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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더 님의 서재입니다.

망한 세상의 무공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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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사우더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4
최근연재일 :
2023.08.23 22:30
연재수 :
10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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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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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27,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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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6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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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93화 종말답천(2)

DUMMY

삼백 번.


숫자만 놓고 보면 많지 않은 횟수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를 시간으로 환산해 보면 체감이 달라진다.


평균적으로 회귀 한 번에 3년 정도가 걸린다.


이는 단순 계산으로 90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는 뜻이 된다.


900년은 세기가 9번 바뀌고, 한 나라가 망하고 새로운 나라가 부흥할 만한 충분한 시간이었다.


눈앞의 독고민은 그 시간을 지금까지 홀로 버텨왔다.


“탑의 기록에서도 여기까지 회귀를 반복한 건 이례적인 경우더라.”


그러나 독고민은 짐짓 아무렇지 않은 양 말했다.


동정 따위 필요 없다고 무언으로 소리치는 듯했다.


그렇기에 우일신은 아무 말 없이 독고민의 말을 경청했다.


“탑의 회귀는 해당 행성의 지성체가 전멸하거나 멸종할 위기일 때 발동돼.”


여태까지 몇 번이고 종말을 이겨냈으나, 회귀가 멈추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삼백 번의 회귀 동안 인류는 멸종이라는 결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물론 시련의 탑도 가만히 이를 지켜보기만 한 건 아니었다.


“시간을 되돌려도 변수가 없으면 같은 일의 반복이지. 그래서 회귀 직전까지 생존해 있는 사람들에게 기억을 담겨두는 특전을 부여해 왔어.”


기억과 경험을 토대로 미래를 대비하고 종말을 이겨내라는 취지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유의미한 성과는 남기지 못했다.


회귀자들은 미래 지식을 바탕으로 제 이득을 위해 움직였다.


심지어는 같은 회귀자와 협력하기는커녕 미래 지식을 독점하기 위해 서로 죽이는 경우마저 있었다.


“슬기슬기 사람종이라는 게 그런 거지. 자기랑 주변만 살아남으면 장땡이니까.”


단순히 생존만 생각한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살아남아도 인류 멸망을 막지 못하면 회귀가 반복될 뿐이었다.


그렇게 반복되는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회귀를 포기하는 사람마저 있을 정도였다.


탑 역시 계속되는 회귀로 자원이 소모되어 기억 계승을 조건부로 바꾸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영웅은 있는 법이지.”


각 서버에는 이타적이면서도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회귀자일 때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때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상황에서든지 그들은 초인적인 의지로 종말을 해쳐나갔다.


그중에서 가장 독보적인 사람이 바로 한국 서버의 해골 기사 스컬맨, 우일신이었다.


“네 영혼은 특별해. 회귀를 거슬러 무의식중에 기억을 남길 정도로 말이야.”


우일신은 지금까지 최후의 생존자가 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무리 오래 살아남아도 마지막 순간에는 종말을 끝내기 위해 희생을 선택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회귀를 거스르며 무의식 속에 이전 회차의 기억을 남겼다.


이러한 불굴의 의지는 회차를 거듭할수록 성장의 발판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번 회차에서 터무니없는 성과를 올리는데 성공했다.


평균 3년이 걸리는 종말 시퀀스를 단 3개월 만에 주파해 버렸다.


이건 지금까지 탑의 기록에서 확인된 전례가 없었다.


“지금 종말 시퀀스는 계속되는 오류로 버그가 터져서 일시 정지됐어. 이제까지 없었던 절호의 기회지.”


독고민은 우일신과 시선을 마주쳤다.


지금까지 보인 차분했던 태도가 거짓말인 것처럼 두 눈에는 열의로 가득 차 있었다.


“이 빈틈을 이용해서 종말 시퀀스를 완전히 끝장낼 수 있어.”

“종말을 부술 수 있다면 바라던 바야.”


우일신은 독고민의 말에 맞장구쳤다.


종말을 부수기 위한 작전에 기꺼이 협력하겠다는 의사 표시였다.


“너라면 그렇게 나올 줄 알았어.”


독고민은 웃으면서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허공에 화면이 떠오르더니 어딘가를 비추기 시작했다.


그건 지구의 하나뿐인 위성, 달이었다.


화면은 달 표면을 서서히 확대하더니 어느 한 지점에서 멈추었다.


그곳에는 본래 달에 있을 리 없는 건축물이 존재했다.


“얼음으로 만들어진, 감옥?”

“여기가 바로 종말 시퀀스를 움직이는 핵이 잠들어 있는 장소야.”


우일신은 종말 시퀀스의 본거지가 있다면 별개의 차원에 존재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설마 같은 차원에 그것도 달 위에 있을 줄이야.


“겉으로 보이는 거랑 다르게 들어가는 게 까다로운 곳이야.”

“함정이나 파수병 같은 거 때문이야?”

“그런 것보다 더 심해.”


독고민은 얼음 감옥 주위를 자세히 확대해 보여주었다.


그러자 감옥 주위에 고정된 것처럼 떠 있는 돌 파편이 보였다.


“저 얼음 감옥 주위와 내부는 시간이 멈춰 있어.”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말 그대로의 의미였다.


범위 내에 들어가는 순간 그대로 정지된 시간에 사로잡히게 된다.


시간 정지에 저항할 수 없다면 내부로 들어가기는커녕 접근조차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시공간 계통의 능력은 희귀해. 9서클이 되어서야 간신히 건드릴 수 있을 정도야.”


시공간 분야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마법사라도 반영구적인 시간 정지는 막대한 자원이 들어갔다.


그나마 독고민은 탑의 지원을 통해 유사적인 재현이 가능했다.


그런 그녀조차 얼음 감옥의 시간 정지를 뚫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일신, 너는 이 무리 난제의 해결 방법을 스스로 찾아내야만 해.”

“그러니까 나보고 시간 정지 속에서 움직일 방법을 찾으라고?”

“안전지대에 저것과 유사한 환경을 마련해줄게. 이게 탑에서 해줄 수 있는 최대의 지원이야.”


독고민은 초월적인 마법사가 되기는 했으나, 본인의 힘으로 이룩한 경지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런저런 많은 제약이 걸려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시간 정지에 대한 내성을 주는 아이템을 만들어서 건네주고 싶었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규칙 위반이었다.


아무리 주도권이 탑 쪽에 거의 넘어왔다고 해도 종말 시퀀스가 좌시하지 않을 거다.


시련의 탑이 종말 시퀀스에 기생해서 페이즈 진행에 간섭했던 것처럼.

반대로 종말 시퀀스 쪽에서 시련의 탑이 선을 넘을 경우 간섭하는 게 가능했으니까.


이번 지원조차도 이런저런 꼼수를 부린 끝에 얻어낸 아슬아슬한 줄타기였다.


독고민은 해결 방법을 떠넘겨야 한다는 사실이 불만스러웠는지 얼굴에 다 드러났다.


하긴 그녀의 성격을 생각하면 웬만하면 본인 손으로 해결하고 싶었을 거다.


지금까지 지구에서 벌어지는 여러 상황을 관측하면서 얼마나 속이 터졌겠는가.


아마 보면서 차라리 내가 하는 게 백배 천배 낫겠다고 소리쳤을 거다.


그러나 독고민은 다른 회차의 독고민에게 기억 특전을 줄 수 없었다.


탑주와 동일 인물이라서 반칙으로 판정되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회차에서 마지막까지 생존했음에도 그녀가 회귀자가 아닌 이유였다.


우일신은 제가 알고 있는 독고민의 흔적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에 독고민은 부루퉁한 얼굴로 이를 지적했다.


“왜 웃는 거야.”

“아니, 독고민답다 싶어서.”


지금까지 고생해 온 독고민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성공해야 했다.


우일신은 화면 쪽으로 시선을 돌려 얼음 감옥을 주시했다.


최후의 결전을 치르게 될 장소를 확실히 눈에 새겨두기 위해서.


* * *


끼익.

문 열리는 소리가 조용한 방 안에 메아리쳤다.


우일신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실로 오랜만에 돌아온 안전지대였다.


안전지대 내부는 독고민의 지원으로 이전보다 확장된 상태였다.


넓어진 공간과 본 적 없는 방문이 그 증거였다.


새로운 방문에는 친절하게도 시간 정지 수련실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우일신은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의식이 정지했다.


방문 안으로 머리를 들이민 순간, 모든 게 멈추었다.


멈추었다는 인식조차 불가능했다.


시간이 멈춘다는 것은 모든 활동이 물리적으로 정지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인식 역시 그중 하나였다.


정지된 시간 속에서 체감 시간으로 10초 정도 지났을 때, 알림창이 떠올랐다.


[10초 동안 움직임이 없습니다.]

[내부에 있는 인원을 수련실 밖으로 강제 퇴출합니다.]


우일신은 방 밖으로 튕겨 나왔다.


“허억!”


멈췄던 모든 생명 활동이 재개되자, 거칠게 숨을 토했다.


찰나마저 인지할 수 있는 초감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위화감이 크게 다가왔다.


‘이게 시간 정지?’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감각이었다.


과연 시간 계열 능력 중에서 가장 유명한 능력다웠다.


‘하지만 방법이 없지는 않아.’


감응감각도를 일으켜 방 안을 살폈다.


뻗어나가던 기감이 내부로 들어가는 순간 정지되어 버린다.


‘여기서 시점을 바꾼다.’


상단전이 달아오르며 지금까지 인지하지 못했던 영역을 향해 나아간다.


초월의 영역에 발을 담가봤던 경험이 여기서 빛을 발했다.


그것은 시간의 흐름 혹은 인과율이라고 부를만한 것이었다.


간혹 찾아오는 상단전의 예지는 이러한 인과율을 무의식으로 읽어낸 산물이었다.


그 흐름을 인지한 상태로 다시 한번 방 안에 들어갔다.


이번에도 모든 움직임이 멈추었다.

그러나 의식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다.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게 되자, 의식을 흐름 바깥으로 떼어낼 수 있게 되었다.


‘의식이 있다면, 진기를 움직일 수는 없을까?’


마음이 움직이자, 내공이 따라 움직였다.

심즉동의 경지이기에 가능한 현상이었다.


시험 삼아 허공섭물로 신체를 움직여 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진기를 움직이는 건 가능하지만, 이를 통해 물리력을 행사하는 건 불가능했다.


‘최선은 시간 정지를 극복할 새로운 방법을 만드는 거다.’


차선은 녹강기를 통해 시간 정지라는 환경에 적응하는 거였다.


이게 차선인 이유는 적응이 가능할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얼마나 걸리지, 이게 얼음 감옥에서도 통할지 알 수 없었다.


지금 상황에 적절한 다른 무공은 없는지 생각해 보았다.


‘초극일로.’


모든 고난과 역경을 뛰어넘기 위한 경공.


어떤 지형에도 상관없이 달릴 수 있게 해주는 주법(走法).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상단전의 예지가 고했다.


지금 상황은 달리기는커녕 걷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보법(步法)이 필요해.’


무공에서 보법은 간격을 조절해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는 수법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우일신은 따로 보법을 만들지 않았다.


신법을 운용하는 것만으로 간격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처음으로 보법의 필요성을 느꼈다.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


‘어떤 상황에서도 나아갈 수 있는 발걸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정지된 시간마저 이겨낼 수 있는 한 걸음.’


타오르듯이 샘솟는 의지가 선명한 심상을 그리며 진기에 녹아들었다.


걷는다는 행위는 공간을 좁히는 행위이다.


그리고 공간은 시간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렇기에 공간을 걷는 것은 시간 속을 거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움직, 여라.’


누군가는 물리적으로 있을 수 없는 궤변이라고 따질지도 모른다.


‘움직여라.’


누군가는 불가능한 일이라면 웃어넘길지도 모른다.


‘움직여라!’


그러나 시간을 되돌리는 이적(異蹟)마저 거슬렀던 의지는.


-움직여라!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정지된 시간의 흐름 속에서 홀로 걸음을 내디뎠다.


-시척보(時蹠步)!


시간의 흐름에 보법의 이름을 새겨 넣듯이 의념이 포효했다.


걸음은 이내 몸놀림이 되고, 이어서 뜀박질이 되었다.


보법, 신법, 경공.


보신경이라고 묶어서 부를 정도로 연관이 깊은 무공들이 연동되어 비로소 완전해졌다.


모든 것이 멈춘 시간의 흐름은 더 이상 그를 붙잡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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