 않은 자라면 여러 장비를 입고 걷는 숲길이 꽤 고생길이었을 것이다.
거기다 더해 나는 애초에 지도를 그려줄 때 대충 그려 축척 따위는 무시하고 보냈으므로 숲에 익숙하지 않은 저들은 저렇게 장비를 걸치고 숲을 한참 헤매고서야 간신히 도착했던 것이었다.
"데일 백작! 이런 비열한 수를 쑬 줄 몰랐소! 여기까지 길이 하나도 없질 않소!"
"페일 남작 안녕하시오, 작위 차이가 있는데 데일 백작이라 그리 막 부르는 건 아닌 것 같소. 그리고 지도 제대로 못 보셨소? 지도에 내가 분명 길이 없어서 길을 따로 안 그렸는데?"
내 말에 페일 남작은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손으로 콕 찌르면 펑 하고 터져버릴 것 같이 되었다. 이내 주변을 둘러보며 내 병력의 숫자와 편제를 보곤 기분 나쁜 비웃음을 흘리며 이내 바로 소리쳤다.
"지금 말장난을 하는 거요?! 잠시 뒤 그 언행을 후회하게 만들어 줄 테니 두고 보시오! 전군 준비! 전진!"
"하 남작 놈이 끝까지 반말이네, 그래 어디 너나 두고 보자. 보병 방진! 궁수 대기! 준비된 궁수 쏴!"
페일 남작은 적잖이 화가 났는지 병사들의 상태도 살피지 않은 채 휴식 없이 갑자기 영지전을 시작해버렸다. 물론 자기 딴에는 기습을 노렸겠지만 나는 몇 시간 전부터 진형을 갖추고 영지전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병사들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이윽고 내 명령에 의해 궁사들의 화살이 하늘을 날았고 이내 페일 남작의 병사들에게 화살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물론, 내 병사들의 활과 화살 자체가 전문적인 장인이 만든 병장기가 아니라 강력하지 못한데다, 페일 남작의 병사들은 듀발 후작의 지원을 받기에 품질은 다소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제국에서 직접 생산되는 병장기로 무장했기에 몇몇 화살을 제외하곤 화살은 부러지거나 갑옷에 튕겨 나가기 일쑤였다.
하지만 내가 준비한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화살 세례에도 헉헉대며 꿋꿋하게 대열을 갖추며 올라오던 페일 남작의 군대는 언덕 중턱부터 대열이 급격히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흐트러진 진형 위로 지속해서 화살비가 떨어지자 남작의 진형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어갔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지속적인 화살비는 남작군에 피해를 누적시켰고 이내 쓰러지는 병사의 수가 점점 늘었다.
"전열을 갖춰라! 전군 전진! 앞으로! 멍청이들아 제대로 대열을 갖춰!"
페일 남작은 군 뒤에서 말 위에 앉아 고래고래 소리만 지르며 병력을 통제하려 했지만, 통제는 되지 않았고 이내 남작의 병사들은 속수무책으로 화살에 쓰러져 갔다.
"그만!!! 그만 쏘시오!! 데일 백작님!! 항복입니다. 항복!!!"
"전군 사격 중지!"
하나둘 백작의 병사들이 스러져갔고 이대로 접근 한번 못해보고 모든 병력을 잃을까 싶을 때쯤 페일 남작은 항복선언을 했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사격 중지 명령을 내렸다. 그렇게 전투는 중지되었고 그제야 아수라장인 전장의 정황이 보이기 시작했다.
남작의 병사들은 고슴도치처럼 다량의 화살이 꽂혀있었다. 물론 대부분의 화살이 그렇게 깊게 박힌 게 아니라 엄청난 피해는 아니었지만, 아직 무사한 사람들도 대부분의 병사가 하나 이상의 화살을 몸에 꽂고 있었다.
하지만, 멀쩡한 병사들도 바닥에 널브러져 이리저리 계속 미끄러지며 제대로 몸을 가누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내가 언제 있을지 모르는 영지전을 걱정하며 준비한 것은 두 가지다. 첫째 다른 영지에 비해 내 영지병의 편제는 다소 독특한 편이다. 영지의 규모에 비해 인원도, 병력도 적기에 다른 영지의 사병이나 정규군처럼 편제를 고정하여 전문화할 수 없었다.
따라서 나는 전문화보다는 유연성을 택해 영지병과 예비병에게 활과 방패, 그리고 창의 사용법을 페드로에게 전문적이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다룰 수 있게끔 훈련을 지시했다.
그래서 200명 남짓한 영지병 규모에서 자유롭게 편성을 구성하여 때로는 궁수로 때로는 보병으로 활약하게끔 운용하여 지금처럼 보병 30명과 궁수 120명이라는 일반적이지 않은 기형적인 편제도 가능한 점이다.
두 번째는 이 '전장'이자 '훈련장'에 있었다. 나는 일전에 페드로에게 영지 남쪽 인근에 언뜻 보기에 평탄해 보이지만 미묘하게 경사진 이 지역을 쓰겠다고 공터로 만들라 지시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지금 이곳은 내가 영지의 약초꾼들에게 우연히 들은 아주 독특한 곳이었다.
'울부짖는 숲'은 사람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은 천혜의 수해로 여러 가지 독초와 약초 등이 자생하는데 그중에 영지 남부 일대에서 자생하는 아주 독특한 풀이 있었다.
바로 '오일 그래스'라는 잔디이다. 이 '오일 그래스'는 평상시 햇빛이 닿지 않을 때는 그냥 잔디와 다를 바 없는 풀이지만 햇볕에 닿으면 미끌거리는 진액이 잎에 맺히는 특징이 있는 연금술 및 다양한 약재의 촉매제로 사용되는 독특한 풀이다.
'오일 그래스'는 매우 독특한 환경에서 자생하는 풀로 대륙 내 몇몇 지역에서만 자생하고 숲속 깊은 곳에 자라기에 일반 잔디와 쉬이 구별하기 쉽지 않다.
하물며 '울부짖는 숲' 내부는 내가 영지 가꾸기 이전에는 거의 미개척지에 가까웠기에 여기에 '오일 그래스'가 자생하는지 아는 사람은 나와 내 영지의 약초꾼을 제외하곤 없었다.
페일 남작이 영지 전을 신청했을 때 나는 솔직히 속으로는 오히려 고마워했다. 저번 산적패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피해는 최소화하고 적의 피해는 강하게 남겨야 인근의 중소 영지들에서 나의 영지를 노리지 않으리라 생각했었고, 여러 가지를 따져 보았을 때 페일 남작은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적이었다.
페일 남작은 장인 출신의 귀족으로 전략과 전술에 무지한 자였다. 그의 영지는 듀발 후작의 지원을 받는 도시답게 병사들의 질과 병장기는 우수할지 몰라도 페일 남작 같은 귀족에게 충성을 맹세한 제대로 된 지휘관이 있을 리 만무했다.
애초에 정규 기사들은 대부분 군소 귀족 자제들이거나 관리의 자제들로 고등 교육받아 콧대가 높기에 장인 출신의 남작에게 충성을 맹세할 기사가 없다는 점을 알기에 내 전략대로라면 질 수가 없는 전투였다.
결국, 미묘하게 경사진 전장, 오일 그래스, 자유로운 편제까지 이 세 가지를 통해 페일 남작은 완벽하게 패배할 수밖에 없던 것이었다.
이들은 여기까지 오며 이미 지쳐있었고, 휴식도 없이 경사를 오르기 시작했다. 거기다 애초에 숲에 대한 대비가 전혀 안 되어있는 이들은 오일 그래스의 진액에 진형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그 위로 아군의 자유로운 편제에 의한 화살비로 인해 전투는 마무리된 것이다.
"페일 남작, 벌써 포기하려고? 왜 더해보지, 조금만 더하면 저기 나뒹구는 병사들 전멸시킬 수 있을 것 같은데?"
"죄... 죄송합니다. 백작님. 제가 졌습니다. 더 이상의 전투는 멈춰주십시오.."
"호오 그래? 아까랑은 너무 온도 차이가 심한 거 아니야? 뭐 크게 기대도 안 했어. 졌다 싶으면 이거나 얼른 서명해."
페일 남작은 자신이 질 거라는 생각을 전혀 못 했는지 혼란에 휩싸인 표정으로 급격하게 태세 전환하여 저자세로 나왔다.
애초에 나는 질 거라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미리 준비해 두었던 영지전 협정서를 내밀었다. 협정서의 내용은 간결했다 '페일 남작령에서 목수 장인 50명을 최소 6개월간 내 영지에 파견할 것, 그리고 그들에 대한 비용과 삯은 페일 남작이 부담할 것.'.
내용은 짧고 간결했지만 자체는 쉬이 생각할 내용은 아니었다. 내 영지는 장인의 수가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대장장이 일을 할 야장도, 목재를 가다듬을 줄 아는 목수도 없었다.
영지민들은 대부분 이주 당시 농노에서 자유민 해방 조건으로 넘어온 자들이 대부분이었고, 새로이 정착한 영지민들은 약초꾼, 사냥꾼, 그리고 가진 게 없어 그저 이리저리 방랑하는 자유민들이었기에 제대로 된 기술자의 수가 너무 부족했다.
간단한 작업 쯤은 어깨너머로 배운 자들이 더러 있어서 여태껏 영지가 간신히 돌아는 가고 있었지만, 다른 영지에 비하면 병장기도, 농기구도, 생필품 들도 한없이 조악하기 그지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애초에 장인 50명 정도 강제 이주를 바랐지만 프레드릭의 말에 따르면 무릇 목수든 대장장이든 장인들은 자신이 잡은 터전에서 이미 대접받기 때문에 쉬이 떠나지 않는다고 했다.
따라서 강제 이주를 받는다 해도 대충 기한만 때우다 기한이 지나면 그들은 다시 자신들의 터전으로 돌아갈 거라 했고 그럴 바에는 6개월간 파견받아 기술이전을 받는 게 낫다고 했다.
물론, 내 영지에 피해가 없었다고 해도 영지전도 전쟁인 만큼 더 많은 걸 요구할 수도 있었지만 이러한 결정에는 꽤 복잡한 사정이 얽혀있다.
초대 제국의 황제는 제국의 건국 당시 자신을 도왔던 지방 토호들의 자치권을 인정해 주었다.
하지만 초대 황제는 전쟁의 시대에 보여준 귀족들의 탐욕을 잊지 않았고, 그리하여 지방 토호들의 무분별한 힘겨루기로 인한 세력의 변동을 막고자 제국 내에서 벌어지는 모든 영지전은 그 시작과 끝을 황실의 허가를 받게끔 법을 세웠다.
이러한 전제가 깔려있다 보니 어차피 내가 협정서에 내 욕심대로 적어 황실에 보낸다고 하더라도 듀발 후작이 있는 한 황실에서 그 협정서를 승인해 줄 리가 없었다.
“여... 여깄습니다.”
“그래, 앞으로 잘 좀 하자?”
페일 남작은 그렇게 쓴웃음을 지으며 마지못해 협정서에 서명했고 남은 병력과 부상자, 시신들을 수습해 돌아갔다. 처음 올 때와는 다르게 오합지졸의 끝을 보였으며 멀쩡하게 걸어가는 병사는 50명도 채 되지 않아 보였다.
그렇게 나의 첫 영지전은 매우 성공리에 대승을 거두었다. 영지병 150명으로 300명의 부대를 격파했고, 심지어 아군의 피해는 0명 사상자는 물론 적군은 아군의 근처에도 못 왔기 때문이다.
나도 병력을 추슬러 '전장'이 아닌 전쟁 경험을 위한 '훈련장'으로써의 효과를 톡톡히 보곤 내 영지로 귀환하였다.
"백작님 만세!!!, 데일 백작님 만세!! 볼든 백작가 만세!!!"
영지민들은 영지전에 대해서 불안해하진 않았어도 어느 정도 피해를 예상했었지만, 핏자국 하나 없이 피해가 전무한 멀끔한 상태로 영지병과 내가 귀환하자 기쁨에 차 환호하였다. 나는 연무장으로 복귀하며 단상에 올랐고 프레드릭도 헐레벌떡 나와 내 옆에 섰다.
"오늘 모두들 용감하였고, 고생하였다. 우리는 싸웠고 승리했다. 그리고 모두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다. 오늘부터 이틀간 축제다. 먹고 마시고 즐겨라!!"
"와아아아아아아아!!! 백작님 만세!!"
간결하지만, 진심이 담긴 내 연설에 병사들은 다들 감명받은 듯했다. 어느 영주가 자기 병사들의 안전을 걱정한단 말인가 영지전에서 귀족들끼리는 서로 직접 해를 가할 수 없다는 법이 정해져 있었기에 일반적인 영주에게 병사들은 소모품이고 도구일 뿐이었다.
오죽하면 도열한 부대 앞에선 페드로조차 눈시울이 붉어져 나를 쳐다보겠는가. 나는 없는 살림이지만 첫 승리와 영지에 피해가 전혀 없음에 안도하며 이틀간 영지에 축제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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