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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더 님의 서재입니다.

망한 세상의 무공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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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사우더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4
최근연재일 :
2023.08.23 22:30
연재수 :
101 회
조회수 :
110,902
추천수 :
1,880
글자수 :
527,994

작성
23.08.19 22:30
조회
353
추천
9
글자
11쪽

96화 종말답천(5)

DUMMY

공중에 떠 있던 어검들이 힘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한계에 이른 분광검들은 그대로 형상을 잃고 사라졌다.


우일신 역시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숨을 골랐다.


갑옷 위로 타오르는 거센 불길은 초식의 반동이 얼마나 큰지 알려주는 반증이었다.


동결된 시간 속을 자유롭게 움직이는 걸 넘어서 시간 정지에 가깝게 움직였다.


신체를 한계까지 혹사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곡예였다.


그러나 몸을 회복하고 싶어도 이곳이 동결된 시간 속이라는 게 문제였다.


정지된 시간 속에서는 일반적인 회복 아이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거기에 일정 시간 이상 움직임을 멈추면 시척보의 공능이 끊기게 된다.


결국 중단전의 공능을 통한 자연 회복과 신검의 치유 능력에 기대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걸로 악마들의 본체는 전부 처리했다.’


지구에서 암약하는 악마들은 분신에 불과하다.


본체와의 연결이 끊긴다면 자연히 사라지게 된다.


지금쯤 본체가 사라진 영향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으리라.


우일신은 자리에서 일어나 여명을 칼집에 집어넣었다.


검흔으로 가득한 방을 뒤로하고 다음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문 너머에는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발짝씩 천천히 내려가면서 회복에 전념했다.


상시 운기조식을 통해 소모한 신체와 내공을 서서히 회복했다.


중단전에 자리한 밤하늘 별빛은 얼음 감옥의 냉기마저 연료로 바꾸었다.


우일신은 계단을 내려가면서 악마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악마의 본체들은 하나같이 이성이라는 게 없는 듯했다.


악마의 분신들도 비슷한 느낌이었지만, 오염에 의한 여파라고 지레짐작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본체가 가진 특성을 계승한 쪽에 가까웠다.


하나같이 주어진 명령대로 움직이는 기계에 가까웠다.


운석이 떨어진 미래에서 보았던 마족 쪽이 더 사람다웠다.


하다못해 몬스터가 악마들보다 감정이 풍부할 지경이다.


녀석들은 생명체의 가죽을 뒤집어쓴 악취미적인 살인 병기라고 해도 좋았다.


도저히 자연적으로 발생한 생명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저런 해악밖에 안 되는 괴물들을 만들어 낸 걸까.


어쩌면 종말의 근원지인 이곳이라면 뭔가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일신은 그런 생각과 함께 끝도 없이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갔다.


나선으로 내려가는 얼음 계단에서 메마른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렇게 체감으로 1시간 가까이 시간이 흘렀다.


상시 운기조식을 통해 신체와 내공은 진작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대체 이 계단은 어디까지 내려가는 거지?’


그런 의문이 들었을 때.


문득 계단 너머에서 악취가 풍겨왔다.


이는 이상한 일이었다.


이곳은 동결된 시간 속이다.


냄새가 퍼진다는 물리적인 현상이 일어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 냄새는 후각처럼 느껴지는 기감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 냄새는, 피비린내인가?’


불길한 예감을 느꼈지만, 발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일신은 냄새의 근원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었다.


투구에 가려진 동공이 잘게 떨렸다.


눈앞의 광경은 무척 낯이 익으면서 동시에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일렁이는 피의 바다.


산처럼 쌓여 있는 시신들.


수풀처럼 수놓아진 장검들.


그곳은 틀림없이 우일신의 영혼 깊숙한 곳에 자리한 회귀의 흔적이었다.


어째서 얼음 감옥 아래가 이곳으로 이어진 것일까.


우일신은 홀린 듯이 안쪽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발목까지 피바다에 잠기면서 진득한 감촉이 느껴졌다.


그 촉감은 이곳이 단순한 환영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안쪽을 향해 나아가자, 근처에 있던 장검이 잘게 떨렸다.


마치 무언가를 슬퍼하며 흐느껴 우는 듯한 울림이었다.


뒤이어 장검을 중심으로 주변이 요동치더니 풍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지워진 시간의 무덤은 순식간에 비바람이 몰아치는 도심으로 바뀌었다.


주변을 둘러보고는 이곳이 익히 아는 장소라는 걸 깨달았다.


‘여기는 해운대?’


뒤이어 비바람 속에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마에 뿔을 달고 이질적인 마기를 두르고 있는 녹색 옷의 사수였다.


‘레라지에.’


그러나 레라지에의 외형은 윤지우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이건 다른 회차의 기억?’


그 추측을 뒷받침하듯이 주변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망쳐요.”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에는 윤지우가 있었다.


아니 그녀만이 아니다.


어느새 주변에는 공략대 사람들이 있었다.


보아하니 해운대에서 악마 레라지에와 싸울 때의 기억인 듯했다.


레라지에와 라부를 막을 수 없었던 공략대는 큰 타격을 입은 상태였다.


뒤늦게 우일신은 자신이 기억과 동화된 상태라는 걸 깨달았다.


움직이는 것은 물론, 목소리조차 마음대로 낼 수 없었다.


한편으로 기억에 담긴 감정과 생각을 당사자처럼 느낄 수 있었다.


“여기는 제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윤지우는 그렇게 말하더니 자신의 정령과 하나 되었다.


수준 미달의 정령사가 중급 정령과 합체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자칫 잘못하면 정령의 기운이 역류해 몸이 터져버릴 위험이 있었다.


그러나 윤지우는 내상으로 입가에 피를 흘리면서도 기어코 합체에 성공했다.


그녀의 등 뒤로 검붉은 바람의 날개가 뻗어 나왔다.


우일신은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윤지우가 생명을 불태우고 있다는걸.


그녀를 말리려 했지만, 주변 사람들이 그를 붙잡으며 막았다.


이를 떨쳐내지 못할 정도로 레라지에와 라부를 동시에 상대하면서 얻은 부상이 컸다.


크게 다친 그가 끼어들어봤자, 시체만 늘어날 뿐이었다.


이어지는 것은 레라지에와 윤지우의 장렬한 싸움이었다.


윤지우는 기어코 혼자서 레라지에와 라부를 끝장내고야 말았다.


그러나 윤지우 역시 멀쩡할 수는 없었다.


융합이 풀리자, 칠공분혈하면서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우일신은 쓰러진 윤지우에게 달려가 안아 들었다.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윤지우는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아, 아아, 아아아아아아아!”


우일신은 윤지우를 끌어안은 채 절규했다.


그것을 끝으로 풍경은 다시 피바다와 시체의 산으로 돌아왔다.


슬픔에 잠긴 통곡이 아직도 머릿속에서 메아리치는 듯했다.


어째서 이런 장면을 보여주는 걸까.


의문을 해결할 겨를도 없이 다른 장검들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까와 마찬가지로 다른 회차의 기억들이 재현되기 시작했다.


“미안해, 동생. 우리 마누라를 부탁할게.”


박철이 사과했다.


그는 홀로 악마 베리스와 맞서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혈투 끝에 베리스를 쓰러뜨렸으나, 박철은 결국 목숨을 잃고 말았다.


백문희는 남편의 시신을 끌어안은 채 눈물을 흘렸다.


의형을 잃은 우일신의 주먹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쪽이다! 이 괴물 딱지들아!”


공만덕이 버스에서 요란하게 경적을 울리며, 넘쳐나는 몬스터 무리를 끌고 사라졌다.


그것으로 사람들은 무사할 수 있었으나, 공만덕은 그러지 못했다.


망가진 버스의 잔해만 간신히 찾아냈을 뿐, 공만덕은 시신조차 건질 수 없었다.


우일신을 울분을 참지 못하고 주먹을 바닥에 내리쳤다.


“미안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게 전부였습니다.”


김태호는 사과와 함께 한 권의 공책을 건넸다.


그곳에는 그가 초능력을 통해서 본 미래의 일들이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그러나 한계를 넘어서 초능력의 운용으로 모든 감각을 잃었다.


공책을 건네는 것을 마지막으로 김태호는 숨을 거두었다.


노트를 쥐고 있는 손이 잘게 떨리며, 표지 위로 물방울이 떨어졌다.


“내가 죽지 말라고 했었지.”


독고민이 말했다.


평소의 의기양양한 기색은 온데간데없고 얼굴이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에 비친 것은 숨이 끊어지기 직전의 우일신이 있었다.


종말을 끝내기 위해서 다른 이들이 그랬듯이 희생을 자처했다.


모든 감각이 서서히 사라지는 가운데, 마지막 남은 청각이 물기 어린 목소리를 들었다.


“왜 모두 나만 두고 떠나는 거야······!”


이루 말할 수 없는 죄악감을 느꼈으나, 이마저도 죽음 속에 파묻혀 사라졌다.


그 뒤로 많은 사람의 희생과 무력한 자신에 대한 회한이 몰려들었다.


기억의 재현이 끝났을 무렵에는 정신이 피폐해져 있었다.


“헉, 헉, 헉······.”


우일신의 숨이 거칠어졌다.


끊임없이 악몽을 꾸고 다시 깨어나는 꿈속의 꿈을 보는 듯했다.


계속되는 기억의 재현과 함께 강렬한 감정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이건 얼음 감옥의 정신 공격인 걸까?


아니, 그건 아닐 거다.


그렇다면 진작 정신 내성 아이템이 반응했을 테니까.


우일신이 의문에 잠겨 있을 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도 모르겠어?”


반사적으로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피와 시체 그리고 장검이 쌓여 있는 언덕.


그 위에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지금까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기억의 재현에 휘말려 정신이 없었던 탓에 인기척을 못 느낀 걸 수도 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저 사람이 저곳에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껴졌다.


등을 돌리고 있었기에 생김새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체격과 목소리로 볼 때 남자인 것은 틀림없었다.


“아직도 여기가 어딘지, 네가 본 것이 뭔지 알아차리지 못하다니..”


남자의 목소리에는 어처구니없다는 기색이 담겨 있었다.


“여기는 단순히 회귀의 흔적이 남은 장소가 아니야. 정확히는 네놈의 심상이지.”


남자가 말한 것은 마음과 생각을 의미하는 심상(心想)이 아니었다.


마음의 형상을 의미하는 심상(心象)이었다.


“여기가 내 심상이라고?”


우일신은 황량하기 그지없는 공간을 훑어보았다.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었다.


그러나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마치 저 말이 진실임을 내심 알고 있는 것처럼.


반복되는 회귀와 거기에 저항하면서 무의식에 남긴 기억들.


그 속에 담긴 실패의 기록과 회한의 감정은 시산혈해 도산검림을 만들기에 차고 넘쳤다.


하지만 그 사실을 저 남자는 어째서 알고 있는 것일까.


그 해답에 답해주듯이 남자는 언덕에서 일어난 몸을 돌렸다.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우일신의 눈이 크게 떠졌다.


남자의 얼굴은 우일신과 똑 닮았다.


다만 안색이 창백하고 눈가에는 검은 그림자가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피로에 절여 있는 인상의 남자는 귀찮음으로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회귀를 거스르면서 경험이 누적되었듯이 감정과 한 역시 쌓일 수밖에 없어.”


삼백 번의 회귀가 있었으니, 그만큼의 후회와 절망이 있는 게 당연했다.


“당연히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있을 수밖에 없지.”


일어나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으며, 누우면 자고 싶은 게 사람이다.


“하지만 너는 그걸 잘라냈어. 필요 없다고 단정 지은 감정을 이곳에 버리고, 이겨내고자 하는 의지만 가져갔지.”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약함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슬슬 감이 오지?”


그제야 우일신은 알아차렸다.


“나는 네가 잘라버린 약함이야.”


저 남자가 자신의 심마(心魔)라는 사실을.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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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6화 종말답천(5) 23.08.19 354 9 11쪽
95 95화 종말답천(4) 23.08.18 364 1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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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92화 종말답천 23.08.15 384 1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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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89화 검은 기류(6) +1 23.08.11 425 1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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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87화 검은 기류(4) 23.08.09 444 10 11쪽
86 86화 검은 기류(3) 23.08.08 428 9 12쪽
85 85화 검은 기류(2) 23.08.07 465 1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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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83화 업화로(3) +1 23.08.05 456 9 12쪽
82 82화 업화로(2) 23.08.04 471 8 12쪽
81 81화 업화로 23.08.03 474 10 12쪽
80 80화 프라우돌렌티(4) +1 23.08.02 459 11 12쪽
79 79화 프라우돌렌티(3) 23.08.01 486 8 13쪽
78 78화 프라우돌렌티(2) 23.07.31 498 8 12쪽
77 77화 프라우돌렌티 23.07.30 520 10 12쪽
76 76화 자전풍렬식(7) 23.07.29 532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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